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와트」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趙南俊 월간조선 부국장
필자는 지난 10월25일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寺院(사원)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킬링필드」의 나라, 캄보디아는 폴 포트의 虐政(학정ㆍ1975~1979년)이 끝난 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옛 상처투성이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태국의 국경도시 「아란」에 도착, 캄보디아의 「포이멧」으로 넘어가는 동안, 필자는 기막힌 장면을 목도하고 憐憫(연민) 반, 憤怒(분노) 반의 심정에 휩싸였다.
6ㆍ25직후 우리나라가 이랬을까. 10세 미만으로 보이는 여자애들 수십명이 기껏해야 20~30cm 크기밖에 안되는 갓난 아이를 안고 관광객들에게 달라붙어 끈덕지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신발을 신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현지 가이드는 절대 돈을 주면 안된다고 했다. 한번 돈을 주면 벌떼처럼 아이들이 몰려들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그런 아이들이 너무 가여웠고, 아이들을 그렇게 방치하는 나라와 그 爲政者(위정자)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특히 외국관광객이 넘나드는 국경도시가 그럴진대 다른 곳은 오죽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도시 자체도 華僑(화교)가 운영하는 카지노 딸린 호텔을 제외하면 건물도 형편없었고 길은 홍수가 휩쓸고 간 뒤처럼 진창이었다.
앙코르와트의 도시 「시엔립」까지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非포장 도로인데다 정비도 제대로 안돼 있어 머리를 택시 천정에 부딪치기 일쑤였다. 그런 길을 5~6시간을 달려 현지에 도착했더니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다행히 현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과 관광객을 위한 華僑 소유의 고급호텔이 있어 잘 먹고 잘 잘 수 있었다.
힌두 寺院인 앙코르와트는 「시엔립」시내에서 버스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寺院 입구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廻廊(회랑)을 따라 벽면에 돋을새김된 浮彫(부조)는 금방 밖으로 튀어나올 듯 생생했다. 벽돌에 새긴 다음 하나하나 맞추어 쌓아올렸는데, 그 정성과 정교함이 놀라웠다. 거의 직선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을 손으로 기어올라갔다. 수십m 높이의 탑 위에 새겨진 女神像(여신상)은 아름다웠다. 量感(양감)과 等身(등신) 비례가 살아 있는 사람을 능가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 높이까지 올라가 조각했을까. 만일 땅 위에서 새긴 다음 들어올렸다면 그건 더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게 고급문명을 이룩했던 옛 크메르가 오늘날 왜 이렇게 세계 最貧國(최빈국)의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그리고 어째서 수백만명의 죄없는 사람들이 학살됐을까.
그건 바로 이데올로기 때문이다. 잘못된 理念(이념)이 이 나라를 거지의 나라, 수렁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폴 포트 政權(정권)이 학살한 사람들은 나라를 이끌고 가는데 불가결한 지식인들이었다. 그런 지식인들을 키우려면 아직도 한세대는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앙코르와트」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 趙南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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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0-28, 09: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