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용, 조준묵, 이동희 PD
-최진용 책임 프로듀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PD수첩입니다. ‘김현희는 가짜다.’ 지난 11일 200명이 넘는 천주교 신도들이 내놓은 주장입니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또한 이 사건이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조작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물론 국정원 측은 가당찮은 추측이라고 펄쩍 뜁니다마는 사건 발생 후 16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의혹들, 조준묵, 이동희 PD가 짚어봤습니다.
-내레이션: (KAL 858기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 장면, 2003년 11월11일) 용의자 스스로 범행을 시인했던 이 사건. 그러나 의혹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천주교 신부 202명이 포함된 진상규명대책위원회가 ‘김현희는 가짜’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전종훈 신부(천주교인권위원회): 아무것도 없는데 그저 김현희의 증거, 김현희가 한 말 있잖아요. 뭐 ‘김정일의 친필서명을 받고 지령을 받아서 폭파시켰다’ 이거만 듣고 ‘폭파당했다, 비행기가 없어졌다’ 어떻게 믿느냐 말입니다.
-심재환 변호사(KAL 858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김현희는 완전히 가짜다. 그렇게 딱 정리를 합니다. 이건 어디서 데려왔는지 모르지만 절대로 북한 공작원,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원이 아니라고 우리는 단정을 짓습니다.
-심재환 변호사(KAL858기 진상규명대책위원회): 그 수사결과 자체의 본질, 핵심, 근본을 흔드는 정도의 오류라는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되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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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2004년 5월22일]
KAL858의 미스터리 제1편 폭파, 진실은 무엇인가
-책임프로듀서 이상요 / 프로듀서 왕현철
상편
내레이션; 김현희와 김승일의 좌석은 7B,7D였고 김현희는 좌석 위 선반에 폭탄을 올려두었다고 진술했다. 사고기는 전체 길이 44m로 비교적 작은 비행기였다. 두 사람의 좌석은 일반석 두 번째로 비행기 날개 근처였다. 사고기에는 8개의 구명보트가 있었고 발견된 구명보트는 앞에서 두 번째 위치였다. 구명보트는 기체 중앙에 있었고 폭탄은 구명보트의 왼쪽 약간 아래쪽에 놓았다고 했다. 두 물체 사이의 거리는 불과 7~8m였다.
앞에서 확인된 C4 컴포지션의 위력이라면 구명보트 6046373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한다. 미국 연방항공국의 폭파실험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폭탄 파편이나 불길이 구명보트를 비켜가서 구명보트가 손상을 입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취재진에게 의문이 더해진 것은 구명보트 안에 있는 수동펌프였다. 구명보트는 그렇게 파손되지 않았으나 그 속에 있던 수동펌프는 파괴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것이 KAL858기에 탑재된 구명보트와 동일한 것이다. 내장품들은 보트 중앙에 들어있다. 구명보트 외부 손상은 적은데 내부에 있던 수동펌프는 파괴된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구명보트에 날카로운 물체에 찢긴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국과수 관계자 (당시 잔해 감정): 예리한 물체에 찢겼다는 것은 그때 언급을 못했을 거야, 아마. 굳이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각들, 비행기 동체 날카로운 부분에 걸린 게 아닌가 싶어요.
-현준희 (KAL858기 가족회 간사): 수동펌프가 폭탄의 파편에 의해서 부서졌다고 하더라도
그 파편이 그 구명보트 안에 있는지, 아니면 이것이 다시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고 하는 경우 구명보트가 여러 겹으로 둘둘 말아져있기 때문에 수십 군데에 구멍이 나 있어야 됩니다. 과연 그 구명보트 안에 몇 개나 구멍이 나 있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내레이션: 구명보트는 펼쳐지지 않은 상태로 보관된다. 전문가들은 보통 파편이 구명보트를 뚫고 들어갔으면 보트 내부에 파편이 있거나, 펌프를 부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면 말린 상태의 구명보트는 수십 군데 찢겨져 있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KAL858기가
폭파됐다는 증거로 제시된 구명보트는 더욱더 전문가의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김현희는 라디오 폭탄으로 KAL858기를 폭파했다고 자백했다. 그러나 2년4개월 후에 발견된 기체 잔해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폭파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감정했다.
