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 FTA범국본 행사 모습. 재범 간첩 출신인 민경우 FTA범국본 정책기획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 그 왼편으로 임종대 참여연대 공동대표, 문성현 민노당 대표, 오종렬 FTA범국본 공동대표, 문경식 FTA범국본 공동대표, 정광훈 FTA범국본 공동대표
[『지금은 500년 만에 온 변란(變亂)의 기회』]
홈페이지 : http://www.nofta.or.kr/
설립일 : 2006년 3월 28일 (회원수: 민노총, 민노당, 참여연대 등 300여개 단체)
주요인사 : 오종렬, 정광훈, 한상렬, 김세균(이상 공동대표), 김동규(정책위원장) 등
韓美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韓美FTA 저지를 목적으로 결집한 좌파단체의 연합체이다. 전국연합 등 NL계 핵심인사들이 주도한 이 단체는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로 사실상 간판만 바꿔달았다.
범국본의 주요활동은 물론 韓美FTA저지에 있었다. 이를 통해 노리는 목적은 소위 『변란(變亂)』이었고, 동원된 수단은 「폭력(暴力)」이었다. 예컨대 범국본은 2007년 4월13일 서울 명동은행회관에서 소위「韓美FTA타결무효화全國사회단체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범국본은 『11월 총궐기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5월·6월·9월 주요 거점 도시를 순회하는「세몰이」형 순회 집회를 통해 11월 중하순 대선시기, 총궐기투쟁에 나섬으로써 FTA를 쟁점화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행사에서 범국본 지휘부는 反FTA의 목적이 『변란(變亂)을 일으키는 데 있다』고 역설했다. 범국본 공동대표 정광훈은「여는 말씀」을 통해 『지금은 500년만의 온 기회이다. 변란(變亂)을 일으킬 기회』라며 『FTA는 세상을 엎어버리는 기회이다. FTA는 신제국주의·노예조약이다. 다 엎어버리고 맛난 세상을 만들자』고 선동했다.
이에 앞서 범국본은 2006년 11월22일 전국적 규모의 反FTA집회를 주도했는데, 7만4000여명(경찰추산)의 시위대는 전국 13개 지역 도청·시청까지 난입해 방화하는 등 폭동을 일으켰었다.
범국본은 이날 집회를 사전 기획했었다. 예컨대 범국본을 주도하는 전국연합은 같은 해 11월20일 상임집행위원회를 열고, 『투쟁을 저녁시간까지 지속하고, 도청·시청까지 진출해 강력한 항의투쟁을 전개한다』며 전국 13개 지역 시위일정 및 동선(動線)까지 자료집에 기록했었다.
치밀한 준비를 거친 시위대는 집회 당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전국 도청과 시청을「기습공격」했다. 폭동 직후 경찰은 사전 준비된 각목, 죽창, 쇠파이프, 술병, 돌 등 1300여 점의 不法시위용품을 회수했다.
범국본 지휘부는 물론 대다수 실무진 역시 전국연합 등 친북(親北)단체 구성원들이었다. 전국연합은 『국가보안법철폐-주한미군철수-연방제통일』를 주장하는 등 북한의 對南노선에 호응해 온 단체이다.
범국본은 우선 전국연합 대의원(15기, 2006년)인 오종렬(吳宗烈. 전국연합 상임의장)·정광훈(鄭光勳, 민중연대 상임대표)·문경식(文庚植. 全農 상임의장)이 상임대표로서 지도부를 구성했다.
전국연합 대의원(15기)인 한충목(통일연대 집행위원장), 박세길(전국연합 집행위원), 장대현(민중연대 조직위원장), 김지현(민중연대 자주평화위원장), 안지중(전국연합 사무처장), 주제준(민중연대 사무처장), 김재윤(전국연합 사무국장), 김동규(민중연대 정책국장), 전기환(全農 사무처장), 최재관(全農 정책위의장)은 FTA범국본에서 각각 집행위원장, 교육특위위원장, 조직투쟁팀장, 조직투쟁팀원, 공동상황실장, 공동상황실장, 소식지편집팀장, 정책기획팀장, 농축수산대책위위집행위원장, 정책기획팀장을 맡고 있다.
