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고도 짧았던 2008년도 이제 과거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10년간의 좌익정권을 마감하고 출범한 우파 정부의 원년이었던 2008년. 예상대로 극좌세력은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에 순순히 승복하지 않고 촛불폭동을 일으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을 마비시켰다. 수만명의 시위대를 동원해 광화문에 해방구를 조성한 이들은 MBC와 KBS라는 공영방송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대한민국을 무법천지로 만들어 갔다. 광우병 관련 온갖 유언비어가 진실을 가리고, 촛불로 포장한 정치깡패들의 폭력 앞에서 법이 굴복하는 나날들이었다. 진실을 알고 있던 지식인들조차도 좌익세력의 인민재판을 꺼렸는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 저주의 사슬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의 힘으로 폭도들에 맞서 싸운 젊은이들이 있었다. <프리존뉴스>는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6.25 남침 이후 최초로 해방구로 전락했던 힘겨운 시기에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진실의 편에 섰던 이들을 2008년 한해가 저물기 전에 기억하고자 한다. | ||||
좌익세력이 촛불폭동이 절정에 달했던 2008년 6월 3일. 광화문 ‘해방구’ 한복판에서 한 청년이 1인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4학년생 이세진씨였다. 그는 이날 서울 청계광장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반미(反美)세력에 의해 악용되고 있다”면서 향후 “‘정권 타도’와 ‘체제 전복’ 등의 주장까지 난무할 것 같아 1인 시위에 나서게 됐다”며 자신의 명분을 밝혔다. 이씨를 향한 촛불 폭도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특유의 폭력성과 단순무식함으로 인해 ‘촛불좀비’라는 별명을 얻은 좌익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와 이세진씨에게 욕설을 퍼부어댔다. ‘촛불좀비’들 중 일부는 무방비상태의 이씨에게 침을 뱉었으며, 쓰레기를 투척하기도 했다. 또 일부 폭도들은 현장을 취재하던 <프리존뉴스> 기자를 집단 폭행하고 카메라 줄을 잡아당기기도 했으며, 한 괴한은 이세진씨가 가는 곳마다 스토커처럼 따라다니며 공포분위기를 조성,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폭도도 혼자서는 이세진씨 앞에 당당히 서지 못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그들은 항상 동료 좌익들을 ‘지원군’으로 이끌고 현장에 나타나 난동을 부리기 일쑤였다. | ||||
결국 이세진씨의 용기 있는 1인시위는 침묵하던 우파세력을 총궐기시켰다. 이씨의 희생에 고무된 젊은이들은 하나 둘씩 광화문 현장으로 몰려들어 이씨를 지원하는 1인시위를 시작했다. 급기야는 촛불폭동에 반대하는 네이버 카페 ‘과격불법 촛불시위 반대 시민연대’(http://cafe.naver.com/nonodemo)가 설립됐고, 공영방송의 철저한 외면에도 불구하고 회원수는 1만명, 2만명을 넘어 3만 5천명까지 급증했다. KBS, MBC 등 좌경화된 공영방송 및 포털사이트가 불법시위대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반면 반대 의견에 대해서는 외면하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결과였다. 한편, 우파성향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는 지난 11월 ‘2008년도 바른사회 후원의 밤’ 행사를 열고 이세진씨를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선정했다. | ||||
‘광우병 괴담’의 진원지였던 MBC PD수첩의 왜곡 보도는 결국 역풍에 직면했다. 지난 4월 MBC ‘PD수첩’의 보도내용 중 상당수가 왜곡 보도였던 것으로 재차 입증된 것. 당시 방송을 통해 인간광우병에 걸려 사망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소개된 미국의 20대 여성 고(故) 아레사 빈슨씨에 대해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가 홈페이지에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것이 아니다’고 밝힌 것이다. CDC는 지난 6월 12일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최근 국립프리온질병병리학감시센터(NPDPSC)가 올해 초 사망한 버지니아의 젊은 여성(아레사 빈슨을 지칭)의 사인(死因)에서 인간광우병(vCJD)일 가능성을 배제했다”며 “이번 사례가 세계 언론의 관심을 불러모았지만 NPDPSC는 인간광우병 감염에 의한 사망은 아닌 것으로 결론지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MBC는 24일자 PD수첩에서 문제의 보도가 ‘번역 실수’였다고 변명했고, 이에 당시 영어 번역을 감수했던 정지민씨는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정씨는 25일 MBC PD수첩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소위 ‘다우너’소에 대해 광우병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왜곡이라고 제가 번역 감수 중에도 여러번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한 적이 있다”고 전제하고 “보조작가를 붙여줘서 전달이 안됐을 가능성이 높지만, 여러가지로 '의역'이나 '오역' 논란이 있는 건 제작팀에서 결정해서 내보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씨는 “그럼에도 제작진이 ‘영어 번역’을 문제삼고 있는 것은 번역자들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이라고 항의했다. 정씨는 또 “의역이 있었다면 번역이 이루어진 후 제작팀에서 결정해서 vCJD로 통일, 또는 다우너=광우병 우려 소로 통일한 것이니까 제작 의도 및 편집의 목적이 광우병의 위험성 강조였음을 깨끗이 인정해야지, 번역에 신경 쓰시겠다니요?”라고 덧붙였다. 