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1년, 赤化는 중단되었는가?

現정권 실세들은 김황식 감사원장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재주는 우파가 부리고, 권좌는 좌파가 차지」

얼마 전 한 보수인사의 인터넷 칼럼제목이다. 실제 李明博 집권 1년 간 보수운동, 우익활동을 한 인물 중 현 정권에 참여한 사람은 극소수(極少數)다.

소위 정통보수 인사들은 18대 국회의원 공천(公薦) 과정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한나라당 공천신청자 중 정통보수 인사는 20여 명. 이들 중엔 전직 장관급 인물도 여럿 됐지만, 애국운동이 「감점(減點)요인」이었는지 하나같이 탈락했다. 뉴라이트 활동을 벌였던 두 사람이 국회진출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盧武鉉 정권과 싸워 온 한 인사는 『애국활동이 소위 좌익운동 전과(前科)보다 못하게 매도되는 분위기였다』며 공천 탈락 당시를 회상했다.

『좌파청산』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비서관급으로 거론됐던 애국인사들은 한명도 참여하질 못했다. 세간에선 청와대건 국회건, 「李明博 캠프」 사람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 대상일 뿐이라는 푸념이 흘러나왔다. 「애국심(愛國心)」이나 「국가관(國家觀)」은 인사(人事)의 기준이 아니라는 비판이었다.

애국인사들이 배제된 자리엔 정치꾼과 기회주의자, 그리고 좌파인사와 좌파정권 고위직들이 비집고 들어갔다. 실제 정권교체 이후 외교·통일·안보·국방부 최고 수장들은 金大中-盧武鉉 정권하에서 對北굴종정책과 韓美연합사 해체에 앞장섰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2009년 1월18일 이뤄진 인사에서도 盧정권 국무총리 출신인 한덕수씨가 駐美대사로 발탁됐다.

수장(首長)이 바뀌지 않은 부처들은 『좌파청산』의 시대적 요구에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金大中 정권에서 비서관(1998.4~2001.10)을 거쳐 盧武鉉 정권에서 駐中대사(2001.10~2008.2)로 재직했었다. 대사시절 駐中대사관과 영사관은 『조용한 외교』라는 미명 아래 탈북자를 외면해 물의를 빚기도 했었다. 그는 장관 취임 이후에도 탈북자단체의 대북전단(삐라) 유포를 저지하고 나섰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좌파정권 10년의 적체(積滯)는 쉽사리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13개 과거사위원회는 올해 2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계속 활동 중이다. 국가정체성 파괴에 앞장서 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민보상委)」 역시 정권교체 이후에도 反국가활동을 「民主化운동」으로 명예회복 및 보상해주고 있다.

민보상委는 그간 △反국가단체(反國家團體), △이적단체(利敵團體), △金日成주의 조직으로 판시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을 기도했다고 판시된 조직 연루자들, △간첩 전력자들까지 民主化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및 보상해왔다. 재심(再審)은 물론 뚜렷한 반증(反證)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법부 확정판결을 뒤집어온 것이다.

보상받은 사람 중에는 △전립선 암(癌)으로 사망한 사람(1억712만여 원),  △위장취업 중 공작물에 의거한 후두골절상으로 사망한 사람(1억1천136만여 원),  △수배 도중 열차역 인근에서 사망한 사람(1억1천999만여 원) 등 民主化운동과 도저히 관련성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金泳三 정부 퇴진 운동을 해 온 사람들까지 대거 포함됐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념적 편향성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委는 2005년 12월 집총거부 인정을 촉구했고,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면서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려해 왔다.

인권委는 지난 해 5월 MBC의 광우병 왜곡방송과 친북좌익의 주도로 촛불난동이 벌어지자,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경찰에 대한 경고조치와 징계조치를 권고했다. 경찰의 소극적 저지로 300명이 넘는 전·의경들이 입원했고, 不法폭동이 100일 넘게 계속됐던 사실에 대해선 눈을 감은 편향적 비판이었다.

인권委는 지난 5년 간 동성애(同性愛) 관련 단체에 1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정권교체 이후인 지난 해 3월에는 同性愛를 옹호하는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했다. 인권委가 기획·제작한 「별별이야기2」라는 애니메이션은 6개의 각기 다른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긴 러닝 타임의 6번째 꼭지인 「거짓말」은 남성, 여성 동성애 커플이 부모를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야 하는 부조리(?)을 다뤘다. 이 애니메이션은 순정만화를 연상케 하는 미남(美男) 미녀(美女)를 등장시켜 청소년들로 하여금 同性愛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각종 위원회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좌파의 밥줄로 기능해왔다. 지난 해 12월 조선일보가 보도한 「군(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직원 205명 분석에 따르면, 『상당수가 관련 분야 경력 전혀 없는 좌파단체나 노동조합 출신 비(非)전문가들』이었다.

민보상委는 현재에도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관련자가 7명에 달한다. 지난 해 초 「진보연대」로 소위 발전적 해소(解消)를 한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을 공개적로 주장하며 2001년 9월 『군자산의 결의』라는 연방제 결의를 한 親北단체였다.

인권委 역시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상임 또는 非상임위원 중 6명이 공개적으로 국보법폐지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대통령도 참여한 윤이상 평화재단>

올해부터 통영市에는 「윤이상 음악당」건립이 추진된다. 148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건립 예산은 모두 국비(國費)와 도비(道費)로 충당된다. 그러나 국가적 추모의 대상이 된 윤이상은 널리 알려진 反韓인사이다.

