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황석영씨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동행하면서 방문 현지에서 한 발언을 두고, 좌파들은 ‘변절’했다면서 황석영씨에게 ‘집중포화(集中砲火)’를 퍼붓고 있다. 따라 간 사람(황석영)은 자기들 편에서 욕을 먹고 있는데 데리고 간 사람(이명박)은 문제가 없나? 우파(右派)는 적진(敵陣)의 내분(內紛)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황석영이 어떤 사람인가. 북한에 다섯 차례 밀입국(密入國)했고, 일곱 차례 김일성을 만났고, 김일성으로부터 ‘재간둥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김일성을 이순신 같은 위인(偉人)이라고 추앙했고, 북한으로부터 25만 달러를 받았고, 송두율(宋斗律) 석방 운동을 벌였고, ‘연방제’가 가장 합리적인 통일방안이라고 지금도 외치고 있고, 지난 대통령 선거 때는 반(反)이명박 전선을 구축했던 사람이다. ‘한겨레신문’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있는 동영상(2009. 5. 16.)을 보면 아직도 자기는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몽골+2 Korea'는 자기들의 꿈 즉, ‘느슨한 연방제’를 이루는 길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을 외국 순방에 특별수행원으로 데리고 간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따라간 황석영의 설명부터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 실용주의를 표방한다, 이대통령은 ‘보수 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대통령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 도와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다, 이대통령이 ‘중도실용주의을 꼭 하고 싶은데 꼭지를 따줄 사람(돌파구를 열어줄 사람)들이 필요하다’면서 ‘도와 달라’고 했다.”면서 이대통령과 자신이 가까워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몽골+2 Korea' 프로젝트에 뜻을 같이 하고 있고, 자신이 구상한 ‘동북중앙아시아 연합’ 계획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 생각’이라면서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이명박과 황석영이 짝짜꿍해서 동행할 만하다.
아직 이대통령 측에서 ‘황석영을 데리고 간’ 이유나 친하게 지내는 배경을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정을 모르겠지만 황석영이 거짓말한 것 같지는 않다. 황석영의 말이 맞다면 큰일이다.
이번 ‘사건’으로 노정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의 정체다. 필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를 ‘표방(標榜)’할 때 정치적인 구호이겠거니 하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믿었다. 이번 ‘황석영 동행사건’과 황석영의 발언으로 확인된 이대통령의 실용주의는 ‘혹시나’하는 기대에서 ‘역시나’ 하는 좌절로 바뀌었다.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는 얼핏 보면 좋은 뉘앙스를 준다. 이념으로 분열된 우리 국민을 아우르겠다는 뉘앙스를 주고, 우리 민족을 괴롭혀 온 ‘허세’, ‘허례허식’, ‘이데올로기’, ‘도그마’, ‘관념론(觀念論)’을 타파(打破)하고 그야말로 말 그대로 실용주의를 추구하겠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실용주의에도 이념이 있다. 고전적 의미는, 19세기에 팽배했던 독일 관념론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의 근대 과학적 사고방식과 미국의 전통적 퓨리터니즘(puritanism)을 조화시킨 철학 사상이다. 이명박의 실용주의를 이런 고전적 의미로 해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 실용주의의 이념은 무엇인가.
실용주의의 다른 용도는 한 이념에서 다른 이념으로 전환할 때다. 등소평의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이 좋은 예일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겠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들어있다. 이때 등소평이 실용주의 노선을 택했다고 말한다. 영국 토니 블레어가 외쳤던 ‘제3의 길’도 그 아류(亞流)쯤은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존 노동당(勞動黨) 노선(路線)에 집착하지 않고 보수당(保守黨)의 좋은 정책들도 수용하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래서 토니 블레어 정부는 보수당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평도 받았다. 이명박의 실용주의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겠다는 실용주의인가. 사회(社會)자유주의에서 신(新)자유주의로? 진보에서 보수로? 좌익에서 우익으로? ‘퍼주기’에서 호혜주의로? 규제에서 자유로? ‘떼쓰기’방치주의에서 법치주의로? 민족에서 동맹으로? 아니면, 그 반대로?
이번 사건에서 노출된 부분을 보니 이명박 중도 실용주의는 ‘아무나’주의인 것 같다. 아무나 껴안으면 ‘아무도’ 껴안지 못한다. 가슴이 넓고 포용력(包容力)이 강한 것도 좋다. 그러나 가슴속에 든 게 있어야 한다. 이념도 철학도 없는 빈껍데기 가슴으로 팔을 너무 벌리면 오른쪽 갈비뼈가 부러지고, 우익(右翼)이 꺾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中道)는 사상적 38선이다. 양다리 걸치다가는 한순간에 왼쪽으로, 북쪽으로 넘어질 수 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이명박 실용주의는 그 지긋지긋한 포퓰리즘(populism:인기영합주의)이다. 포퓰리즘은 인민당(人民黨)이나 페론, 노무현이 썼던 정치적 기회주의(機會主義)이다. 사상 최대의 표차(票差)로 당선된 이명박 정권에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다고 좌파(左派)가 따라올까? 이명박을 지지할까? 어림없는 소리다.
