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청산" 외면한 李明博 정부의 1년

大選 전 '한번은'크게 터질 것 같다
李明博 집권 1년 간 보수운동, 우익활동을 한 인물 중 현 정권에 참여한 사람은 극소수(極少數)다. 소위 정통보수 인사들은 18대 국회의원 공천(公薦) 과정부터 철저히 배제됐다. 한나라당 공천신청자 중 정통보수 인사는 20여 명. 이들 중엔 전직 장관급 인물도 여럿 됐지만, 애국운동이 「감점(減點)요인」이었는지 하나같이 탈락했다. 뉴라이트 활동을 벌였던 두 사람이 국회진출에 성공했을 뿐이었다. 아스팔트 위에서 盧武鉉 정권과 싸워 온 한 인사는 『애국활동이 소위 좌익운동 전과(前科)보다 못하게 매도되는 분위기였다』며 공천 탈락 당시를 회상했다.

『좌파청산』의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비서관급으로 거론됐던 애국인사들은 한명도 참여하질 못했다. 세간에선 청와대건 국회건, 「李明博 캠프」 사람들의 논공행상(論功行賞) 대상일 뿐이라는 푸념이 나왔다. 「애국심(愛國心)」이나 「국가관(國家觀)」은 인사(人事)의 기준이 아니였다.

애국인사들이 배제된 자리엔 직업적 정치인(?), 그리고 좌파인사와 좌파정권 고위직들이 비집고 들어갔다. 실제 정권교체 이후 외교·통일·안보·국방부 최고 수장들은 金大中-盧武鉉 정권하에서 對北굴종정책과 韓美연합사 해체에 앞장섰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수장들이 이 정도니, 그 이하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정책도 바뀌지 않는다. 좌파정권 10년의 적체(積滯)는 쉽사리 빠질 기미가 안 보였다. 13개 과거사위원회는 올해 2000억 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계속 활동 중이다. 국가정체성 파괴에 앞장서 온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민보상委)」 역시 정권교체 이후에도 反국가활동을 「民主化운동」으로 명예회복 및 보상해주고 있다.

민보상委는 그간 △反국가단체(反國家團體), △이적단체(利敵團體), △金日成주의 조직으로 판시되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혁명을 기도했다고 판시된 조직 연루자들, △간첩 전력자들까지 民主化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 및 보상해왔다. 재심(再審)은 물론 뚜렷한 반증(反證)도 제시하지 않은 채 사법부 확정판결을 뒤집어온 것이다.

공안전문가인 유동렬 박사는 민보상위 설립 이래 약 1만 명이 민주화인정 신청을 했으며, 그 중 8천 명이 명예회복 보상을 받았고, 보상받은 이들 대부분이 사회주의-공산주의 활동 전력자들이라고 비판한다.

「民主化운동」으로 명예회복이 된 후에는 피해(?)정도에 따라 많게는 억 대의 보상이 뒤따른다. 2009년 2월 확인 결과, 민보상委는 설립 이래 民主化운동 관련 상이자(傷痍者)에게 196억 원, 사망자(死亡者)에게 142억여 원을 비롯해 각종 생활비 명목으로 602억 원 등 총 940억 원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내역을 보면 가히 「혁명적(革命的)」이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노태우(盧泰愚) 정권은 물론 김영삼(金泳三) 정권에 대한 항거(?)를 하다 죽거나 다친 경우까지 억대의 보상을 해줬다.

심지어 『반미자주, 조국통일, 軍자주화를 위해 투신자살한 경우』는 물론 김영삼 정권에 대한 소위 항거 중 『갑자기 쓰려져 사망한 경우』나 『도피 중 아파트에서 추락사한 경우』 등 도저히 민주화로 볼 수 없는 경우까지 보상해줬다.

또 『위장취업 중 공작물에 의거한 후두골절상 사망한 경우』나 『수배 중 서울발 부산행 열차 부근에서 사망한 경우』 『학생활동 중 전립선 암(癌)으로 사망한 경우』까지 보상대상에 포함시켰다. 2002년 서해교전 시 사망한 해군부사관 유가족이 퇴직금과 보상금을 포함해 5천만 원을 지급받은 것을 돌이켜보면, 말 그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다.

정권교체 이후에도 한승수(韓昇洙) 국무총리는 자신의 지휘 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하고 있다. 공산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도 李明博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다.

