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 김정일정권의 후계구도을 놓고 국내외 언론들이 확인되지 않는 각종 사실을 특종이라고 앞다투어 보도를 하고 있다. 이에 관계 당국과 북한전문가들 조차 이들 보도의 진위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이 와중에 지난 6월 11일 일본의 TV아사히가 세계최초로 북한의 후계자인 김정운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고 수차례에 걸쳐 긴급 보도하다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바 있다.
심지어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와 제2차 핵실험 및 대남군사적 위협공세 등 각종 북한 내부 움직임을 북한의 후계구도와 연관지어 분석하는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장거리로켓발사와 핵실험이 후계자문제와 관련한 내부문제를 통제하기위한 것이라는 등, 후계구축의 축포용, 후계자 김정운의 업적쌓기용 이라는 등의 다양한 분석이, 물론 필자는 이러한 분석에 동의하지 않지만, 국내외에서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 후계구도 보도의 흐름을 재 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국내 특정 언론이 중국내 북한정보 브로커를 통해 입수한 김정운후계 관련 내용을 정제되지 않은 채 특종이라고 보도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국내 전문가의 분석을 곁들어 보도하면, 이를 1주 이내에 외신이 받아 보도하고 다시 이를 국내 언론이 받아 확대재생산화하여 기정사실화하는 경향(trend)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들 보도내용이 진위여부를 북한정보의 속성 상 민간영역에서는 개략적이라도 확인할 길이 없다는 점이다. 확인되지 않은 언론보도에 너울대며 북한의 후계구도를 분석해야 하는 국내 북한전문가들 입장도 어색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한마디로 북한정보 부재에 따른 확인되지 않는 첩보의 난무 속에 우리는 헷갈리고 있으며 이를 북한 김정일이 은밀히 즐기고 있다는 불쾌한 느낌을 지울수 없다.
이에 본고에서는 북한정권이 정식화한 ‘수령후계자론’을 중심으로 일련의 북한 후계구도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북한의 평양출판사(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선전선동 출판매체)가 발행한 <주체의 수령관>과 <수령후계자론>이란 책자의 구성을 보면, 수령영도계승의 필연성, 수령후계자에 대한 견해, 후계자의 지위, 후계자의 역할, 후계자 문제의 해결원칙, 후계자문제에 대한 주체적 이해를 그릇되게 하는 일부론자들의 견해 등 후계자문제에 대한 상세한 지침을 서술하고 있다. 이를 보면 북한 후계문제를 비교적 정확히 감상해 볼 수 있다.
1. 3자 세습은 가능한가? 당연히 3자 세습으로 간다.
국내외에서 북한 김정일의 후계구도와 관련하여 가장 관심을 가지는 부분은 과연 3자세습이 가능하냐의 여부이다. 즉 북한정권이 김일성에서 김정일에로의 승계에 이어 김정운(또는 김정남, 김정철)으로 3자 세습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정상국가의 시각에 볼때, 21세기에 ‘3자 권력세습’이란 전대미문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체사상에 기반한 북한 김정일정권이 건재하는 한 3자 세습은 가능성 여부 차원이 아니라 명백한 사실이다. 그 이유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의 <수령후계자론>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의 서방식 사고로 볼때는 권력의 3자 세습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불합리한 것이지만, 북한은 통치이데올로기인 주체사상에 근거하여 자기식대로 후계자론을 정립해놨기 때문에 이를 통해보면 후계구도를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북한의 <주체의 수령관>과 <수령후계자론>이란 책자를 보면, 북한의 권력승계는 결론적으로 부자세습만이 가능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수령후계가 혈통승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북한의 혁명전통을 대를 이어 계승하는 위대한 주체위업의 계승 문제라고 강변한다.
특히 북한은 <수령후계자론>책자에서 수령후계자의 옹립원칙으로 인물본위, 새세대를 대표하는 인물, 수령 재임시에 선정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수령 재임시에 후계자를 선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후계자를 수령 재임시에 선정해야 수령의 영도체계에서 동요나 혼란을 막고 수령의 위업을 확고히 계승, 완성해 나갈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 김정일(1942년생, 67세)의 나이로 보나, 작년 8월 와병이후 현지지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건강문제에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후계자 구축문제에 박차를 가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2. 그렇다면 수령 후계자의 덕목과 조건은 무엇 인가?