이번 사건의 두 번째 문제는 국가 기밀 누설(漏泄)이다. 역시 상종(相從)하지 말아야 할 사람과 친하게 지낸 결과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문제를 풀기로 작정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기한(期限) 약속을 안 지키면 돌아서서 반대 투쟁하겠다고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북한을 경제적으로 더 도와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는’ 대통령이, 기한까지 못을 박아, 내년 상반기까지 남북문제를 풀기로 작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한이 안다면 어떤 전략으로 나올까. 누구 편에서 누구에게 알리겠다고 한 말인가. 그래서 상종하지 말아야 할 사람, 기밀을 누설할 사람에게는 속을 내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있다. 스스로 국가 기밀이라고 한 ‘몽골+2 Korea' 프로젝트 관련서류를 신문기자에게 노출시켰다고 자신이 말했다. 어째 이런 사람과 놀고 있나.
왜 작년 미국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가 그렇게 장기간 수도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들도록 내버려 둔 것인지 이제 알 것 같다. 이대통령이 황석영을 불러 도와달라고 했단다. 어떻게 조언했을지 불을 보듯 빤하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왜 그 긴 팔로 박근혜를 끌어안지 못했는지. 한나라당의 내분(內紛)의 근원(根源)이 무엇인가. 후보 경선 때 박근혜 뒤에 줄을 섰던 사람들을 몰아내겠다는 그 옹졸(壅拙)함, 그 속좁음 때문이 아닌가. 지난 선거 때 반(反)이명박 전선에 섰던 황석영과 사이좋게 지내는 그 통 큰 마음의 백분의 일이라도 박근혜에게 베풀었다면 오늘과 같은 한나라당의 내홍(內訌)은 없었을 것이다. ‘이념을 넘어선 실용주의’를 하기 전에 ‘권력 투쟁을 넘어선 당내 화합’부터 해야 했었다. 잘해보자고 조금 다툰 것 때문에 조강지처(糟糠之妻)인 어머니를 버리고 술집 여자와 입맞춤하는 아버지를 연상시킨다. 좌파를 끌어안겠다는 것은 헛발질이고 그래서 뒤로 넘어진다.
기억의 저장고를 뒤져본다. 어떤 나라 어느 대통령이, 적국(敵國)의 우두머리(김일성)를 이순신 같은 영웅으로 추앙하고, 자기(이명박)를 반대하는 무리의 대표 격인 소설가를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고 외국 순방에 동행한 사례가 있는지. 또 상상해본다. 스탈린(Stalin)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미국 소설가가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대만의 장개석이 모택동을 존경하는 작가를 태우고 중앙아시아를 순방하는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 상상을 뒤집어본다. 그 황석영의 자리에 박근혜를 앉혀서 동행했다면 얼마나 모양이 좋고 성과가 좋았을까.
아마 이렇게 나올지도 모르겠다. 燕雀安知鴻鵠之志哉(연작안지홍곡지지재)!.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겠나. 그것 봐라. 적장(敵將)을 껴안으니 적진(敵陣)이 분열하지 않나. 이런 교란(攪亂) 전략이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아 걱정이다.
김대중·노무현이 이문열을 데리고 갔나, 복거일을 데리고 갔나. 왜 하필 황석영인가. 이미 10년 전에 몽골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는 ‘몽골+2 Korea' 프로젝트에 왜 황석영이가 필요한가. 북한을 꼬이기 위해? 북한은 몽골과 이미 인력송출계약을 맺었다고 황석영이가 말했다. 우리만 끼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왜 황석영이가 필요했을까. 황석영이 중앙아시아 전문가인가. 왜 촛불 시위 해결에 황석영의 조언이 필요했나. 북악산에 올라 광화문 거리를 꽉 메운 촛불을 바라보고 ‘아침 이슬’을 부르며 감상에 젖어 황석영 소설의 주인공을 생각했던 것일까. 이명박 정권이 앞으로도 이러면, 진중권이 황석영을 비꼬았듯이, 나도 이명박의 ‘진중권’이 되련다.
2009. 5.
변재환 경제학박사, 프리랜서
황석영과 놀다니…
- 변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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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5-18, 1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