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조갑제닷컴 후원 對北풍선

2009. 2. 4. 사상최다로 단번에 30개의 대형풍선(180만 장)을 날린 영상
북한의 특징인 폐쇄와 수령우상화. 폐쇄를 뚫고 우상화를 자유롭게 공략할 수 있는 가장 값싸고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인 북한 직접돕기 운동인 풍선사역에 후원해주신 조갑제닷컴 회원분들에게 재삼 감사드립니다.

어제(2009. 2. 4) 사상최다로 단번에 30개의 대형풍선(180만장)을 날린 영상을 보내드립니다.



기독북한인연합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전 북한과학원연구원 1995년 서울입국
010 5543 2574
www.nkca.net

*이민복의 풍선 보내기 후원계좌: 우리은행 225-060687-12101(예금주: 이민복 북한선교)

*********************************

對北풍선 이야기


對北삐라운동을 정치운동으로 보는 것은 지나친 것이며
또한 정치운동으로 비화시키려는 세력도 지나친 것이라고 본다.
대북삐라운동은 원초적인 인도주의, 인권운동이다.
옆에 눈과 귀, 입이 막히고 사지와 정신까지 묶여진 사람을 있다고 하자.
그를 풀어주는 것이 거창한 정치운동인가?!
자유롭게 보고 말하며 움직일 수 있게 해주는 것,
인간본질인 종교성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북삐라의 성격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따라서 우리 기독북한인연합www.nkca.net은 삐라에
누구를 타도하고나 뒤집으라고 하지 않고
사실을 알려주는 자유소식과 이웃사랑의 진리(복음)를 담고 있다.

對北삐라를 날리게 된 동기
처음 할 때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대북풍선이 이제는 단골뉴스로 되고
남북관계의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역으로 부각 되었다.
민간인으로서 삐라를 처음 날리기 시작한 시기는 2003년 10월,
그러나 삐라보내기 생각은 1990년 북한에 있을 때부터이다.

어릴 적 DMZ 가까운 고향에서 자라 남조선삐라를 자주보군 하였다.
그럼에도 기억나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그 남아 중학교 때 평양이북으로 이사를 가 볼 수 없었다.
성인으로 다시 본 것은 1990년8월 철원군 대전리에서 였다.
난생처음 홀딱 벗은 처녀도 그때 보았다.
나체사진은 끌리지만 대신 사상적 결과는 오히려
<부르죠아 썩어빠진 문화>를 확신시켜주는 꼴이었다.
대부분 북한정서에 맞지 않아 별로였다.
실례로 웽그리아, 뽈쓰까를 <헝가리, 폴란드> 등으로
무심하게 쓰는 영어발음 식들은 미국식민지가 틀림없어보였다.
이 작은 실수들은 민족혼도 없는 자들로 비쳐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도 벌써 재치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런 간단한 상식을 모를 수 없겠는데
아마 그 속에 분명 우리사람(북 간첩)이 있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 의심은 6년 후 서울에 와서 금방 풀렸다.
대북심리전단에 간첩은 고사하고 정보심리학 수재들이 앉아 있었다.
단 북에서 살아본 자를 한 명도 쓰지 않는데 있었다.
반세기동안 대북삐라를 보냈지만 별 효과를 못내는 구조적 원인이었다.

남조선삐라가 다 한심한 것은 아니다.
나의 인생을 바꿀 만큼 의문점을 깊이남긴 것도 있다.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긴 6.25전범자가 뒤 바뀐 것이다.

비교할 수없는 폐쇄사회임으로 흐르쇼브 회고록이나
귀순인민군 이학구 대좌의 증언 자료들은 안 들어와도
왜 3일 만에 서울 먹혔겠는 가고 한 것이 뇌리에 박힌 것이다.