<동성애 관련 단체에 돈 주는 인권委>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념적 편향성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인권委는 2005년 12월 집총거부 인정을 촉구했고, 2004년 8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면서도,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 자체를 꺼려해 왔다.

인권委는 지난 해 5월 MBC의 광우병 왜곡방송과 친북좌익의 주도로 촛불난동이 벌어지자,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진압과정에서 경찰이 과도한 무력을 사용해 시위 참가자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며 경찰에 대한 경고조치와 징계조치를 권고했다. 경찰의 소극적 저지로 300명이 넘는 전·의경들이 입원했고, 不法폭동이 100일 넘게 계속됐던 사실에 대해선 눈을 감은 편향적 비판이었다.

인권委는 지난 5년 간 동성애(同性愛) 관련 단체에 1억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정권교체 이후인 지난 해 3월에는 同性愛를 옹호하는 애니메이션까지 제작했다. 인권委가 기획·제작한 「별별이야기2」라는 애니메이션은 6개의 각기 다른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어지는데, 가장 긴 러닝 타임의 6번째 꼭지인 「거짓말」은 남성, 여성 동성애 커플이 부모를 속이고 위장결혼을 해야 하는 부조리(?)을 다뤘다. 이 애니메이션은 순정만화를 연상케 하는 미남(美男) 미녀(美女)를 등장시켜 청소년들로 하여금 同性愛에 대한 환상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각종 위원회는 정권교체 이후에도 좌파의 밥줄로 기능해왔다. 지난 해 12월 조선일보가 보도한 「군(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직원 205명 분석에 따르면, 『상당수가 관련 분야 경력 전혀 없는 좌파단체나 노동조합 출신 비(非)전문가들』이었다.


민보상委는 현재에도 전국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관련자가 7명에 달한다. 지난 해 초 「진보연대」로 소위 발전적 해소(解消)를 한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평화협정체결-연방제통일』을 공개적로 주장하며 2001년 9월 『군자산의 결의』라는 연방제 결의를 한 親北단체였다.

인권委 역시 위원장을 포함한 11명의 상임 또는 非상임위원 중 6명이 공개적으로 국보법폐지를 주장해 온 인물이다.

<대통령도 참여한 윤이상 평화재단>

올해부터 통영市에는 「윤이상 음악당」건립이 추진된다. 148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건립 예산은 모두 국비(國費)와 도비(道費)로 충당된다. 그러나 국가적 추모의 대상이 된 윤이상은 널리 알려진 反韓인사이다.

윤이상은 67년 「동백림 사건」 이외에도 95년 11월 사망 시까지 북한을 계속 오가며 親北단체에서 활동해왔다. 윤이상은 92년 「오길남 간첩사건」으로 그 실체가 다시 확인됐었다. 오길남 박사(현재 서울 거주)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하다, 86년 북한을 다시 탈출해 92년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윤이상은 북한과 연계해 오 박사의 入北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오 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하는 과정에서 갖은 협박을 하며 再입북을 권유했었다. 정부는 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入北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에서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또 17회에 걸쳐 입북(入北)하여 김일성을 접촉하고,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윤이상의 친북행각을 입증하듯, 북한에서 윤이상은 『애국자(?)』로 평가돼왔다. 「음악연구」 1990년 2호 등 북한이 발간한 여러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 『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在獨음악가 故윤이상의 부인 이수자氏의 친필(親筆) 서신도 수록돼 있다.

李씨의 자필서신은 李씨가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북한 금수산기념궁전을 찾은 뒤 방명록에 적은 것이다. 이 서신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이 책에는 김일성 사망 시와 1주년 당시 윤이상 본인이 썼다는 편지 내용도 수록돼 있다.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 김일성에 대한 찬양일변도의 서술로 일관돼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윤이상을 기념하는 「윤이상평화재단(이사장 박재규 前통일부장관)」에 李明博 대통령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2007년 3월 재단 측은 소위 「윤이상 탄생 90주년」을 맞이하여 각계에서 90인의 위원을 위촉했었다.

