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공모전 금상작 「달퐁이」

파카만년필을 판매하는 「주식회사 恒笑(대표 宋河鐵)」가 지난 7월 21일부터 9월9일까지 대학생을 상대로 「파카만년필 수필 공모전」을 가졌다.
아래는 금상에 뽑힌 「달퐁이」이란 작품으로 관찰력, 상상력, 인간의 본성인 측은지심이 잘 나타나 있다.

「달퐁이」

어린 배추를 씻다 미끈한 감촉에 깜짝 놀라 배추 잎을 놓치고 말았다. 가만히 살펴보니 달팽이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애처로워 보이는 달팽이의 조그마한 모습이 눈에 밟혀 흐르는 물에 씻겨 내려가게 할 수가 없었다. 손바닥만한 유리병을 구해 바닥에 흙을 깔고 배추 잎을 조금 뜯어 넣어준 다음 구멍이 송송 뚫린 천으로 병 입구를 덮어주었다.
생전 처음 길러보는 달팽이였기에 설렘 반, 걱정 반의 심정이었다. 달팽이는 낯선 공간임을 깨달았는지 병 위쪽을 활발히 기어 오르며, 촉수를 이리저리 휘둘러댔다.
달팽이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이리저리 궁리해 보았다. 달붕이, 달랑이, 달나라 등등 여러 이름이 떠올랐지만 딱히 마음에 차지 않았다. 마침 한 친구의 제안에 따라 「달퐁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름이 매우 마음에 들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달퐁이」를 부르면서 밥을 주고, 배설물을 치워 주었다.
달팽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긴 촉각에 달린 두 눈은 명암을 판별할 뿐 시력이 없다. 그저 묵묵히 부지런히 몸을 움직일 뿐이다. 속도에 저항하며 일부러 느릿느릿 움직이는 듯한 「달퐁이」를 보면서 문득 천천히 걷고, 느긋하게 밥을 먹으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달퐁이」는 수줍음이 많다. 가느다랗고 길쭉한 눈을 손으로 만지면 얼른 자기 집 안으로 숨어 들어간다. 잠시 후, 긴 촉각을 살며시 내밀며 살금살금 수줍게 기어 나와 조그만 아기 젖니 같은 입으로 음식을 먹는다.
가끔 깻잎이나 양배추를 넣어주면 「이거 말고 상추 줘요」라고 외치듯 단식투쟁을 벌이는 일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사코 상추 주기를 거절한다. 먹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면 슬슬 기어가서는 조심스럽게 깻잎의 향기와 맛을 음미하면서 먹는다. 이럴때 「달퐁이」는 미식가나 다름없다. 조금 후, 「달퐁이」는 검푸른 배설물을 여기저기 싸놓는다. 먹는 음식에 따라 배설물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그 모양과 색깔이 특이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번은 병을 들고 「달퐁이」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에서 실례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무얼 먹었는지 자랑이라도 하는 듯 했다. 군데군데 지저분한 흔적을 남겨 놓는지라 괘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양 태연한 「달퐁이」를 보고 웃음이 피식 나왔다.
어머니는 달팽이를 키운다는 사실이 못내 의아스러우셨나 보다. 나를 힐끗 쳐다보시며 『얼마나 산대니?』 『멀 먹니』라며 이런저런 호기심을 보이셨다. 하지만 하루에 몇 번씩 치워도 금방 병이 지저분해지는 모습을 보시고는 질색을 하셨다.
『얼른 놓아주어라 그깟 곤충이 뭔 도움이 된다고』
어느 날이었다. 아침에 하도 바빠 허둥대다 「달퐁이」에게 상추 넣어주는 일을 깜박하고 말았다. 학교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허겁지겁 돌아왔다. 그런데 웬걸 「달퐁이」가 파묻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ㅊ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식구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지만 다들 자신은 아니라며 손을 내저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식구들은 나 몰래 「달퐁이」의 모습을 이리저리 기웃기웃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다들 관심 없는 듯 하더니 조그마한 생명체가 살아 움직인다는 사실이 자못 신기했나 보다.
투명하고 깨질 듯 약한 껍질 속에 작은 심장을 지난 「달퐁이」는 느림의 미덕, 간소함의 미덕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雌雄同體(자웅동체)라는 사실이 태고의 느림을 갖추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허공을 향해 조그마한 입으로 「나는 지금 성숙 중이라구요」라고 외친다. 시간은 돈이라고 떠들며 전자계산기를 두드려대는 우리는 그 외침을 알아들 수 없다. 그저 살아가기 바쁠 뿐. 자연과 공존공생해야 하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자연과 더불어 인생의 즐거움을 누리는 가운데 행복지수를 높여가는 일이 사람살이의 으뜸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한다.
인간이 사소한 일들에 집착하고 매달리며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두고 「蝸角之爭(와각지쟁)」이라고 한다. 달팽이 촉수 위에서 다투는 하찮은 싸움을 뜻하는데,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인간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작지만 넉넉함을 갖춘 달팽이는 우리에게 모든 일을 다 포용하고 남을 배려하라고 일깨워준다.
느림이 정지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을 무렵 「달퐁이」는 현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비밀의 방 열쇠를 쥐고는 내 곁을 떠나갔다. 세 달간 함께 한 「달퐁이」를 분홍 꽃 화분 밑에 고이 묻어주었다. 어느 날 「달퐁이」를 깨끗한 곳으로 옮기려다 그만 껍데기에 상처입힌 것이 원인이었다. 내 부주의로 인해 고통스러워했을 「달퐁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달퐁이」는 내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하나를 던져주고 떠나갔다. 「달퐁이」는 가고 없지만 「달퐁이」가 내게 보여준 여유의 미학은 내 삶에 두고두고 자양분이 될 것이다.
지금도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는 날이면 달팽이를 찾아 나서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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