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武鉉 정권이 끝나자, 인권委는 북한인권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관심은 미온적이고 인색한 수준이었다.
정권교체 직후인 2008년 2월19일 인권委는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정책 활동 강화」를 6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포함시켰다. 인권委는 전날 발표한 「2008년 주요 업무 계획」을 통해 『한반도 평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방향에서 북한 인권의 개선을 위해 국내외 동향을 분석하고 정책과제로 도출하고자 한다』며 『탈북자 관련 인권 정책뿐 아니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등의 인권 문제로 외연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인권委는 같은 해 3월25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조사의 일환으로 탈북자가 생활하고 있는 해외 現地調査(현지조사)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또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1만3000여명을 대상으로 북한의 拷問實態(고문실태)를 조사하겠다』는 내용도 발표했다.
이듬 해 3월 인권委는 1년 전 약속을 이행(?)했다. 탈북자 152명을 대상으로 「북한 주민 인권 실태조사」를 시행한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공개처형을 직접 봤다」는 응답이 93명(76%)으로 집계됐다고 등의 초보적인 설문조사 결과였다.
인권委는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舊聞(구문)도 新聞(신문)인양 발표했다.
식량 배급을 묻는 질문에 46%가 「배급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응답했고, 「기일도 배급량도 지켜지지 않았다」(39%), 「기일은 지켜졌지만 배급량이 줄었다」(10%)는 등 내용이 골자였다.
「굶어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라는 질문이나, 「북한에 있을 당시 의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도 했노라 내세웠다.
인권委는 2008년 5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시민단체 등 전문가들이 참여한 「북한인권 포럼」을 개최했다. 그러나 人的(인적)구성은 가관이었다. 북한정권을 비호하며 對北(대북)지원에 앞장서 온 인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당시 인권委가 발표한 명단은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 박석진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 김동균 법무법인 다산 대표 변호사,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 등이었다.
인권委의 활동 중 약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지난 해 8월 나온 「중국 내 탈북자의 인권보호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라」는 對정부 권고였다. 인권委는 「중국 정부가 탈북자의 무조건적인 강제송환을 중단하고 UN난민협약 등 국제법규에 따라 이들의 인권을 보호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권고했었다. 인권委가 특정 정부 부처에 탈북자 인권 개선을 위한 조처를 권고한 것은 처음이었다.
인권委의 북한인권 관련 활동에 대해 북한인권 전문가들은 코웃음 친다. 보수정권 아래서 조직을 살리기 위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인권委는 「慘狀(참상)」이라는 어휘로도 담기 어려운 북한의 현실에 본질적 지적을 피해왔다.
<소시지 받아먹는 북한주민들>
金日成·金正日이 60년 간 통치한 북한의 오늘은 끔찍한 지옥의 모습이다. 북한은 굶주림에 몰려 식량을 훔치고, 소를 팔고, 전기선을 끊어 파는 경우까지 「公開處刑(공개처형)」 대상이다. 남한의 영화·드라마 비디오를 팔다가 걸려도 처형되고, 남한방송을 듣고 남한노래를 불렀다며 죽임당하는 곳이다. 조선일보의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에선 중국 사람들이 압록강 복판에 있는 북한 섬에 배를 타고 다가가 소시지를 던져주고 북한 주민들은 그걸 받아먹는 것을 구경하는 게 1인당 200위안(약 2만8500원)짜리 관광코스가 돼 버린 기막힌 일을 전해주고 있다.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주민들(註 : 이들을 탈북자라 부른다)은 국경을 넘는다. 脫北(탈북)은 북한에서 가장 큰 반역죄에 해당한다. 짐승처럼 유랑하는 탈북자들은 중국 내 15만~30만 명에 달하며 여성의 비율은 60~70%에 이른다. 충격적인 것은 탈북여성의 80% 이상은 인신매매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2003년 북한 당국은 20~30대 행방불명 여성이 150만 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는데, 대부분 중국에 팔려온 것이란 분석도 있다.
탈북여성들은 산간벽지, 유흥가 등으로 팔려 다니며 강제결혼, 性폭행, 원치 않는 임신, 각종 부인과 질병에 시달린다.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그리고 「强制送還(강제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어느 날 들이닥친 중국 공안은 탈북자들을 잡아가고, 북한 당국은 변방의 구류장으로 끌고 간다. 변방의 구류장에서 수많은 탈북자들은 지금도 「뽐쁘질」·「통닭고문」·「비둘기고문」 등 저주스런 고문으로 죽어간다. 만일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강제송환되면 「강제낙태」·「영아살해」라는 유린을 당해야 한다.
단순탈북자는 대체로 6개월 이하 노역에 처해지지만, 기독교를 접했거나 한국행이 명백한 사람은 악명 높은 「政治犯收容所(정치범수용소)」로 보내진다. 최근 탈북자 처벌이 강화되면서 단순탈북자도 웬만하면 정치범으로 처리되고 있다.
「公開處刑(공개처형)」은 정치범수용소의 일상사다. 영하20도에서 얼려 죽이는 형벌, 총으로 뇌수를 때려죽이는 형벌, 오줌으로 전신을 목욕시키는 형벌,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쇠줄로 코를 꿰고 발뒤축에 대못을 박는 형벌, 목 동맥을 잘라 생매장하는 형벌까지 저질러진다.
옥수수 한 그릇·소금 한 숟갈로 15시간 중노동과 채찍을 견뎌야 하는 곳, 십자가에 달린 채 화형을 당하거나, 증기롤러 밑에 깔려 숨을 거두는 곳. 도주하던 친구의 공개처형 된 주검 위로 돌을 던져야 목숨을 부지하는 곳.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가장 큰 苦痛(고통)이고 恥辱(치욕)인 곳. 그곳이 요덕이고, 회령이고, 개천이다. 아니 북한 전역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나치의 유태인수용소보다 몇 곱절 더 악질적이라고 말한다. 국제인권단체들은 1960년 대 이래 100만 명이상이 정치범수용소에서 학살됐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날이 오면 무어라 답할 것인가?>
서독은 1961년부터 통일까지 30년간 「동독 인권침해 중앙기록보존소」를 운영해 동독의 인권침해 사례 4만1390건을 조사했다. 동독은 서독 정부에 기록보존소 폐쇄를 요구하면서 기록보존소 종사자들을 형사 처벌하겠다는 법까지 만들어 기록보존소 사람들은 동독의 위협 때문에 해외여행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서독은 압력에 굴하지 않았고 기록보존소 활동은 동독 정치인들에 대한 무언의 경고와 압력이 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국가인권위원회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인권委의 지난 8년간 활동을 요약하면, 공권력에 대한 嘲弄(조롱)과 공권력을 파괴하는 깽판세력에 대한 擁護(옹호)였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지만, 정작 인권이라는 이름조차 존재하지 않는 未수복지역 북한의 동포는 철저히 외면했다.
從北(종북)주의자들의 退行的(퇴행적)이고 守舊的(수구적)인 북한정권 지키기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북한정권은 멸망할 것이다. 아우슈비츠보다 끔찍한 정치범수용소도 무너질 것이고, 강제송환과 공개처형과 같은 지옥의 群舞(군무)도 멈춰질 것이다. 3만8천 개의 金日成 동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그날이 오면, 배부르고 기름지게 살아 온 남한의 국민들은 2200만 북한의 동포들에게 무어라 말해줄 것인가? 이라크, 버마 인권을 외쳤지만, 당신들의 자유는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변명할 생각인가?
인권委의 假飾的(가식적)인 북한인권 개선노력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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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11, 11:5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