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엔가,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한 지인과 식사를 했다. 그가 말했다.
“퍼주기니 뭐니 하지만, 돈을 주고 평화를 살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것도 나쁜 건 아니잖아요?”
순간 나는 숟가락을 떨어뜨릴 뻔 했다. 그의 잘못된 생각을 짚어주고 싶었다. 돈을 주고 평화를 살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 김대중-노무현 시절 그렇게 퍼주기를 하고도 평화를 사는 데는 실패했다는 것, 서해교전(제2차 연평해전)과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 실험이 그것을 입증한다는 것 등등.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노무현이 자살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한 인척 형님과 식사를 같이 했다. 그는 “어제 저녁 덕수궁 앞에 있는 노무현 대통령 빈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려니 했다. 나야 노무현이라면 질색이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죽은 전직 대통령에 대해 애도의 염(念)을 품을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다음 얘기는 그냥 넘길 수 없었다.
“PSI 같은 것은 뭐 하러 해서 북한을 자극하는지 모르겠어요. 해 봐야 별 효과도 없다는데 긴장만 조성하고....”
이번에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게 아니죠. PSI를 해서 긴장이 조성되는 게 아니라,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해서 우리를 자극하고 긴장이 조성된 거 아닙니까? 순서를 거꾸로 알면 안 되죠.”
내가 뜻밖에 강하게 얘기하자 분위기가 썰렁해졌다. 나는 한 마디 더 했다.
“그런 소리 하는 사람들 얘기 믿지 마세요.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두 사람 다 정치나 남북관계, 국제정치 같은 건 잘 모르는 평범한 생활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돈을 주고 평화를 살 수 있는 것 아니냐”느니 “PSI가 북한을 자극한다”느니 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내가 아는 한,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 모두 ‘김대중’이라면 하늘 같이 여기는 호남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앞의 지인의 말에 내가 아무 소리 하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문제에 대해 아무리 설명을 해 봐야 통할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필요할 때 만나면 되는 ‘지인’에 불과했다. 때문에 굳이 그런 문제로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입을 다문 것이다.
하지만 인척 형님의 경우는 달랐다. 어차피 자주 봐야 할 처지였다. 그렇다면 그런 문제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번쯤 분명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가슴이 천근만근으로 무거워졌다. 거듭 말하지만 그들은 특별히 좌파적인 배경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은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개인 사업가로 우리 사회의 건강한 중산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단지 김대중의 주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종북주의적 대북인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논리나 이성, 북한공산집단에 대한 비판,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보다는 ‘슨상님 말씀’이 우선이다.
그리고 김대중은 그들을 믿고 합헌정부 전복을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다. 이건 악순환이다. 아마 김대중이 죽어도 그의 생각은 호남인들의 의식을 오랫동안 사로잡고 있으면서 대한민국을 갈등과 분열로 몰아넣을 것이다. 마치 악령처럼.....
(사족) 내가 지역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영남 출신도, 호남 출신도 아니다. 호남인들 중에도 이철승 총재, 남주홍 교수, 양동안 교수 같은 애국자들이 많다. 나는 그 분들을 존경한다. 반면에 영남 출신 중에도 노무현, 유시민 같은 자들이 적지 않다. 나는 그들을 미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