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개에게 이제는 몽둥이를 들어라

한반도의 지루한 현상(現狀)은 타파(打破)될 시점이다.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필요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생각나는 2월이다. 새해 들어 북한의 「미친 짓」이 연일 계속된 탓이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2월21일 대변인 성명에서 『가장 무자비하고 단호한 결단으로 (이명박) 패당(牌黨)과 끝까지 결판을 보고야 말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쏟아진 북한의 對南공갈은 아래와 같았다.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은 극단에 이르렀으며 물리적 충돌만이 시간문제로 남아 있다(북한 조선중앙통신 2월19일)』

『(남측은) 전면 대결태세에 진입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북한의 총참모부 대변인 2월18일)』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사항들을 무효화(無效化)한다(1월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1월17일에는 군복을 입고 대좌 계급장을 단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조선중앙TV에 출연했다. 『남한 정부가 대결을 선택했다』며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武裝力)은 그것을 짓부수기 위한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요지였다. 南北합의를 있는 대로 깨 긴장만 고조시킨 북한정권의 황당무계한 적반하장이었다.

<북한정권을 好戰狂으로 부른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정권을 호전광(好戰狂)이라고 표현했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때는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필요하다』는 연설도 했다.

그는 非정상적 집단에 대해 정상적 방법으로 대응할 수 없다고 믿었다. 힘을 믿는 강도떼는 더 강한 힘으로 막아야 한다고 봤다. 북한정권에 대한 유화적(宥和的) 대응은 돌아오지 못할 「노예의 길」임을 직관했다.

1973년 10월 무렵부터 북한은 서해도발에 나섰다. 1972년 7·4공동성명 이후 「곧 통일이 될 것」이라는 국민들의 장밋빛 환상을 북한이 악용한 것이다.

북한은 NLL을 일일 10~20여 척, 총 43회 월선(越線)시키고, 10마일(18km)까지 남하시켰다. 소형함(小型艦) 위주의 북한선박은 백령도 인근 섬(백령도, 대청도, 소청도)에 근접해 포위를 시도했다. 저속(低速)위주 대형함(大型艦)으로 구성됐던 한국해군은 대응이 어려웠다. 한 바퀴 도는데 1km 정도씩 걸릴 정도로 크고 둔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명 「서해5도 봉쇄사건」이다.

당시 한국 해군은 적극적인 공세작전을 펼쳤다. 朴대통령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정도로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반전평화(反戰平和)』를 외치는 좌익들이 시청 앞 촛불집회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든든한 후견 아래 해군은 자위적 조치에 나섰다.

결국 1975년 한국 구축함은 1000톤급 북한 어로(漁撈)지도선을 가라앉혔다. 충돌 후 42초 만에 가라앉았다. 워낙 빨리 가라앉아서, 갑판에 있는 북한 선원들도 물에 빨려 들어갔다.

朴대통령은 이후 새로운 행동에 나섰다. 대만의 검문도와 마조도式으로 서해5도 요새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고속정(高速艇) 국내개발도 시작했다. NLL을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정부의 사수(死守)의지는 1990년대까지 계속됐다. 연합사와 유엔사도 한국 정부를 지지해주었다.

북한에 대한 강경(强硬)대응은 전면전(全面戰)을 부를 것 같았지만, 오히려 대한민국의 안전(安全)과 평화(平和)를 가져왔다. 아이러니하게도 97년 이후 김대중式 「화해협력」 구호가 난무하면서, 서해(西海)는 분쟁지역으로 변해버렸다.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1~2차 연평해전은 부인할 수 없는 그 증거이다.

나라의 안전과 평화는 유지됐지만, 대통령은 목숨을 걸어야 했다.

67년 1월21일 북한의 121특수부대원 31명은 청와대 습격에 나섰다. 청와대 문턱까지 내려왔던 김신조는 심문을 받으며 서슴없이 『우리는 박정희 목을 따기 위해서 내려왔다!』고 대답했다. 74년 8월15일에는 대통령을 노린 흉탄에 육영수 여사가 숨을 거뒀다. 그러나 朴대통령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목숨을 걸었다>

『미친 개에게 몽둥이가 필요하다』 이 공식은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이 벌어졌다. 이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북한군들이 미군 장교 2명을 도끼 등으로 무자비하게 찍어 죽인 사건이다.

