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분쇄 맹세"한 반란이 "資本과 帝國 침탈에 저항한 사건?"

여순반란 직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 결의
순천역 등지에 설치된 여순반란사건 관련 시설물/사진제공 정재학 시인(교사)
여순반란(叛亂)사건에 대한 역사왜곡 논란이 일고 있다. 여순반란사건은 1948년 10월 19일~27일간 국군 제14연대 소속 군인 2천여 명이 제주도 폭동 진압 파견을 거부하고, 이 지역 좌익들과 합세해 일으킨 공산(共産)폭동이다.

左편향으로 운영돼 온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안병욱)조차 1월8일 「국군과 경찰에 의한 일부 민간인 희생 사실을 밝혀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여순사건이 반란(叛亂)이자 공산(共産)폭동이었다는 본질은 뒤집지 못했다.

문제는 순천 지역에 설치된 각종 안내판과 위령탑. 이들 시설은 「여순叛亂사건」을 「여순사건」으로, 「반란군」을 「봉기군」으로, 「공산폭동」을 「진출했다」로, 「적화통일」을 「남북통일」등으로 미화(美化)해 놓았다. 또 반란군의 우익인사 학살의 원인은 외면한 채 李承晩 정부의 반란진압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여순사건 화해와 평화를 위한 순천시민연대」라는 단체가 순천시와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회 협조로 순천역 앞에 설립한 안내판 내용은 아래와 같다.

《여순사건 : 1948년 10월 19밤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 경비대 제 14연대 군인들이 「여순 사건」 을 일으켰다. 2천여 명의 병력을 규합하였다. 봉기군 지도부는 「제주 출동거부, 남북통일, 경찰타도」등을 주장하며, 여수 읍내를 점령 하였다. 이들은 정부 수립직후 민생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과 학생. 현지 좌익 세력과 합세하여 순천·광양·구례·보성·고흥 등 전남 동부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하였다. 정부는 광주에 토벌 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10월 23일에 순천을, 27일에는 여수를 차례로 진압하였다.

진압군경과 우익 세력들은 봉기군에 가담하거나 협력했던 사람들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손가락 총」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로 무고한 민간의 희생자를 발생 시켰다. 「여순사건」 과 관련된 희생자는 경찰·군인·민간인을 포함하여 모두 1만여 명에 이른다. 정부는 「여순사건」을 빌미삼아 반공국가 체재를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의 정세 변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사건의 명칭조차 의견이 다양하지만,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여 생명의 존엄성이 유린된 역사적 상처를 참된 지혜로써 평화와 화해 민족의 통일로 극복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순사건 관련지 - 순천역 : 순천역은 여수의 봉기군이 인근 지역으로 진출한 첫 번째 지역이었다. 통근 열차와 차량에 나누어 탄 1천여 명의 봉기군은 1948년 10월 20일 09시 30분 경 수천역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순천에 파견 나와 있던 홍순석 중위가 지휘하는 중대 병력의 합류로 더욱 사기가 올라 광양 삼거리와 동천 제방에 배치된 경찰을 잇달아 물리치고 시내로 진격하였다. 따라서 순천역은 여순 사건 봉기군의 확산과정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이며 순천역 공격의 중요 거점이었다. 현재의 역 건물은 1960년에 세워진 것이므로 여순사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장소는 그대로이다.》


2006년 4월 소위 시민들이 정부의 협조로 순천공원에 세웠다는「여순사건 위령탑」은 여순반란사건이 「자본과 제국의 침탈에 저항했던 사건」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탑에 각인된 글은 아래와 같다.

《1948년 10월 19일의 새벽을 기억하고, 당시 여수와 순천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 지역 일대의 죽음과 절망들이 왜곡된 세월에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본과 제국의 침탈에 저항했던 사건으로서 오늘을 인권과 평화, 통일로 가는 살아있는 역사로 남기기 위해서 순천시민의 정성어린 뜻을 모아 이 탑을 세운다.》

위령탑과 해설문에 기술된 내용은 역사적 사실(史實)을 왜곡한 것이다. 1948년 당시 반란군은 여수와 순천을 점령한 뒤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전복(顚覆)과 공산통일을 기도했었다. 반란군 주동자 지창수는 인민군의 남침을 말하면서 인민군과 호응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었다.

반란군은 1948년 10월20일 오후 3시 대판동 사거리(현 중앙동 로터리 광장)에서 열린 인민대회에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충성을 맹세한다.』『대한민국의 분쇄를 맹세한다.』『대한민국의 모든 법령을 무효로 선언한다.』는 등 6개 항의 결정서를 채택하기도 했었다.

반란군 진압 이후 부역자 색출·처형 과정에서 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초 가해자는 반란군이었다. 반란군은 여수를 점령한 첫날에만 무려 400여 명에 이르는 군경(軍警) 및 가족 등을 학살했다. 완전한 진압이 될 때까지 약 6개월 간 소위「반동분자 숙청」을 이유로 우익인사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현재 순천 지역에 설치된 여순반란사건 관련 시설물은 反국가적 편파성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 진실은 좌경적 사관(史觀)에 가려져 있다.

사진을 제보한 정재학 시인(교사)은 『이 같은 시설물들이 자유대한민국 안에 버젓하게 서 있다는 것은, 지금 여수와 순천이 어떠한가를 비유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며 『이 심각한 실상을 알리고 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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