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토론방에서 퍼온 것이다.
이 름 지혜
왜 북한을 다녀오면 모두가 천편일률적 시각인지...
경제가 어렵다는 요즘인데도 유독 북한 육로관광은 불황이 아니라죠... 우연히 오마이뉴스를 들렀다가 대표기자인 오연호와 편집국장인 정운현이 최근 북한을 다녀와서 쓴 르뽀기사를 읽으면서 너무 북한을 미화한 편향된 시각에 마음이 답답해져 제가 전에 읽었던 외국특파원의 기사를 올려보았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수많은 인사중에 왜 이런 시각으로 글을 쓴사람은 한명도 없는지, 우리나라에 진정한 지식인이 있기나 한지 안타까운마음에...<이미 읽으신분도 있겠지만 꼭읽어보세요^^>
------------------------------------------------------------------------<< 잃어버린 인민의 낙원 >>
By Geoffrey York : The Globe and Mail 북경 특파원
자기의 발코니에서 김정일은 도시를 내려다 보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를 다스리는 뚱뚱한 독재자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드문 일이지만, 그는 발코니 아래의 초현실적 분위기의 축제를 거만하게 바라보면서, 신(神)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가 보이자마자, 평양의 중앙광장에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서있던 2만명의 군인들과 관객들은 흥분되어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광란적인 환호와 함성의 파도가 계속적으로 광장을 덮었다.
수천개의 풍선들이 하늘로 올라 갔다.
군인들이 '만세, 만세'를 소리치는 동안, 관악대가 승리의 군가를 연주했다.미리 각본된 광란의 흥분이 절정에 달하자, 그들이 경애하는 지도자라고 부르는 남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면서, 관중들은 꽃다발을 들고 군대식으로 열을 지어 광장을 지나 행진했다.그 남자를 향해 얼굴을 돌릴 때, 많은 사람들이 광란적으로 울며 흐느꼈다.수만명의 군인들이 자동소총을 손에 들고 거위식 걸음으로 광장을 지나갔다.
이 날은 북한 창립 55주년 기념일이며, (자칭 '위대한 지도자'이며 1994년에 죽은 자기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경애하는 지도자'가 2시간동안의 행진을 만족스럽게 지켜 보았다.61살의 나이에, 그는 더부룩한 머리를 하고, 똥배나온 5피트 3인치의 키를 늘리기 위해 굽높은 신발을 신고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그는 위엄있게 보이려 애쓰지만, 사적인자리에서는 이태리식 요리, 랍스터, 프랑스제 와인과 꼬냑을 즐기는 것으로 유명한, 육감적 식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전해진다.그는 한때 이태리제 오븐으로 피자를 만들기 위해 2명의 요리사를 밀라노에서 데려왔고,그가 좋아하는 꼬냑인 한병에 $630짜리 헤네시 패러디스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구입하는 하나뿐인 고객이라고
소문나 있다.
그러나 그 날 저녁 방송을 위해 기념일 광경을 그의 카메라들이 녹화할 동안,
이 수도의 많은 다른 장소에서는 더 추한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호화스런 호텔부근의 고속도로 중간에서, 한 노파와 조그마한소녀가 배고픔을 보충하기 위해 손과 무릅으로 먹을 수 있는 풀과 나물을 뜯고 있었다.약 5살정도로 보이는, 고통스럽게 야윈 소녀가 커다란 가방 안에 풀을 모으느라고 애쓸 때, 그 아이는 꽃이 그려져 있는 옷을 입고 있었다.
평양의 외곽지대에는, 이 가난한 나라에서 하루를 살아 남기위해 기본 섭취물이 되어 버린, 풀, 낙엽, 나물, 나무껍질, 그리고 다른 '야생음식'을 짊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교외쪽으로부터 걸어서 평양으로 돌아올 동안,등에 빈 백을 맨 남자와 여자들이 도시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다.
내가 이 달에 북한에서 지낸 8일동안 이러한 장면을 매일 목격했다.
