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6자회담

지난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부시대통령의 다자간 틀 내에서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제안에 대해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에 따라, 2차 6자회담의 개최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는 방콕 한-미정상회담에서 '다자간 틀내 서면 보장' 제안이 나온 직후 '가소로운 것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다'던 종전의 입장을 1백80도 선회한 것으로 그 배경에 대해 주목된다.

8월 6자회담 이후 북한은 줄곧 차기회담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회담직후에는 '회담 무용론'을 제기하였고, 근자에는 갑자기 '일본 배제론'을 들고 나왔다. 최근에는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때가되면 '핵 억제력'을 실물로 증명해 보일 것이라며 '핵실험' 강행을 시사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입장선회에 따라 중국의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방북에서 차기 6자회담에 대한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본래 우 위원장은 지난달 20일 방북할 예정이었으나 북한측 요청으로 두 차례 일정이 연기되면서 두 나라간 갈등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북한이 북미불가침협정을 고집하지 않을 가능성이 생긴 만큼, 6자회담에서 일정한 진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파월 미국무장관이 “이것을 핵위기 해소를 위한 하나의 돌파구로 부르기는 이르다”고 말한 것처럼 북한의 불가침에 대한 태도변화가 조속한 핵포기 결정의 전조(前兆)인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지난 3자회담을 포함한 두차례의 핵협상과정을 들여다보면 북미간에 타협이 매우 어려워 보이는 쟁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차기 6자회담을 전망하면서 주요한 쟁점들 몇 가지를 검토해 보자.

1. 핵포기의 대상 또는 개념
미국은 북한 핵포기에 대해 “가시적이고 입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법으로 폐기돼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또한 그 대상에 대해 완성된 핵무기, 플루토늄 프로그램, 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등 크게 3가지로 보고 있다. 반면 북한은 지난 6자회담에서부터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전면 부인하면서 이를 논의대상에서 제외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북한의 김영일 수석대표는 지난 6자회담에서 지난해 10월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 방북으로 제기됐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오도된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은 북핵문제가 다시 제기된 원인과도 관련된 핵심주제이다. 만약 북한의 주장대로 지난해 10월의 사건이 미국의 일방적 오해나 뒤집어씌우기라고 한다면, 제네바 합의로 다시 복귀하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북한이 핵보유를 공개한 만큼 이의 폐기문제는 특별히 다루어져야 된다. 그러나 미국무부의 볼턴 차관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농축우라늄을 생산하고 있음이 틀림없다”며 “(미국 정부는) 검증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고 있으며 북한이 농축우라늄을 만들고 있다는 확고한 증거(solid evidence)를 갖고 있다”며 북한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후에도 북한이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계속 부인하게 되면 회담진전은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는 양보나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 제네바 합의과정에서 클린턴 행정부는 '핵폐기'를 유보하고 당면한 '핵동결'을 선택하여 북한과의 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북한의 비밀핵개발 시도로 인해 제네바 방식의 실패가 검증되었다고 평가하는 만큼,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을 적당히 덮어두는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해 보인다.

한편 우라늄농축 프로그램 외에도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고 선언한 핵무기의 폐기문제도 쟁점으로 잠복해있다. 검증과정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얼마나 인정하고 공개할지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위협을 가할 때와는 달리 핵포기를 선택하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핵보유를 부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검증과정에서 핵무기를 공개하더라도 이를 미국이 액면 그대로 믿어주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2. 핵포기의 대가
두 번째로 쟁점이 되는 사항은 핵포기의 대가를 주는 시점과 방식의 문제이다. 지난 6자회담에서 북한은 '단계별 동시이행 방안'을 내 놓았다. 북한이 핵포기 선언/ 핵시설과 핵물질 동결 및 감시사찰 허용/ 핵시설 해체 등의 3단계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중유제공 재개/ 불가침조약 체결 및 경수로 건설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 대북 외교관계 수립과 경수로 완공 등의 상응하는 조치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핵포기에 대해 대가의 형식으로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부시대통령은 '대담한 접근'이라고 표현했듯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미국을 비롯 국제사회가 북한을 지원하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 지원은 핵포기의 대가가 아니라 북한이 잘못을 교정하고 노선전환을 하는데 대한 지원의 의미라는 것이다. 이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는 현실에 있어서 대가를 주는 시점의 차이로 이어진다. 북한이 주장하는 동시적 타결 즉 '맞바꾸기'는 결국 핵포기의 대가로 간주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차를 두고 사후에 대북지원을 하겠다는 것이 미국의 입장이다.

대북지원의 시점문제는 북미간에 단순한 자존심 싸움만은 아니다. 핵포기는 현실적으로 선언, 사찰과 같은 검증, 최종 폐기 등의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검증과 최종폐기과정에서 새로운 분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상존하게 되며, 언제든지 원점으로 회귀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불확실한 단계에서 먼저 대가를 주는 흥정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핵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철저히 북한에 대한 불신을 전제로 접근하는 만큼 '사기'당할 위험을 줄이는 안전한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측의 동시행동의 대가지불 방식은 필연적으로 협상의 초점이 대가의 크기로 모아지게 된다. 즉 무엇을 받아야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깨고 잘못을 저질러서 2차 북핵 문제가 시작된 만큼 이런 방식의 협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잘못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하거나, 협박에 굴복하는 식의 전례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2차 6자회담을 비롯하여 대화가 지속되면 북미간에 일정한 상호 입장의 변화는 생길 것이다. 그러나 앞서 검토했던 쟁점들은 중간적인 타협보다는 대체로 한편의 기본적인 입장변화 없이는 진전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최근의 대북안전보장 방안에 대한 북미간의 의견 접근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갈 길이 멀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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