재단 측이 같은 달 27일 공지한 바에 따르면, 90인의 위원에는 《박원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정명화 첼리스트,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공동대표로 하여 《정동영·정세균·김근태 前열린당 의장, 이재정·정세현 前통일부 장관, 권영길·노회찬 前現職민노당 의원》 등 외에도 《李明博 前 서울특별시 시장, 김태호 경남 지사,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참여했다고 돼 있다.

<문제성 집단이 돼 버린 사법부>

국가기관 곳곳에 박힌 대못도 여전히 뽑히지 않고 있다.

전교조의 反美·親北·利敵교육을 방치해 온 교육과학부는 전교조가 지난 해 不法촛불시위 현장에 학생들을 동원하는 등 현행법을 끊임없이 위반해도 法집행을 포기해왔다. 좌편향 역사교과서를 방치해오다, 여론이 들끓자 눈가림용 수정지시를 내렸다. 물론, 필자들이 교과서 수정을 거부해도 법에 따른 검정 취소를 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있는 금성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국가정통성은 부정하는 반면 북한정권의 실정(失政)과 악정(惡政)은 축소·비호·미화해왔다. △6.25 때 북한군에 의한 학살을 「개혁과정에서 이뤄진 지주 공무원 숙청」으로, △국군의 부역자 응징을 「학살」로, △95.5%의 투표율과 48개 정당 참여한 1948년 5월10일 선거에 대해선 「국민적 열망과 여러 정치세력의 반대...李承晩과 한국민주당,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로, △농민에게 소작권만 준 북한의 토지개혁을 「북한은 지주로부터 몰수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다.」라는 식으로 묘사했다.

<촛불집회 연루자들 잇달아 석방>

사법부는 가장 심각한 문제성 집단이 되 버렸다. 親盧성향 대법원장은 과거사委가 사법부 독립과 권위에 먹칠하는 행정명령을 연발해도 침묵해왔다. 그는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하의 잘못된 재판만 지적했던 인물이다.

복수의 판사들은 지난 해 촛불난동 연루자들을 잇달아 석방해버렸다. 풀려난 좌파운동가들은 반성하지 않았고, 「民生」과 「經濟」를 명분으로 또 다시 대한민국 흔들기에 몰입했지만, 판사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 판사는 북한정권에 군사시설 정보를 넘겨줘 간첩 혐의로 구속된 자에겐 무죄를 선고하면서, 4년 전 국보법死守국민대회 애국운동가들에게는 실형을 선고했다.

2월17일에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왜곡보도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여 정신적 고통 등을 당하였다』며 국민소송인단 2455명이 MBC PD수첩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됐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선동은 수차례 반복됐다. 고의적인 날조방송이었고, 이로 인해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치러야 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PD수첩 보도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감수해야 할 진통이며, 수인한도를 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좌파정권 10년 간 전국적으로 설치된 「역사왜곡」 조형물들도 바뀌지 않고 있다. 지금 순천 지역에는 「여순叛亂사건」을 「여순사건」으로, 「반란군」을 「봉기군」으로, 「공산폭동」을 「진출했다」로, 「적화통일」을 「남북통일」등으로 미화(美化)해 놓은 각종 안내판과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이들 시설물엔 반란군의 우익인사 학살의 원인은 외면한 채 李承晩 정부의 반란진압만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계속되는 좌파의 깽판>

좌파청산이 사실상 중단된 사이, 좌파세력의 깽판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2008년 서울 한복판을 不法과 無法의 천지로 만들었던 촛불집회가 또 다시 시작됐다. 이번 주제는 「광우병(狂牛病)」이 아닌 「龍山방화사건」. 1월31일 집회를 시작으로 2월12일 현재까지도 매일 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있다.

2차 촛불난동이 또 다시 시작된 것일까? 서울은 또 다시 무질서 속으로 빠져들 것인가? 기자는 첫 날부터 연일 집회 현장을 찾았다. 지난 해 광우병 촛불집회와 이번 용산 촛불집회는 몇 가지 유사점(類似點)과 차이점(差異點)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광우병 촛불난동과 용산 촛불난동의 주도세력이 동일(同一)했다. 前者는 「한국진보연대(韓國進步連帶)」라는 좌파회의체에 참가단체-참관단체 형태로 들어가 있는 민노당, 민노총, 전교조, 한총련 등 골수좌파가 주도했고, 여기에 민주당이 가세했다. 後者 역시 마찬가지였다. 韓國進步連帶가 주축이고 민주당이 가세했다.