윤이상은 67년 「동백림 사건」 이외에도 95년 11월 사망 시까지 북한을 계속 오가며 親北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윤이상은 92년 「오길남 간첩사건」으로 그 실체가 다시 확인됐었다. 오길남 박사(현재 서울 거주)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하다, 86년 북한을 다시 탈출해 92년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윤이상은 북한과 연계해 오 박사의 入北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오 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하는 과정에서 갖은 협박을 하며 再입북을 권유했었다.

정부는 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入北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에서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 17회에 걸쳐 입북(入北)하여 김일성을 접촉하고,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윤이상의 친북행각을 입증하듯, 북한에서 윤이상은 『애국자(?)』로 평가돼왔다. 「음악연구」 1990년 2호 등 북한이 발간한 여러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在獨음악가 故윤이상의 부인 이수자氏의 친필(親筆) 서신도 수록돼 있다.

李씨의 자필서신은 李씨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뒤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서신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이 책에는 김일성 사망 시와 1주년 당시 윤이상 본인이 썼다는 편지 내용도 수록돼 있다.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의 서술로 일관돼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윤이상을 기념하는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 前통일부장관)」에 李明博 대통령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3월 재단 측은 소위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각계에서 90인의 위원을 위촉했었다.

재단 측이 같은 달 27일 공지한 바에 따르면, 90인의 위원에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정명화 첼리스트,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공동대표로 하여 《정동영·정세균·김근태 前열린당 의장, 이재정·정세현 前통일부 장관, 권영길·노회찬 前現職민노당 의원》 등 외에도 《李明博 前 서울특별시 시장, 김태호 경남 지사,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참여했다고 돼 있다.

<문제성 집단이 돼 버린 사법부>

국가기관 곳곳에 박힌 대못도 여전히 뽑히지 않고 있다.

전교조의 反美·親北·利敵교육을 방치해 온 교육과학부는 전교조가 지난 해 不法촛불시위 현장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등 현행법을 끊임없이 위반해도 法집행을 포기해왔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방치해오다, 여론이 들끓자 눈가림용 수정지시를 내렸다. 물론, 필자들이 교과서 수정을 거부해도 법에 따른 검정 취소를 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금성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은 부정하는 반면 북한정권의 실정(失政)과 악정(惡政)은 축소·비호·미화해왔다. △6.25 때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개혁과정에서 이뤄진 지주 공무원 숙청」으로, △국군의 부역자 응징을 「학살」로, △95.5%의 투표율과 48개 정당 참여한 1948년 5월10일 선거에 대해선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의 반대...李承晩과 한국민주당,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로, △농민에게 소작권만 준 북한의 토지개혁을 「북한은 지주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다.」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사법부는 가장 심각한 문제성 집단이 되 버렸다. 親盧성향 대법원장은 과거사 委가 사법부 독립과 권위에 먹칠하는 행정명령을 연발해도 침묵해왔다. 그는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하의 잘못된 재판만 지적했던 인물이다.

복수의 판사들은 지난 해 촛불난동 연루자들을 잇달아 석방해버렸다. 풀려난 좌파운동가들은 반성하지 않았고, 「民生」과 「經濟」를 명분으로 또 다시 대한민국 흔들기에 몰입했지만, 판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 판사는 북한정권에 군사시설 정보를 넘겨줘 간첩 혐의로 구속된 자에겐 무죄를 선고하면서, 4년 전 국보법死守국민대회 애국운동가들에게는 실형을 선고했다. 모두 정권교체 이후 일어난 일들이었다.

좌파정권 10년 간 전국적으로 설치된 「역사왜곡」 조형물들도 바뀌지 않고 있다. 지금 순천 지역에는 「여순叛亂사건」을 「여순사건」으로, 「반란군」을 「봉기군」으로, 「공산폭동」을 「진출했다」로, 「적화통일」을 「남북통일」등으로 미화(美化)해 놓은 각종 안내판과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이들 시설물엔 반란군의 우익인사 학살의 원인은 외면한 채 李承晩 정부의 반란진압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10년간 훼손돼 온 국가정체성을 복원시킬 틈도 없이, 친북좌파는 올 봄 소위 「제2의 촛불난동」이나 「대규모 민중궐기」를 벌이겠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20~30대 친북좌익의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한총련은 최근 『李明博 정권 퇴진(退陣) 투쟁의 기수가 되어 겨울 총공세를 벌여나가자』고 결의한 뒤, 올 봄 제2의 촛불난동을 위한 「MB OUT 겨울 실천단」 활동에 나섰다.

자칫하면 나라가 왼쪽에서 가운데로 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李明博 정권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는가? 1월7일 김황식 감사원장은 『근자에 들어 좌우, 진보·보수의 싸움이 밥그릇을 뺏거나 뺏기지 않으려는 싸움 같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며 『극우는 추하고, 극좌는 철이 없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정체성 회복을 위한 보수, 우파의 주장을 추한 극우의 밥그릇싸움이라는 식으로 매도한 것이다.

정권교체 1년, 대한민국은 과연 정상화(正常化)되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現정권 실세들은 김황식 원장과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모래시계는 바닥이 나고 있는데, 애국자들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 이 글은 자유공론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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