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호치민
2003. 8. 19 문화일보에서
글 : 노 영찬 (美 조지메이슨대 교수)
'한국의 박정희는 번영(prosperity)의 기초를 놓았지만 베트남의 호치민은 빈곤(poverty)의 기초를 쌓았다.'
이 말은 내가 존경하는 베트남 출신의 학자 껑투웬(Cuong Tu Nguyen)이라는 교수가 한국에서 호치민 전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나에게 한 말이다. 껑투웬 교수는 젊은 학생 시절에는 베트남의 민족주의와 호치민에 심취했던 베트남 불교계의 젊은 지성이었다. 그는 베트남전쟁 후 미국으로 와서 하버드대학에서 불교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와 같은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불교학계에서 촉망받는 교수다.
내가 껑투웬 교수를 약 25년 전 대학원 학생시절에 처음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은 그가 꼭 호치민 같이 생겼다는 느낌이었다. 그는 그때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턱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어서 더욱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30년 전 미국 대학가에서는 호치민의 초상화가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호치민은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과 같이 미국 대학생들의 상당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그 당시 미국 대학가는 마오쩌둥의 말을 모아서 출판한 ꡐ마오의 어록ꡑ들이 미국 학생들에게는 인기 있게 읽히고 있을 때였다. 마오의 초상화나 호치민의 초상화가 미국대학에서 자취를 감춘 지 이미 오래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는 껑투웬 교수가 한국의 박정희와 베트남의 호치민을 이와 같이 비교한 말을 들었을 때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말은 30년 전 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누가 이런 말을 했다면 우리 학생들 사이에는 정신 박약자로 취급을 받고 '왕따'가 될 만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 말을 한국인이 아닌 다른 아시아 계통의 베트남 사람으로부터 들었을 때는 내가 이 말에 찬성하든지 않든지 간에 이 말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자신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도 볼 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남들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베트남을 안 것은 6.25 동란 후 안남미라는 길쭉한 쌀을 얻어먹은 기억과 1960년대 말에 한국 군대의 베트남 파병 때문이었다. 한국 군대는 미국의 돈과 무기를 받고 베트남에서 미국대신 싸워주는 용병(傭兵)으로 베트남에 갔다. 아 얼마나 수치스럽고 눈물나는 일이었던가? 내가 미국에 유학 와서 한국사람으로 가장 수치스럽게 느꼈던 순간은 미국의 교수나 학생들이 한국은 미국의 용병(mercenary)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그렇다. 한국에 번영이 오기까지는 너무나 많은 치욕과 눈물과 아픔의 역사가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학사가 외국에 광부로 팔려갔고 전문기술을 가졌던 많은 의사 간호사 영양사 약사 병아리 감정사까지도 수없이 한국을 빠져나갔다. 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한국에 송금하는 돈이 한국의 외화 확보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진출하게 된 것은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었다. 민족적으로는 수치스러운 일이었지만 한국의 번영에 결정적인 계기를 가져온 사건이다.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번영의 역사로 바꾸었다.
월남파병으로 한국군대는 무기나 장비의 현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또한 현대건설을 선두로 월남에 한국기업이 진출하게 되었으며 그후 중동전역에 한국건설 기업이 진출함으로 한국은 세계 무대에 올라서게 되었다. 오늘 현대자동차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세계에 거의 없다. 이 점에서 현대기업은 세계시장의 선구자 역할을 한 것이다.
베트남은 호치민의 민족주의 기치아래 통일은 보았지만 이제는 자본주의와 시장경제가 호치민 민족주의 이념이 가져온 30년간의 실패와 폐허 위에 오늘의 베트남의 부흥의 초석을 놓아가고 있다.
베트남의 아이러니는 북쪽을 지배하던 호치민의 민족주의적 공산주의(nationalistic communism)가 많은 피의 대가를 치르고 베트남을 통일했지만 실제로는 통일 이전의 남쪽만 지배했던 자본주의나 미국문화가 지금은 베트남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베트남에서 사라진 호치민의 신화가 한국에서 부활한다는 사실은 바로 오늘 한국이 겪고 있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 자료등록일자 2003/08/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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