정씨는 △ 다우너 소에 대해 광우병 연결시키지 말라고 했었는데 사회자의 말실수뿐 아니라 맥락상 연결이 되었다는 점과 △ 아레사 빈슨의 사망 원인이 확실치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강조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두가지 문제는 번역 문제가 아니라 제작 의도 및 편집의 어떤 ‘성향’ 내지는 ‘목적’이 강조되어 발생한 문제”라며 “계속 MBC측이 번역 운운한다면 신문사에 직접 제보할 생각도 있다”고 경고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정씨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는 PD수첩 게시판에서 자신을 향해 어설픈 반박을 시도하는 촛불시위 옹호론자들을 상대로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재반박을 계속했다. 정씨의 논리에는 빈틈이 없었고, 좌익 논객 진중권씨조차도 PD수첩 게시판에서 허점투성이 논리로 정씨를 공격하다가 서둘러 입장을 바꾸기도 했다. 정지민씨 또한 이세진씨와 마찬가지로 지난 11월 ‘바른사회를 지키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선정됐다. 정씨의 폭로 이후 PD수첩의 왜곡 보고와 광우병 괴담에 대한 역풍이 불기 시작했기에, 우리는 촛불폭동을 종식시킨 주인공 중 한명으로 그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 ||||
김대중-노무현 ‘10년 좌익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으로 인해 정권교체 열기가 고조되던 지난 2006년 11월, <프리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파정권 출범 이후의 정국을 족집게처럼 예측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노련한 정치평론가나 정치권 인사도 아닌, 30대의 젊은 프리랜서 기자였다.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좌익추적 전문기자로 활약해 온 김성욱 기자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년(2007년)에 정권교체가 되긴 하겠지만 내전 상황은 더 심화될 것”이라고 전제하고 “좌익들은 ‘그래, 정권 한번 바꿔 봐라. 그럼 우리가 다 뒤집겠다’ 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FTA 반대 시위 등의 좌익폭동은 이를 위한 예행연습일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당시 그의 주장에 대해 우파진영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대다수 우파들은 정권교체 그 자체로 대한민국 내의 좌익세력을 몰락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김 기자의 예측은 무섭게 적중했다. 그의 예상대로 좌익들은 대선-총선 패배를 뒤집기 위해 촛불의 탈을 쓴 대규모 난동을 일으켰다. 폭도들의 시나리오를 미리 꿰뚫고 있었기 때문인지, 김 기자는 촛불폭동 초기부터 좌익세력을 상대로 전면전을 벌일 수 있었다. 베스트셀러 ‘대한민국 적화보고서’의 저자로도 유명한 그는 ‘촛불난동 주동세력의 정체’라는 연설을 통해 폭동을 진두지휘한 극좌단체 인사들의 면면을 폭로했으며, 광우병 관련 유언비어의 실체도 밝혀냈다. 대한민국이 벼랑 끝에까지 몰린 순간, 그는 ‘투사’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15만명 규모의 대규모 불법시위가 열린 2008년 6월 10일, 1만명 가량의 우파 시민들은 시청앞 광장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그러나 당시 우파들은 공영방송을 장악한 촛불 좌익들을 상대로 여론전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기에 시위 현장의 분위기도 극도로 침체돼 있었다. 이를 비웃듯 일부 촛불시위대는 우파 집회가 열리는 시청앞 광장 한복판까지 겁 없이(?) 진출했고, 연사들의 연설 한마디 한마디마다 토를 달며 그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우파들이 노무현 정권 하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굴욕적인 상황이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을 급반전시킨 주인공은 바로 김성욱 기자였다. 이날 그는 세 번째 연사로 나서, 그 이전까지 누구도 내지 못했던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막힘없는 논리, 정확한 근거를 앞세워 촛불폭동 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전 연사들의 연설 때마다 조롱하고 비웃던 좌익들도 김 기자의 연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대꾸조차 할 수 없었다. 반면 느슨하고 침체된 시위 현장 분위기에 주눅되서 광장 구석에 삼삼오오 흩어져 있던 우파 시민들은 연단 주변으로 급속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치고 위축된 대한민국 우파에게 30대 젊은이가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우파 시민들이 광장 중앙으로 운집하자 기세등등하던 좌익세력도 하나 둘씩 자리를 뜨고 자신들의 본거지(?)인 청계광장과 광장 주변 텐트로 발길을 돌렸다. 김 기자의 활약 이후 이어진 다른 연사들의 명연설로 인해 이날 집회는 소규모였지만 대성공으로 끝났다. 이는 우파는 그토록 기다리던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반환점이었으며, 여론 흐름도 거짓말처럼 반전되기 시작했다. 결국 서울시민들은 7월 31일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親 전교조 성향의 주경복씨를 낙선시키는 것으로 촛불폭동 세력을 심판했다. 자유통일론자인 김씨는 지난 8월 28일자 칼럼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1948년 건국으로 시작됐고, 자유통일로 완성될 것”이라며 “갈 길이 멀고 할 일이 많다. 10년 동안 뒷걸음쳤지만, 이제는 반격이다”고 선언했다. 프리존뉴스 전해성 기자 (jhs@freezonenews.com) |
해방구 한복판에서 진실을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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