당시 유엔군 측은 공동경비구역 내 「자유의 다리」 남쪽에 위치한 미루나무가 무성해 북측을 관측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하여 가지치기에 나섰다.

이때 트럭을 타고 몰려 온 북한군 20여명이 도끼·몽둥이·삽·곡괭이 등으로 韓美장병들을 닥치는 대로 내리쳤다. 삽시간에 미루나무 밑은 피로 흥건했다. 미군 장교 두 명이 피살됐고, 한국군 장교 1명과 병사 4명 그리고 미군 병사 4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미국은 즉각 북한의 「판문점 만행」을 용서할 수 없다며 해명과 배상을 요구했다. 만약 북한이 거부한다면, 강력한 보복을 한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단호했다. 對北보복 공격준비 일환으로 일본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북한 해역으로 항진시켰다. 대형 공중 급유기 15대는 오키나와 美공군기지로부터 도쿄의 요코하마 기지로 이동시켰다. 수틀리면 북한을 때리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8월21일 아침에는 B52폭격기와 헬리콥터 등 26대를 출격시켰다. 같은 날 문제의 미루나무도 잘려나갔다. 韓美양국군 300명이 출동한 것이다.

강경대응은 전면전을 불렀는가? 아니다! 북한은 아무런 항의도 없었다. 쥐 죽은 듯 엎드려 있었다. 겁에 질린 김일성은 친서를 통해 『유감 표시』를 전했다. 결국 미국 측에 사과했다.

<강경책으로 중단된 북한의 판문점 테러>

미국의 對北강경대응을 계기로 북한의 일명 「판문점 테러」는 중단됐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미국을 얕잡아보고 도발해왔었다. 판문점 인근에서 걸핏하면 미군을 발로 차고 주먹으로 때리거나 심지어 살해했다. 북한군은 1966년 4월14일 판문점 비무장지대에서 매복해 있다가, 판문점으로 가던 미군을 습격했다. 미군 2명과 한국인 카투사 2명이 살해됐다. 미국이 월남전에 묶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마음껏 도발한 것이다.

북한군은 1968년 1월23일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를 동해상에서 납치했다. 1975년 7월15일에는 미군 소령을 짓밟아 중상을 입혔다. 미군 측의 무기력한 대처 속에서 북한은 기고만장해졌다. 상대편이 약하게 나올수록 마음껏 짓밟았다. 북한의 만용(蠻勇)은 76년 도끼만행 사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때는 미국도 발끈했다. 월남에서 철수한 이후인지라 군대운용이 자유로웠기 때문이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해법은 「유화적 설득」이 아니라 「강경한 대응」이다. 역사(歷史)는 이것을 말한다. 朴대통령은 이 진실을 알았고 실천했다. 미국 역시 76년 이것을 체험했다.

<상황은 바뀌었는가?>

3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은 달라졌는가? 북한정권은 조선로동당 당 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의...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못 박고 있다. 공산통일을 최종목적으로 설정한 북한정권은 2000년 6.15선언 이후에도 오직 무력에 의한 통일밖에 없다며 이렇게 주장해왔다.

『흘러 간 반세기의 력사는 우리나라에서 미제와 남조선괴뢰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조국통일을 이룩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조국통일은 오직 무력(武力)에 의한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모든 군인들은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무력(武力)통일관으로 튼튼히 무장하고 무력(武力)으로 기어이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평양 조선인민군출판사, 2000년 9월 펴 낸 「적에 대한 환상을 없애고 계급의 총창을 더욱 날카롭게 버릴 데 대하여」)』

북한이 바뀌지 않았다면, 대응책도 같아야 한다. 남북간 모든 합의를 무효로 하겠다고? 그렇다면 우리도 방법이 있다. 우선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재개하여 북한으로 진실의 메시지를 퍼부어야 한다. 북한 배가 제주해협을 통과하도록 허용했던 합의도 무효가 되었으니 제주해협 통과를 금지시켜야 한다. 對北풍선 날리기 운동을 汎국민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은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조선로동당 해체를 위한 對北작전(operation)을 시작해야 한다.

60년간 지속돼 온 한반도의 지루한 현상(現狀)은 이제 타파(打破)될 시점이다. 북한의 미친 짓이 자유통일을 향한 한국인들의 힘찬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시대는 미친 개에게 몽둥이를 들겠다는 지도자를 부르고 있다. 박정희가 시작한 「근대화 혁명」은 완성의 시기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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