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문유치원의 人事담당자는 원아(園兒)들의 70% 이상이 美國시민권자들이라고 말했다. 군대면제와 조기유학 등을 위해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유치원에 오는 날이면, 국산자동차는 찾기 어렵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체제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1948년 체제 역시 인기(人氣)를 잃고 있다. 지난 해 친북좌익의 촛불선동에 놀아났던 청장년층이 대표적이다. 사회적 지위나 소득이 높은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미움이 임계치로 가고 있다. 「명문유치원 美國시민권자 70%」 같은 이야기들 이들을 찌르는 자극적 소스 중 하나이다.
시장경제는 원래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고, 그런 불만은 부러움과 미움으로 바뀐다. 자연히 낮은 위계(位階)를 차지한 사람들이 품게 되는 부러움과 미움은 그런 결과를 낳은 사회 체제에 대한 반감(反感)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보다 평등한 사회의 청사진을 내놓는 사람들의 추종자가 된다.
이것은 2009년 한국사회 단상이기도 하다. 부러움과 미움은 기독교적 소망과 감사와 사랑의 에너지로 승화되곤 하지만, 한국교회의 기복주의와 물질주의적 쇠락은 이 같은 항체도 약화시키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부러움과 미움을 선동하는 좌익(左翼)의 해결책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사실이다. 소위 「부러움과 미움의 정치」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소득재분배를 사회적 목표로 삼다가, 평등 자체를 위한 평등이 목표가 되고, 필연적으로 재산권에 대한 비합리적 침해를 심화시킨다.
평등이라는 고상한 가치는 「결과의 평등」이 아닌 「기회의 평등」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결과의 평등을 추구한 이들은 궁극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역사가 보여준 경험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 「결과의 평등」은 엄청난 비용을 치른 뒤, 우리 자신을 해치곤 했다.
96년 ~ 2006년 좌파정권 집권 시기, 중산층이 10% 소멸하고(68.5% - 58.5%), 부유층 (11.3% - 17.9%)과 빈곤층(20.1% - 24.1%)이 모두 늘어났다는 사실 역시 좌파집권의 당연한 결과였다.
시장경제는 불완전(不完全)하지만, 인류가 생각해 낸 경제체제 가운데 가장 우월(優越)하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많은 사회가 시장경제를 통해서 가난에서 벗어났다. 시장경제가 만들어 낸 풍요(豊饒)가 클수록 사회안전망(社會安全網) 또한 확대된다. 불운하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을 얻는 복지(福祉)는 시장경제가 정착되고 풍요의 결실이 클수록 가능했다.
안타깝지만, 대중(大衆)은 원론(原論)을 듣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우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 같아선 「증오(憎惡)와 광기(狂氣)의 철학」이 만연하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결국 좌파와 우파가 대등한 힘으로 사회의 동력을 탕진해 버리는 남미화(南美化)로 가는 것이다.
부러움과 미움이 독한 증오와 광기로 변하기 전, 국부(國富)를 늘려야 한다. 절대적 빈곤을 없앤 근대화(近代化)에 이어 상대적 빈곤도 녹여 줄 선진화(先進化)로 가야 한다. 온 국민에게 「돈 벼락」을 맞게 할 특수(特需)를 월남과 중동에 이어 찾아야 한다. 의식(意識)을 선진화시키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풍요(豊饒)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먼저이다. 결국 제2의 경제성장, 재건(再建)이다.
어디서 이것을 가능케 할 것인가? 고민할 필요는 없다. 해답은 북한의 공산독재를 멸망시킨 뒤 대한민국이 북한을 재건해 이끌어 낼 「북한특수」 뿐이다. 북한동포를 구해내려는 선(善)한 행동에 따른 귀(貴)한 열매가 북한 동포와 남한 국민 모두를 구해낼 것이다.
70%가 美국적(國籍)인 어느 명문 유치원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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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4-15, 0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