<수령후계자론>책자에서 김정일은 수령후계자에 대해 “친애하는 김정일영도자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수령의 직접적 계승자 후계자는 오직 수령의 혁명사상을 가장 완벽하게 체현하고 그것을 옹호관철하기 위하여 한목숨바쳐 투쟁할 각오가 되어 있으며, 탁월한 영도력과 천재적 예지를 가진 사람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오직 이런 사람만이 수령의 사상에 기초하여 혁명을 계속할 수 있으며 수령이 구상하고 영도하는 혁명위업을 계승 발전시켜 더욱 빛내어 나갈 수 있습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김정일은 후계자는 혁명위업 계승의 당위성을 가져야 한다며, 수령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자질로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뛰어난 사상이론적 예지,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덕성을 들고 있다. 또한 후계자의 역할로 수령의 혁명사상을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킬 것,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킬 것, 노동계급당을 강화발전시킬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북한에서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발전시킬수 있는 후계자의 덕목을 갖출수 있는 자는 김정일의 자식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북한은 <수령후계자론>에서 김정일의 경우에는 “김일성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 비범한 예지, 탁월한 영도력과 고매한 덕성을 지니신 걸출한 분이시기 때문에 김일성주석님의 후계자로 높이 추대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향도의 태양 김정일장군>(평양출판사, 1995)이라는 북한 선전책자에서 김정일이 제6차 당대회(1980년 11월)에서 후계자로 추대된 소감을 밝히며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나는 이번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에서 나에 대한 전체 인민들의 기대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 총제적으로 수령님께 충실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나는 앞으로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나는 또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우리 당을 영원히 수령님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키며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완성하기 위한 투쟁에로 전당, 전국, 전민을 힘있게 조직동원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완성하는 것이 나의 총적목표입니다. 이것이 수령님앞에, 당앞에, 동지들앞에 다지는 나의 맹세입니다”(47면)
3. 그렇다면 아들 셋중 누가 후계자인가?
김정일의 아들은 이미 알려진데로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 셋이다. 또 다른 아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으나, 북한내에서 김정일의 아들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아들은 이 셋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북한이 <수령후계자론>에서 거창하게 수령후계자의 자질과 덕목, 후계원칙 등을 장황하게 정립하고 있으나, 후계자의 자질을 평가하고 지목할 사람은 유일하게 수령인 김정일밖에 없다는 점이다. 결국 김정일이 지목하는 자가 후계자가 되는 것인바, <수령후계자론>은 대내외적으로 부자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임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 셋중 누가 후계자로 가장 유력한 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최근 보도를 종합해보면, 김정일이 후계자로 김정운을 지목한 것이 유력한 것 같다, 일부 언론보도에 의하면 북한 내부에서 후계문제를 놓고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수령절대주의 독재체제인 북한 김정일정권의 속성을 모르는데 기인한 분석이다. 북한에서의 후계자문제는 권력투쟁에서 얻어지는 게 아니라, 앞서 지적했지만 수령인 김정일이 지목하면 끝나는 문제이다.
첫째, 김정남(1971년생, 38세)은 김정일의 애첩 성혜림(2002년 사망)이 난 아들로, 현재로는 후계구도에서 거리가 멀어진 것 같다. 필자도 작년 초까지 김정남의 후계승계에 상당한 가능성(장성택-김경희 등 북한내 지지그룹, 중국정부 선호, 나이, 조직장악력, 보스기질 등)을 두었으나, 후계자를 지목할 유일적 존재인 김정일이 김정운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정상적 권력승계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하나의 가능성은 김정일이 5년 이내 사망하여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운이 안정적으로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지도력의 부재가 확연할 때 이의 대안으로 보수기질과 조직장악력을 가진 김정남을 옹위하는 상황이 상정해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일 사후 권력실세그룹인 장성택 및 북한군부가 이에 동의하지 않은 한 어려울 것이다.
둘째, 김정철(1981년생, 28세)은 김정일의 애첩 고영희(2005년 사망)의 첫 아들로 고영희 생전에 후계자로 부각되기도 했으나, 유약하고 희귀병을 앓고 있고 김정일의 신임이 떨어져 후계구도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부 보도에 의하면 김정철이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에 임명되었다고 하나,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목된 상황이 맞다면 조직지도부의 북한권력내 위상으로 볼때 이는 전혀 설득력없는 주장이다. 혹시 김정운이 조직지도부 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면 몰라도...