과연 어느 쪽이 거짓말 할 가?! 가 떠나지 않았다.
너무나 중대한 문제의 진실은 내 절로 간단히 연구해냈다.
전쟁초기참가자와 3.8선주민에게 조용히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정말 물어보니 남조선삐라가 사실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보다 충격은 남조선사람들이었다.
왜 이런 진실을 분단반세기동안 한마디로 깨우쳐주지 못 했을 가 이다.
간단히 <전쟁초기참가자와 3.8선주민에게 물어봐라>만 반복해 보냈더라면
6.25전쟁을 기본 근거로 한 증오의 철학, 혁명주의 근간이 무너지겠는데 말이다.

북한을 유지하는 중추 수령숭배에 대한 공략도 마찬가지이다.
만화로 김 부자 혹 달리고 배 튀어 나오게 하는 식보다
<그래! 인민의 어버이 수령이라고 하자!
그런데 왜 인민대중인 당신들은 강냉이죽도 없어 굶어죽고/
입 하나인 수령은 왜 그렇게 방방곳곳 사냥터, 별장, 동상 천지인 가?!>고
한마디로 반복하여 보냈다면 저렇게 눈물 흘리며 만세 부르지 않을 것이다.

<헐벗고 굶주린 남조선>과 <지상낙원 북조선>문제도 간단한 것이다.
당시 삐라에서 본 한강시민공원의 자가용차 가족사진을 보내서 해결할 수 없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폐쇄 하의 공산당 선전술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
저것은 부자 몇 놈들 사진이야 하면을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것도 한마디로 해결,
<공화국방문 해외동포나, 외국인들에게 조용히 물어봐라(남조선에 대해)>

내가 남조선에 가서 할 일은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4개나라 국경을 넘나들며, 3개나라 감옥을 거쳐 찾아갔지만
북을 자극 않기 위해 탈북자 받을 수 없다는 남한정책 하에
탈북한지 6년째 되던 해에 절로 UNHCR 개척, 제1호 자격으로 서울에 도착.

정말 나는 국방부심리전단에 찾아가 딱 6개월만 일해주고 싶다고 간청했다.
지인을 통해 99%받아졌다고 알고 있었으나 결국 딱 1% 때문에 무산되었다.
사명이 내 기득권, 내 밥 탁보다 더 셀 수없는 정서가 아직 남한이었다.
그 남아 더 심각해진 것은 2000년 4월이었다.
첫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간청에 김정일 정권의 첫 요구조건,
대북삐라와 방송중단을 기꺼이 들어주고 평양에 간 것이다.
거대한 감옥에서 눈과 귀, 입 막히고 사지와 정신까지 묶인
불쌍한 이들에게 비치던 가느다란 빛과 소리마저 막아버린 것이다.
갈수록 태산, 2004년에는 남한 땅 전광판마저 없애는데 합의해주고.
정부도 갈수록 태산, <국민의 정부>를 더 한 술 뜨는 <참여정부>.
이제 더 바라 볼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해에 이삼십 억 원씩 썼다는 대북심리전 비용과 기술은 또한 설상가상이었다.
그럼에도 대북풍선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10월부터,
*그 전에 대북방송은 자유북한방송을 설립한 김성민 씨가 나섬에 용기를 주었다.
그럼에도 인터넷이 없고 전기와 라디오 부족, 엄한단속과 장해파 등
라디오 들을 환경이 열악한 북한실정에서
대북삐라의 중요성은 그 어떤 나라보다 절실하다.

풍선기술 개발과 반응효과
대북삐라 시초의 풍선기술은 매우 원시적이었다.
어린이 장난감인 고무풍선에 삐라 한 장씩 달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3년째인 2005년 6월까지 아무리 날려도 반응은 없었다.
100개 이상 고무풍선을 만들면 손 고락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난다.
바위 돌에 맨 손치기였지만 그 피 속에서
대형풍선 개발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와 지혜가 생겨났다.
물론 간단한 과정이 아니었다.
정부가 하던 것을 맨주먹인 탈북자가 한다는 것은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격이었다.
그래도 해야 한다는 신념은 믿음대로 되는 기적을 창조했다.
내 집을 못 찾아 갈 정도로 몰입하고 미치니 마침내
백수도 할 수 있는 발상의 전환, 화학식 대형풍선을 개발(2005년7월)한 것이다.
*풍선초기 당시 명칭이었던 기독탈북인연합 성원 5명이 하루 동원되어 쓴
풍선가스통은 한 통을 다 못 쓰고 오는 수준이었다.
현재는 한 두 명이 적어서 50 여 통 풍선가스통을 사용
삐라는 기껏해야 1천장 밖에 못 날리던 것을 지금은 단 번에 100만장 이상 날린다.

