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필자가 예상한 대로(조갑제닷컴: ‘노무현은 모세 율법으로 다스려야’ 참조) 중앙일보가 노무현 살리기로 방향을 정하고 ‘기획시론: 노무현 딜레마 해법은?’ 시리즈에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학자들을 동원하여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 시리즈에 세 번째로 등장한 서울대 조국 법학교수 칼럼 ‘노무현 구속은 정치적 망신 주기일 뿐’(2009. 5. 6.)을 보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서울법대 교수인가 의심스럽고, 그 밑에서 배우는 학생들이 졸업 후 우리나라 판·검사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우리 사법부의 장래가 걱정되고 나라가 걱정된다.
조 교수는 “노 전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 판결이 날 때 즈음에는 정치·사회적으로 ‘거열형(車裂刑)’을 받은 상태가 되어 버릴 것이다. --- 엄정함이 불필요한 과도함이나 가혹함이 되어서는 안 된다. --- 굳이 구속할 이유가 없다. --- 수의를 입히고 포승줄로 묶어 법정에 출두시키는 것은 --- 정치적 망신주기의 의미를 가질 뿐이다.”고 하면서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불구속 기소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행여 검찰에 있는 조 교수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을 듣고 흔들릴까봐 걱정이다.
조 교수의 글은 한마디로 노무현을 구속하는 것은 과도(過度)하다는 얘기다. 공자 앞에 문자를 써야겠다. 구속은 어떨 때 하나? 법을 모르는 일반 상식인들도 ‘도주(逃走)의 우려와 증거 인멸(湮滅)의 우려’가 있을 때 구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노무현이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증거 인멸의 우려는 현저하다. 지금까지 하고 있는 언행을 보라. “집에서(아내가) 했다, 모른다, 기억 없다.”고 하면서 박연차씨와의 대질을 거부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전화해서 100만 달러를 청와대에 갖다 주었다는 돈 준 사람의 말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면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핑계로 대질 심문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노무현이 불구속 상태에서는 계속 증거 인멸을 시도할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 양단간에 어느 쪽이 진실인지 밝혀야 할 것 아닌가. 검찰에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아직 엄정한 수사도 없었다. 노무현 구속은 과도하지도 않고 가혹하지도 않으며 오직 진실을 밝히는 수단일 뿐이다. 필자도 한 가지 조건만 충족되면 노무현을 불구속 기소하는 것을 찬성하겠다. 그것은 노무현이 진실을 고백하는 조건이다. 박연차씨 변호를 맡았기에 진실을 알고 있는 박찬종 변호사가 노무현에게 모든 것을 내던지고 가라라고 충고하지 않았던가.
수사한 검사들이 ‘구속 의견’을 상신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구속·불구속은 담당 검사가 판단하여 청구할 일이고 판사가 결정할 일이라면서, 옆에서 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의견이 있어 말을 하더라도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해야 한다. 밤을 세워가면서 수사하여 물증을 확보하고 있는 검찰에게 ‘상식’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 박연차씨가 ‘대통령의 전화를 받고 돈을 건넸다.’는 진술은 물증 아닌가. 청와대 통화 기록을 조사하면 될 것 아닌가. 그것도 인멸했겠지만.
“‘정치적 사망선고’가 내려졌다”고? ‘노무현’은 아직 죽지 않았다. 노무현이 검찰에 출두할 때 대검찰청 입구에서 노란 풍선을 걸어놓고 노란 장미를 들고 다니며 꽃잎을 뿌려대는 지지 군중을 보지 않았는가. ‘우리는 절대로 당신을 버릴 수 없습니다’는 ‘노사모’ 현수막을 보지 않았는가.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거짓말하여 동정을 사려는 의도가 무엇인가. ‘거열형(車裂刑)’이라는 끔직한 용어를 써가며 노무현이 무슨 큰 형벌을 받은 것처럼 과장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단언컨대, 노무현을 구속하지 않아 증거 인멸을 계속하게끔 내버려 두면, 교묘한 수법으로 법망을 피해 무죄를 유도할 것이며, 그 후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사이트를 다시 열어 ‘정치’를 계속할 것이다. 아니, 구속되어 유죄 판결을 받고 복역하고 나와도 정치를 계속할 사람이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 입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조 교수가 보수 진영을 묘사한 것을 보면 조 교수가 비열(卑劣)하고 야비(野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을 올리고 화나게 하여 테러라도 당해서 ‘한건’ 올리겠다는 건가. 자해공갈단(自害恐喝團)의 수법이자 노무현의 수법이다. “현재 집권 세력이나 보수 진영은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망신과 상처를 고대하고 즐기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노 전 대통령을 ‘육시(戮屍)’한 후 ‘효수(梟首)’까지 하고픈 욕망이 강렬할 것이다.”고? “국민들이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있다.”고? 소설가가 심리묘사를 할 때라면 몰라도 법학교수가 쓸 문법은 아니다. 은연중 보수 진영을 사디스트(sadist: 잔혹함을 즐기는 사람)로 몰아 악당(惡黨)으로 규정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이러니까 ‘이 놈도 빨갱이다.’고 나오는 것이다. 법학교수라면 자기와 의견을 달리하는 상대방을 존중하여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져 논박(論駁)할 것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상상으로 심리 묘사를 하고 잔혹한 장면을 연상시켜 상대를 모함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사람이 법학교수라니 학교 망신, 교수 망신, 학생 망신, 나라 망신이다.