셋째, 김정운(1984년생, 25세)은 고영희의 둘째아들로 김정일이 매우 신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운에 대해 알려진 것은 스위스에 유학했다는 것,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한 것 같다는 것, 승부기질과 지도력이 있다는 것, 농구 등 운동을 좋아한다는 것, 김정일이 총애한다는 것 등이다. 이는 대부분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최근 언론보도를 종합해보면 김정일이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목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많은 김정운에 관한 후계보도중 제일 의미있는 내용은 6월 8-11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특별정보교류협의회에서 양국 정보당국이 지난해 8월 김정일 위원장 건강 이상 이후 김정운 외에 후계 대안이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렸으며, 김정운을 ‘영명한 동지’라고 표현했다고 밝힌 점이다.
실제 김정운에게 ‘영명한 동지’ 또는 ‘영명한 지도자’라는 호칭을 했다면, 북한당국이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볼수 있다. 그 근거는 <수령후계론>에서 김일성에서 김정일로의 수령후계과정을 설명하면서 김정일에게 ‘영명한 지도자’란 호칭을 붙였기 때문이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는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 사상과 탁월한 영도력, 고매한 공산주의적 덕성을 그대로 받아 안으시어 위대한 수령의 후계자가 지녀야 할 모든 사상적 정신적 자질과 혁명적 풍모를 완전무결하게 지니시고 계시는 우리 인민의 영명한 지도자이십니다”(수령후계자론, 34면)
여기서 보듯이, 김정일 후계자로 지목할 때 ‘영명한 지도자’라고 호칭했는데, 이를 김정운 에게 했다면 수령후계자론에 입각해 볼때, 김정운이 후계자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북한 김정일이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목했다면 이를 공개하고 그의 후계수업을 공식화하여 수령후계자로의 자질을 과시해야 한다. 북한이 수령후계자의 옹립원칙으로 내세운 수령 재임시에 선정원칙에 의하면, 빨리 김정운의 후계를 공화식하여 수령의 영도체계의 동요나 혼란을 막고 수령의 위업을 확고히 계승, 완성해 나가게 해야 하나, 문제는 검증도 안된 25세에 불과한 김정운을 후계자로 내세우기가 민망하다는 내적 고민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4. 김정운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려면...
김정일이 후계자로 공식화되려면 다음과 같은 후계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의 후계승계사례에서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일이 후계자라면 수령의 영도계승성이 이루어지도록 당의 영도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김정일은 1972년(30세) 12월 27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5기 6차 전원회의에서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지목되었다. 그리고 1980년(38세) 10월 제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화된 절차를 거쳤다.
북한은 김정일이 22세에 불과한 나이인 1964년 6월 19일부터 당사업을 개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핵심부서인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당사업을 시작하여 당무를 챙긴 이래, 1966년 김일성 경호부대인 호위총국 근무, 1971년 인민군 소좌로 민족보위성 근무, 1972년(30세)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 문화예술부 부부장, 1973년 7월 당 선전선동부장, 1973년 당 중앙위 조직 및 선전담당 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3대 혁명소조운동 총책임자, 1974년(32세) 당 정치위원(당중앙 호칭), 1980년 당 중앙위원, 정치국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 1982년(40세) 최고인민회의 제7기 대의원(현재까지), 1990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 1993년 국방위원장 추대 등에서 보듯이, 당-정-군에서 후계자수업을 확실하게 닦으며 명실상불한 북한의 후계수령 역할을 해왔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면 이러한 영도직위와 영도절차를 이행해야 하나, 아직 미지수이다. 갈길이 멀다는 것이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고 해도 권력을 승계하는 것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별개임을 지적한다. 김정일이 10년이상 장기간 건강을 유지하며 집권한다면 김정운이는 정상적으로 권력을 승계 받을 것이나, 5년이내 김정일이 사망하는 경우(김정운 30세) 충분한 후계구축작업이 미진하여 권력을 승계한다고 해도 오래 유지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소한 김정운이 후계자로서 본격적 역할을 하려면 형식상이나마 당 전원회의 등을 통해 후계자로 지목되어야 하며, 1980년 이래 열리지 않고 있는 당대회를 통해 후계자 등극을 공식화해야 한다. 필자는 당대회가 열린다면, 그 시점을 북한 김정일이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설정한 2012년(김정운 28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때까지 김정일의 건강이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여기에 북한 지도부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둘째, 김정운이 후계자라면 당수뇌부를 후계자 중심으로 결속하기 위한 체제정비가 있어야 한다. 일단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했다면, 영도체계를 수립하기 위해 영도체계 정비, 영도체계 결속 등의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지난 4월 9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에 해당) 제12기 1차회 의에서 헌법을 개정한바 있다. 수정 헌법이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대폭강화하고 선군혁명노선과 강성대국 건설의지를 전문에 명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운이 후계자로 지목되었다면 어떤 식으로 든지 헌법에 후계구도에 대한 시사나 이른바 후계작업에 따른 북한 권력기관의 체제정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운이 후계자라면, 영도체제 정비과정에서 최소한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지위나, 국방위원회에서 국방위원 정도의 직위를 가지면서(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형식상 지위이나 제12기에 대의원으로 비밀리 선출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후계자로서의 영도력을 입증하며 북한권력중추인 군과 당을 장악해야 하나 아직 미지수이다.
