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武鉉 前대통령이 지금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진 검은 돈은 약 600만 달러. 박연차(朴淵次)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007년 6월 100만 달러, 2008년 2월 조카사위 연철호씨를 거쳐 아들 건호씨 사업 자금으로 들어간 500만 달러, 부인 권양숙(權良淑) 여사가 받았다고 밝힌 3억 원, 회갑 선물로 받은 1억 원짜리 시계 2개 등 한국 돈으로 70억 원가량의 수뢰(收賂) 의혹을 받고 있다. 대부분 달러로 주고받았고 장소도 대통령 관저 안방이었다.
盧 前대통령은 박연차 회장과 오간 돈 거래에 대해 『퇴임 후에 알았다』, 『최근에야 알고 크게 화를 냈다』, 『집(부인 權여사)에서 빌렸다』는 식으로 말해왔다. 盧 前대통령의 아들은 해외의 조세피난처에 세운 유령회사 등을 이용해 5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다 검찰이 증거를 들이대면 증거를 댄 만큼만 시인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권양숙(權良淑) 여사 역시 8일 들어서야 박연차(朴淵次) 회장에게서 받은 「100만 달러」로 아들 노건호 씨와 딸 노정연 씨의 미국 체류비로 38만 달러 정도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빚을 갚는데 썼다고 설명했다.
盧武鉉의 거듭된 거짓말과 책임회피는 처음이 아니다. 그는 재임 중 정치적 수세에 몰리면 「사퇴 하겠다」는 식의 발언을 14차례나 했지만, 끝까지 사퇴하지는 않았었다.
예컨대 盧 前대통령은 2003년 5월21일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는가 하면, 같은 해 10월10일 측근 비리가 드러나자 『(대통령직에 대한)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같은 해 12월14일 대선 자금 관련 비리가 불거지자 『우리가 쓴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 하겠다』고 말했다. 이듬 해 3월8일 2002년 대선 당시 盧武鉉 캠프의 불법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7분의 1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됐지만, 盧 前대통령은 정계 은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재신임을 묻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盧 前대통령은 대통령후보, 국회의원 시절에도 사퇴와 철회를 반복해온 인물이다. 그는 1989년 3월17일 『의회 기능의 無力에 대한 회의감과 민중생존의 노동운동에 대한 불법탄압에 항의하기 위해』라는 이유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가, 17일 만에 철회했다. 盧 前대통령은 1990년 7월13일 다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는 제51회 정기국회 개원을 앞 둔 같은 해 9월7일 이를 철회했다.
2002년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이후에도 盧 前대통령의「자리걸기」식 거짓말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6월10일 비서실 회의에서 『6·13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단체장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경우 후보 再신임을 받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6·13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단체장은 물론 全지역에서 대패했지만, 盧 前대통령은 6월17일 『8·8 국회의원 재·보선 후 대통령 후보 국민 경선을 재실시할 용의가 있다』며 재신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민주당은 8·8 재·보선에서도 대패했지만 盧 前대통령은 국민경선을 다시 실시하지 않았다. 이상의 내용을 좀 더 상세히 풀어보면 아래와 같다.
△『내각 구성권 이양하겠다』
盧 前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2일 국정연설에서 『내년 총선에서 특정정당이 특정지역에서 3분의2 이상의 의석을 독차지할 수 없도록 선거법을 개정하면,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내각의 구성 권한을 이양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발언은 한나라당이 국회를 주도하는 여소야대 상황이었던 점에서 충격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대통령직 못해먹겠다』
盧 前대통령은 2003년 5월21일 청와대에서 『대통령직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한총련의 광주 5·18묘지 시위사태 등 사회각층의 기강문란을 빗대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고 했다.
△『재신임 묻겠다』
盧 前대통령은 2003년 10월1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직에 대한)재신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핵심측근인 최도술 前청와대 총무비서관이 SK자금 수수와 관련,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죄드리고 책임을 지려고 한다』며 『수사결과 무엇이든 간에 이 문제를 포함, 그동안 축적된 국민들의 불신에 대해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 그는 당시 국민투표 등을 거론하며 『아무리 늦더라도 총선 전후까지는 재신임을 받을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재신임 절차는 이뤄지지 않았다.
△『10분의 1넘으면 정계 은퇴』
盧 前대통령은 대선 자금 관련 측근 비리가 불거지던 2003년 12월14일 4당 대표 회동에서 『우리가 쓴 불법 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틀 후 기자회견에서도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다』며 『실제로 10분이 1 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넘으면 정계 은퇴 하겠다』고 했다.
당시 盧 前대통령의 발언은 수사를 진행 중이던 검찰에게 「盧武鉉 캠프의 불법 대선 자금을 한나라당의 10분 1이 넘지 않도록 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린 것이라는 여론의 맹공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검찰은 2004년 3월8일 盧武鉉 캠프의 불법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7분의 1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盧 前대통령은 정계 은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수도이전, 『정부의 진퇴를 걸겠다』
盧 前대통령은 수도이전 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6월15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이 정책(수도이전)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이자 국운이 걸린 문제로 정부의 명운과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같은 해 10월 「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내렸음에도, 盧 前대통령은 사퇴(辭退) 대신 대체 입법을 만들어 수도이전을 강행했다.
