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9 재-보선 참패는 설익은 '경제제1주의'의 패배

비전 제시 없이'경제'만 내세우면 지지받는다는 생각은 착각

 

비전 제시 없이'경제'만 내세우면 지지받는다는 생각은 착각

 

 어제 치러진 4-29 재-보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전패(全敗)했다. 5대0. 노무현 정권 시절 열우당이 받았던 것과 같은 성적표를 한나라당이 받아든 형국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누구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失政)이나 경제난에서 그 이유를 찾고, 누구는 친이(親李)와 친박(親朴)의 갈등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러나 나는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완패한 이유는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설익은‘경제제1주의’,‘경제환원(還元)주의’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살리기’선거운동의 실패


한나라당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난데없이 “이번 재-보궐선거는 경제 재-보선이 되어야 한다”고 나섰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감정 등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던 인천 부평을(乙)선거구의 경우, 한나라당은 여론조사 결과에서 여야의 모든 예비후보를 앞서 있던 후보를 제쳐놓고 “경제살리기”를 내세워 지역기반이 전혀 없는 경제관료 출신 이재훈 후보를 낙하산으로 내려 보냈다. 경제를 잘 아는 경제관료 출신이라야 부평을 선거구 내에 있는 GM대우자동차를 살리고,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한나라당과 청와대 정무파트 쪽에서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얘기도 있고, 인천시쪽의 요청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여당은 선거를 코앞에 두고는 부평을 선거구 내에 있는 대우자동차 공장에 막대한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실패였다. '경제살리기'라는 한나라당의 컨셉이 먹혀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경주의 경우도 비슷했다. 경주에서 한나라당은 “힘 있는 여당후보라야 경주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워 이명박 정권의 실세(實勢)로 알려져 있는 정종복 후보를 공천했다. 한나라당은 정종복 후보가 불과 1년 전 있었던 총선에서 이미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았었다는 사실은 도외시했다. 그 결과 정종복 후보는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했다.


부평을이나 경주 모두 '경제살리기'는 컨셉만으로는 국민들에게 호소력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 준 셈이다.

경제는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가 전부는 아니다. 국민들은 정권의 총체적인 국정수행능력, 도덕성, 비전의 제시, 국민의 요구나 기대에 대한 부응 정도, 이념 등을 보고 정권에 대한 지지여부를 결정하는 것이지, 단순히 ‘경제’만을 보고 정권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만 내세우면 다인가?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비전의 제시 내지 국민의 요구나 기대에 대한 부응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정권이 18년을 지탱했고, 지금도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단순히 경제발전에 성공해서만은 아니었다. 박정권이 내세웠던 ‘조국근대화’라는 비전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호소가 먹혀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건 단순히 지역구 내에 있는 공장 하나를 죽이고 살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런 비전 제시와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박정권 역시 선거에서 많은 쓴 맛을 보아야 했다.

전두환 정권 역시 '단군 이래 최고'라는 경제호황을 구가했지만, 1985년 2-12총선에서 패배를 맛보아야 했다. ‘민주화’라는 시대적 요구에 밀렸기 때문이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나 대처 영국 총리가 단순히 경제호황을 이끌어서 정권을 재창출하고, 퇴임 후에도 두고두고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레이건과 대처, 이 두 사람은 평생동안의 노력과 투쟁을 통해 보수주의-자유주의 이념을 실천했고, 그 이념을 내걸어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들은 집권 기간 동안 단순히 경제만 되살린 것이 아니라, 나라의 나아갈 바를 명확하게 제시하면서, 그 이전 10여년 동안 잃어버린 국민들의 자신감과 국가적 위신을 회복했다.

레이건과 대처가 이룩한 경제적 성취가 집권기간 중 그들의 정치적 행보에 힘이 되어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전부'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어떠한가?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나 자유민주주의라는 국시(國是)를 위해 헌신한 적이 없이, '성공한 CEO'라는 신화(神話)와 청계천 복원 성공이라는 가시적 업적에 기대서 정치적으로 한 순간에 도약한 정치신인(新人)이었다.

정치적 자산이 부족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부터 ‘경제살리기’를 전면에 내세워 정권을 잡았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그는‘이념을 넘어선 실용’을 내세우며 ‘경제대통령’을 자임했다. ‘경제’는 그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정권은 대운하를 추진하면서도 '경제살리기' 내세웠고, 미디어법 통과를 밀어붙이면서도 그 산업적 효과를 앞세웠다. 공기업민영화, 영리의료법인 허용 등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경제만 내세우면 국민들이 무조건 박수를 칠 것으로 예상했던 것이다.

설익은 경제제1주의, 모든 것을 경제문제로 환원(還元)시키는 경제환원주의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었다.


첫째 문제는 ‘경제대통령’, ‘경제살리기’가 이명박 대통령이 내세운 거의 모든 것이었다는데 있다.

특정 상품에 의지하는 회사가 그 상품이 안 팔리면 흔들리고, 수출일변도인 우리나라가 국제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듯이,‘경제’ 하나만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도 전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게다가 현실 경제가 계속 안 좋은 상황 속에서 경제를 앞세우면 앞세울수록 그에 대한 신뢰감은 떨어지는 역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둘째, 모든 문제를 경제문제로 등치(等値)할 수는 없으며, 그런다고 국민들로부터 환영을 받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대운하의 경제적 효과를 아무리 강조해도 그로 인한 수질오염 등 환경파괴, 운하라는 생소한 실험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을 덮을 수는 없었다. 미디어법의 산업적 효과를 아무리 강조해봐야,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라는 야당과 좌파의 선전선동이 더 잘 먹혀드는 것을 어떻게 하나.


셋째, 아무리 경제를 강조해도, 그것으로 이미 정권실세들의 오만, 그들을 둘러싸고 나오는 온갖 잡음, 친이와 친박의 갈등, 이명박 정권의 아마추어적 국정운영, 북한에 대한 저자세, 좌파척결 실패 등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을 덮을 수는 없다.


‘이념 없는 실용’의 파탄


돌이켜보면, 그 동안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은 21세기 초 새로운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무능했던 좌파정권과 차별되는 국정수행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권은‘경제’라는 단일의제에 과도하게 목을 매면서도 정작 경제를 살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번 재-보궐 선거는 ‘경제’만 내세운다고 국민들이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님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는 다른 의미에서는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이념 없는 실용’의 파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이념 없는 실용’이라는 헛된 구호 아래 “경제만 살리면 국민들이 박수쳐 줄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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