대형풍선개발의 반응은 너무 빨리 놀라울 정도로 왔다.
몇 개 날린 것 같지 않은 데 한 달이 지난 8월부터 북의 공식항의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증기기관 발견이 산업혁명을 일으키고 원자력 발견이 역사를 바꾼 것처럼
풍선기술개발이 이렇게 놀라운 결과를 빨리 가져 올 줄을 몰랐다.

풍선기술개발은 계속되어 현재는 정부기술을 초월하고
더 이상 개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의 최신기술로 날리기 시작한지 불과 한 달이 지났다.
이번에는 회담 요청할 분위기 아닌데도
그 자존심 높은 북한이 제 발로 나와 최후통첩 식으로 항의한다.
그 만큼 내부의 반응이 크고 급하다는 반증이다.
김정일 와병설을 담아 갑자기 그렇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말 여론몰이이다.
지금까지 보낸 풍선삐라 자체에 반응인 것이다.

강성대국의 특징과 대응 전략
북한의 특징은 폐쇄이다. 그리고 수령숭배이다.
따라서 폐쇄를 뚫고 수령숭배를 공략하는 것이 대북전략이 돼야 할 것이다.
300백만 자국민을 굶겨죽어도 끄떡하지 않고
미사일 쏘고, 핵을 만들며 오히려 큰 소리 치는 <강성대국>이 북한이다.
이것은 폐쇄 하에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북한당국의 최선 최후전략은 폐쇄이다.
이 폐쇄를 평화롭게, 값싸면서도 자유롭게 뚫을 수 있는 것이 풍선이다.

그 어떤 대북운동에도 끄떡없던 강성대국이
이렇게 비명소리 하듯 항의 많은 것은 풍선삐라 뿐이다.
왜 그럴 가?! 폐쇄가 최우선, 최후의 통치수법이기 때문이다.
3차 대전 같은 사변의 6.25 역사진실도 뒤집을 수 있고,
기껏 소대규모 부대장이 천만 일군을 패망시킨 해방자이고
그 아들은 21세기태양이라고 하는 수령숭배와 굶어죽는 유일나라.
테러와 핵개발로 세계를 교란하는 모든 악행은 폐쇄 하에 가능한 것이다.
그 폐쇄를 자유롭게 뚫는 유일한 수단이 풍선이니 저리 놀랄 만도 한 것이다.
개방하면 죽기에 필사적인데 이미 풍선으로 뚫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누가 진실로 풍선을 보내고 어떤 내용을 매다는 가가 결정할 것이다.
마치 평범한 미사일에 핵을 담을 때 양상이 달라지듯이-

타 단체 풍선기술 전 수
우리단체와 함께 시초부터(2003년) 풍선에 관심한 단체는
북한인권시민연합(윤현)과 진리와자유사(안부섭)이며
2004년부터 북한구원운동(김상철),
2005년부터 호야선교회(이경자,이필생), 기독사회책임(서경석), 일본납치자구출단체 등이다.
처음 풍선기술을 전수한 단체는 2005년 호야선교회이며
2006년에 북한민주화운동본부(박상학), 거기서 나온
자유북한운동연합(박상학)이며 이들은 2007년에 독립할 정도로 성장하였다.
2008년 올해부터 탈북인단체총연합, 북한민주화위원회를 비롯한
여러 곳에 전수된 다각적인 구조.
누구 하나 막는다고 못할 구조가 아닌 것으로 되어 더욱 안정적이고 희망적이다.

기독북한인연합 대북풍선단장 이민복
전 북한과학원연구원 1995년 서울입국
010 5543 2574
www.nkca.net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