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코프 전 러시아 총리와의 대화


에브게니 M. 프리마코프 러시아 상공회의소 회장 겸 국회의원은 세계적 유명인사일 뿐 아니라 한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중동 문제가 전공인 그는 옐친 대통령 시절에 총리를 했는데 한때 후계자설도 있었습니다. 그는 1988년IMEMO라는 러시아의 국책 연구소 소장직에 있을 때 한국 야당(통일민주당)의 鄭在文의원이 소련을 방문하자 서로 만나 韓蘇 수교 접촉을 시작하도록 했던 분입니다.

韓蘇수교는 1988년 여름의 金泳三 통일민주당 총재 訪蘇, 1990년 봄 모스크바를 방문한 金泳三민자당 대표와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사이의 합의에 따라 성사된 경우입니다. 야당(뒤에 삼당합당으로 여당)을 통한 修交라는, 외교사의 이례적인 韓蘇수교가 가능했던 것은 프리마코프를 중심으로 한 개방파가 외무부를 젖히고 고르바초프를 설득하여 북한의 압력을 극복하고, 번영하는 한국과 경제교류를 트겠다는 전략을 관철시켰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訪韓한 프리마코프 전 총리와 金泳三 전 대통령이 만나 점심식사를 하는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鄭在文 전 의원도 배석하였는데 아주 재미 있는 대화가 많이 있었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韓蘇수교의 공로에 대하여 한국내에서 많은 說이 있지만 金泳三 전 대통령을 통한 접촉이 결정적이었다고 확인해주었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그때 우리는 귀하께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고 말하면서 웃었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총리 시절 옐친 전 대통령이 자신을 불러 『당신이 내 후계자야』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면서 『총리라는 직책이 知事들과 싸워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정치적 타격을 받기 쉽고, 그래서 대통령 후보가 되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옐친의 그 말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1990년대초에 러시아 정보기관의 책임자로 있었으므로 북한 사정에도 아주 밝았습니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이 다목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가져도 한국에 대한 타격능력은 특별히 향상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휴전선에 장거리포대를 갖고 있지 않겠습니까. 김정일은 아마도 핵개발을 이용하여 미국과의 직접 접촉, 경제원조, 체제의 강화 등을 노릴 것입니다. 부시가 자신을 악의 축이라고 부른 데 대한 대응이기도 하겠지요』

프리마코프씨는 차우세스쿠 전 루마니아 대통령이, 1989년 12월에 내부 반란이 일어났을 때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에게 소련군대를 보내달라고 급히 간청했다는 秘話를 소개했습니다. 그때 프리마코프씨는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이었는데 정치국 회의에서 이 안건이 표결에 붙여졌다고 합니다. 단 한 표도 차우세스쿠의 요청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金泳三 전 대통령은 헬무트 콜 수상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눈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1988년부터 동구권이 민주화 운동으로 소용돌이에 말려들 때 콜 수상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의 반응이 의외였다고 합니다. 고르바초프는 헝가리의 민주화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잘하는 일인 것처럼 말하더란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콜 수상은 고르바초프가 동구 공산권의 민주화를 무력으로 저지할 뜻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독일통일을 준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리마코프씨는 고르바초프과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일통일 과정에서 외교를 썩 잘한 것이 아니었다고 논평했습니다. 독일을 통일시켜주는 조건으로서 주변국, 즉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가 통일독일은 나토에 가입해선 안된다는 요구를 할 수 있었으나 고르바초프가 이 조건을 끈질기게 관철시키지 않고 서독의 동독흡수를 허용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나토가 확장되어 러시아의 안보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하게 되었다는 의미인 듯했습니다.

제가 한 질문을 했습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너무 쉽게 독일통일에 합의해주었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예컨대 1990년 여름 콜 수상이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와 독일통일에 관한 최종협상을 했는데, 콜 수상의 요구를 거의 전부 들어주어 콜 수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렇게 합의해준 뒤에 독일에 대한 경제원조를 요청했습니다. 이는 아주 나쁜 협상술이 아닙니까』
프리마코프씨는 웃더니 짧게 대답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귀하가 말한 그대로입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흐루시초프에 대한 좋은 傳記가 나와 화제입니다. 특히 1956년 20 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을 격하하는 연설을 한 것에 대해 전기의 著者는 흐루시초프의 선한 인간성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 전기를 읽으니까 흐루시초프가 좋아졌습니다』
『흐루시초프가 한 방식보다는 鄧小平이 毛澤東을 평가하고 정리한 방식이 훨씬 더 현명했다는 생각입니다』

鄧小平은 毛澤東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을 내란이라고 규정했지만 毛의 행동을 잘한 것 7, 못한 것 3 정도로 평가하고 毛澤東을 격하시키지 않음으로써 중국 공산당의 분열을 막았는데 이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전임자가 만든 역사의 단절인가, 비판적 승계인가 하는 정치의 영원한 숙제에 대한 논평이었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둥근 얼굴에 대화를 조용조용하게 하면서 간간이 미소를 짓는 학자풍이었습니다. 그는 고르바초프, 옐친, 푸틴의 3代 대통령 시절을 관통하면서 두루두루 요직을 거친 사람인데, 원만한 성품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여겨졌습니다.

그는 소련과 동구 공산주의의 종언, 걸프 전쟁 등 세계사적인 대사건의 무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예컨대 1990년 가을에는 고르바초프의 밀사로서 이라크의 후세인을 방문하여 쿠웨이트로부터 철군할 것을 종용하였으나 후세인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프리마코프씨는 “그때 후세인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일 뜻을 보였으나 실천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결국 공격을 당하고말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