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은 모세의 율법으로 다스려야

박효종교수 칼럼에 대한 반론: 예수님께서도 악마에게는 단호(斷乎)했다. 악마는 선(善)을 악(惡)으로 갚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문창극 대기자가 쓴 ‘법치와 명예’라는 제목의 칼럼(2009. 4. 28.)이 필자를 화나게 하더니(‘조갑제닷컴’에 실린 필자의 ‘법치를 세우는데 왜 나라가 망합니까: 문기자, 절필[絶筆]하세요’ 참조), 같은 중앙일보의 “[기획시론] ‘노무현 딜레마’ 해법은?”(2009. 5. 4.) 시리즈에 제일 먼저 등장한 박효종 서울대교수의 “노무현에게 ‘카인의 벌’을!”이란 제목의 칼럼을 보면, 중앙일보가 노무현에게 약점이 잡혀서 노무현을 비호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고 박교수가 거기에 말려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중앙일보 인터넷판은 첫 페이지 맨 위에 “‘모르쇠’ 일관 盧, 사법처리 하면 안 되는 이유”라고 타이들을 크게 쓰고 “순교자처럼 행세하면 낭패--‘카인’처럼 평생 죄값 치러야”라고 부제를 달았다. 기사의 타이 들만 보아도 ‘사법처리 하면 안 된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놓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노무현을 비호하려는 의도가 역력히 보인다. 노무현 뇌물수수 사건은 법대로 하면 간단명료(簡單明瞭)한데도 불구하고 노무현 사법처리 문제를 ‘뜨거운 감자’ ‘분열과 갈등의 씨앗’ ‘노무현 딜레마’라고 표현한 것도 중앙일보 음모론을 보강해준다.

박교수가 노무현에 대해 “비겁하고, 법망을 빠져 나갈 궁리만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피의자의 권리만 강변하는 전직 변호사처럼 품위 없이 행동한다”고 강하게 비난한 것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박교수가 제안한 해법이 문제다. “바로 그의 그런 태도 때문에 사법처리에 신중을 기할 것을 제안한다. 즉 그의 혐의에 대해 검찰은 불구속을 전제로 철저히 조사하고, 법원은 엄정히 심판하되 실형만은 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구속하지 말고 재판하되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를 선고하라는 주장이다. 어법상(語法上)으로도 앞뒤가 모순된다. 그런 태도 때문에 구속해서 철저히 수사해야 하고 엄정히 심판하여 법에 따라 중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어법에 맞다. 짐짓 노무현을 강하게 비난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노무현을 살려주자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는 모호(模糊)한 말이다.

박교수가 ‘구속하지 마라, 실형 선고를 하지 마라’고 하는 주장의 근거는 더 문제다. “신은 왜 살인죄를 저지른 카인을 죽음으로 처벌하지 않고 평생을 유랑(流浪)하도록 명했을까. 아마도 카인의 죄가 일순간의 죽음으로는 기워 갚을 수 없을 만큼 컸기에 일생을 두고 참회(懺悔)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라고 하면서 “대통령 재임 시 저지른 죄가 너무나 중대하기에 국민들로부터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죄가 아니다 --- 그의 죄는 일생 동안 유랑하면서 죗값을 치른 카인처럼 살아야 비로소 기워 갚을 수 있다.”고 했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 한다면 그는 일정 기간의 수형생활로 죗값을 다 치렀다고 생각하지나 않을까. --- 그러고 나서 정치를 재개한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 ‘순교자’처럼 행세하면 어떻게 될까.”라면서 서법처리 후의 결과에 대해 염려했다. 하나님이 박교수가 해석한 뜻으로 카인을 살려주었다면 하나님의 실수다. 그래서 ‘카인의 후예(後裔)’들이 지금도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성경을 잘못 인용하여 적용했다. 노무현을 사법처리하고 난 후의 결과 즉, 사법처리 후유증에 대해서도 잘못 예측했다.

자신의 논리를 강화하고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성경은 너무 방대하여 어느 한 구절만 옮기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된다. 상황과 경우에 따라 적확(的確)한 구절을 인용해야 한다. 목사가 설교를 할 때 인용한 성경 본문과 설교 내용이 다르면 신도들이 헷갈린다. 박교수는 성경의 ‘창세기(創世記)’만 읽고 ‘출애굽기(出埃及記)’는 안 읽었나? 박교수가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을 ‘살인죄’라고 했는데 그때는 살인죄의 개념이 없었다. 법이 있어야 죄가 성립한다. 모세가 십계명(十誡命)을 받아 율법(律法)을 제정한 후에야 ‘죄’가 성립되었다. 모세 율법에 따랐으면 카인은 사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자마자 십계명을 주었고 그것에 따라 모세 율법이 제정되었으며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진입하기 전까지 율법을 어기는 자에게 추상(秋霜)같은 형벌을 내려 단련시켰다. 집단 몰살(沒殺)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카인에게 내린 가장 무거운 벌은 ‘평생 유랑’이 아니라 장자권(長子權) 박탈(剝奪)이다. 카인을 쫓아내고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새 아들 셋을 낳게 하여 적통(嫡統)을 잇게 했다. 하여튼 이 정도의 벌을 준 하나님의 뜻을 “일생을 두고 참회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한 것은 잘못이다. 성경에도 나와 있지 않는, 박교수의 자의적 해석이다. 더구나 카인 사건을 노무현 사건에 적용하여 구속 말고 실형 선고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은 견강부회(牽强附會)다. 노무현을 감옥에 보내는 것이 카인의 유랑에 해당한다.

