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음악당' 건립 무산(霧散)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Isang Yun Competition)는 2009년 11월14~22일 첫 행사 개최
「윤이상 음악당」건립이 무산(霧散)됐다. 통영시는 7월28일 1480억 원의 예산을 기존에 확보한 예산 480억 원 규모로 축소하고, 음악당 이름도 「윤이상 음악당」에서 지역 명을 붙이는 것으로 바꾼다고 밝혔다.

「윤이상 음악당」은 95년 사망한 윤이상의 反韓행적으로 인해 명칭 변경 주장이 계속 제기돼왔었다. 국민행동본부 등 애국단체들은 「윤이상 음악당」건립의 부당성을 신문광고 등을 통해 주장해왔다. 「윤이상 음악당」이 향후 소규모의 「통영음악당」으로 건립되기로 결정됨에 따라, 음악당 건립을 둘러싼 논란은 일단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남도와 통영시가 매년 가을 통영에서 개최하는 「경남국제음악콩쿠르」는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Isang Yun Competition)」로 명칭이 바뀌어 2009년 11월14~22일 첫 행사가 개최된다. 윤이상 콩쿠르는 「2008년도 국고지원사업 평가결과」에서 음악 분야 1위를 차지해 2009년 국비(國費)가 지원된 전국 11개 음악제 중 유일하게 예산증액을 받았다.

1. 윤이상을 변호하는 사람들은 과거사위원회에서 尹씨의 누명은 모두 벗겨졌다고 말한다. 예컨대 진의장 통영시장은 12월18일 통영시의회 본회의 때 『동백림 사건을 비롯해 윤이상 선생께 씌워졌던 오해는 이미 지난 2006년 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혐의가 모두 풀렸다』며 『윤이상 선생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인 음악가로 칭송받고 있는 분』이라고 주장했다.

2. 하지만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의 반국가 행적의 일부일 뿐이다. 윤이상은 1995년 11월4일 사망 시까지 북한을 오가며 친북(親北)성향 단체에서 활동해온 인물이다. 「민건회(민주사회 건설협의회)」회장, 「한민련(민족민주통일 해외한국인연합)」구주본부의장, 「한국학술연구원(KOFO)」원장, 「유럽민협(재유럽 민족민주운동협의회)」고문 등 직함도 다양했다. 윤이상은 90년 11월20일 독일 베를린에서 남북, 해외범민련의 3자기구로 설립된 이적단체(利敵團體) 범민련의 공동의장직에 취임하기도 했다.

3. 윤이상의 실체는 92년 「오길남 간첩사건」으로 다시 확인됐다. 오길남 박사는 독일유학 中 정치망명한 뒤 85년 아내와 두 딸을 데리고 입북(入北)해 한민전 대남흑색방송요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86년 11월「재독유학생포섭 대동(帶同)입북지령」을 받고 덴마크로 침투하던 중 코펜하겐 공항에서 홀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吳박사는 독일 등지를 떠돌며 가족의 구명을 위해 애를 쓰다 92년 5월 결국 한국으로 돌아왔다.

윤이상은 북한과 연계해 吳박사의 입북(入北)을 적극 권유 및 주선했고, 吳박사가 탈출 후 독일에 체류하는 과정에서도 갖은 협박을 하며 再입북을 권유했다. 윤이상이 독일에서 설립한 한국학술연구원(KOFO) 역시 북한 대남공작기구의 자금을 받아 설립, 운영된 조직이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정부는 92년 국가안전기획부가 발간한 <入北자수간첩 오길남 사건내용>이라는 수사결과에서 『윤이상은 북한의 정치노선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북한의 문화공작원(文化工作員)』이라고 판단했다. 또 17회에 걸쳐 입북(入北)하여 김일성을 접촉하고, 김일성 75회 생일선물로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라는 노래를 선물했던 사실도 적고 있다.

4. 윤이상은 북한에서 애국자(愛國者)로 불린다. 북한 문건에는 『윤이상 선생은 열렬한 애국자』,『애국애족의 충정으로 불타는 윤이상 선생』,『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윤이상 선생의 애국충정을 헤아려 윤이상 음악 연구소를 꾸려주었다』는 식의 칭송이 숱하게 등장한다. 북한은 20여 년 전부터 「윤이상 음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평양에서는 매년 「윤이상 음악당」에서 「윤이상 음악회」가 열린다. 2008년 제27회를 맞이한 「윤이상 음악회」는 같은 해 10월15일~17일 개최됐다.

