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 채택을 계기로 파병방침을 밝히고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파병반대론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이 제기하는 파병반대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논거들에 대해 살펴보자.
경직된 반전(反戰)주의
우선 이라크전쟁은 원초적으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반전(反戰)의 연장선에서 당연히 추가 파병 또한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개전을 전후하여 반전의 주 근거들은 '유엔의 승인을 받지 않았다', '미국이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말하지만 본질은 석유 이권에 있는 만큼 부당하다', '전쟁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서 엄청난 인명피해가 예상된다',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연관되었다는 증거가 희박하다'는 등이었다. 물론 어떠한 전쟁도 무조건 반대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특히 미국이 하는 전쟁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반미론도 존재했다.
그런데 전쟁과 전후복구의 과정을 거치면서 이런 일종의 가설들 중 대부분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전쟁은 사상 유례없는 최소의 인명피해를 낳고 조기에 끝났으며, 대다수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의 동상을 끌어내리며 독재로부터의 해방을 환영하였다. 미국의 석유이권 운운 또한 아직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이라크 전후복구를 위해 엄청난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서 꺼내놓고 있으며, 유전 개발권은 이라크 과도정부와 향후 들어설 新정부에 의해 행사된다는 원칙이 여러차례 확인되고 있다. 유엔의 승인문제 또한 비록 사후적이지만 이번 결의를 통해 사실상 이루어진 셈이다. 다만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증거만이 명백한 것들이 아직 발견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커다란 상황변화 혹은 명확화로 인해 반전이라는 입장을 전후의 제반문제의 판단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쉽지 않게 되어 버렸다. 즉 백보양보해서 이라크 전쟁이 부당한 전쟁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전쟁이 끝나고(주요전투의 종결) 후세인 체제가 몰락한 상황에서는 이라크 국민들의 이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유엔의 이라크 결의안을 놓고 반전3국이라 불리는 프랑스, 독일, 러시아가 찬성표를 던지고 반미국가인 시리아조차 찬성표를 던진 것은 이런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유엔의 결의안 통과에 대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은 '이라크 국민의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선택'이라고 표현하였다. 과거 전쟁에 대한 찬반 입장을 가지고 자존심 싸움을 하는 졸렬함에서 벗어나 이라크 국민의 이익이라는 하나의 대의에 공감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반전3국의 현실주의적 태도변화와 여전히 과거 반전 입장에 집착하고 있는 한국의 NGO들간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이를 실용주의적 유연성과 경직성의 차이로 볼 수도 있겠고, 원칙을 고수하는 NGO와 외교라는 영역의 현실정치의 차이를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책임성에 대한 문제 또한 게재되어 있다고 보인다. 반전3국의 경우 이라크 전후문제 해결을 어렵게 발목만 잡는다는 비판이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반면 국내의 NGO들은 자신들의 발언이나 행동이 현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책임'의 해이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다.
파병반대는 평화주의를 추구하는가?
둘째로 이라크파병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항상 '평화주의'를 앞세우고 자신들만이 평화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이라크 파병반대가 어떻게 이라크 평화에 기여하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 다른 설명은 없다. 사실 설명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들은 전면에 내세워 주장하지는 않지만 빨리 미군이 철수하고 이라크를 그냥 방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지금 이라크를 국제사회가 방치하면 과연 이라크에 평화가 찾아올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갈등, 쿠르드 분리주의, 후세인파와 반후세인파들 사이의 정파투쟁 등으로 인한 끝없는 내전은 아주 쉽게 예측할 수 있다. 현재 과도정부가 있다고는 하지만 군대와 경찰과 같은 자체의 물리력을 충분히 갖지 못한 상태에서 이라크는 즉각적으로 무정부상태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상식이다.
이들은 이런 자기논리의 딜레마를 벗어나고자 이라크의 상황이나 민심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현재 이라크 상황을 마치 베트남전처럼 보는 시각이다. 반미세력이 이라크를 장악하는 것도 이라크 평화와 안정의 하나의 대안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세력은 주로 1)후세인 잔당, 2)알 카에다, 3)팔레스타인이나 레바논 등지를 근거지로 하는 이슬람 과격파와 아랍 급진민족주의세력, 4)이란의 지원을 받아온 시아파 무장투쟁 조직, 5)자생적 시아파 과격세력으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이중 어떤 세력도 베트남에서의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나 북베트남 공산당과 같은 대의 명분, 국민을 통합할 이념이나 군사력, 대중지지기반을 가진 세력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은 상호 간에도 잠재적 갈등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서로 싸울 가능성을 갖고 있다. 더구나 자생적 시아파들은 수니파에 대한 견제가 우선이지 반미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결국 이들 중에 집권능력을 가진(이라크의 장래를 맡겨도 되거나, 맡을 수 있는) 세력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으며 한마디로 이들은 이라크의 안정을 위협하는 테러 집단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라크는 구소련이 손을 뗀 후 만성적 악성 내전에 빠졌던 아프가니스탄이나 미국 등이 한때 손을 뗀 소말리아와 같은 유형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병반대론자들은 이들의 테러에 대해 대단히 온정적이고 심지어 이들이 반미세력이라는 점에 대해 동류의식까지 느끼는 것 같다. 결국 파병반대론의 본질을 해부해보면 평화주의라든지, 이라크 국민의 이익을 생각한다든지 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맹목적인 반미주의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반미주의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이라크의 안정도 국민의 이익도 안중에 없게되는 것이다.
한편 이라크 민심에 대해서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이라크에서 자행되는 테러는 여러종류가 있지만, 알카에다와 팔레스타인 이슬람급진파들의 테러는 이라크 민심과는 거의 무관한 것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미군을 찾아 이라크에 온 것뿐이다.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의 테러 또한 이라크의 안정을 가장 싫어하는 이란의 공작적 측면이 매우 강하다. 더구나 후세인군대가 질서 정연한 항복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있는 것도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이유이다. 웃지 못할 일들은 미군이 직장을 주지 않는다고 무력시위를 하는 식의 이른바 민생관련 시위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이라크에 여러 종류의 반미테러와 시위가 있지만 기본적인 민심은 미군정과 과도정부라는 현 체제의 안정을 바라는 쪽으로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바그다드에 사무소를 개설한 갤럽이 얼마 전 바그다드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71%는 미군이 수개월 내에 철수해서는 안 된다고 응답했으며 21%만이 조기 철수를 요구했다고 전했다. 반미저항이 가장 심한 바그다드에서 이런 결과를 얻었다면 이라크 전체로 따지면 민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있다.
이라크 상황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마지막으로 이라크의 상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파병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상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우리군의 인명손실을 우려해서 파병을 반대하는 정서는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파병반대론자들이 대중들의 이런 정서를 이용하기 위해 이라크의 불안정성을 과장하는데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는데 있다. 물론 역으로 통상 파병찬성론자들은 이라크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묘사하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라크상황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어쨌든 이슬람과격파들의 테러가 어제 오늘 일은 아니고 오랜 기간 계속 되어온 일이기 때문에 이를 새삼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민간인이 아닌 군대가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애초에 감수하는 일이다. 물론 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여하튼 도덕적으로 부당한 일이 아니고 국제적인 명분이 있고, 나아가 한미동맹관계의 차원에서도 외면할 수 없는 이라크 파병인 만큼 일정한 희생의 자세는 필수적이다. 누구를 돕는 다는 일은 그만큼 나를 희생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전투병 파병'이라는 기회주의적 발상보다는 현재 이라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치안유지와 향후 제헌선거를 보장할 수 있는 병력을 파병하는 결론을 빨리 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위한 파병반대인가?
- 홍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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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11-04, 1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