전국연합 대의원은 아니지만 전국연합과 동일한 노선을 지향하는「통일연대」와「민중연대」의 간부인 박석운(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정보선(통일연대 문예위원장), 정관영(전북 통일연대 조직부장), 이대영(대구경북 민중연대 집행위원장), 이영복(대전충남 통일연대 집행위원장), 양지윤(충남 민중연대 상황실장), 강석헌(경기 민중연대)은 FTA범국본에서 각각 집행위원장, 문예팀장, 전북본부 사무국장, 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 대전충남본부 집행위원장, 충남본부 상황실장, 경기본부 상황실장의 직책을 맡고 있다.
통일연대와 민중연대는 『국가보안법 철폐-주한미군 철수-한미동맹 파기-6·15선언실현』을 주장해 온 단체로서 2005년 9월11일 『미군 강점(强占) 60년을 철거하자』며 인천맥아더동상 파괴폭동을 주최하기도 했다.
인적구성에서 확인되듯 FTA범국본은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가 그대로 옮겨 온 단체라고 볼 수 있다.「OO위원장」 등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의 직책(職責)이나 지역(地域)도 대부분 FTA범국본에서 똑같이 사용했다.「대전충남 통일연대 집행위원장」이「FTA범국본 대전충남본부 집행위원장」을 맡는 식이다. 북한의 對南노선에 호응해 온 세력들이「변혁(?)」의 일환으로 FTA반대를 선동한 셈이다.
범국본은 재범(再犯)간첩 출신인 민경우(閔庚宇) 통일연대 前사무처장이 실무기획을 담당했다. 閔씨는 범국본에서 정책기획팀장을 맡아 反FTA투쟁의 운동논리(?)를 만들었다. 예컨대 2007년 3월28일 정세분석에서는 『韓美FTA는 3월 투쟁을 계기로 점차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계선으로 등장하고 있다』며 『이는 민주노동당과 진보민중진영이 韓美FTA를 고리로 대선(大選)국면을 주도할 수 있는 유리한 여건이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閔씨는 국가보안법상 간첩 혐의로 두 차례나 실형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1997년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가 1999년 대통령 특사로 석방됐다. 5년 뒤인 2003년 다시 간첩 혐의로 구속됐지만 형기의 3분의 1을 채울 무렵인 2005년 8월15일 刑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함께 복권을 받았다.
[국가보안법 폐지 국민연대]
[『국가보안법을 관에서 꺼내 다시 살리려는 발상을 거두어야 한다』]
설립일 : 1999년 2월 28일(회원수: 300여개 좌파단체)
주요인사 : 권낙기, 권오헌, 김세균, 오종렬, 정현백, 한상렬, 최열, 황석영(이상 공동의장단)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이하 국민연대)는 국가보안법의 완전 철폐를 목표로 한 좌파단체들의 연합체이다. 단체는 100만인 서명운동, 단식농성, 대중집회, 기자회견, 공청회 등을 통해 2004년 무렵 국보법 폐지를 위한 집요한 여론몰이를 진행해 왔다.
이 단체는 2004년 8월10일 성명에서 『국가보안법과 공안통치기구가 지배하던 시대와는 단호하게 결별할 때가 되었다. 진작 죽었어도 시원치 않은 국가보안법을 관에서 꺼내 다시 살리려는 발상을 거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2008년 12월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국가보안법 제정 60년에 즈음한 선언문 발표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이 지배한 60년은 국민들의 의식 속에 아직도 「빨갱이」에 대한 공포를 남겨 놓았다』며 『사상과 표현의 자유마저 부정하는 국가보안법은 민주사회와 결코 양립할 수 없다』고 했다.
국보법폐지국민연대는 이적단체 지원에도 앞장서왔다. 2009년 5월7일 국가정보원 앞 기자회견에서는 『6.15와 10.4선언을 부정하여 남북관계를 파탄국면으로 몰고 가고 있는 이명박 정권이 남북(南北)민간 급 교류와 협력마저 완전히 차단하고, 진보적 통일 활동 일체를 불법화 하려는 것』이라며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범민련 남측본부에 대한 공안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17대 국회 제1의 역사적 책무는 국보법 완전폐지』]
홈페이지 : http://minbyun.org/
회원수 : 변호사 500여명
1988년 5월 28일 설립
주요인사 : 천정배, 강금실, 김창국, 이종걸, 임종인, 최재천, 김승교 등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하 민변)은 80년대 이후 반체제적 좌파운동 세력 중 법조계 종사자들의 결집체이다. 좌파적 활동에 대한 확신을 가진 활동가를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폄훼(貶毁)하는 활동과 좌파단체 및 좌파인사에 대한 법률지원을 맡아 왔다. 소속 변호사들 중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고위직 및 국회의원들이 많이 배출됐다.
