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休戰中(휴전중)!

7월27일을 戰勝(전승)기념일로 선포, 전쟁명칭 변경, 主敵(주적)개념 환원 서둘러야
오늘(7월27일)은 한국전쟁을 잠시 멈추게 한 휴전협정 조인일이다. 1953년 이날에 국제연합군 총사령관(美육군대장 Mark W. Clark)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김일성)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팽덕회)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판문점에서 10:00시에 서명되고 휴전은 22:00시에 발효되었다. 한국정부는 서명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전쟁을 도발한 북괴군을 반드시 궤멸시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한국 국민의 결의를 반영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1950~1953년)때 21개국의 도움을 받아 국가소멸 직전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가 있었다. 유엔군 깃발아래 미국 등 16개국이 전투부대를, 덴마크 등 5개국이 의료지원부대를 파병했다. 참전 연인원은 1,940,498명이고 이중에 미군이 1,789,000여명으로 대부분이다. 이들 국가들은 휴전협정 체결 당시 미국 워싱턴 D.C.에서 모임을 갖고 만약 북한이 또다시 한국을 공격하면 유엔군 깃발아래 즉각 참전하기로 약속하고 한국을 떠났다. 미국은 한국과의 약속을 굳게 지키기 위해 미군을 한국에 아직도 남겨두고 있다.

미국은 매년 휴전협정 기념행사를 부통령 참석 하에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Korean War Veterans Memorial, 미국 워싱턴D.C.)에서 갖는다. 한국전쟁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많은 인명피해와 전비를 소모했다. 사망 54,246명, 부상 103,284명, 포로 7,140명, 실종 8,177명이다. 미국 하원은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27일에 조기(弔旗)를 게양해 기념하도록 하는 법안을 금년(2009년) 7월에 통과시켰다.

북한은 이날을 전승일(戰勝日)로 기념하고 있다. 그래서 북괴군은 기념일 이전에 전과(戰果)를 얻기 위해 혈안이 되고 있다. 북한이 1999년 6월15일과 2002년 6월29일에 연평해전을 도발한 이유도 이와 연관되어 있다. 2004년 7월14일에도 제3차 연평해전 도발을 시도했었다. 2008년 7월11일에는 북괴군이 한국인 금강산 관광객을 살해했다. 그들은 2009년 5월25일에 핵실험을 하고, 이어 5월26일부터 7월4일까지 총17발의 탄도미사일 발사 무력시위를 했다.

그러나 한국은 이날과 관련하여 특별한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한국 젊은이는 한국전쟁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행정안전부가 2008년 6월16일 여론 전문기관인 리서치 앤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중1~고3 학생 1,016명을 대상으로 안보의식 실태조사를 위한 설문결과에 의하면, 중·고생 절반 이상(52.3%)이 6.25전쟁(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전쟁을 먼저 일으킨 국가를 일본(13.5%), 미국(13.4%), 러시아(10.9%), 중국(3.4%), 한국(2.0%) 등이라고 대답했고 북한이라고 답한 학생은 48.7%에 불과했다. 전쟁이 시작된 해가 1950년이라고 정확히 알고 있는 학생이 43.2%였다. 또 64.2%는 북한이 전쟁을 다시 일으킬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해 가능성이 높다(34.4%)는 대답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번 조사에서 중·고생의 56.1%가 안보에서 가장 위협적인 국가로 미국(28.4%)이나 일본(27.7%)을 꼽는데 비해 북한은 24.5%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위해 싸웠지만 우리 청소년들은 미국을 북한과 똑같이 적대시하고 있다. 알게 모르게 젊은이의 대북관과 안보관이 이렇게 위험수위에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7월27일을 전승기념일로 정해야 한다.
우리는 북괴군의 기습남침(1950.6.25)으로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침략군에게 내어주고 남으로 후퇴했다. 7월30일에는 낙동강 전선(통영-왜관-포항)까지 밀렸다. 8월17일 통영 상륙작전과 9월15일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다. 9월28일 서울을 수복했다. 이어 10월1일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하여 북한으로 진격했다. 압록강까지 진출하여 통일을 눈앞에 두었으나 중공군의 대규모 참전으로 후퇴한 것이다. 비록 21개국의 도움을 받았지만 전 국민이 공산연합군(북괴군, 중공군, 소련군)에 대항해서 잘 싸웠다. 따라서 당연히 전승기념일로 삼아서 그 날의 투혼을 되살려야 한다.

둘째, 전쟁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한국전쟁, 한국동란, 6.25사변’ 등의 이름을 2004년에 ‘6.25전쟁’으로 통일했다. 명칭 단일화를 이유로 들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한국 내 친북좌파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한국전쟁은 북한주도의 통일전쟁’이란 이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런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민족 간의 내전(內戰)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분명 다수 국가가 참전한 국제전쟁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통용되고 있다. 구태여 국제적으로 이해가 곤란하게 6.25전쟁(6.25 War)으로 표기할 이유가 없다.

셋째, 북한에 대한 주적(主敵)개념을 환원해야 한다.
북한은 2009년 1월17일에 대남 전면대결을 선언하고, 1월30일에 남북 정치·군사합의사항(불가침 선언포함)을 모두 무효화하고, 5월26일에 정전협정 구속력 상실까지 언급했다. 따라서 우리 국방부는 2004년에 삭제한 북한에 대한 주적개념을 당연히 환원해야 한다.
당장 휴전선·해상NLL·영공을 경계하고 있는 장병은 북한이 주적이 아닌데 무엇을 위해 고생하고 있단 말인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하여 '북한 주적'을 근거로 작성된 작전계획은 존속될 수 있는가? '북한 주적'에 기초하여 창설된 한미연합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의 존립은 가능한가? 북한의 무력도발을 사전에 억제하기 위해 우리의 요청으로 와있는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한국전 재발 시 참전을 약속한 21개국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들이 어려울 때 우리가 도와주어야지 우리가 필요할 때 그들이 올 것이다. 우리 국민은 한반도가 지금 휴전 중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연평해전도 한국전쟁의 연장선에서 북한이 도발한 전투다. 국군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konas)

김 성만 예비역 해군중장(전 해군작전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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