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大中 고문께 전합니다

"집도(執刀)를 정치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같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요?"
안녕하신지요? 항상 고심과 노고가 많으시겠습니다. 김고문의 苦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고심일 것입니다.

2009년 초를 전후하여 대한민국 국회가 연출한 야만적 행태가 국민들로 하여금 실망과 분노를 넘어 깊은 좌절감을 갖게 함으로써 연일 언론의 비판 강도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가고 있는 와중에 1월 12일자 ‘지도자 복 없는 국민’이라는 제목의 김고문 칼럼을 읽고, 생각나는 몇 가지 견해를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1월 9일자 강천석 칼럼 ‘국회의원 숫자 줄이기 서명운동을 벌여야’에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선거구를 확대하는 의견이 제시되었고, 1월 12일자 중앙일보 사설에서는 ‘제도와 의식을 함께 바꿔야’ 한다는 전제 하에 국회의장 임기 4년, 상임위별 수시국정감사, 예산결산위원회의 상임위화,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과 같은 제도적 개선과 의식개혁운동의 필요성이 제시되었습니다. 그리고 김고문께서는 바람직한 새로운 지도자, 지도자 그룹을 국민이 만들어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회를 손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면서, 시민청원운동으로 국회를 압박하여 국회를 손봐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소환제’ 논의가 다양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 입장에서 이들 논의와 관련하여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유감스럽게도 본질적 문제 지적이나 해결방안을 접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헌법, 현재의 정당정치제도와 선거제도, 지금과 같은 국회운영제도를 유지하거나 방치하는 한 국민이 바라는 바람직한 정치는 百年河淸일 것이며, 여의도는 그때그때 양상만 달리할 뿐 해마다 매번 똑같은 정치적 격투기 경쟁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국가는 결코 현재 수준의 문턱을 넘어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국회의원 숫자를 줄이고 선거구를 확대한다고 해서 지금과 같은 여의도 정치가 개선될 수 있을까요? 국회의장 임기를 4년으로 연장하고 예결특위를 예결상임위로 바꾼다고 하더라도 세입세출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방대한 세입세출 관계작업을 해낼 수 있는 다수의 전문 인력과, 이들의 활동을 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기구를 조치해주지 않는 한 실효를 거둘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김고문의 주문처럼 시민청원운동으로 국회를 압박해서 국회를 손봐야 한다는 제안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만(정당이 아닌 국민이 개혁의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국회개혁의 본질적 문제 지적이 있을 때 비로소 실질적인 설득력을 지닐 수 있지 않을는지요?

제 자신의 국회의원 활동 경험과 한국 정당정치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 국회는 다음과 같은 곳이라고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지만, 다시 보면 어느 한 가지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곳.” 이러한 현실에 대한 책임 소재는 정치인들이나 역대 정권에 있다기보다 관계되는 ‘제도’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헌법, 정당정치제도, 선거제도, 국회운영제도상 국회는 공전하거나 충돌하거나 일방주의로 흐르기 쉽게 되어 있고 가장 기본적인 기능과 책무를 다 할 수 없게 되어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대통령제 하에서 삼권분립 원칙상 입법권, 세입세출권, 감사권은 입법부의 고유권한이자 배타적 권한임에도 우리 헌법에는 행정부(대통령) 우위 및 주도로 못 박혀 있습니다. 입법의 거의 80%가 행정부 제안 법안들입니다. 대통령은 법제처를 통하여 입법을 위한 전문적 보좌를 받고 있고 중앙부처의 모든 공무원들이 입법전문요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입법부는 국회의원을 직접 보좌하는 몇 사람, 국회사무처의 제한된 전문요원이 있으나 전문성에 있어서 행정부에 비하면 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제 하에서 입법권 행사는 원리원칙상 잘못된 것으로 이는 필연적으로 입법부를 약화시키거나 행정부 영향 하에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헌정사 60년을 통한 상징적 모순의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입세출권 행사 역시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행정부가 예산을 편성해서 입법부에 제출하면 1년 한시적 기구인 국회 예결위가 국회사무처의 제한된 전문요원들의 보좌를 받아 회기 내 처리하도록 되어 있으나, 매번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발생하게 되면 예결위장은 예산심의가 아니라 정치적 게임장으로 변해서 헌법에 규정된 법정기일을 상습적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국회는 정부안에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 민감하다는 어떤 항목에서는 세목을 확인할 수도 없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다보니 DJ가 김정일에게 국민 몰래 5억불에 가까운 거금을 거래해도 알 길이 없었고, YS가 안기부 금고를 이용하여 1000억원에 가까운 선거자금을 거래해도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민주공화국이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들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이 국회의원 숫자나 자질, 또는 국회의장임기 때문일까요? 입법부의 고유권한이 헌법상 침해받고 있고, 기구와 기능이 제대로 갖추어지거나 작동할 수 없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산집행결과에 대한 감사는 대통령 통제를 받고 있는 감사원의 주된 권한으로 되어있습니다. 일반기업도 사외감사를 두고 있습니다. 하물며 자본주의 국가에서 국가 예산집행감사를 행정부가 주관한다는 것은 민주공화국 체제의 기본철학과 원칙을 전적으로 무시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일반국민들과 다수 언론인과 지식인들은 국회의원들이 자질을 갖추고 잘하면 문제가 없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예결위에서 심사하고 상임위에서 감사하고 또 국정감사까지 포함하면 제도적으로 잘 갖추어져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예결위나 상위 감사는 시간과 전문성과 인력 면에서 형식적일 수밖에 없는 정치게임의 장이며,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百害無益한 정치적 낭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국정감사는 그야말로 국회의원들이 허장성세로 위력을 과시할 뿐 국익 면에서는 구체적 결실을 가져오지 못하는 연중행사입니다. 매년 9월 정기국회가 개시되면 여야 합의 하에 결정한 수백 개에 달하는 국가기관을 감사하게 되어있으나, 정치이슈로 인해 여야 격돌이 발생하면 감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가 일정에 쫓겨 감사기간과 대상을 축소해서 형식적으로 해치웁니다. 당연히 감사결과는 빈약하고 중앙부처를 비롯한 피감기관들은 국정감사 때만 되면 시간적, 물적, 인적 낭비를 감수하면서 고문을 당하듯 시달려야 합니다.