민변은 △국보법폐지 국민연대, △한미FTA저지 범국본, △이라크 파병반대 국민행동, △평택범대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민변의 주요활동은 무엇보다도 국법폐지 투쟁이다. 예컨대 민변은 2004년 10월12일 논평에서 『대체입법안은 국가보안법을 제1조에서 제5조까지의 내용을 그대로 오려붙인 것과 같다』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도록 토론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 논의를 진행하라』고 주장했다.
2004년 12월27일에는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보법 폐지 시한부 철야 단식 농성을 전개했다. 이들은 『17대 국회의 제1의 역사적 책무에 속하는 국가보안법의 완전한 폐지』 운운하며 『국가보안법의 완전폐지 이외의 어떠한 여야의 정치적 타협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은 국보법 위반사범인 강정구, 송두율 및 한총련 비호에도 앞장서왔다. 2003년 10월 22일 성명에서는 『이번 검찰의 (송두율) 구속영장청구는 선처를 조건으로 한 전향을 검찰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강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며 송두율 구속 수사를 규탄했다.
2005년 10월13일 논평에서는 강정구 동국대 교수 건과 관련,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보안법은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학문,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동안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요구해 왔다』고 주장했다.
2003년 8월7일에는 한총련 미군기지 난입과 관련, 『이번 시위는 우리에게 한반도에 드리운 위험의 실상을 분명히 알리고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의 중요성을 다시금 인식시킨 것』이라며 『이번 시위를 계기로 한총련 합법화의 기류를 가로막으려 하는 사회일각의 태도에 대해 심히 우려한다』고 주장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좌익(左翼)계 親日派는 빼버린 「親日인명사전」』]
홈페이지 : http://www.minjok.or.kr/
설립일: 1991년 2월27일.
회원수 : 교수 등 2천여 명 참여
주요인사 : 이돈명 명예이사장(변호사, 前 조선대 총장), 김병상 이사장(前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임헌영 상임이사(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윤경로 이사(前 내일신문 편집국장)
민족문제연구소(이하 민문연)는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민간(民間) 연구단체이나, 실제 친일문제를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폄훼(貶毁)하고 건국 및 산업화 주도세력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 왔다.
이 단체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참여단체이며, △한미FTA저지범국본, △탄핵무효범국민행동,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한 바 있다.
민문연의 사상적 편향성은 이 단체 주요 활동인 친일인명사전(이하 사전) 편찬에서 확인된다. 이 단체가 2008년 4월29일 편찬한 사전의 경우, 좌파(左派)의 친일(親日)은 덮어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친일(親日)은 침소봉대하는 방식을 취했다. 예컨대 사전은 일제 말기 징병을 권유한 글까지 썼던 여운형(呂運亨, 1886~1946)은 친일파(親日派) 명단에서 빼버렸다. 반면 1905년 11월20일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명문을 남겼고 이후 애국계몽운동을 벌여 온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은 1916년 일본총독 부임을 환영하는 넉 줄짜리 한시를 썼다는 이유로 친일파(親日派)에 포함시켰다.
두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여운형은 좌익(左翼)계열, 장지연은 민족(民族)계열이라는 점이다. 여운형의 친일(親日)행적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43년 일제가 출간한 「반도학도출진보」라는 책에는 여운형의 「반도 2500만 동포에게 고하는 글」이 수록돼 있다. 이는 학생들이 일제징병에 자진참여하라는 내용이다.
같은 책에는 안재홍(安在鴻, 1891~1965)의 글도 수록돼 있는데 안재홍의 글에는 『담(談)』, 여운형의 글에는 『수기(手記)』라고 표시돼 있다. 안재홍 같은 이는 마지못해 말로 했지만 여운형은 직접 손으로 썼다는 뜻이다.
해방 후인 1847년 「대동신문」은 『일제 때 여운형의 충성.,.친일(親日)의 활증(活證)을 보라』는 제하(題下)의 기사에서 여운형의 친일(親日)행적을 규탄했다. 당시 조선공산당 자료집을 보면 『여운형은 학도지원권고문 발표하고, 총독부와 밀접하여 김태준 등을 전향하게 했다』며 『친일(親日)분자라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내용이 나온다.