이 또한 더욱더 정밀한 조사를 해야 하는 숙제를 남기고 있다.
-김형태 변호사 (법무법인 덕수): 자백이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무죄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보강증거라고 낸 것들이라는 게 비행기 KAL 잔해 이런 거지, 그럼 비행기가 떨어졌다, 라고 하는 걸 입증하는 것이지 그게 바로 김현희가 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거든요. 그렇다고 하면 김현희가 폭파했다고 볼 수 있는 보강증거라는 건 전혀 없어요. 그렇게 보면 무죄가 나왔어야지 맞는 것 아니냐. 변호사 입장에서 보면 보강증거도 없는데 유죄를 받았으니까 재심을 해가지고 검찰은 정말 김현희가 했다는 것에 대해서 증거를 확실하게 내 놔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재심해서 무죄가 나야 될 사건이 아닌가, 이런 경우죠.
-내레이션: 현재까지 정부의 발표는 1987년 11월29일 KAL858기는 공중에서 라디오 폭발물에 의해 폭파돼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모두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KAL858기 유족들은 이 발표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하편
-내레이션: 북파범으로 지목된 생존자 김현희는 김정일의 지령을 받고 이 비행기를 폭파했다고 주장했다. 공범으로 지목된 또 한 사람, 김승일은 영원한 침묵의 세계로 갔다. 왜 대법원 판결까지 난 kAL858기 폭파 사건이 1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의혹을 낳고 있는가. 김현희와 김승일은 과연 폭파범인가.
-(자료화면)김현희: 이 독약 앰플은 청산가리를 액화해서 아주 작은 유리앰플에 넣은 것으로서 그 끝만 조금만 깨도 금방 그 자리에서 즉사하도록 완벽하게 만들어진 공작장비입니다.
-내레이션: 깨물기만 해도 즉사할 수 있는 독극물, 그러나 김현희는 살아났다.
-(자료화면)김현희: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저만이 3일 동안의 인사불성 끝에 병원에서 깨어나 되살아났습니다.
-소나가와(당시 주 바레인 일본 외교관): 마유미를 들 것에 싣고 의사가 세정을 위해 관을 넣으려고 하니까 아팠는지 의식이 있어서 손으로 치우려고 했어요. 그건 결국 의식이 있다는 것이니까 아, 괜찮구나 하고, 그럴 정도로 의식이 있구나..
-내레이션: 음독사건 이틀 후에 신문기사는 극약인 청산윰을 마시고도 커피와 음식을 먹고 있는 김현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2월 1일 공항으로 가서 김현희를 직접 응급처치했던 알바니아 병원 의사를 만났다.
-압풀라힘 압둘라(김현희 치료의사): 그녀는 모든 게 정상이었고 아픈데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 여자를 통제하는 일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마치 무술을 배운 것처럼 발차기를 대단히 잘했습니다. 그녀를 꼼짝 못하게 하기 위해 달려들어 양손과 양다리를 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태에서도 그녀는 움직이고 점프를 시도했습니다. 손을 물어뜯으려 했습니다. 침대차에 태우기도 어려웠고 공항에서 병원까지 이송되는 동안 단단히 붙잡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려고 계속 시도했습니다.
-내레이션: 일본인 하치야 마유미가 왜 음독을 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때까지 김현희는 폭파용의자가 아니라 일본여권법을 위반한 마유미라는 일본 여자였다. 그런데 김현희는 자신이 일본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자백한다.
-스나가와(당시 주 바레인 일본 외교관): (인수하지 않기로 한 것은) 12월9일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김현희의 취조면회가 있었어요. 본인이 불쑥 '난 일본인도 아닌데 이렇게 와주고 뭐든지 해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맙다'라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말했습니다.
-내레이션: 김현희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일본은 그 날로 이 사건에서 손을 뗀다. 김현희가 자백을 하기도 전 공식 수색은 종결되고 곧이어 한국 수사기관은 이 사건에 대해 폭파에 의한 테러라는 결론을 내린다. 김현희는 서울로 압송됐다. 마침내 12월 22일 압송 1주일 만에 서울 시내 구경을 하던 김현희는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여자 수사관에게 '언니, 미안해' 하면서 사건 전모를 자백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평양에서 출발, 바레인에서 체포되기 까지 김현희의 진술에만 의존한 그들의 행적은 곳곳에 의혹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런 의혹에 대한 재조사는 지금까지 이루어진 적이 없다.