이 나라의 줄어드는 자원이 이웃나라에 위협되는 핵무기 개발과대량의 군대를 위해 쓰여지고, 스탈린 같은 개인우상숭배에 붙잡혀 있는 나라이며, 오웰이 그렸던 사회이다.그러는 동안, 보통 북한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배고픔과 불행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은 전체주의 국가의 2300만 사람들의대부분에게는, 지난 주의 국경일은 그들이 무엇인가 먹을 것을 찾아다닐 또하나의 기회에 불과하다.이곳의 영양결핍증에 걸린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야생음식'에 의존하고 있다.
그들은 이러한 '야생음식'을 밀겨나 옥수수 껍질과 섞어 죽을만드는데, 이것이 고통스러운 소화장애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찾아 헤매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나는 만났다.
이번 여름에 수주일동안 북한을 돌아 보았던 세계식량기구의한 구호요원은 수백명의 이런 사람들을 보았다고 말했다.구호기관의 추정에 의하면, 1990년대 중반 이후로 3백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었다.
특히 작년 핵위기가 시작된 이후로 언론인들이 북한을 방문하기 어렵지만, 나는 중국에서 출발하는 관광그룹의 일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그것은 언론인들이 호시절에도 보기 어려웠던 지방도시와 시골지역을 포함한 여러 곳을 여행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평양은 국영 고려항공의 낡은 러시아제 일루신 제트기를 타고 북경에서 90분 걸린다.두 사회주의국가 수도를 연결하는 통로는 북한이 외부세계와갖고 있는 몇 안되는 통로중의 하나이고, 이 항공로는 일주일에 오직 2편의 비행스케쥴이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외교관, 정부관리, 그리고 상하이 순회발레단과 같은 방문단들이다.한 고립된 나라로 들어가는 철의 장막을 통과하는 기분은,
우리 비행기가 이륙준비가 되었을 때 머리 위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군가와 딱딱한 표정의 승무원들에 의해 더욱긴장된다.국경일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으로 들어 가는 몇 안되는 고위직 한명이 우리 비행기에 탔다.또다른 독재국가인 짐바브웨의 부통령은 군악대를 포함한 대규모 군대 의장대의 환영을 받았다.
그것은 두 독재자 사이의 단단한 유대의 상징처럼 보였다.
대부분의 고려항공소속 작은 여객기들이 오래 전부터 정박해있는 거의 텅빈 공항에 우리는 착륙했다.도착하자마자 내 휴대폰은 딱지가 붙어 압수되었다.
극도의 외국인공포증으로 알려진 북한정권은 북한주민과 외부세계 사이의 휴대폰을 포함한 어떤 개인적 접촉을 금지하려고 굉장히 애쓴다.
정부의 감시자가 우리를 밴승용차에 태웠다.평양에 대한 우리의 첫인상은 넓은 도로와 웅장한 스탈린식 고층건물들이었지만,자세히 보면 그 건물들은 낡아 가고 있었다. 거리에는 자동차가 별로 없었다.만약 외국인과 접촉을 하면 체포되는 것이 두려워서 눈길을 피하며, 주요 도로를 따라 천천히 힘겹게 걷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긴 행렬이 있었다.가끔 그들은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길로 얼른 우리를 훔쳐 보았다.
7명의 우리 관광그룹에 감시자가 3명이었다.감시자들은 우리의 행동을 주시했고, 우리가 가는 곳 모두 따라다녔으며, 밤에는 호텔 출입구를 안내했다.우리 자동차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멈췄을 때, 감시자들은 그곳에 우연히 있는 어떤 북한사람들도 다 쫒아 버렸다.만약 우리가 아무 곳이나 가면 그들은 우리를 쫒아 올 것이다.그러나 그들의 감시는 완벽하지 못했다.감시자들을 수시로 피하면서, 그리고 관광을 위해 멈추는 곳 사이로 지나가는 장면을 유심히 보면서,나는 군사력을 위해 국민들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나라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한국전 종전 50년 후에도, 북한은 아직도 상시 전쟁상태에서 작동되고 있다.
이 나라의 모든 부족한 자원들은 군사력에 집중되고 있다.일반 병사들마저도 고생하고 있다. 냐하면, 일반병사들의 인간으로서 필요한 것들이, 더 센 미사일과 핵무기를 향한 김정일의 끊임없는 욕망보다도 덜 중요하기 때문이다.