둘째, 전개과정도 同一했다. 前者의 경우, 진보연대가 「광우병국민대책회의(狂牛病國民對策會議)」라는 기구를 구성해 연일 난동을 일으켰고, 민주당이 가세한 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天主敎正義具顯司祭團)이라는 左派캐톨릭단체가 등장했으며, 나중에는 실천불교전극승가회(實踐佛敎全國僧家會) 등 左派불교단체가 이어받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2월1일 민주당이 나오고, 2월2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天主敎正義具顯司祭團)의 소위 시국미사가 나온 뒤, 2월5일 실천불교전국승가회(實踐佛敎全國僧家會)의 소위 시국법회가 등장했다. 주연도 같았고, 플롯도 같았다.

셋째, 작년과 올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중간지대가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광우병 촛불난동 당시에는 좌`우익 중간(中間)지대에 있는 시민 상당수가 좌익의 주장에 동조했었다. 광우병이란 이슈 자체가 건강과 먹거리 문제였기 때문에 파급력이 컸던 탓이다. 이번에는 중간지대가 넘어가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용산 촛불난동이 광우병 촛불난동처럼 번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넷째, 난동(亂動)은 계속될 것이고, 폭발 가능성은 상존(常存)해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직업적 또는 생계형(生計形) 운동가들이 너무 많아졌다는데 기인한다. 촛불집회 현장에 가보면, 원내진출도 못한 좌파정당 소속 운동가들이 여기저기서 깃발을 들고 뛰어다닌다. 이들을 혁명에 미친 순정파(純情派)로 보기 어렵다. 지난 10년 간 자금을 축적했고, 지금도 자금에 쪼들리지 않는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 대기업, 심지어 정부의 좌파단체 지원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1월31일 자정이 될 때까지 명동에서 경찰을 밀치며, 침을 뱉고, 욕설하고, 운동권 가요를 부르고 춤추는 이들 대부분 직업적 운동가 또는 대학 내 운동권이었다고 기자는 확신한다. 이들은 별의 별 단체를 만들어 밤새 깃발을 휘둘렀다. 배부르고, 등 따뜻한 저들 직업적 운동가들은 절대 대화나 타협을 원하지 않는다. 姜基甲 의원이 주장하듯 『쿠바』같은 세상을 꿈꾸며, 사회주의와 연방제를 노래할 것이다.

결정적 문제는 정부의 자기 확신 결여(缺如)에 있다. 광우병 난동 당시 한나라당은 물론 대통령, 청와대, 관계 부처 모두 국민에게 설명하질 않았다. MBC가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사실 등 아무도 진실을 당당하게 말하지 않았다. 경찰에게 모든 것을 떠맡기고 숨어버렸다. 좌익의 촛불난동에 겁먹어 버렸다.

이번도 상황은 다르질 않다. 경찰의 법집행이 왜 정당한 것이었는지, 국민에게 설명하질 않았다. 대통령도 우물쭈물하고, 국무총리도 말하질 않고, 행전안전부(行政安全部) 장관도 입을 닫는다. 청와대(靑瓦臺) 대변인도 묵묵부답이다. 신념이 없는 관료들은 좌익들 눈치보기에 바쁘다. 막강한 공권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사용하질 않는다.

김석기(金碩基) 경찰청장 내정자를 사퇴시킨 대통령의 처사는 결정적이었다. 金내정자는 용산방화사건을 진압한 데 대한 法的책임이 없음이 검찰수사결과 확인됐으나, 소위 도덕적(道德的) 책임 논란으로 물러났다. 자진사퇴의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은 겁먹은 대통령이 좌익의 비판여론에 떠밀린 것이었다.

좌익의 불법과 깽판은 2012년까지 계속될 것이다. 언제 또 다른 이슈와 맞물려 광우병 난동처럼 폭발(爆發)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좌파청산』을 외면한다. 정부의 무능(無能)과 무책임(無責任)이 계속된다면, 大選 전 「한번은」 크게 터질 것처럼 보였다. 만일 그 무렵 선거가 치러진다면, 결과는 알 수 없다. 많은 이들은 지금 정부가 좌익은 물론 우익에게서도 버림받고 있다고 혹평한다. 이것은 과장일까? 촛불집회를 따라다니며 기자는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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