헌정사 60년을 뒤돌아보면 9번에 걸친 개헌이 있었고, 정당관계법, 선거관계법, 국회관계법들이 무수히 개정되거나 손질되어왔지만, 정치 특히, 여의도 정치는 개선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한 감이 적지 않습니다. 국회의원선거 때마다 40%~50%에 가깝게 물갈이 되고, 학계와 언론에서 연일 비판을 가하고, 시민단체들이 비명에 가까운 매도를 하고, 각계 원로들이 애걸하듯 충고하고, 국민들이 절규하듯 호소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곳이 여의도 정치 현장입니다.

모든 현상에 원인이 작용하고 있듯이 정치현상에도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상황과 정치인들의 행태는 기본이 도외시되고 기초가 취약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아침 양상훈 워싱턴 지국장의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한국 사회가 ‘난민촌’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어느 책자의 내용을 소개하는 가운데 “난민촌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사회이다”라고 표현하면서 쏠림현상, 냄비현상, 패거리 현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정치적 지각변동이 빈번한 사회에서 그 여진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알고 있습니다. 기본과 기초가 소홀히 다뤄지고 취약한 사회에서는 가치와 원칙은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연고주의와 한때의 개인적 이해관계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가 하면, 심지어 미신이 끼어들기도 하는 현상을 목도하게 됩니다. 기본을 갖추고 기초를 다지는 일만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달리 있겠습니까. 헌법을 손질하고 정당정치제도와 선거제도, 의회운영제도를 고치는 일이 바로 그러한 일일 것입니다.

이 노력이 우선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시지푸스의 노력을 끝없이 반복하는 우를 범하게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민주공화국체제와 대통령제를 기준으로 말한다면 친미나 반미에 관계없이 미국정치제도를 참고로 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제는 미국인들이 창안해낸 제도로서 건국 이래 지금까지 가장 오랫동안 성공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권력독점과 남용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삼권분립 원칙을 제도화하였습니다. 미국에서 입법권, 세입세출권, 감사권은 입법부의 고유권한이자 배타적 권한입니다. 이에 비하여 대한민국은 행정부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민주공화국 체제는 자유주의 혁명(영국의 명예혁명, 불란서 대혁명, 미국혁명)의 산물이며, 이들 혁명의 근본원인은 세금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말한다면 자유주의 혁명들은 예외 없이 국가의 세입세출권 행사 주도권을 둘러싸고 전개된 정치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 정부에서 제출된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통과시키지만, 미국은 의회가 주도적으로 예산법안을 마련하여 법으로 통과시킵니다. 예산안의 집행에서 과오가 저질러지면 행정적 조치로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예산법을 어기게 되면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만큼 ‘안(案)’과 ‘법(法)’의 차이는 큽니다. 이것이 정치선진국 미국정치와 정치후진국 한국정치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정치 현실은 골수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워있는, 깊이 병들어있는 환자 그 자체와도 같아서 어떠한 표피 수술로서도 치유 불가능한 상태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집도(執刀)를 정치인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정도로 위험하다고 한다면, 지나친 기우일까요? 남아있는 오직 하나의 길, 최선의 길은 국민이 개헌과 정당정치 및 선거제도 개혁과 의회운영제도를 주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좋은 제도는 나쁜 사람도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쁜 제도는 좋은 사람도 나쁘게 만듭니다. 좋은 제도가 오늘 만들어진다 하더라도 실효를 거두기에는 수세대, 수세기가 소요됩니다. 그 긴 세월의 손을 거치면서 개인의 습관이 되고 사회의 관습이 되고 국민의 문화가 될 때 비로소 제도적 개혁은 성공을 거두게 되기 때문입니다. 나쁜 제도를 방치하게 되면 그 사회는 악습과 폐습과 부정의가 횡행하여 파국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좋은 제도를 갖추는 일을 미뤄서는 안 됩니다. 현재의 제도가 나쁘다면 지체 없이 고치거나 바꿔야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지금 우리는 나쁜 제도들과 불완전한 헌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문제해결을 위한 해답은 자명합니다. 다만 언제, 누구의 손으로 해결할 것인가 입니다. 지금 즉시 국민의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임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에게는 이미 너무나 오랜 시간과 수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나 국민이 위임한 책무를 방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해결하려는 의지와 열정마저 메말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9년 1월 14일
허 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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