백만명 이상의 군대를 가진 북한의 군대는 세계에서 5번째로 많다.주요 고속도로마다 수백명의 군인들이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걷고 있었다.어떤 때에는 그들은 지나가는 차에 얻어 타려고 사정했다.
만약 운이 좋으면, 그들은 자전거나 트랙터가 끄는 수레 또는 트럭을 얻어탈 수 있다.많은 군인들이 키가 작고 야위었다.몇몇은 14살 소년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들은 20세 이상이었다.영양결핍으로 생긴, 널리 퍼진 저신장때문에, 북한군대는 신병모집시 최소신장을 단지 4피트 10인치로 낮췄다.공식 고속도로 검문소에서마저도, 군인들과 경찰들이 1대이상의 자전거를 갖고 있는 곳이 별로 없었다.그들은 중국인 관광객으로부터 담배와 껌을 고맙게 받아들였다.
군인들이 불안전하게 겨우 살고 있는 동안, 민간이들의 상황은 더욱 위험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진 이후로 경제는 붕괴되었고, 세계식량기구는 인구의 51%가 급성 또는 만성 영양결핍이라고 추정한다.유엔 기준에 의하면, 식량부족때문에 생긴 저신장 비율은 '아주 높다'
나는 북한의 어느 곳에서도 경제활동 징후를 별로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공장은 문을 닫았고, 평양과 남한사이의 국경사이의 주 고속도로에서 군인들이 커다란 12미터 높이의 대 탱크장벽을 수리하는 것을 포함하여, 오직 2-3군데의 건설현장이 있었을 뿐이다.수년간의 건축 후에 1990년대 초기에 포기된, 굉장한 105층 피라미드모양의 호텔이 평양의 스카이라인을 주도하고 있다.실패한 야망의 상징으로서, 녹쓸은 크레인이 그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아직도 그대로 있다.
연료부족 역시 심각해서, 일요일에는 평양의 주요도로에 자동차 통행이 금지된다.이웃나라 중국에서 가솔린이 리터당 40센트 이하인 것과 비교되게, 리터당 4달라에 달했다.이것이 북한사람들이 땔감나무를 연료대신에 사용하게 촉진했다.나는 덜거덕거리는 트럭 뒤에서 짙은 연기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버스와 전차들은 사람으로 꽉찼다.평양의 버스정류소마다 아주 길게 줄서서 사람들이 기다렸다.그러나, 10차선까지 있는 넓은 도시간 고속도로는 실제로 텅 비었다.대부분의 도로 위에는, 움직이는 자동차보다 부셔진 자동차가 더 많다.
승객들이 흥분하여 주위로 피할 때, 한 멈춰있는 트럭의 엔진에서 불길이 새나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하나의 과시프로젝트로, 평양과 남포사이에 10차선 청년영웅 자동차전용도로가 1990년대 후반에 5만명의 군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이 자동차도로의 50키로미터 길이에 아마도 2대나 3대의 차가 어딘가를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깜짝놀랄 인력낭비로, 도로 노견에 떨어진 낙엽들을 쓸어대며, 수십명의 사람들이 텅빈 고속도로를 깨끗이 하려고 애쓰고 있었다.고속도로 옆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끔 지나가는 승용차를 얻어 타려고 필사적으로 흔들고 있었다.그들은 뇌물로 주겠다고 담배곽들을 흔들고 있었다.어떤 고속도로들은 그냥 콘크리트 슬라브로만 이루어져 있다.도로수리는 현대장비가 별로 없는 노동자들에 의해 수행된다.나는 도로수리반 중 한 노파가 무거운 바위를 들려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시골지역에는 트랙터가 별로 없고, 기계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이 손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다.노동자들은 대부분의 논밭일을 걸어서 일했고, 어떤 경우엔 소나 사람들이 끄는 나무수레나 쟁기로 일했다.
평양 밖을 여행한 5일동안, 나는 단지 3대나 4대의 트랙터와 몇몇의 트럭을 보았을 뿐이다.몇 농부들은 단 하나의 양이나 돼지를 줄로 끌어가고 있었다.
강이나 호수에는, 모터보트를 볼 수 없었다.대부분의 보트가 노를 저어 움직이는 것으로 보였다.1991년 소련의 붕괴 후, 북한은 외부지원의 주된 근거를 잃어버렸다.
