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를 떠도는 많은 보통명사 '송두율 '
해외를 떠도는 많은 보통명사 ‘송두율’
동명대학 객원교수 및 조지 메이슨대 제휴 연구원 김정열
필자는 얼마전 미국에 있으면서 사상문제로 인한 불행한 교포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차례 들은 바 있다.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이 싫어 해외로 나간 사람들 중에는 ‘적의 적은 친구’ 라는 논리로 북한과 가깝게 지내고 수시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공작금을 받아 친북활동을 하였으나 이제 북한쪽에서는 본체 만체하고 그렇다고 양심의 가책상 서울에도 가지 못하고 유령처럼 떠도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말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좁게는 한반도의 분단과 넓게는 냉전체제의 희생자들로서 인간적으로 또 민족적으로 비극이요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정부가 이들 불행한 해외 교포들을 초청한다고 하였을 때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들이 남한을 오고 싶다고 하는 그 자체가 북한에 대한 체제경쟁에서 우리 한국이 우월적인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과거 체제선전을 위해서 이들을 이용하다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자 체제선전보다 당장 달러를 추구하며 이들을 내팽개친 것인데 냉혹한 공산주의의 본심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쨌든 이들을 초청한 것은 좋고 잘된 일이다. 성경에서도 ‘돌아온 탕자’ 를 환대하고 있지 않는가!
필자는 기본적으로 송두율 교수를 이러한 보편적인 틀 안에 넣어서 생각해왔다. 그도 과거 독재체제를 혐오하고 분단이 짓누르는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에 나가 살면서도 한국에 오지 못하는 비극적인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인 보통명사의 하나로...더구나 그는 과거 나름대로 조국의 민주화 투쟁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또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 이라는 방식으로 북한을 연구한 학자이며 교수로 알려지기도 하였다. 그리고 ‘경계인’ 으로서 이념을 넘어서는 통일방법을 추구하였는데 이 접근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하며 동조를 하기도 하였다.
이해할 수 없는 송두율 교수의 처신의 배경
그러나 국정원이 지난 10월 1일 송두율 교수가 지난 91년 5월 ‘김철수’ 라는 가명으로 북한 노동당 서열 23위인 정치국 후보위원겸 당 중앙위원으로 선임됐고 지난 73년 9월부터 지난 3월까지 18차례에 걸쳐 입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증거와 이를 시인한 송두율 교수의 자백도 첨부하였다. 물론 이 내용 중 핵심부분을 송교수가 기자회견을 통해 부인하고 있고 국정원도 6일 송교수를 다시 불러 조사를 한다고 하니 앞으로 더 가려질 것이지만 그의 행적은 그를 지지하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 것이 분명하다.
필자는 여기서 왜 송두율 교수가 과거 친북활동을 하였고 심하게 말하면 '간첩활동' 이라고 할 수 있는 행위를 하였으면서도 그의 말대로 자신에 대한 충분한 '내재적 성찰' 도 없이 이를 감추고 얼버무렸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에 오기 전에 또는 한국에 와서도 “나는 과거 북한의 편에 서서 이러저러한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하니 잘못된 것이니 용서해달라” 이렇게 하였으면 문제가 쉽게 풀렸을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기획입국’ 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정부 예산으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관련 단체가 이번 방문을 추진하면서 너무 성급하였거나 어떤 의도인지는 몰라도 송교수의 과거 행적을 무시하였다는 점이다. 이들이 조금만 더 신중했다면 이미 알려진 황장엽씨가 제기한 의문들을 점검해보았을 것이다. 둘째, 그동안 송교수의 행적에 대해 국내 지식인들이 너무 무지하였고 또 그 무지에 과잉동조했다는(overconform) 점이다. 그동안 일부 국내 교수들의 주장이나 일부 신문과 방송의 논조를 살펴보면 송두율 교수는 대단한 ‘지적 영웅’ 으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송교수 자신도 국내의 허구적인 미화 분위기 속에 빠져 과거 행적을 심각한 것으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지적으로 태만하고 비겁한 한국의 지식인’
지난 9월 14일 산케이 신문 서울지국장인 구로다 가스히로씨는 서울발 기사에서 ‘김정일체제를 사상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한국의 일부 좌익과 진보쪽의 지식인들을 향해 지적으로 태만하고 비겁하다’ 는 독설을 퍼부었다. 이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우리 지식인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이번 송교수 사건에 대해 정부 산하 관련단체들이 안이하게 대처한 근본적인 원인도 그 단체를 구성하고 있거나 주변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송교수를 사실에 입각하여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너무 이념에 치우쳐 좋게만 보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일부 좌익 또는 진보파 지식인들이 왜 북한을 비판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북한을 옹호하고 우호적으로 보는 이유로 그들이 소수파 정권과 동조하여 기존의 기득권 구조를 무조건 해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obsession) 아래 북한을 끌어들여 정치적 헤게모니적 투쟁에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불행하게도 인민에 대한 정치적 자유의 억압과 인권유린 및 경제적 빈곤을 방치하는 전제적 독재 정권에 대한 비판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현실을 도외시하는 지적으로 태만하고 비겁한 지식인의 자세이다. 이러한 자세는 결국 북한에 이용당하는 것이고 우리 사회의 갈등을 조장시킨다<주>
그러나, 그렇다고 필자는 냉전적 시각으로 송교수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송교수 문제가 내년 총선을 앞둔 정략적인 이념논쟁과 메카시즘의 제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왜 송두율 교수 사건이 생겼는지 현대사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송교수의 37년만의 귀국이 비극이라면 이를 둘러싼 갈등도 비극이다. 이러한 비극이 일부 지식인들의 지적인 태만과 비겁으로 인하여 더욱 심화되고 문제가 복잡하게 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여튼 이번 사건으로 우리 일부 지식인들이 크게 각성하여 이념이 아니라 현실에 더욱 천착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주> 이번 사건은 송두율 교수 자체에도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근본적으로는 송두율 교수를 대하는 우리 내부의 문제 때문에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북한에 대한 이러한 근시안적 시각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결국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이용되는 결과를 가져다 주고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송두율 교수의 입국 자체가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대남 교란작전에 말려드는 것일 수 있다.
2003-10-15 10:09:04 / 138.89.108.148
해외를 떠도는 수많은 '송두율'
- 김정열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3-10-19, 00: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