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찾은 祖國(조국)의 5월은 잔인했다. 해방정국의 참혹했던 혼란상,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터져 나오는 남로당의 방화, 살인, 파업, 파괴의 폭력 테러로 숨가빴던 악몽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메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이 진정 내 조국 대한민국이 맞는가’라는 실망감은 비단 해외동포로서 느끼는 나만의 슬픔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더해 ‘대한민국’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짝퉁 브랜드로 전락시킨 노무현의 자살사건으로, 나라는 온통 적색 바이러스에 물들어 조문정국이 어느새 ‘이명박 대통령 타도’를 외치는 정치투쟁의 장으로 변한 상태였다.
자살이라는 범죄행위는 수치와 무책임, 이기적 행위의 극치에서 오는 반인륜적 행대로 비판과 방지의 대상이지 결코 미화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라는 온통 촛불과 勢(세) 확장의 투쟁장으로 변해 자살 미화작업에 영혼마저 마비된 기막힌 형국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한 때 최고 권력자였던 국가의 원로가 그것도 부정과 비리의혹으로 형사 처벌을 앞에 두고 투신자살 했다는 상식 밖의 행동은 그 가족에게는 물론 나라와 역사의 수치다.
아이러니한 것은 OECD회원 20개국 중 자살률이 가장 높다는 汚名(오명)을 벗기 위해 ‘자살방지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것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 때라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지도자 빈곤에서 오는 나라의 불행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 어떤 죽음이든, 죽음은 슬픔이고 안타까운 일이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지며 숙연해지고 고개가 숙여지는 법이다.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여옥 의원이 전하는 어느 외국 기업인의 말에, 노무현의 자살이 국가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화가 나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보며, 어떻게 대통령이 자살할 수가 있나 생각 했다. 대통령은 전직이든 현직이든, 이미 몸과 정신은 개인의 것이 아니다. 함부로 할 수도, 해서도 안 된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때로는 굴욕도 모멸도 견디는 것이 지도자다. 나는 정말 놀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지막 남긴 유서에 나라나 국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에서….”
.
그렇다. 그가 정말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대통령이었다면 그런 선문답식의 알쏭달쏭한 글 몇 줄로 유서를 대신 할 게 아니라, 국가와 국민에게 진심어린 사과와 용서의 글 한 줄쯤은 남겼어야 했다. 그것이 국가지도자로서 최소한의 도리고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그래서 그의 자살을 나라와 민족과 역사에 대한 배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지도자의 존재이유는 언젠가 찾아 올 비에 대비해 사람들이 쓸 수 있는 우산을 준비하는 것”이라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을 국가지도자들이 가슴에 새겼더라면 노무현의 자살 같은 국가적 수치와 불행은 없었을 덴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죽음을 팔아 이득을 챙기려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상주논자들의 파렴치한 작태다. 진정 그들은 사람이 가장 고통스러운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가.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것도 가장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배신감이 극에 달했을 때, 이성이 마비되고 감당키 어려운 정신공황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절망감에서 오는 자기존재의미의 상실로 가슴이 짓눌릴 때 택할 수 있는 수단의 하나가 자살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결코 노무현의 자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동경대학의 김상중 교수가 그의 저서 ‘고민하는 힘’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노무현은 사람이 지닌 ‘마음의 암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다.
이 상주논자들이 파렴치하고 뻔뻔스럽다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두 가지 예를 들어 보자.
부정과 비리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던 노무현을 향해 “청와대 안의 돈거래가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이라는 기치를 내걸었던 (그의)위선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 말문이 막힌다”며 몰아세운 세력이 바로 지금의 상주논자들이다. “그(노무현)가 역사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란 자신이 뿌린 환멸의 씨앗을 모두 거두어 장엄한 낙조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라며 자살로 내몬 자가 바로 당신들이 아닌가. 이것은 분명 ‘자살교사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다. 그러고도 저들 특유의 덮어씌우기 수법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과를 요구하며 타도를 외쳐대는 태도는 전형적인 공산당 수법과 닮은꼴이라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하기야 원래 민주당이란 집단이 국제사기黨(당) 아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국회에서 세계를 향해 의사당 기물을 부수며 의원직 총 사퇴를 선언한 그들, (나는 그 난동장면을 뉴욕에서 TV뉴스를 통해 생생하게 보았다) 그런데도 금배지는 여전히 그들 가슴에서 번득거리지 않는가. 그렇게 큰 사기를 치고도 말이다.
