2007년 3월 재단 측은 소위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각계에서 90인의 위원을 위촉했었다.
재단 측이 같은 달 27일 공지한 바에 따르면, 90인의 위원에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정명화 첼리스트,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공동대표로 하여 《정동영·정세균·김근태 前열린당 의장, 이재정·정세현 前통일부 장관, 권영길·노회찬 前現職민노당 의원 , 손학규 前경기 지사, 백낙청 6.15실천남측위(委) 상임대표》 등 외에도 《이명박 前 서울특별시 시장, 김태호 경남 지사,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참여했다고 돼 있다.
원희룡 의원과 홍석현 회장은 현재에도 「윤이상평화재단」 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재단의 이사장 박재규 前장관은 「윤이상평화재단」은 『윤이상 선생의 업적과 숭고한 민족사랑의 뜻을 이어받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민족의 화해와 우리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뚜렷한 이정표로서 선생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며 천천히 한걸음 한걸음씩 못 다 이룬 윤이상의 꿈을 향해 나아가자』고 밝히고 있다.
윤이상은 67년 「동백림 사건」 이외에도 92년 「오길남 간첩사건」으로 그 실체가 다시 확인됐다. 오길남 박사(현재 서울 거주)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하다, 86년 북한을 다시 탈출해 92년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윤이상은 북한과 연계해 오 박사의 入北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오 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하는 과정에서 갖은 협박을 하며 再입북을 권유했다.
정부는 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入北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에서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판단했었다.
또 17회에 걸쳐 입북(入北)하여 김일성을 접촉하고,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윤이상의 친북행각을 입증하듯, 북한에서 윤이상은 『애국자(?)』로 평가돼왔다. 「음악연구」 1990년 2호 등 북한이 발간한 여러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2000년 북한이 펴 낸 김일성 교시집(敎示集) 「재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재서독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등에 따르면, 김일성은 윤이상이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다』며 그를『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었다.
같은 교시집에는 윤이상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했다』는 김일성의 언급도 나온다. 또 윤이상은 『주체사상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말했고, 김일성은 『그것은 옳은 말』이라고 화답했다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在獨음악가 故윤이상의 부인 이수자氏의 친필(親筆) 서신도 수록돼 있다.
李씨의 자필서신은 李씨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뒤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서신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김일성 사망 시와 1주년 당시 윤이상 본인이 썼다는 편지의 내용도 수록돼 있다.
이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의 서술로 일관돼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