노무현을 구속하지 않고, 실형 선고하지 않고 풀어주면 일생을 두고 참회할까? 정반대다. 죄인에게 왜 벌을 주는가. 그 이유 중 하나가 개심하고 반성하게 하기 위해서다. 범법자가 구속되었을 때 고개를 떨어뜨린다. 흉악범이 사형 선고를 받고서야 참회한다. 벌의 양과 참회의 정도는 비례한다. “검찰 앞에서 ‘물증을 대라’며 역공을 취하는” 노무현은 구속해야 “죄를 고백하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증거를 인멸하지 않는다. “대통령 재임 시 저지른 너무나 중대한 죄”에 대해 참회시키기 위해서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 받을 벌을 안 받으면 양심(良心)의 가책(呵責)을 더 느껴서 일생 동안 참회의 고통을 느낄 것이고, 일정 기간의 수형생활을 하면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하여 더 날뛸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사람들의 착각이다. 적어도 노무현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짓을 보라. 과거의 행적을 보라.

박교수는 노무현이 감옥살고 나면 홀가분하게 “정치를 재개한다고 선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고 염려를 했는데, 바로 그런 우려가 있으니 징역을 살게 해야 한다. 박교수 말대로 노무현을 구속하지 않고 실형선고하지 않고 풀어주면 정치를 재개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구속하지 않고 수사하면 증거를 인멸할 것이고 ‘물증을 대라’ ‘모른다’ ‘기억 없다’ ‘아내가 했다’고 뻔뻔스럽게 거짓말할 것이고 그리하여 실형을 선고받지 않고 풀려나면 “‘산 권력’이 ‘죽은 권력’을 박해한 것에 불과하다, 나는 ‘순교자’다”라고 하면서 지금도 그를 버리지 못하는 ‘노사모’를 중심으로 지지자를 끌어 모아 정치를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구속 수사하여 20년 정도 징역살이시키면, 나이를 봐서라도, 정치를 재개할 가능성은 완전히 제거된다.

박교수의 말대로 ‘쉽게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은 노무현을 ‘일생 동안 유랑하면서 죗값을 치른 카인처럼 살도록’ 풀어주면 ‘진심으로 국민 앞에 속죄하는 마음’을 가질 노무현도 아니고 ‘자신이 지은 죄가 얼마나 큰지 깨달으며 두고두고 죄책감’을 느낄 노무현도 아니다. 그래서 카인의 경우는 해당이 안 된다. 노무현은 모세의 율법(律法)으로 다스려야 한다. 노무현은 십계명(十誡命) 제8조 ‘도적질하지 말지니라.’와 제9조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하지 말지니라.’를 위반했다. 우리나라 헌법과 실정법(實定法)을 위반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자백은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구속하여 철저히 수사하여 “진실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국민과 국가에 봉사하는” 길이다. 노무현은 중형을 선고하여 죗값을 받게 해야 참회할 것이고 현직과 미래의 대통령이 비슷한 중범죄(重犯罪)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다.

중앙일보가 왜 이러나. 일전에는 문창극 대기자가 말도 안 되는 근거로 구속하지 마라, 사법처리하지 마라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노무현을 사법처리 안하게끔 유도하려는 기획방침을 정해놓고 사이비 학자들을 동원하여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으로 포장하여 시리즈로 내보는 저의(底意)가 무엇인가. 삼성과 노무현의 관계, 중앙일보와 노무현의 관계, 중앙일보 인사들과 노무현 및 박연차와의 관계를 의심스럽게 하고 있다. 노무현 사법처리는 ‘뜨거운 감자’도 아니고 ‘분열과 갈등의 씨앗’도 아니고 ‘노무현 딜레마’도 아니다. 간단명료(簡單明瞭)한 사안이다. 가슴보다는 머리로, 감성(感性)보다는 이성(理性)을 가지고 법대로 처리하면 끝이다. 여론을 호도(糊塗)하지 말라.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라. 중앙일보가 썩으면 ‘노무현 세력’의 자양분(滋養分)이 된다.

박교수의 마음을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군자(君子)답다고나 할까. 자신은 사람을, 인성을 믿고 사는 좋은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범법자에게 처벌을 강조하는 사람은 독해보이고, 연민과 용서를 하는 사람은 선(善)하고 크게 보인다. 하지만 이건 개인적 종교적 차원에서 적용할 말이고 사회적 국가적 차원에서는 독(毒)이 되고 바이러스(virus)가 될 수 있다. 노무현은 필부(匹夫)가 아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綱領)이니라”(마태복음 22:37-40). 그 예수님께서도 악마에게는 단호(斷乎)했다. 악마는 선(善)을 악(惡)으로 갚기 때문이다.

2009. 5.
변재환
경제학박사,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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