지난 6월 11일 북한 평양방송이 '선군정치는 최고사령관의 유일적 영도체계에 의하여 담보되는 정치 방식'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혁명무력에 대한 통솔권은 오직 최고사령관만 가지며 그 어느 개별적인 사람이 혁명무력에 대해 제 마음대로 지시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며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는 우리 혁명무력의 최고사령관”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평양방송이 대남대외용 방송인 것을 감안하면, 갑자기 이런 논설을 내보내는 것은 최근 국내외 언론이 김정운의 후계자 지목을 다루면서 김정운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비서로서 사실상 북한 군을 장악하고 있다(6.8일자 한국, 경향신문 등)는 추측 보도에 한데 대해 김정일의 군영도력을 깍아내린 행위로 간주하고 경고성 답을 내린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런 평양방송의 보도는 김정운의 군영도력에 회의적인 것으로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셋째, 김정운이 후계자라면 김정운에 대한 대대적인 우상화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
북한은 1972년 김정일을 내부적으로 후계자로 지목한 이후, 1974년 2월부터 후계자 호칭으로 ‘당중앙’으로 불리웠으며, 1975년 2월 16일 김정일생일날을 임시휴무일로 지정하여 축하행사를 전개하며 ‘유일한 지도자’라고 불리운 바 있다. 김정일 생일을 정식 휴무일로 지정한 것은 김정일의 후계가 공식화된 이후인 1982년부터이다. 1992년부터는 민족최대의 명절로 제정한바 있다.
북한은 1975년 2월 김정일에게 공화국영웅 칭호와 ‘친애하는 지도자동지’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1976년부터 주요 국가기관 및 공동시설에 ‘김정일 학습연구실’을 설치하여 김정일 학습열풍을 불러일으켰고, 1977년 이후부터는 ‘영명한 지도자’, ‘경애하는 지도자’라는 호칭이 부여되었다. 1980년에는 평양시를 시발로 하여 ‘김정일 사적관’을 건립하였으며, 1985년부터는 인민학교와 고등중학교에 ‘김정일의 혁명역사’, ‘김정일의 혁명활동’ 등 김정일 관련 교과목을 신설한바 있다. 1987년에는 전국 각 사법대학에 ‘김정일혁명 역사학과’를 신설하였다. 1988년 2월 16일 ‘김정일화(花)’를 지정하였고, 같은 날 국가안전보위 본부 청사에 김정일 동상(황동 전신상)을 세웠다. 1992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김정일학과’를 신설하였다. 1994년 6월에는 각 교육기관에 ‘김정일 위대성 교양실’을 설치 운영해왔다.
이렇게 김정일의 경우, 1972년 후계자로 지목된 이후 1994년 김일성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할까지 무려 20여년간 김정일의 우상화작업을 체계적으로 진행시켜왔다. 그러나, 최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보고로 일부 언론을 통해 발표한 ‘발걸음’이라는 간접적인 김정운 칭송노래 보급 이외에는 이렇다 할 김정운의 우상화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부분 주민들은 김정운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북한 언론매체나 공식간행물에서 김정운 이름이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는 점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넷째, 김정운이 후계자라면,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이나 선군혁명론에 대한 해설권을 가져야 한다. 김정일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독자적 해설권을 행사한바 있다. 1982년 3월 전국의 주체사상토론회에서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해설서를 김정일이름으로 발표하고, 1985년 주체사상 총서 10권을 발행하는 등 이른바 주체사상을 전일적으로 체계화하여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한바 있다.