사전은 박정희 前대통령을 만주 육군훈련학교를 나와 만주군 보병중위로 복무했다는 이유로 친일파(親日派)에 포함시켰다. 반면 일본 고위 장교 출신인 고종(高宗, 1852~1919)의 손자 「이우」는 친일파(親日派)에서 배제시켰다. 「이우」는 일본 육사를 나와 육군 중좌(중령)까지 지냈던 인물로 33세 때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죽었다.
언론사학자인 정진석(鄭晋錫)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좌파들이 박정희의 親日 운운하는 데 대해 『국가정통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친일(親日)문제를 정치적 무기로 삼고 있다』며 『마음에 안 맞는 이들의 친일(親日)에는 현미경을 들이대고, 그렇지 않은 이들의 친일(親日)은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는 『당시를 살아보지도 않은 이들이 이데올로기로 상대방을 재단하며, 점점 더 親日派에 가혹해진다』며 좌파들이 주도하는 親日청산이 역사왜곡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민문연은 좌파인사들이 대거 포진해있다. 민문연 이사인 김희선 前열린우리당 의원은 91년 이적단체인 범민련남측본부 창립준비위원을 거쳐 92년 친북단체인 「전국연합」 통일위원장을 역임했다.
민문연 지도위원 리영희 교수는 2003년 11월22일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남한체제의 사회주의적 변화를 통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지도위원 강만길 교수는 2003년 1월31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세미나세에서 『미국을 혈맹으로 보면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문연 지도위원 김남식씨(작고)는 2004년 7월9일 통일뉴스 기고 칼럼에서 『오늘의 북한사회는 선군(先軍)정치에 의해「주체혁명(主體革命)」의 위업(偉業)을 이끌어 왔다』며 『김일성 수령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는 조건에서 선군(先軍)정치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민문연 고문변호사는 이적단체로 판시된 실천연대의 대표 김승교 변호사이다.
[등록금넷]
[등록금 투쟁 명분 아래 뭉친 좌파연합체]
홈페이지 : http://edufree.tistory.com/
설립일: 2008년 2월19일 (회원수: 530개 사회단체)
주요인사: 박석운, 오종렬, 정광훈, 한상렬(사실 확인 요망)
등록금넷은 「대학등록금 대책을 마련한다」는 명분 아래 좌파성향 시민단체들이 조직한 전국적 네트워크이다. 등록금상한제, 차등(差等)책정제, 등록금내역서 공개, 후불제 등을 주장하고 있으며 등록금을 이슈로 내걸기 때문에 학생회, 학부모 등 사회적 지지 세력을 확보하고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학생 조직인 한총련 등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좌파진영에서 등록금 인상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만을 이용해 만든 단체이다. 실제 이를 주도하는 이들은 친북단체 전국연합, 통일연대, 민중연대를 이끌었던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박석운 등이다. 등록금넷은 2008년 광우병대책회의에 참가단체이기도 하다.
등록금넷 박석운 대표는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의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광우병대책회의 실무를 책임졌었다. 朴대표는 2006년 11월22일 서울과 대전ㆍ충남, 전남 등 전국 13개 지역에서 「한미FTA 저지 범국민 총궐기 대회」를 폭력 시위로 주도하고, 진압에 나선 경찰 일부를 다치게 한 혐의로 2007년 10월 구속된 바 있다. 朴대표는 2008년 8월 불법촛불시위 주동 혐의로 다시 구속됐으나, 같은 해 10월 보석으로 석방됐다. 그는 2009년 4월 16일 장자연 사건 관련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발을 당했다.
[문화연대]
[『국가보안법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영원히 惡일 뿐이다.』 ]
홈페이지 : http://www.culturalaction.org/
설립일: 1999년 9월18일
회원수 : 1천여 명
주요인사 : 강내희 대표, 운용진 집행위원장, 심광현 정책위원장(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황평우 문화유산위원장,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 이영욱(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위원장)
문화연대는 소위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을 계기로 결성됐다. 이 단체는 1999년 9월18일 창립선언문에서 『오늘날 가장 큰 문화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국가와 시장, 그리고 문화 제국주의(帝國主義) 세력이다. 문화연대는 국가기관과 자본에 의한 문화권력 및 자원의 독점 경향, 다국적 문화산업의 문화주권 침탈에 따른 문제점을 비판하고 시정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라고 주장했었다.