“조갑제씨는 ‘노무현은 진보가 보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비아냥거린다.”고? 조 교수가 비아냥거리고 있다. 이 인용문(引用文)은 조갑제씨가 지어낸 말도 아니고 노무현의 뇌물수수 사건을 두고 한 말도 아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이미 회자되었던 말이다. 노무현 비리가 폭로되어 쾌재를 부르면서 한 말이 아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失政)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서 정권이 보수 쪽으로 넘어온 것이 사실 아닌가. 조갑제씨는 이 말에 덧붙인다. “이명박이 진보에게 주는 선물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국정을 잘 이끌어야 한다는 심각한 경고다.
보수 진영을 이렇게 웃음거리로 만들고 잔인한 존재로 만들면서 “노무현이라는 이름과 동일시되었던 시대정신과 가치”, “노동운동 지원을 위해 투옥도 불사하던 모습, 지역주의 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출마하던 모습은 아름다웠다.” 운운하면서 은근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또 무슨 수작(酬酌)인가. 사안에 해당되는 말을 해야 한다. 논리가 딸리면 이것저것 막 끌어대는 좌파학자의 수법과 닮았다.
“고마 해라. 많이 뭇다 아이가.”라는 말이 어떻게 서울대 교수 입에서 나왔을까? 문자깨나 쓰는 것처럼 중국 고사(古事)와 어려운 한자 용어를 구사하다가 왜 갑자기 조폭영화 대사가 등장할까. 웃겨도 고상하게 웃겨라. 천박하기 짝이 없다. 거열형(車裂刑), 육시(戮屍), 효수(梟首), ‘친구(조폭영화 이름)’, 부관참시(副棺參試),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들을 써야 자기 의견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더라도 가랑이를 찢고, 시체의 목을 베고, 목을 베어 매달아 놓고, 칼로 찌르고, 무덤 속의 시체를 꺼내어 목을 벤다는
이 형벌들을 거론할 필요가 없었다. 교수의 품격에 맞지 않는 것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품성과 자질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비유할 말이 없던가. 미국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땄으면 고상하게 닉슨 사건 때 한 미국 상원의원이 말한 ‘Enough is enough.’라는 말을 따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뭘 그만하라는 것인가. 뭘 많이 먹었다는 것인가. 노무현의 비리 노출로 보수 진영이 반사이익(反射利益)을 많이 보았으니 그 정도로 하고 노무현에 대한 비난을 멈추라는 말인 듯하다. 노무현에 대한 단죄(斷罪)는 이제 시작이다. 전공이 법학이라면 법리를 따져야지 왜 정치적으로 노는가. 조 교수의 말투대로 하자면, ‘노무현 그만 비호해라, 넘치도록 해먹었다.’고 조언하고 싶다. 노무현 정권 말기에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자리를 얻어 찼으니 의리는 지켜야겠지만 나설 때 나서야 한다.
각자 다른 의견을 가질 수 있고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사안에 초점을 맞춰 근거 있는 논리로 자기의 주장을 펴야 한다. “그(노무현)의 일은 법적 절차에 맡겨 두라.”고 하면서 왜 구속하지 말라고 간섭하나? “노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의 법적 책임을 질 것인지는 법률가들이 결론 낼 것이다.”고 하면서 왜 검찰을 압박하고 선고까지 하나? 경제에 정치 논리가 개입하면 경제가 망가지듯이 법치에 정치 논리가 끼어들면 법치가 무너진다. 법치가 무너지면 국가기반이 흔들린다. 법학교수가 정치 선동으로 법리를 파괴하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중대 과오다. 조 교수 같은 사람들이 언론에 나와 떠들지 말아야 한다. 법철학의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라. 인성부터 길러라. 검찰을 흔들지 마라. 검찰을 압박하지 마라.
2009. 5.
변재환
경제학박사, 프리랜서
검찰을 흔들지 마라
- 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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