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돌아간 우주 너머의 집

故이성자 화백을 기리며/ "예술가의 고향은 결국 땅이 아니라 하늘임을 깨닫습니다"
2006년 여름, 투레트의 따가운 햇살 속에서 만난 이성자 선생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활기에 넘쳤습니다. 화실의 정원에는 선생이 살뜰하게 가꾼 푸성귀며 과일나무, 꽃나무들이 주인처럼 씩씩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지요. 나흘간에 걸친 마라톤 인터뷰 중에도 지치는 모습 없이, 기억을 더듬고 말을 가다듬으며 저에게 50년대 몽마르트의 어느 카페와 파리의 다락방에서 펼쳐지는 당시의 일화들을 들려주셨지요. 꼭 흑백영화를 보는 듯 생생했습니다. 살구나무의 열매가 뚝뚝 떨어지던 여름 밤, 쏟아지는 별빛 아래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어제처럼 생각납니다.

재작년 5월, 전시를 위해 서울에 오셨을 때, 흰 티셔츠 하나를 걸치고도 언론 인터뷰에서 당당하시던 선생의 모습에 겉옷을 빌려드리려 한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여자로서, 예술가로서 낯선 이국 땅에서 불모지를 일구듯 땀과 눈물로 가꾸어 오신 선생의 힘찬 삶과 예술이 경탄스럽고 부러웠을 다름입니다.

선생은 작품을 통해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자연과 도시의 기계문명 같은 대립된 요소들 사이에 놓인 간극들을 뛰어넘고자 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여성과 대지’라는 주제로 보여주셨지요. 씨실과 날실로 베를 짜내듯 정교한 화면을 가득 메운 기하학적 형태 사이로 저는 선생의 부엌과 뜰, 우물과 베틀을 엿보았답니다. 한국에 두고 온 어린 삼형제를 그리며 “붓질 한번 더하는 것이 아이들 옷 입혀 학교 보내는 것이고, 밥 한술 떠먹이는 것이라” 자기 최면을 걸고 밤낮없이 그림에 매달리셨다고 하셨지요. 어쩔 수 없이 헤어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이 붓질 하나하나, 조각칼 하나하나에 담겨있음을 알기에 가슴이 메어집니다.

그런 치열함과 절절함이 있었기에 선생의 작품은 “토속적이지 않으면서도 동양적”이라는 찬사와 함께 프랑스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파리화단에서 한국 작가로서는 최고의 성공을 거두셨지요. 한국에서 미술대학을 나오신 것도 아니고 미술을 시작한지 불과 5, 6년 만이었지요. 서로를 아무개 화백이라 부르는 다른 재불(在佛) 작가들 틈에서, 생계를 위해 일하면서 작업에 매달린 결과였기에 더욱 자랑스러웠습니다.

1965년 귀국展에서 선생은 당신이 여자라는 것과 한국의 흙에 대한 애착을 말씀하셨습니다. 길삼을 하고 밭을 일구는 우리 아낙네들의 매일의 노동처럼 선생의 붓은 그렇게 삶과 예술을 꾸려가셨습니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가로서의 삶을 시작한 이후로 쉬지 않고 달려온 선생의 예술은 늘 그렇게 현재진행형이었습니다.

선생의 판화와 유화들은 음과 양, 도시와 자연의 이분법을 합일과 조화로 되돌리는 작업이었지요. 목판화는 나무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채 우리 곁에 숨쉬듯 살아 있고, 캔버스화면 가운데 요철로 맞물려진 원형의 중심에는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어 있습니다. 선생이 꿈꾸는 우주지요. 1990년대 ‘극지로 가는 길’ 시리즈를 통해 보여주신 우주가 아닌지요. 색동과 단청을 닮은 행성과 달이 부유하는 그곳은 서울도 파리도 아닌 이성자의 영혼이 만들어 낸 미래의 우주도시였습니다. 투병 중에 보내주신 편지에 선생은 수선화 한 송이가 주는 행복을 말씀했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풀 한포기, 꽃 한송이에도 선생은 우주의 조화와 에너지를 보았지요.

선생은 한국이 낳은 걸출한 여성미술가들 중에서 가장 장대하고 풍성한 작품세계를 키워내셨습니다. 여성 미술가로는 유일하게 반세기가 넘도록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도 여전히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부분에 자리하고 계십니다. 그래서인지 선생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이제 이성자 선생은 그가 우주 저편에 지어놓은 집으로 갔습니다. 은하수 어디엔가 자리한 그 집 한 켠에는 그가 파놓은 우물이 있고 뜰에는 과일나무와 갖가지 꽃들이 만발하겠지요. 뒷 곁에는 정성 들여 가꾸시던 푸성귀도 있을 겁니다. 부엌의 아궁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과 따뜻한 부뚜막이 있는 그 집은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소리가 가득 할 겁니다. 당신이 생전에 그림에 다 그려 넣으신 그대로요.

제가 받은 마지막 편지에 선생께서 적어놓으신 끝 구절이 마음을 흔듭니다. yin-yang=♡ 無 <음에서 양을 제하면 사랑, 무(無)이다. > 이제 당신이 가신 아름다운 우주에는 남성도 여성도, 동양도 서양도, 자연도 문명도 다 하나가 됩니다. 선생이 말씀하신 사랑은 자신을 남김없이 비워 다 주는 무(無)가 아닐런지요. 선생의 엄격함 속에서도 더 없이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이렇게 넓게 품을 수 있는 우주를 안고 계셨기 때문이었나 봅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낳아 품고 기르는 사랑 말이에요. 예술가의 고향은 결국 땅이 아니라 하늘임을 깨닫습니다. 평생의 절반은 땅을, 절반은 저 하늘 너머 우주를 그리며 보내신 고인이 이제 진정한 고향인 우주로 돌아감을 아쉬운 마음으로 배웅하렵니다. 광활하지만 두렵지 않고, 한없이 따듯한 그곳에 몸을 맡기시기를.


● 이지은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에서 서양화와 미술이론을 전공하고, 보스턴대학교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보스턴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강사를 거쳐 현대 명지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시각문화연구와 미술사의 쟁점들:시각성과 이미지의 문제를 중심으로>, <시각과 이성에 대한 도전:1920년대 프랑스를 중심으로 본 미술가들의 영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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