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49주년을 맞이했다. 나는 4.19 당시 퇴학생이었고 군대에 사병으로 근무하고 있었으며, 재판에 계류중인
불구속 피고인이었다. 퇴학생이었던 까닭은 서울대 문리대 학생 신문에 쓴 글로 인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수사, 구속기소 되면서 학교당국이 나에게 퇴학처분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속 신분으로
군대에 갈 수 있었던 것은 1심 재판부와 2심 재판부가 모두 나에게 무죄를 선고해서 신체적으로는 풀려나 있었기
때문이다. 불구속이지만 엄연히(?) 피고인 신분인데도 군대에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은 있지만, 어쨌든 영장이 나와서
입대한 것이다.
4.19가 나고 그로부터 1년 이상 더 군복무를 한 다음 나는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4.19 직후에 학교당국이
퇴학취소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복교 후 나는 2년 후배이면서 4.19 주동학생들인 58학번 학생들의 '4.19 후의 운동'에
떠밀리다 싶이 가세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을 통해 4.19의 진상을 잘 알게 되었다.
4.19와 관련해 알아 둘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훗날의 4.19 평가들에는 일부 중대한 오인(誤認)이 있다는 점이다.
바로, 대한민국은 원래 독재국가였는데 4.19를 계기로 비로소 처음 민주주의가 도입된 것처럼 인식하고 말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자유민주 헌법체제로 건국되어 출발한 나라였다. 1960년 4월 19일 훨씬 이전인
1948년 7월 17일(헌법제정)~8월 15일의 건국기간에 이미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 시장경제의 골격을 갖춘 손색없는 근대
국민국가로 출발한 것이다.
문제는 그런 헌법 조문과 현실의 정치권력, 권력 블록(power bloc), 권력기관, 권력행사, 집권 정치세력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한 데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다. 한 마디로 당시의 집권세력과 권력기관들이 헌법을 무시하고 실정법(선거법,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규정, 권력남용 금지 등)을 어겼던 것이다. 그래서 학생, 언론, 야당, 지식인,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이 사람들
이 무시한 헌법과 국법을 되살려야 한다(즉, 부정선거 다시 하라)' 는 취지의 광범위한 저항의식이 싹트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권력기관(경찰)이 국민의 그러한 정당한 호헌의지의 표현인 평화적인 시위와 집회에 대해 실탄을 발사하고
마산의 고등학생 김주열 군의 이마에 수류탄을 꽂아 익사하게 한 권력남용과 가혹행위를 범한 것이다. 그래서 4.19는
더 커져서 계엄군이 진압을 하기보다는 시위대와 함께 탱크 위에 올라가 만세를 불렀고(조제미 장군), 송요찬 장군의 계엄군은
시종 적극적, 공격적, 적대적 진압을 기피했다. 그리고 각국 대사관이
이승만 정부에 대한 신임을 공식 성명을 통해 철회했다. 이승만 정부는 나라 안팎에서 사면초가에 직면했던 것이다. 곧이어
4월 26일에 교수단 시위를 계기로 제 2차 궐기가 일어나자 마자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
4.19는 이렇게 해서 첫날에는 상상도 못했던 '혁명'으로 귀결되었다. 학생들의 궐기, 그에 대해 실탄발사로 대응한 당국의
잘못된 선택, 그에 따른 이승만 정부의 대내외적 고립무원과 이승만 대통령의 권력집착 포기, 그리고 군軍)의 적극 개입
기피-4.19의 '혁명화'에는 이런 요인들이 미묘하게 작용한 셈이다.
이렇게 볼 때 4.19는 원초적 독재체제에 저항해서 민주주의를 역사상 최초로 창출한 혁명이 아니라, 그리고 이미 마련돼
있던 민주헌법 체제를 타파하려던 그 어떤 좌파적 혁명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미 있었지만 이승만-자유당 정부가 훼손
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헌법 체제를 원상회복 하려던 호헌 혁명이었다. 좌파들은 이점을 의도적으로 덮어버리고 4.19를
마치 대한민국 체제 자체를 허물려던 좌파 민중혁명의 초기적 발아(發牙)였다는 식으로 각색하고 조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왜곡이요 역사왜곡이다.
4.19 당일의 궐기는 한 마디로 '친(親)대한민국 헌법'과 '자유주의'를 핵심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것'이었다. 그 후 해를
거듭하면서 학생운동의 지평에는 4.19 당일의 주류적 흐름(자유주의)과는 다른 흐름들이 발생하게 된다. 이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설명하기로 한다.
류근일 2009/4/20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