혹심한 고립과 고집스런 자립 주장 (주체사상으로 알려져 있다)이 경제침체를 더욱 악화시켰다.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의 12분의 1이다.전기생산은 10년전 수준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북한에서 활동하는 세계식량기구의 대변인인 제랄드 부르크는 최근 기록에서
'물려받은 배고픔이라는 나쁜 싸이클이 더 심해지고 있다.'라고 썼다.'중간정도의 영양결핍 어린이들이 악성영양결핍으로 바뀌고 있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질병과 죽음에 노출되고 있다. 굶주린 여자들이 더 작은 아이를 낳고 있고, 아이들에게 젖을 주는 것도 점점 더 어렵다'
농작물위기가 1996년-1998년 기근만큼 오늘날 심각하지 않은 반면에, 외국의 식량원조 감퇴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무상원조 피로증과 정치적 분쟁이 일본과 같은 전통적인 식량원조 나라들로부터의 식량지원을 급격히 줄이고 있다.북한주민 3분의 2이상이 정부의 식량배급에 의존하고 있고, 1인당 하루에 300그람이하를 배급받는데, 이것은최저생존에 관한 국제기준의 거의 절반이다.
절망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배고픈 마을사람들의 도둑질의 위험성 때문에, 밤에 도둑으로부터 옥수수를 지키기 위해 경비원이 머물 정도로 다랗고 높다란 오두막이 옥수수밭에 지어졌다.시골지역에서는 사름들이 차가운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고, 땔감나무 가지들을 나르고 있다.나무들이 땔감이나 판매용으로 잘려 나가기에 헐벗은 산이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작물들은 산의 가파른 경사지를 포함한 모든 가능한 장소에 심어져 있지만, 개인적 소유지가 불법이기에 담장이 하나도 없다.
모든 마을마다, 새롭고 빛나는 것은 언제나 선전간판이나 20미터 높이의, 커다라 빨간 글자로 새겨져 있는 애국적 구호들이 씌여있는 뾰쪽탑이다.이들 탑들은 키높이 이상이고 주변경치를 주도하고 있으며, 마치 보통 주민들이 경애하는 지도자 발 밑에서 뛰어 다니는 듯한 인상을 준다.특권이 주어진 장소인 250만 주민의 평양은 사람들이 거주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허가가 필요하고, 대부분의 주민들이 국가에 충성하는 곳이다.그러나 이곳마저도 굶주림과 물자부족이 명백하다.
해가 진 후에는, 몇개의 조명받은 선전간판과 기념물 옆에서, 수도는 암흑으로 바뀐다.몇 안되는 가로등은 하도 침침해서 어둠을 뚫을 수 없다.밤에 도시는 죽음처럼 고요하고, 확성기에서 가끔 선전 보도가 있을 뿐이다.이 정권은 북한이 '인민의 낙원'이라고 끝없이 자랑했다.
그러나 어느날 밤중에 이 도시를 걸어갈 때, 나는 집없는 사람들이 길가와 공원 벤치에서 자는 것을 보았다.낮에는, 사람들이 힘겹게 손수레를 끌거나 손으로 무거운 짐을 운반하는 것을 보았다.택시는 거의 없다.아파트들은 낡았고 침침하다.아파트에는 뜨거운 물과 수도물이 부족하다.특히 겨울에는 전기가 엄격히 배급된다.평양과 주요도시들에서는, 대부분의 상점에 진열대가 절반은 비어 있다.상품들은 적고, 진열창은 아예 없다.아파트 바깥에는, 담배나, 집에서 재배한 채소를 행인들에게 팔아 돈을 벌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작은 박스들 뒤에 쪼그려 앉아 있다.
비록 감시원들이 우리가 자세히 보는 것을 막았지만, 이것들은 북한에서의 최초 개인장사의 표시처럼 보인다.만약 이 나라가 낙원이라면, 고위층과 연결된 사람들만을 위한 낙원처럼 보인다.감시원들조차도, 부자와 가난한자 사이에 큰 격차가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예를 들자면, 정권에 연결된 소수의 특권층 엘리트들만이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시용할 수 있다.우리의 감시원들중 한 명은 처음으로 내년에 이-메일 주소를 갖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지만, 보통의 북한 주민들이 마침내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기를 '기술적 문제점'들이 지연시키고 있다고 인정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보통의 북한주민들보다 더 관대한 식량할당을 받는다.
