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8월 어느 날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우리 집에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신발을 신고 들이닥쳤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당신의 남편은 조국과 민족 앞에 죽을 죄를 지은 반역자이지만 당(黨)은 당신의 가족에게 살 기회를 주었다”며 끌고 간 곳이 요덕 수용소였다.
당시 행방 불명된 할아버지에 대한 소식은 지금도 알 수 없다. 요덕수용소에 수감된 정치범 가족들 대부분은 자신의 부모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정치범들에 대해서는 내부 비밀 재판을 한다고는 하지만 단 한 번도 외부에 공개된 적이 없다. 그래서 정치범 당사자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온다면 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대부분 죄인은 감옥에서 죽기 때문에 남은 가족들은 평생 부모의 죄를 알 수 없다.
수용소에 수감된 지 10년 후 국가보위부는 우리 가족에게 당의 크나큰 배려로 사회로 나가게 됐다고 통보했다. 수용소 입구에 있는 회관에서 석방자 대회가 열렸는데 풀려나는 사람들은 울고 불며 수령의 은덕을 칭송했다. 무슨 죄인지는 모르지만 살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뿐이었다.
보위부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비밀을 엄수라는 서약서에 열 손가락 지장을 찍게 하고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말고 알려고도 하지 마라.알려고 하면 너희 가족은 다시 수용소에 갈 수있다”고 협박했다.
북한에는 두 개의 법정이 있다. 하나는 정치범들을 처리하는 비밀 재판이 있고 경제범에 대한 공개재판이 있다. 정치범과는 달리 다행스럽게도 경제범들은 대부분 공개재판을 한다. 북한에도 자유민주 사회의 변호사와 비슷한 ‘인민참심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죄인의 편이 아닌 권력의 입장을 대변하는 ‘앵무새’로 죄수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 함남 고원지역에서 공개재판을 본 적이 있다.
당시 재판장에서 판사가 “죄목을 인정하느냐”고 묻자 죄수는 “그런 것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담당 보안원(경찰)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죄수는 다시 보안성 감옥으로 끌려가 무자비한 고문 끝에 다시 죄를 인정했다. 마치 죄인의 ‘무죄’주장은 국가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보는지, 보안성조차도 한번 취조하고 심판대에 세운 자는 무조건 죄를 인정해야 만 재판이 끝난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가 자신들의 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이토록 사람들을 괴롭히는 국가는 지구 위에 북한밖에 없다. 이번에 체포된 미국 여기자 2명도 ‘간첩죄’를 뒤집어 씌워 12년 ‘노동교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北·中 국경에서 일어나는 탈북자들의 참상을 취재한 것이 ‘간첩죄’라면 이 세상 모든 기자는 간첩들인 셈이다. 더 어이가 없는 것은 개성공단 우리측 근로자에 대해서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구금하고 가족면회도 시키지 않는 점이다. 말로는 우리 민족끼리를 떠들면서 힘이 강한 미국 기자에는 호의를 베풀지만 우습게 보이는 남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고 있다.
세상에 보기 드문 어용 언론을 가지고 권력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폭압 국가에서 정상적인 기자는 간첩이 될지는 몰라도 미국 여기자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들이다. 국가권력이 연약한 두 여기자에게 말도 되지 않는 재판을 열어 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것을 보면 이제 북한도 정상적인 국가는 고사하고 조직폭력배 조직도 아닌 양아치 무리로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힘 앞에서는 꼼짝 못 하지만 자신들보다 약한 자들에게는 잔인할 만큼 야비한 양아치들은 한마디로 쓰레기 집단이다. 막강한 군대를 이용해 인민을 탄압하는 ‘선군정치’를 하는 것도 모자라 국가보위부와 보안성 등 권력기구들의 인민 탄압은 이미 도를 넘은 지가 오래됐다.
아무런 재판도 없는 불법 구금이 난무하고, 보위부와 보안성의 비밀 지하감옥에서는 죄인들의 죄를 강제로 받아내는 비밀 고문이 판을 치는 북한에서는 이미 법이라는 것은 껍데기만 존재할 뿐이다. 마약 이번에 체포된 두 여기자가 북한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미 그들의 목숨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nkch@chosun.com
약자를 괴롭히는 양아치 정권
- 강철환(조선일보 기자)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9-06-15, 17: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