김정운이 수령후계자로서 혁명전통을 계승,발전시키고 주체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수행하려면, 당연히 주체혁명사상인 주체사상이나 선군혁명론에 대한 해설권을 어떤식으로 든지 표방하여야 하나 아직 공식화된 것이 없다.
다섯째, 김정운이 후계자라면 이른바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을 가져야 한다. 김정일은 후계구축과정에서 당-정-군을 장악해왔고, 마지막 단계에서 대남사업에 대한 지도권을 행사한바 있다.
김정일은 1975년 6월부터 6개월간 대남공작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집중검열을 통해, 대남공작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지도권을 행사해왔다. 1976년 김정일은 대남사업에 대한 자신의 원칙 즉 ‘대남혁명과 조국통일문제’, ‘대남혁명의 전략전술’, ‘조국통일의 전략방침과 수행방도’ 등을 제시하며 이의 수행을 독려한바 있다.
김일성은 1990년대 이후 김정일에게 실질적으로 당,정,군에 대한 대부분의 권한을 이양했지만, 대남사업영역에서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간여한바 있다. 김일성이 죽기직전까지 김영삼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하며 김정일로부터 대남사업만은 챙겼던 것이다.
그 이유는 대남사업이 북한정권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북한 조선노동당 규약전문에는 “조선로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데 있으며 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일성은 조국통일 달성이라는 미명 하에 전한반도의 적화통일을 수행하다 이를 유훈으로 남기며 사망하였다. 북한이 작년부터 김일성이 태어난지(1912년) 100주년이 되는 2012년까지 강성대국의 문을 열겠다며 김일성의 조국통일유훈(적화통일) 달성을 독려하고 있는 것도 이의 사례이다.
그러나 김정운이 대남사업에 직접 간여하며 지도권을 행사한다는 첩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상에서 제시한 5가지가 북한내에서 진행되고 있다면, 김정운이 후계자임을 자신있게 말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보면, 아직 미지수라고 평가된다. 아마 김정운은 아주 낮은 단계 수준에서 후계자 승계시험을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만큼 북한의 후계구도 구축은 갈길이 멀고 바쁘다는 의미이다.
5. 김정운이 김정일 사후에도 지도자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
김정운이 후계자로 공식 지목이 되었다는 가정 하에 후계구도 유지에 두가지 상황을 상정할수 있다.
첫째, 김정일이 향후 10여년 동안 권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김정운이 권력승계를 한다면, 3자 세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할 것이다. 그때 되면 김정운 나이도 30대 중후반이 될 것이고 절대권력자인 김정일 하에서 후계수업을 받아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그러나 김정일이 3-5년안에 사망하거나 집무불능상태가 된다면, 김정운은 단기적으로 권력승계를 하더라도 권력유지를 할 가능성이 낮으며 장성택 등 후견자에 의한 섭정기간을 지나다가 축출될 가능성 농후하다고 본다. 이 경우 김정남의 복귀, 장택성 중심의 일인지배, 장성택 군부 연합지도체제로 당분간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을 맺으며
현재 국내에서의 북한 후계구도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열기는 바람직하지 않다. 북한 김정일의 후계구도에 대해서는 우리국민들은 일반적 수준의 관심에 만족하고, 상세한 것은 정부당국의 대북정보기관에 맞기고 당국의 북한후계체제 구축에 대한 종합적인 대비책 마련을 지원, 격려해야 할 것이다.
현상황에서 불확실한 사실에 근거한 무차별적인 김정운 후계보도에 우리가 널뛰는 것은 정작 관심가져야 할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제2차 핵실험, 대남군사위협 공세 등 일련의 불안정한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한 국민적 경각심을 뒤돌리는 것으로 결코 바람직 하지 않다.
작년 8월 이후 김정일 와병설 보도로 국내언론과 우리 관심이 온통 김정일 건강에 쏠려있는 사이에, 북한은 와병정국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 해제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우리정부는 이 과정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현재 남북관계에서 우리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 북한이 국제협약을 위반하고 민족의 생존권과 직결된 핵실험을 자행하며 전쟁불사를 선언하고 군사적 위협을 높이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중대 안보사안을 외면하고 국내외 언론이 김정운 후계자 등극을 기정사실화하며 앞다투어 중점 보도하는 것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 하지 않다. 지난 좌파정부 집권 10년동안 이완되고 무력화된 대북경계의식,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균형적으로 정상적으로 복원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 언론의 역할이라고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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