KAL858기 폭파. 115명의 사망자. 이 역시 김현희의 진술과 약 20일 간의 진상 조사만으로 수많은 의혹이 덮어져 버렸고, 그 이후 17년 동안 침묵이 계속되고 있다.
-김형태 변호사(법무법인 덕수): 수백 명이 죽었는데 그럼 이건 파장이 엄청난 거거든요. 더군다나 북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게 이렇게 비공개로 묻혀가지고, 본인이 죽였다는 말 정도 있고, 그런 상태로 사회에서 이렇게 묻혀있다고 한다면 이건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그런 사건이고요. 정확하게 정말 진상을 공개해서 유족들도 그렇게 국민들이 다 납득할 수 있도록 그런 진상이 나온다고 한다면 북한도 철저하게 사죄해야 되고. 정부 차원이 아니라 민족 앞에 사죄해야 될 그런 부분이고. 그렇다고 보면 그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쪽은 자기들을 위해서라도 꼭 공개해야. 햇볕에 꺼내가지고 양지에서 말려서 보여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레이션: 과연 KAL858기는 폭파되었는가. 김현희와 김승일은 누구인가. 김현희의 진술로 실체는 밝혀졌나. 이제 진상은 밝혀져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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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과거사 위원회의 최종보고 중 일부
<96. 발견된 기체조각들 중에는 김현희가 폭탄을 두었다는 지점 근처의 조각들도 있었는데, 그 조각들에서도 폭발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현희의 폭탄이 정말 있었는가.
의혹내용: 2004년5월에 방영된
조사결과
국방과학연구소를 통해, C4 350g과 PLX 700cc가 동시에 폭발할 경우, 1차 폭풍압력으로 인해 탑승객이 사망할 수 있는 범위는 1m내외 정도이며, 거리가 약간만 떨어져도 폭압에 의한 피해는 급격히 감소된다는 것을 확인하였음. 1990.3월 안다만 해역에서 인양된 기체 잔해들의 KAL 858기 해당부위를 조사한 결과, 폭탄을 두었다고 하는 7B, 7C 인접 부위(2M 이내)의 잔해는 없었음을 확인함.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잔해 감정시, ‘파편이 폭발중심 인접부가 아닌 경우 폭발물질의 폭발에 의한 직접적 파손형태나 폭발물질 등이 검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견을 첨부한 바 있음.>
*김현희씨를 재조사하였던 미국 정부 기관원의 手記
세상에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 흉악한 북한독재자의 범행을 덮어버리고 대한항공 858기의 폭파 같은 끔찍한 사건을 한국정부의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느 나라 국민이며 그들의 주장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대한민국 수사관들의 능력을 불신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묻고 싶다.
필자는 이 사건에 관여했던 조사관들을 다 만났으며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한 줄도 빼지 않고 다 읽었고 김현희도 직접만나 보았다. 대한민국의 수사관들이 다 유능하고 국가관이 투철하지만 특히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관들은 그들의 국가관, 안보의식, 수사능력, 인간성 모든 분야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들이였다.
그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읽을 때에 그들의 해박한 지식, 치밀한 수사접근과 분석, 철두철미한 방증자료의 이용, 그리고 날카로운 판단 등 참으로 그들이 흐뭇하며 자랑스러운 느낌을 갖게 했다. 그 당시의 수사 총책임자의 말에 의하면 특히 김현희를 조사할 때 몇 가지 원칙을 수사요원들에게 제시했는데 절대로 강압적인 방법을 쓰지 말 것, 순수한 인간애와 진실을 보이고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협조할 때 까지 인내하고 기다릴 것 등이었다고 한다.
