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계가 앞장서는 소위 對北지원에는 「인도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북한의 불쌍한 어린이, 굶주린 주민을 돕는다는 뜻에서 그렇다. 그러나 「인도적 對北지원」은 결과적으로 金正日 정권의 暴壓(폭압)을 강화시키고, 북한인권 彈壓(탄압)을 계속케 하는 동력이 된다. 왜 그런가?
<군대와 특권층이 독식하는 인도적 대북지원>
첫째, 「인도적 對北지원」의 대부분은 북한의 軍隊(군대)로 흘러간다. 先軍(선군)정치 아래서 북한 내 모든 물자는 군대가 우선 쓰는데, 인도적 지원 역시 예외가 아니다. 북한전문가 이영화 日本간사이대 교수는 『북한 지원 물자의 50~70%가 군부대로 먼저 흘러간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탈북자들의 주장과 대체로 일치한다.
예컨대 남포항에 외부에서 지원된 食糧(식량)이 도착하면, 군대마다 식량담당이 「전진공급」이라 하여 먼저 가져온다. 다른 기관은 輸送能力(수송능력)이 없어, 군대보다 앞선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肥料(비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국 등에서 지원된 비료의 1차 공급대상은 軍부대 농장, 2차 공급대상은 金日成·金正日 현지 지도 단위농장이다. 기타 농장에서는 비료를 받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본 후지 TV는 2006년 9월11일 북한 내부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탈북자가 내부에 잠입해 촬영한 이 동영상은 같은 해 5월말 함경남도 단천市의 모습이었다. 여기는 한국이 지원한 쌀이 트럭에 실려 軍부대로 옮겨진 후, 軍창고에 비축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둘째, 인도적 지원물자는 군대 이외 평양에 거주하는 黨(당)·軍(군)·內閣(내각) 등 「核心(핵심)계층」으로 불리는 特權(특권)계급에 독점적으로 돌아간다. 金正日에 충성하는 이들에게 배급돼서, 북한정권을 지탱하는 원천이 된다.
주로 평양에 거주하는 특권계급은 지원물자를 독식한 뒤, 일반주민에게 비싸게 되파는 「돈벌이」에 나선다. 북한식 腐敗(부패)구조가 형성된다. 장마당에서 한국 쌀은 「대한민국」 마크가 찍힌 포대 째 팔리기도 하고, 포대 없이 쌀만 팔리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에서 팔리는 쌀의 80% 이상은 한국과 유엔 등에서 들여온 쌀이라고 지적한다.
특권계급에 빼돌려지는 것은 식량 뿐 아니다. 의류, 신발, 식료품, 어린이용 우유가루 등 등 일상 물건도 마찬가지다. 탈북민 김영순(가명·2003년 입국)씨의 증언이다.
『남한에서 보낸 내의류가 1999년과 2000년에 평양으로 들어온 적이 있었다. 여성용 내의, 팬티, 브래지어, 양말과 남성용 옷, 양말 등이 들어 있었다. 「조선인민군 협주단」 남성 합창단원들에게는 1인당 양말 20켤레씩 공급했다. 이 옷들은 평양시 가정별로 「국정가격」으로 공급했다. 평양주민들은 다시 2~3배 가격으로 높여 이를 지방에 팔아 이익을 챙겼다.』
<특권계급의 「부패 고리」, 「마피아 부족주의」>
셋째, 특권계급의 「부패 고리」, 「약탈적 寄生(기생)」, 「마피아 부족주의」의 대상은 醫藥品(의약품)도 예외가 아니다. 軍부대 병원에 지급된 후, 간부들이 암시장에 내다판다. 그나마 남겨진 의약품은 각 지역 병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에서 간부들이 또 다시 가로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국제사회가 북한에 아무리 많은 의약품을 지원해도, 일반 병원에는 약이 없다. 주민들은 병원에서 알선한 곳에서 몇 배나 높은 가격을 주고 사먹어야 한다.
