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씨 활동모습. 한상렬, 정광훈씨 등과 함께 최근에는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1. 한국에서 좌파단체 대(對) 우파단체는 수적(數的)인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대다수 우파단체는 2002년 좌파정권 출범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수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안보(安保)단체들이지만, 좌파단체는 소위 통일·노동·환경·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며 수시로 연대(連帶)한다.
2. 「아스팔트 우파」로 불리는 우파단체들은 전문성(專門性. 물론 이것은 親北·反美·左편향적 선동능력이다.) 면에서도 떨어진다. 좌파단체들은 30~40대 청년들이 직업적으로 활동하지만, 우파단체들은 산업화 세대인 60~7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전업(專業)운동가를 갖춘 곳은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인터넷의 주류는 좌편향돼 있고, 집회용 찌라시를 만들어도 「좌우」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2005년 신(新)우파를 외치며 뉴라이트 운동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활동 역시 2007년 정권교체 이후 미미한 상태이다.
3. 한국의 좌파단체가 우파단체에 비해 여러 면에서 우세하지만, 그렇다고 난공불락(難攻不落)은 아니다.
우선 좌파단체들도 역사(歷史)가 길지 않다. 66개의 대표적인 단체들을 조사한 결과, 7개 단체를 제외하면 87년 소위 민주화(民主化) 이후 등장했다. 시기별로 보면, 노태우 정권 중 13개 단체가 만들어졌고, 김영삼 정권 당시 12개, 김대중 정권 당시 19개, 노무현 정권 당시 11개가 설립됐다. 좌파정권이 등장 이후 유사한 성향의 단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만개(滿開)하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권은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이적단체(利敵團體) 판시를 받은 단체들까지 지원했다. 예컨대 盧정권 下 통일부는 2006년 상반기 「서울청년단체협의회」가 금강산에서 개최한 「우리겨레청년새해맞이통일행사」에 4600만원을 지급한 바 있다. 「서울청년단체협의회」는 이적단체인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의 산하 조직이다.
실천연대라는 단체는 2006년 5월 「민간단체 공익(公益)활동 지원 사업」대상으로 선정돼 2008년까지 모두 1억 원을 지원받도록 결정됐고, 2006년과 2007년에 걸쳐 6천만 원을 지급받았었다. 실천연대 관계자들은 김정일을 향한 충성맹세문까지 작성하며 친북활동을 해오다 2009년 이적단체로 판시됐었다.
이상의 사실은 좌파단체들이 소위 민주화 이후 폭발적으로 탄생했고, 좌파정권의 집중적 후원 아래 성장해왔음을 뜻한다. 이 공식(公式)은 역으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려는 단체와 매체를 비슷한 기간, 유사한 방법으로 양성화시킬 수 있고, 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시장(市場)에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4. 좌파단체들을 난공불락으로 볼 수 없는 또 다른 특성(特性)은 「겹치기 출연」이다. 소수의 전업운동가들이 여러 단체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고문은 △한국진보연대 1기 공동대표 및 한국진보연대가 계승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의장을 비롯해 △미군학살만행 진상규명 전민족 특별조사위원회(전민특위), △우리민족끼리연방통일추진회의(연방통추),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계승연대), △국가보안법폐지 국민연대 등의 간부를 맡아왔다.
오종렬씨는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좌파단체들이 결집하는 소위 범대위도 주도해왔다. △2002년 여중생범대위(11월30일 조직. 대표 : 오종렬, 한상렬, 홍근수, 단병호, 천영세, 문정현), △2004년 탄핵무효범국민행동(3월12일 조직. 대표 : 오종렬, 이수호, 문규현, 박원순, 최열), △2005년 10월 反부시국민행동(상임대표 : 오종렬, 정광훈), 2005년 11월 전용철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문경식, 권영길), △2005년 평택범대위(공동대표 : 오종렬, 한상렬, 정광훈, 홍근수, 문정현, 문경식, 이정미), △2005년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 오종렬, 정광훈, 문경식)등 대부분의 좌파성향 범대위의 대표로 참가했다. 吳씨는 2008년 광우병국민대책회의에도 대표 급으로 참가했으나, 최근 「전문시위꾼」으로 국민들에게 많이 알려지면서 현재는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
吳씨와 함께 좌파단체에 단골로 나오는 인물이 한상렬, 정광훈, 박석운씨 등이다. 한상렬씨는 △통일연대 대표였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한국진보연대, △전민특위, △국보법폐지 국민연대,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겨레하나) 등의 대표 급으로 활동해왔다.
정광훈씨는 △민중연대 대표였고,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한국진보연대, △겨레하나 대표 급으로, 민중연대 집행위원장이었던 박석운씨 역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 △한국진보연대, △겨레하나,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급 및 실무책임자로 활동해왔다.
우파나 중도단체 중에는 서경석씨가 「기독교사회책임」, 「선진화시민행동」, 「지구촌나눔운동(부이사장)」등 복수단체를 이끌어왔으나, 좌파단체와 같은 「겹치기출연」의 경우는 많지 않다. 이상의 사실은 우파나 중도단체들이 여가(餘暇) 시간을 활용해 운동을 하는데 반해 좌파단체들은 직업적(職業的)으로 운동을 전개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좌파는 「프로」, 우파는 「아마츄어」적 성격을 갖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5. 2007년 12월 정권교체 당시 좌파단체들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대해져 있었다. 이들은 2008년 광우병 난동(亂動) 중 20년간 축적된 선동력과 동원력을 아낌없이 보여줬고, 불법·폭력·무질서를 일으키는 깽판세력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선거(選擧)를 통해 잃어버린 권력을 광장(廣場)을 통해 얻으려는 심산이었다. 이는 정부와 기업의 돈줄이 끊기는 것을 막기 위한 선수(先手)치기, 즉 비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한 「생계형 깽판」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공룡처럼 커버린 좌파단체들은 순수한 좌파와 거리가 멀어져 버렸다. 미국에도 소위 진보세력이 있고, 유럽이나 일본에도 공산당이 존재하지만 모두 법질서 테두리 내에서 활동한다. 국가와 체제를 부정하는 좌파단체는 선진국에서는 찾기 어렵다. 반면 한국의 좌파단체들은 2008년 광우병 난동 이후 확인되듯, 불법과 폭력, 거짓과 선동을 주요한 무기로 사용한다.
법치주의(法治主義) 회복이 선진국 진입의 절박한 과제임을 생각한다면, 좌파단체의 활동을 법의 경계선 안으로 끌어들이고, 건전한 시민사회단체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한국의 좌파단체가 북한정권의 대남노선과 직결돼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조선로동당의 평화적 해체에 의한 자유민주주의 통일」이라는 헌법적 결단이 실천되지 않는 한 좌파단체의 건강성 회복은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