사람들이 풀을 뜯어 먹고 사는 나라에서는 외설에 해당하지만, 관광객들은 사치스러운 9가지 코스의 연회장 음식을 즐긴다.북한정권을 위한 현찰 소득의 중요한 원천으로 떠오른 중국인 관광객들을 모으려는 노력으로, 북한정부는 평양
의 47층짜리 양각도 호텔안에 카지노, 값비싼 중국식 식당과 사우나를 포함하여 호화고급서비스시설들을 열었다.
보통의 북한주민들은 이곳 시설들에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어느날, 나는 원산항부근의 동해안에서 한 부유한 북한 엘리트를 보았다.
두대의 정부소유 벤츠 리무진이 해안가 휴양소에 멈춰 섰고, 여러명의 뚱뚱한 관리들이 보석으로 치장한 부인들을 동반하여 휴양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싱싱한 게를 식사로 주문했다.그들의 배를 가득 채운 다음, 그들은 운전사들이 밖에서 기다리는 동안, 수영을 위해 바다로 어슬렁거리며 들어갔다.
경애하는 지도자 말고는, 내가 방문기간동안 본 유일한 뚱뚱한 사람들이 그들이다.
게 요리와 꼬냑 그리고 피자 요리사를 유지할 돈을 위해,그리고 세계의 안전을 위험하게 만들어 온 호전성을 과시할 단계에서 핵개발을 위한 돈을 쓰기 위해,
이 정권은 현금을 필사적으로 구하려고 애쓴다.팔 수 있는 상품들은 별로 없이, 이 정권은 미사일이나 마약같은 불법 밀매품들을 더 많이 수출하여 왔다.
이 정권은 이란, 리비아, 파키스탄, 시리아 같은 독재국가들에게 미사일과 군사무기들을 팔아서 일년에 수억달라를 벌어 들인다.4월에는, 호주의 관리들이 북한선박에서 125킬로그램의 막대한 헤로인 선적품을 붙잡았다.
또다른 불안정한 요소는 피난민 홍수의 가능성이라는 위험성이다.중국은 북한과의 국경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미 중국의 북동지역에 약 30만명의 피난민들이 숨어 들었다고 추정된다.(내가 있는 북경의 아파트단지는 북한 피난민들이 이 곳에 있는 외교영사관에 난민신청을 할 것이라는 중국의 두려움 때문에 철조망으로 둘러 싸여 있다.)
광범위한 굶주림과 영양결핍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전체주의 체제는 붕괴의 징후가 없다.나는 보통사람들 중에 반대나 항의의 증거를 보지 못했다.외국의 정치인들은 종종 김정일정권이 불가피하게 곧 붕괴할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실제로 세뇌와 국내의 선전체제가 아주 강력해서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은 현재의 체제에 대한 다른 대안을 상상조차도 할 수가 없다.
'국민들의 기본적 욕구를 뺏았다는 이유만으로 붕괴된 나라는 인류 역사상 별로 없습니다.'라고 지난 20년동안 한을 여러번 방문해왔던 죠지아대학의 정치학자 박한이 말했다. '북한에서는, 국민들의 경제적 곤란이 정권 자체를 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그는 최근 신간에서 썼다.'이 사회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보여 주는 압도적인 굴종적이며 순종적인 태도는 평생동안의 정치적 사회주의화라는 지속적이고도 용의주도하게 조정된 학습과정의 결과입니다.'
마치 그의 예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국경일 전날밤, 나는 수백명의 북한사람들이 평양의 밤 어둠을 뚫고,커다란 김일성의 선전판 아래에 꽃다발을 놓으려고 순종적으로 몰려드는 것을 보았다.조명빛이 비추는 선전판은, 장막이 쳐진 도시의 몇 안되는 빛 중의 하나로서, 마치 으시시한 등대처럼 보였다.그 초상화 아래에, 보통사람들이 짧게 비쳤다.
그러자 그들은 가져온 꽃다발을 놓고, 자신들의 운명을 체념하면서, 어둠 속으로 총총히 사라져 갔다.
-끝-
잃어버린 인민의 낙원
- G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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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0-18, 1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