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현대건설이 아니다"

영남일보 趙甲濟 대표 특별 인터뷰
조갑제 'MB, 대한민국과 현대건설을 구분 못하는 것 같다'

北과 긴장완화 차원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조갑제를 애워싼 몇 가지 단상

 지난주 대구에 온 조갑제씨(조갑제닷컴 대표, 前월간조선 편집장·65)를 영남일보 7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기자는 그의 이름 앞에 아무런 수식을 달고 싶지 않았다.

'자연인 조갑제'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보수와 진보, 좌와 우란 용어가 시대착오적이란 생각 때문이다. 대신 반정부적인 굵직한 탐사보도물로 우리 언론사에 나름의 발자취를 남긴 그가 왜 '보수논객'으로 터닝하게 됐는지 그 속내를 알고 싶었다.

 기자는 그를 인터뷰하기 전 무작위로 일반 시민과 지인, 친척 등에게 전화를 해봤다. 조갑제의 대중적 인지도와 좌우이념논쟁에 대한 반응을 알아본 것이다.

 살림만 사는 한 인척은 조갑제가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념 논쟁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교수, 기자, 정당인 등에겐 익숙한 인물인지 몰라도 조갑제는 일반인들에겐 '흐릿한' 존재였다.

기자가 아는 한 정치학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논객·정객들, 말 갖고 밥 먹고 살아야 하는 자들이잖아요. 말로는 무슨 말을 못해요.

원래 있는 자들은 더 가져가려 하고, 없는 자들은 더 내놓아라고 하잖아요.

더 달라고 하는 사람이 덜 주려는 세력이 되면 그가 또 더 주려고할 지 모르겠네요.'

 보수 속에도 보수의 정책에 불만을 품는 '진보적 보수'가 있고 진보속에도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적 진보'가 있다.

 참 보수라면 진보의 장점을 장점이라고 인정하고 진보도 보수의 장점을 인정할 때 멋진 정책대결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조갑제는 지방대(부산 수산대 중퇴)를 다녔고, 부산의 국제신보(現국제신문)에서 출발, 자수성가한 기자다.

 그런 그가 요즘은 '의병'처럼 국민행동본부와 행동을 함께하면서 김동길씨 등과 시국강연장을 돌고 있다. 연일 진보진영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진보진영은 그를 '보수골통' '정신병자' '대화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는다.

 그도 물러서지 않는다. 촛불집회에 가는 부모를 겨냥, '아이를 데리고 포르노 영화관에 가는 처사'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나는 누구의 편이 아니다. 사실의 편이다
그 어떤 좌파보다 MB를 매섭게 공격할 때도 있고
우파의 그 누구보다 칭찬해주기도 한다

헌법적으로 볼 때 북한은 反국가 집단이다
그런 세력과 통일을 논의한다는 것은
형사와 살인범이 의형제를 맺는 거나 마찬가지다

보수논객·보수골통? 난 그냥 '기자 조갑제'다
보수가 정직성을 잃을 때 골통이 되는데 난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

 ◇…내가 진짜 진보세력이다

 -얼마전 [KBS 단박 인터뷰]에서 자신을 '거짓말 킬러' '진짜 진보세력'으로 규정했는데.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진실은 늘 충격적이고 자극적인 법이다. 내 말을 독설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진실과 사실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나야말로 진짜 진보세력이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가령 나라를 세운 이승만, 근대화를 이룬 박정희, 그 외 민주화 세력, 산업화 세력 등 최빈국 대한민국을 근사한 나라로 가는 데 일조한 자들이다.'
 
 -예전에는 박정희 정권에 대들고, 각종 정치적 커넥션, 조작·음모설의 배후를 섬뜩할 정도로 파고들어 대한민국의 손꼽히는 '반골기자'였는데, 어떻게 '우국지사형 논객'으로 시국강연장으로 나가게 됐는가.
 '나는 사실주의자다. 사실과 사실이 아닌 걸 분석하고 파고드는 걸 삶의 보람으로 안다. 처음 사회부 기자 시절에는 사회적 비리부터 파고들었다. 중금속오염, 포항 유전이 경제성이 없다고 폭로했고 점차 군부독재의 허위를 밝히고 싶어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反박정희 노선에 참여했다. 1980년엔 신군부의 만행을 취재하기 위해 광주로 단독 잠입 취재를 하다가 해고를 당했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는 판단을 하고 91년부터 북한문제를 취재하면서 남한내 좌파세력의 실상을 알리고 싶었다. 10년전부터는 국가안보가 위태롭다 싶어서 시국강연장을 돌기 시작했다.'
 
 -그럼 현재 노선을 계속 갈건가.
 '나는 누구의 편이 아니다. 그 어떤 좌파보다 이명박을 매섭게 공격할 때도 있고 우파의 그 누구보다 칭찬해주기도 한다. 사실을 따라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평생 이념논쟁만 할 사람도 아니다. 요즘 내 관심은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만드는 방법 모색이다.'
 
 -보수 논객, 보수골통이란 지적에 대해.
 '난 그냥 기자 조갑제다. 보수논객 조갑제란 표현은 맘에 들지 않는다. 논객은 일제시대의 말로, 할 일 없이 글이나 걸쩍대는 사람이란 뜻이다. 극우란 말도 체제를 지키기 위해 폭력을 쓰는 것이란 말인데 과거 서북청년단 정도가 그 표현에 맞다. 보수가 정직성을 잃을 때 골통이 되는데 난 정직성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성은 뭔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가 내 이념이다. 난 보수주의자이기도 하다. 진정한 보수는 반드시 개혁적이고 진보적이다. 좌파는 독선적이고 주기주장만 하기 때문에 자기 개혁에 실패한다.'
 