넷째, 당연한 결론이지만, 핵심계층을 제외한 북한주민의 절대다수에 해당하는 소위 敵對(적대)·動搖(동요)계층에게는 인도적 對北지원이 돌아가지 않는다. 세계식량기구(WFP)는 2005년 북한 내 최대 600만 명까지가 지원대상이라고 밝혀왔지만, 수많은 탈북자 중 WFP의 쌀을 지원받았다고 증언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의 장윤옥 연구원이 2006년 12월7일 발간한 「탈북자 위기, 인권과 국제사회의 대응」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 간 국제사회가 對北지원을 했음에도 탈북자 가운데 약 40%는 국제사회의 對北지원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인도적 지원물자는 수령독재를 유지하는 선전용으로 악용된다. 對北지원이 아무런 조건 없이 이뤄지고, 소위 『수령님에게 바친 것』으로 선전되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주민들은 외부에서 오는 물자를 일종의 「전략적 노획물」 정도로 알고 있다. 「우리의 위대한 장군님이 21세기 태양이기에, 세계 최강군사국이기에 두려워서 지원을 해 준다」는 식으로 세뇌된 결과이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의 증언을 들어보자.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에 의해 응당 빼앗아 온 것쯤으로 본다. 쌀 들어올 때 「대한민국」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북한에서는 이것을 빼앗은 것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선군정치에 의한 노획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런 표시가 있는 것이 북한당국에는 오히려 더 좋다. 한국정부는 그것을 성과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이 빼앗아 온 것으로 주민들에게 교육을 다 시켰기 때문에, 「대한민국」 표시를 없애지 않는다.』
여섯째, 소위 모니터링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對北지원단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철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원물자가 북한의 軍部(군부)와 特權層(특권층)에 흘러가지 못하도록 監視(감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연 사실인가?
북한정권은 기본적으로 모니터링을 거부해왔다. 「차별배제」와 「필요에 따른 분배」등 분배의 투명성을 내건 세계식량계획(WFP) 감시요원들은 2005년 12월 강제 추방됐었다. 다른 對北지원단체 역시 모니터링을 요구하면 북한정권의 노골적 방해를 당해야 하며, 만일 모니터링을 계속 요구하면 북한 땅을 나오는 수밖에 없다.
<북한정권이 원하는 지역만 보고 오는 모니터링>
최근 북한정권이 부분적인 모니터링을 수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국제기구의 모니터링 요구를 수용, 식량배분감시를 위한 일부 통제지역으로의 접근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정권은 이 같은 제한적 모니터링 과정에서조차 온갖 僞裝術(위장술)을 동원해왔다.
예컨대 군부대들은 차량번호판을 일반차 번호판으로 바꾸고, 군인들을 사복차림으로 부두에 들여보내 곧바로 쌀을 받아간다. 북한 국경경비대 副분대장 출신인 김OO(가명·2003년 입국)씨는「對北지원물자 하역 시 국제기구 등의 사진촬영 등 감시가 있을 때」의 위장술에 대해 이렇게 증언한다.
『軍복무 중 쌀을 공급 받으러 청진항으로 여러 번 갔었다. 청진항에 유엔 등지에서 쌀이 들어오면 차를 갖고 먼저 들어가는 것이 對南연락소와 국경경비대 트럭이었다. 당시 외국 사람들이나 남한 사람들이 배를 따라왔는데, 하역 장면을 찍고 있었다. 군대 트럭에 사회에서 통용되는 번호로 바꾸어 달고 항구에 들어간다. 당연히 견장 떼고 군복을 뒤집어 입고 쌀을 하역해 트럭에 실었다.』
주민들에게 虛僞(허위)증언도 강요된다. 예컨대 국제기구 사찰단이 우유를 지원해 준 유치원을 방문하면, 유치원 아이들한테 『우리는 우유를 매일 먹고 밥 잘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고 말하라고 거짓말시킨다. 사찰단이 가면 유치원 교양원과 원장들, 비서들이 자기들 몫을 나누어 챙긴다. 다음 날이면 당에서 모두 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행태는 배급소 등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인용해보자.
『남한에서 국수공장이니 빵 공장이니 지어주면 3.8탁아소 등 당국이 특별히 지정해 주는 곳만 공급된다. 또 유엔에서 사찰단이 들어오면 영양 상태가 좋은 어린이들을 앞에 세우고 부족한 애들은 뒤에 세웠다.』(2003년 입국 박OO씨)
『함흥시의 각 구역에서 성천강 제방 공사에 동원되었을 때는 함흥시 간부가 미리 준비된 사람들을 모아놓고 「유엔기구 사찰단이 이제 공사장에 올 것이니, 그들이 물어오면 쌀 2kg씩 공급받았다」고 말하라고 지시했다』(2003년 입국 이OO씨)
『2003년에 독일에서 소고기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1인당 4kg씩 나눠줘야 하는데 결국 한 가구당 200g씩 줬다. 갑자기 인민위원회에서 나와서 주민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했는데, 유엔에서 확인이 나오니 1인당 4kg씩 받았다고 답하라고 강요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수표(서명)도 했다(당시 나눠준 소고기는 광우병 의혹으로 도축돼 독일당국에 의해 버려진 것이었다)』(2006년 입국 김OO씨)
對北지원을 하기위해선 북한정권이 원하는 대로 모니터링을 하지 않거나 또는 북한정권이 원하는 지역을 형식적으로 보고 오는 수밖에 없다.
<8년 치 식량을 날려버린 핵실험>
소위 인도적 지원의 치명적 문제점은 지원물자가 북한의 軍部(군부)와 特權層(특권층)으로 흘러간다는 데 있지 않다. 북한정권이 지원물자로 절약된 달러로 武器(무기)개발에 나선다는 것이다. 북한정권은 인도적 지원으로 필요한 물자를 충당한 뒤, 「아낀 달러」로는 食糧(식량) 대신 무기를 사들이고, 만들어왔다.