문화연대는 노무현 정부 시정 문화예술지원을 담당하는 문화예술진흥위원회 등 정부 주요 기관에 진출, 문화·예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좌파적 헤게모니를 창출해 왔다.
문화연대는 △국보법폐지국민연대 참가단체이며, △평택범대위,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등에 참여한 바 있다. 문화연대는 국보법폐지를 맹렬히 주장해왔는데, 예컨대 2003년 10월22일 송두율 관련 성명에서 『송두율 교수와 같은 냉전, 반공시대의 피해자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와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부터 조속하게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4년 7월22일 성명에서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겠다는 것은 우리에게 부여된 시대적 책임을 져버리는 행위이다. 악법은 법은 될 수 있지만, 결코 선이 될 수는 없다. 국가보안법은 과거에도 지금에도 영원히 악일 뿐』이라고 선동했다.
홈페이지에 소개된 이 단체의 2007년 활동내역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문화연대는 2007년 한 동안 한미FTA협상 중단 촉구 투쟁을 필두로 문신(紋身)합법화, 입시폐지와 대학평준화를 위해 투쟁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1월17일 『한미FTA 협상 중단 촉구 기자회견, 죽음의 협상 한미FTA 당장 멈춰라!』
3월6일 『NO FTA! 시청각미디어분야 개방반대 릴레이 연설 퍼포먼스 「Volume Up! 릴레이 확성기」』
3월10일 『NO FTA!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미FTA 반대행동』
3월19일 『한미FTA 고위급회담 중단 시청각미디어공대위 기자회견. 「아무도 너희에게 우리 삶을 내다 팔 권리를 위임하지 않았다」』
3월28일 『문화행동. 한미 FTA 반대 「봉투 행동단」』, 『한미FTA 반대 인권활동가 선언 및 경찰 폭력 불복종 선포식』
3월30일 『STOP FTA 한미FTA 협상 중단 촉구 시청각미디어공대위 기자회견』
4월1일 『기자회견 : 한미FTA는 무효다! 우리는 한미FTA 불복종을 선언한다! 노무현이 「결국」 방송을 죽였다!』
4월13일 『문화제 : 한미FTA 협상 무효 촛불문화제 「엡튀무효! 투쟁만발! 연대폭주!!」』
5월2일 『토론회 : 한미FTA 문화분야 협상 결과 평가 토론회 : 「왜 협상 무효를 말하는가!」』 5월31일 『문화행동 : 우리는 한미FTA를 반대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이러고 있습니다』
6월1일 『문화제 :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살아남은 국가보안법, 아직 서초동에 있다」 :이시우 평화사진작가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촛불문화제』
6월4일 『기자회견 : 미국 연방통신위원회가 한국 방송의 미래를 결정하나?』
6월26일 『제12회 문화콘텐츠 포럼 _ 「이시우작가의 찰라-포토저널리즘」』
6월26일 『문신(紋身)합법화를 요구하는 전국행진 출발 기자회견』
7월7일 『「저항의 문화를 논한다」 한국사회포럼 집회시위 문화 토론회』
7월10일 『새만금樂(락)의 즉각적인 중단을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7월13일 『토론회 : 오늘, 문신의 사회적 의미와 합법화의 과제들』
7월13일 『문신(紋身)합법화 국가인권위 진정 및 합법화 촉구 기자회견』
8월6일~9일 『녹색캠프 : 부안여름생태학교』
9월4일 『기자회견 : 역사 문화 · 환경, 파괴하는 서울시 재개발정책 규탄 한다』
9월8일~9일 『문화유산답사 : 일제 수탈의 현장 김제, 생태문화의 보고 부안』
9월8일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학벌철폐를 위한 자전거 전국일주 서울행진』
9월21일 『영화상영 : 추석특선명화 상영 「내 가족은 비정규직」』
10월27일 『노원구민들과 함께하는 1일 생태마당』
11월2일 『문화행동 : 「저항하는 이들의 문화를, 정치를!」 코스콤 비정규노동자와 함께하는 문화행동 시리즈』
11월11일~12일 『문화유산답사 : 광주! 근대 교육도시에서 민주 항쟁의 성지 및 담양 소쇄원』
11월24일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전국공동행동의 날!』
11월29일 『코비천막극장 : 비정규 철폐를 위한 상영회』
12월7일 『미끄럼틀 : 청소년과 함께 하는 두 번째 수다회, 「tell m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