김현희는 사실 1987년 12월 15일 서울로 압송되어 안기부 대공수사국에 도착한 후 8일간은 비협조적 이었고 자기가 북한 공작원인 사실을 부인하고 교육받은 대로 일본인 <하지야 마유미>로 고집을 했다. 그러나 그가 시내구경을 하고 남산에 올라가 서울의 야경을 보고난 다음날 12월 23일 오후 5시에 처음으로 한국말을 했으며 진실을 토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후에 그 이유를 물으니 서울에 와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듣고 북에서 교육받은 내용과 너무나 차이가 나며 특별히 그가 협조하기로 결심한 이유는 자기를 담당한 조사관들과 협조자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인간성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는 과연 김현희가 북한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북한공작원이냐 아니면 일부 친북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대한민국정부의 조작이냐를 놓고 논리적 해명을 해야 한다. 대공수사에서는 조사관들이 북한의 모든 분야에 걸친 정확하고 해박한 사전지식이 있어야한다.
이 사전지식이란, 공산주의 이론, 북한의 건국 과 권력구조, 권력투쟁과 숙청, 북한의 정부구조와 기능, 당의 조직과 운영, 군부,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대남공작, 통일정책, 대외정책, 언어, 풍습, 인민생활 수준, 간부들의 비리, 지도급 인사들의 개인 신상문제, 사회갈등, 반체제활동, 인권문제, 국내치안과 보안기관의 활동, 남북한 비교, 그리고 지금 같으면 핵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개발 등 현안문제, 남북 교류, 국제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이 알아야한다.
이 사전지식이 없으면 상대방이 허위진술을 하는지 진실을 말 하는지 판단할 수가 없다. 그리고 조사관들은 심리학적 감각이 예리해야한다. 상대방의 행동과 태도, 말과 눈빛, 일거수일투족에서 상대방의 진실여부를 탐지한다. 그리고 조사관은 자기 스스로 진실하고 진지해야하며, 상대방이 마음속으로 존경할 수 있게 처신해야하며, 무식하고 경망하거나 진실성이 없다는 인상을 주면 상대방의 협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조사관들은 대화에서 조리가 있어야하며, 논리가 정연하고, 설득력이 있어야한다. 말도 되지 않는 말로 상대방을 설득할 수 없다.
조사관들이 이와 같은 자격과 자질을 갖추어야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진실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한 조사관이라도 상대방이 허위진술을 하면 조사를 진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모든 형태의 수사에서 피의자를 심문할 때 꼭 지켜야하는 절차가 있다.
우선 간단한 인적사항을 질문하고 그 다음은 어떤 내용이건 심문을 진행하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의 진실성 (bona fides) 판정을 위한 내용의 질문을 하되 절대로 상대방이 눈치를 채서는 안 된다. 조사관이 자기의 모든 상식과 지식을 동원해서 상대방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판정하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심문에 들어간다. 그러나 어떤 지능수준이 높고 각오가 단단한 피의자는 교묘하게 허위진술을 계속한다. 그런 경우에 사용하는 기술이 있다. 조사관은 절대로 화를 내서는 안 되며 부드럽고 편안한 태도로 상대방을 대하고 언제나 마음 놓고 상대방이 무슨 말이고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 하루고 이틀이고 필요하면 일주일이고 실컷 떠들어대고 다 기록해 둔다. 그리고 어떤 시점에서 지금까지 한말을 정리하는 식으로 다시 묻기 시작한다.
지구상에서 어떤 천재라도 자기가 한말이 진실이 아니고 꾸며낸 허위진술이라면 이 반복심문에서 허위가 들어난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의 일관성 (consistency)을 탐지 하는 것이다. 김현희를 담당했던 안기부 조사관들은 이런 점에서 아주 유능하며 투철하다. 김현희는 그 방대한 양의 심문조서에서 끝 깨지 이 일관성을 유지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그가 김정일의 지령에 의하여 대한항공 858기를 폭파한 북한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소속 공작원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3. 방증자료의 대조와 분석
안기부의 조사가 끝나고 이 사건의 내용이 보도되었을 때에도 북한은 악랄하게 남한의 조작이라고 우겨댔으며 국내 친북세력이 이에 동조했고 심지어 일본의 교도통신을 포함한 해외 언론에서도 이 엄청난 사건의 진실성 여부를 놓고 약간의 의문을 제기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때 국제테러에 대해서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또 방대한 자료와 수사능력을 갖추고 있는 미국정부가 개입을 했다.