국방연구원은 2003년 발간한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능력」에서 『인도적지원은 국내자원의 節約(절약)이 아니면 여타 민간의 수입소요 節減(절감)을 통해 결국 군사적 가용자원을 늘려주게 된다』며 국제적 지원 역시 『어떤 방식으로든 북한이 필요로 하는 외화를 節約(절약)시켜 줄 것이므로 「궁정경제」의 금고에 여유를 제공, 궁극적으로 군비능력을 제고시킨다』고 지적했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팬턴 사무총장은 「굶주림과 인권」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부의 인도적 지원이 증가함에 따라, 북한정권의 식량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원래 수입량의 1/10까지 줄어들었다』며 『북한정권은 인도적 지원을 補完的(보완적)인 식량공급으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절약된 외화를 武器(무기)수입이나 고위간부들의 奢侈品(사치품)을 위해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소위 對北인도적 지원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끊임없이 戰力(전력)을 증강해왔다. 군사통계인 Military Balace에 따르면, 북한은 2000~2006년간 군사비 지출을 3배로 늘렸다. 2006~2008년간에는 특수전 병력을 1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증강했다.
지난 10년간 북한이 집중적으로 계발한 것은 바로 이 특수전 병력과 이들을 실어 나를 潛水艦(잠수함), 上陸艇(상륙정) 등이었다. 잠수함은 2003년 26척에서 2004년 77척, 2005년 88척, 2008년 100여 척으로 늘어났다. 상륙정은 2002년 130척에서 2003년 260척, 2008년 470척으로 늘어났다. 지난 2년간은 2개 기계화군단 → 2개 기계화사단, 1개 전차군단 → 1개 기갑사단, 1개 포병군단 → 1개 포병사단으로 각각 경량화하여 기습능력을 강화했다.
같은 기간 핵무기,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능력도 증강했다. 2006년 10월 한 발의 핵탄두 실험에는 2억8천만 달러~7억9천만 달러(2,570억~7,258억 원)가 들어갔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북한의 주식인 옥수를 최대 790만t(안남미는 247만t)까지, 까지 살 수 있는 돈이다. 북한은 2007년 3월 방북한 WFP 관계자들에게 『올해 100만t의 식량이 모자라다』며 외부지원을 요청했다. 북한이 핵실험만 안 했다면, 모자라는 식량 100만t을 충당하고도 최대 690만t의 옥수수(147만t의 안남미)를 살 수 있었다. 북한의 전체 주민이 8년 가까이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을 핵실험 한 번으로 날려버린 셈이다.
이 뿐 아니다. 현재 북한이 비축한 군량미만도 약 150만t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모자라는 식량 100만t을 채우고도 50만t이나 남는 수치이다. 북한에 아사자가 가장 많이 나왔던 1999년, 북한은 식량수입을 20만t이하로 줄이는 대신 남은 외화로 미그21기 40대와 헬리콥터 8대를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구입했다.
金正日은 스스로 돈이 있어도 식량, 비료나 구호물자를 사오는 대신 무기개발과 무기수입에 전력해왔음을 인정해왔다. 월간중앙이 2007년 7월호에 보도한 「북한 노동당 고위층 강연 녹취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 녹취록은 2006년 12월 북한 노동당 부부장금 장용순이 북한 과학계의 박사, 교수 등 지식층을 상대로 한 강연을 풀어놓은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로켓 한 발 개발하자면 김책제철연합기업소 같이 저렇게 큰 공장 한 50개 팔아도 그 값을 보장하지 못할 정도로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군님께서 고난의 행군시기 가슴 아픈 말씀도 주신 바 있습니다. 공장은 못 돌아가고 인민들이 굶는 것을 자신께서는 뻔히 아시면서도 돈이 조금 생기면 여기다 다 집어넣었다고. 이렇게 했기 때문에 우리가 놈들에게 먹히지 않았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오래전에 놈들에게 먹혔을 것이라고. 우리 인민들은 이것을 이해할 때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이런 가슴 아픈 말씀을 주신 바 있습니다.』
金正日은 로동신문 99년 4월22일자에서도 아래와 같이 유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적들은 인공위성(대포동 미사일)의 발사만으로도 수 억불은 넉넉히 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다. 나는 그 돈을 인민의 생활에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인민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유족하게 살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라와 민족의 존엄과 운명을 지키고 내일의 부강한 조국을 위하여, 자금을 그 부문에 돌리는 것을 허가하였다.』(노동신문 1999년 4월 22일자)
'마피아 부족주의'를 지탱시킬 뿐이다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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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3-29, 21: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