그런 가운데 때를 만난 듯, 전매특허인 內亂(내란)선동 발언으로 나라를 어지럽히고 반역질을 하는 노추는 정말 암적 존재다. 김대중과 대한민국의 악연만큼 끈질긴 악연도 없을 것이다. 그간의 거짓말 행각과 對국민 사기극은 헤아릴 수 없지만, 이것만은 꼭 집고 넘어가고 싶다.
김정일을 식견 있는 지도자라며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은 없다고 내뱉은 허튼 소리와, 북이 핵을 개발하면 책임을 지겠다고 한 對국민사기극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런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국민의 권리고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정부의 의무다. 그는 “약속을 안 지킨 일은 있어도 거짓말한 적은 없다”던 그 입술로,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를 대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민의 용서는 물론 역사의 용서도 받을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죽음이 가까울수록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 온 인생을 돌아보고 자기반성과 참회의 여생을 설계한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살아있는 동안, 지금까지 잘못 살아 온 인생에 대해 고해성사를 하고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서죄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참회하는 마음으로 단 한번 만이라도 어둠의 자식 김정일을 위해 울지 말고, 진리의 편에 서서 대한민국을 위해 울어 줄 수는 없는가.
오늘의 이런 국가혼란을 가져 온 책임에 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도 자유로울 수 없다. 밖에서 듣던 조국의 현실과 와서 직접 보고 느낀 것에는 꽤 차이가 있었다. 李대통령의 지지도와 신뢰도가 2007년 대선 때의 3분의 1정도만 유지되었더라도 오늘과 같은 혼란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감정은 싸늘했고, 대통령에게서 느껴져야 할 카리스마는 그 어디에서도 느낄 수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혼란과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은 뛰어난 국제감각과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 그리고 정의를 믿는 기독교적 신앙과 그의 카리스마적 존재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안다. 물론 통치스타일이 다를 수도 있다. 허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란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닐까. 지도자의 카리스마란 엄격한 법집행으로 국가와 사회혼란을 막고, 탁월하고 균형 잡힌 리더십으로 국민통합을 이룬 바탕 위에서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 되었을 때 스스로 주어지는 것으로 생각 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불법 폭력집단의 쇠파이프와 죽창이 공권력을 위협하고, 경찰차를 부수며 거리낌 없이 정부타도를 외쳐대는 가운데 경찰이 두들겨 맞아 눈알이 튕겨 나올 정도인데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집행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정부로 보였다.
미국에서 한국에서와 같은 불법 폭력집단이 공권력에 도전하며 경찰의 생명을 위협한다면 그 현장에서 사살된다. 그렇다고 미국을 독재국가라고 떠드는 정신병자는 없다. 법집행을 제대로 하고 공권력이 살아 있는 국가가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청와대 뒷동산에서 ‘아침이슬’을 감상하는 문학소녀 같은 순진함(?)에서 벗어나 대통령 자리로 돌아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성공한 대통령의 길이 열릴 것이다. 그것만이 본인도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 한다.
나는 결코 이 조문정국을 순수한 조문행사로 보지 않는다. 가장 엄숙해야 할 국민장의 국제 조문단 앞에서 “이명박은 사과 하라”며 현직 국회의원이란 자가 난동을 부리고, 소위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대한문 주위가 온통 현 대통령에 대한 저질 욕설과 정부타도구호의 도배를 이루고 있는 이 정치 선동장을 어떻게 조문정국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런 난동을 부리고도 버젓이 국회의원 직을 유지하고, 국가 공권력이 불량전단지 하나 제대로 수거 못하는 이런 나라를 어떻게 독재국가라고 사기를 치는지,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조문정국의 혼란이 李대통령으로 하여금 강한 통치력으로 법치를 바로 세우고 국정혼란의 뿌리를 뽑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20만 표, 50만 표를 가지고도 저들 하고 싶은 것 전부를 하고 갔는데, 1300만이라는 엄청난 표의 힘을 주었는데도 어쩌다 청와대 뒷방에서 촛불구경이나 하고 앉은 나약한 대통령으로 비쳐지는지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심정이다.
李대통령에게 진보 신학을 대표하던 ‘라인홀트 니이버’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도덕적 인간들 사회에서는 사랑이 유효할지 모르나 비도덕적 사회에서는 힘으로 힘을 제압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니이버의 충고에는 분명 귀담아 들어야 할 어떤 역사적 교훈이 담겨 있지 않을까. “전쟁을 피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국가의 불행을 방지하기 위한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어떨지 한번 생각해 보는 것이다.
法집행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정부
- 최응표(뉴욕거주회원)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09-07-01, 13: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