△『권력 절반 이상 내놓을 용의』
盧 前대통령은 2005년 6월 소위 연정(聯政)을 제안하면서 『권력을 통째로 내 놓겠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2005년 7월6일 인터넷을 통한 대통령 서신을 통해 『취임 후 첫 국회연설에서 국회가 지역구도 문제의 해결에 동의한다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의 절반 이상을 내놓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될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것이라도 내놓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튿날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도 『우리 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면 대통령 권력을 내놓겠다. 내각제 수준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할 용의가 있다. 선거를 다시 하기는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는 같은 달 28일 「당원동지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도 『당장 총선을 하자는 것도 아니다. 정치적 합의만 이뤄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大聯政을 구성하고, 그 聯政에 대통령의 권한을 이양하고 그리고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하여 만들면 된다』고 했다.
△『권력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할 것』
聯政을 위한 「권력포기」발언은 집요하게 계속됐다. 盧 前대통령은 8월24일 청와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독일 슈뢰더, 일본 고이즈미 총리가 자리를 걸고 승부수를 던진다는 예를 들며 『참 부럽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뭐냐? 이것, 당을 걸고 승부할 수도 없고 자기 자리를 걸고 함부로 승부할 수 있는 것도 제도화되어 있지 않고, 그렇다고 명색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무책임하게 사표만 낸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이튿날 KBS에 출연, 『(한나라당이) 聯政 그 정도 갖고는 얽혀서 골치 아프니 권력을 통째로 내놓으라면 검토해보겠다』며 한나라당에 대해 『형식 논리가지고 게임하고 그러면 안 된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으로부터) 나한테 더 큰 요구가 있으면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는 8월30일 열린우리당 의원 130여 명을 초청한 청와대 만찬에서 聯政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며 『盧武鉉 시대가 새 시대의 출발이 아니고 구시대의 마감이 돼야 한다. 새로운 정치문화와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 있다고 전제된다면 「2선 후퇴」나 「임기 단축」을 통해서라도 盧武鉉 시대를 마감하고 새 시대를 시작할 수도 있다는 의지와 결단도 생각해 봤다』고 말했다.
그는 이튿날 중앙언론사 논설·해설 책임자들과 간담회에서도 「2선 후퇴」「임기 단축」와 관련 『나도 구시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몇 가지의 과오에 대해 그간 짊어지고 (盧武鉉) 시대를 마감해 버리는 것이 좋지 않냐, 솔직히 그런 생각도 가지고 있다』며 『지역주의 극복이 聯政 제기의 근본 취지』라고 말했다.
△『내 임기는 이제 거의 끝났다』
盧 前대통령은 2006년 8월13일 4개 신문사(경향신문·서울신문·한겨레신문·한국일보)의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들과 비공개 오찬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20%대 지지도 못 받는 대통령으로서의 심정을 토로하며 『내 임기가 거의 끝났다』는 자포자기 성 발언을 했다.
△『임기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盧 前대통령은 2006년 11월28일 국무회의에서 『임기 다 마치지 않는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전효숙 헌재소장표결과 관련, 『국회가 표결을 거부하고 방해 하는 것은 명백한 헌법 위반이고 불법 행위』라며 『대통령 인사권에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의원직 사퇴 두 번·대선 땐 再신임 번복】
盧 前대통령은 대통령후보, 국회의원 시절에도 사퇴와 철회를 반복해온 인물이다. 그는 1988년 4월26일 총선에서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같은 해 11월7일부터 사흘 간 열린 5공 특위 청문회에서 일약「청문회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이듬해 3월17일 『의회 기능의 無力에 대한 회의감과 민중생존의 노동운동에 대한 불법탄압에 항의하기 위해』라는 이유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가, 17일 만에 철회했다.
당시 신문을 보면 그는 『돌아오게 된 당당한 논리는 없다. 마음이 흔들리던 중 주위에서 여러 사람이 얘기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盧 前대통령은 이기택 의원을 총재로 하는 소위「꼬마 민주당」 활동 당시인 1990년 7월13일 다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는 제51회 정기국회 개원을 앞 둔 같은 해 9월7일 이를 철회했다.
「정치판이 체질에 안 맞는다」는 첫 번째 사퇴와 달리 두 번째는 특별한 이슈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2002년 盧武鉉 캠프가 펴 낸「盧武鉉 상식, 혹은 희망」이라는 책자는 『7월11일 당시 민자당이 국방위에서 일체의 토론 없이 국군조직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한 데 대한 항의였다』고 적고 있다.
2002년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이후에도 盧 前대통령의「자리걸기」식 허언(虛言)은 계속됐다.
그는 2002년 6월10일 비서실 회의에서 『6·13지방선거에서 영남권 광역단체장을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할 경우 후보 再신임을 받겠다』고 밝혔고, 6월1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再신임을 받겠다는 약속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6·13지방선거가 영남권 광역단체장은 물론 全지역에서 민주당 대패로 귀결됐음에도, 盧 前대통령은 6월17일 『8·8 국회의원 재·보선 후 대통령 후보 국민 경선을 재실시할 용의가 있다.
재·보선 후 누구든지 입당시켜 원점에서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대통령 후보 국민 경선을 다시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다.「再신임」을「모든 기득권을 버린 再경선」으로 표현 강도를 높이면서 8·8 재·보선 이후로 쟁점을 빗겨간 것이다.
盧 前대통령은 이후 8·8 재·보선 역시 민주당이 대패했음에도(한나라당이 13개 지역 중 11곳에서 승리함), 국민경선을 다시 실시하지는 않았다.
盧武鉉의 말을 믿느니...
- 金成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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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09, 02: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