 -이명박 초기내각을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것 같은데.
 'MB는 법대로 안한다. 용기가 부족하고 이념을 경시하는 지도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대한민국과 현대건설을 아직 구분 못하는 것 같다. 반국가 세력을 법으로 다스리지 못해 다른 성과가 희석되고 있다. 법치가 안되면 다른 경제적 실용노선도 다 흔들린다. 지금이라도 시청 광장 등 도심에서의 불법 시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고 말하면 지지율이 다시 올라갈 거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우익와 좌익, 보수와 진보를 어떤 개념으로 보는가.
 '한국은 유럽처럼 좌우 분류가 잘 안된다. 남북한이 체제 경쟁을 하고 있는 탓이다. 좌우익 논리로 가면 답이 안나온다. 답은 명확하다. 대한민국 국법(헌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현재로선 다 좌익으로 규정한다.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분류할 때 한국 지성인 그룹을 한국헌법추종자와 북한노동당정권 추종자로 분류하고 싶다. 아쉽게도 우린 그 중간지대가 없다.'
 
-북한은 어떤 존재인가.
 '헌법적으로 볼 때 북한은 반국가 집단이다. 당연히 그들과 내통하는 자는 반국가 세력이다. 그런 세력과 통일을 논의한다는 것은 형사와 살인범이 의형제를 맺는 거나 마찬가지다. 절대 노동당이 있는 이상 북한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물론 북한 주민까지 미워하는 건 아니다. 긴장완화 차원의 문화적·경제적 교류는 할 수 있다.'
 
-최근 시국강연장에 나이든 분들이 유독 많이 모이는데 뭔가 문제 있다고 보지 않는가.
 '나도 그 점에 대해선 책임을 통감한다. 70년대까지는 그런대로 기성세대가 젊은이 교육을 잘 했는데 8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주화 운동 과정에 교육시킬 때를 놓쳐버렸다. 하지만 그걸 나혼자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가. 그건 우리 같은 단체가 할 일이 아니라 현 정부가 책임져야 된다.'
 
-이념에선 편이 갈라지는데 왜 좋은 예술 앞에선 모두 한 맘이 되는가.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걸 보고 들으면 마음이 착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여기서 우리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진선미 순으로 뭘 가르친다. 나는 아름다운 게 뭔가를 가르치고 난 연후에 참되고 착한 걸 가르쳐야 제대로 양식있는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진선미가 아니고 미선진 정도로 바꿔졌으면 좋겠다.'
 
-한국 기자를 보면 요즘 무슨 생각이 드는가.
 '기자는 사실, 소문, 거짓말을 구별하는 전문가다. 그러기 위해 기자는 신념보다 사실을 더 중시해야 된다. 그런데 좌파는 사실을 자신의 신념에 종속시킨다. 그러니 자꾸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다. 기자 생활 39년 동안 네 가지 수칙이 있었다. 일단 사장을 대하듯 수위한테도 같이 대한다. 오만하지 말자는 뜻이다. 문장은 정확하고 간단하고 짧게 적는다. 많이 쓰자, 또 사실이 신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 그런데 지금 한국에 기자가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또한 능력에 비해 너무 과대 평가되어 있는 것 같다. 기자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요즘 30대 초반에 마이크 잡고 설교하듯 하는 오만한 방송 기자를 보면 기가 막힌다.'
 
 -자유와 평등의 관계는.
 '자연계 생명의 본질이 바로 자유이다. 그런데 우린 자유와 평등을 동급으로 보는데 아니다. 평등은 자유 안에 포함돼 있다. 자유로워져야 평등해질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자유는 맘대로 이동할 자유인데 북한은 그게 없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그는 청송군 안덕면에서 태어나 9살 때 부산으로 왔다. 부산 수산대도 중퇴했다. '학력 콤플렉스 때문에 극렬한 언사를 던지는 게 아니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당신이 내가 아닌 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냐'며 자기는 치열하게 살기 때문에 그런 열등감이 깃들 겨를이 없다고 했다.

 군부정권 비판 기사로 두 번 해고 당했고 이후 신문을 떠나 월간 마당을 거쳐 월간 조선 기자가 된다.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 겸 월간조선 편집장으로 있다가 2004년 4월 월간조선을 나와 자신의 이름을 딴 조갑제닷컴를 설립, 현재 그 대표로 있다. 서울 북아현동에 살고 있는 그는 요즘도 종로구 신문로 1가 광화문 오피시아 1729호 사무실에서 하루에 평균 200자 원고지 40매를 소화한다.

 인터뷰 내내 그의 표정은 돌 같았다. 할 말만 했다. 친구들도 오래 사귀어봐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한단다. 그는 자신이 정의감도 있고 또한 명예욕도 상당하다고 했고 그렇지만 도덕적인 인물로 비치는 걸 싫어했다. 그는 여행광이고 야구광이다. 잡기는 못하고 영화는 잘 본다. 운전도, 고스톱과 바둑도 못 한다. 골프는 안 친다. 술은 참 약하다. 맥주 한 병 정도다. 18번 노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 안다성의 '사랑이 메아리칠 때', 박인희의 '세월이 가면' 등이다.

기자는 그와 헤어지면서 그의 뒷모습을 유심히 봤다. 그는 오른발을 먼저 디뎠다. 그 다음 왼쪽 발을 또 한 걸음 성큼 내디뎠다. 그래서 안도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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