한국정부의 승인과 협조를 받고 미국은 이 사건의 독자적인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내용은 한국정부가 발표한 내용이 100%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추가적으로 확고부동한 단서와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김현희가 안기부 조사관들에게 진술한 그 방대한 분량의 진술 내용과 미국 측에 진술한 내용에서 추호도 차이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만약 김현희가 북한공작원이 아니고 남한에서 조작한 인물이며 남한정부가 훈련을 시켜서 본인이 북한공작원인 것처럼 행동을 했다고 가정하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김현희는 지능지수가 높고 대단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지만 세상에 뛰어난 천재라 할지라도 진실이 아니면 허위는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심리학적으로 피의자는 수사관 앞에서 거짓말은 세 번 이상 사용할 수 없으며 3일 이상을 지탱하지 못한다. 그의 출생, 학교생활, 가족관계, 공작원 포섭과정, 공작교육을 받은 초대소 위치와 환경, 복잡하고 어려운 공작교육내용, 심지어는 매일매일 일과스케줄 까지, 접촉한 인물들, 외국어학습, 공작실무교육과 유럽 주요도시와 마카오 까지 여행하면서 실시한 해외실습, 중국실습, 마카오실습, 광주 2차 파견, 및 암호문해독 등 전문지식과 실제경험이 없이는 그가 다 기억할 수가 없다.
1988년 2월 4일, 미국 국무성은 하원 외무위원회 아세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 스티브 쏠라즈)가 주재한 KAL-858기 폭파사건에 관한 청문회에서 미국정부의 독자적인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그 내용이 1988년 2월 5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포함한 국내일간신문에 보도 되었다. 그때의 보도내용을 간추려서 반복하면 다음과 같다.
클레이턴 맥나마웨이 국무성 테러담당 대사가 김현희 자백의 진실성을 뒷받침하는 미국의 독자적인 보강증거를 제시했는데 그 독자적인 보강증거의 내용은 이렇다.
“고도로 훈련되고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미국정부의 관리가 김현희를 직접만나 조사를 했다.” - 김승일과 김현희가 사용한 자살용 독약은 청산염으로 과거에도 북한 공작원들이 사용했다. 그들이 소지한 위조여권은 일본정부가 북한 간첩으로 파악하고 있는 사람의 협조로 일본의 실재인물의 인적사항을 도용한 것이다.
미국의 조사관이 약 40매의 북한인물 사진을 제시하고 아는 사람을 지적하라고 했을 때 김현희는 그 많은 사진 중에서 두 사람을 골라내어 하나는 대외정보조사부 부부장이며 김현희가 공작임무를 받고 평양을 떠날 때 김정일의 특별지령문을 읽어주고 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충성의 맹세 의식을 집행한 이용혁이며 하나는 그가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체류했을 때 그를 관리했던 지도원 한송삼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이 사진의 얼굴은 한국정부도 미국의 조사관도 한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며 워싱턴에서 정확한 정보라고 판정을 했다. 미국의 조사관은 김현희에게 부다페스트에 체류했을 때 지도원 한송삼이 관리하는 아지트를 사용했는데 그 집의 건축구조와 정원과, 출입문과 주위환경을 묘사하라고 했다.
김현희는 약도를 그리고 정원에 정원수가 몇 그루 있으며, 집 출입문은 철문이고 페인트 색은 무엇이고 집밖에는 큰 공터가 있고 폐차장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진술은 미국이 이미 보유하고 있던 정보와 정확하게 일치했다. 당시 한국은 헝가리와 국교가 없었기 때문에 현지공관도 없었고 그와 같은 자료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김현희는 조사를 받을 때 북한특유의 용어를 사용했고 <했습니다> 또는 <아닙니다> 할 때 말끝을 빨리 끝내는 북한 억양을 시종일관하게 사용했다. 그가 사용한 북한 용어 중에 이런 것들이 있다. 우리가 몇 사람이 모여서 회식 하는 것을 그는 <동석식사>라고 했고, 상호간을 <호상간>으로, 수사관을 <특무>로, 덴마크를 <단마르크>로, 헝가리를 <웽그리아>로, 폴란드를 <뽈스카>로, 스웨덴을 <스웨리>로, 독일 소시지를 <독일 순대>로, 탈당을 <출당>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김현희를 한국 안기부가 조작하고 훈련한 인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