5. 북한에선 윤이상을 모델로 한 영화도 만들었다. 92년 「민족과 운명」이라는 제목의 영화다. 황장엽 前북한로동당 비서는 자신의 책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김정일이 애국적 민주인사들을 끌어당기기 위하여 「민족과 운명」이란 제목 밑에 윤이상 선생에 대한 영화까지 만들도록 하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윤이상이 북한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정일이 직접 지도한 多부작 극영화 「민족과 운명」은 해외로 망명, 친북으로 변신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북한체제를 홍보하는 선전물이다. 99년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민족과 운명」에 대해 『우리 수령(首領), 우리 당(黨), 우리 인민, 우리 사회주의 조국이 제일이라는 조선민족제일주의 사상을 반영하는 작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같은 사전은 윤이상 편을 다룬 세 편의 영화(14부~16부)에 대해 『남조선 사회를 등지고 해외에서 살면서 정의로운 음악창작활동으로 조국통일 위업에 적극 이바지한 재능 있는 음악가』가『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안겨 작품을 더 훌륭히 되살리어 중앙무대에 내놓게 되며 인민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된다』는 내용으로 설명한다.

북한이 펴 낸 「조선영화(93년 10, 11, 12호)」는 이들 세 편의 영화에 대해『남조선괴뢰도당의 반민족적 분열주의 책동을 예리하게 까밝히면서 사회주의 조국의 품이야말로 개인의 희망도, 포부도, 재능도 활짝 꽃피워주는 참된 삶의 품이라는 것을 힘 있게 확증해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에서 윤이상은 「김일성, 조선로동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제일이며 이른바 「사회주의 조국의 품」이야말로 참된 삶의 품이고, 「조국통일 위업」이라는 공산赤化통일에 적극 이바지한 음악가로 선전된다.

6. 김일성 역시 윤이상을 극찬해왔다. 2000년 출간된 「재(在)서독교포 윤이상 일행과 한 담화」,「재(在)서독 교포 윤이상과 한 담화」등 많기도 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김일성은 윤이상이『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공적을 쌓아올렸다』며 그를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활동하는 애국지사』로 격찬했었다.

교시집엔 윤이상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으로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했다』는 김일성의 언급도 나온다. 윤이상은 『주체사상은 현시대에 맞는 사상』이라고 말했고, 김일성은 『그것은 옳은 말』이라고 화답했다는 내용도 수록돼 있다.

조선로동당은 당(黨)규약에서 『조선로동당의...최종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데 있다』고 명시하고, 이를 위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라는 소위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논리적으로, 김일성이 말한 조국통일이란 적화(赤化)통일, 공산(共産)통일이다. 따라서 윤이상이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는 조국통일 역시 적화통일, 공산통일일 수밖에 없다. 다시 또 적어보자. 대한민국은 적화통일, 공산통일에 힘과 재능을 다 바치겠다던 북한정권의 『애국지사』 윤이상을 기념하는 음악제가 지금도 열리고 있다.

7. 윤이상에 대한 북한 측 자료는 실로 방대(尨大)하다. 이 자료들을 읽다보면 윤이상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사랑과 충성의 정도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북한의 「문학예술출판사(주체92(2003)년 출간)」가 펴 낸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에는 김일성 사망 및 사망 1주년 당시 윤이상과 부인 이수자氏가 썼다는 편지도 수록돼 있다.

윤이상의 편지는 『길이길이 명복을 비옵니다. 끝없이 우리 민족의 광영을 지켜주소서』,『우리 력사 상 최대의 령도자이신 주석님의 뜻을 더욱 칭송하여 하루빨리 통일의 앞길을 매진할 것을 확신합니다』는 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6.25남침의 전범(戰犯)인 김일성에 대해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주석님』운운하며 『민족의 광영을 지켜달라』,『통일의 앞길에 매진할 것』이라는 충성의 발언은 대한민국을 질식(窒息)시켜버리겠다는 섬뜩한 표현으로 들린다.

「영원한 추억」이란 책자엔 부인 이수자氏의 글도 사진으로 촬영돼 수록돼 있다. 김일성 사망 5년을 맞아 금수산기념궁전 방명록에 적힌 이 글은 『아-수령님, 수령님, 위대하신 수령님!』,『부디 평안을 누리시고 영생불멸하십시오』,『수령님을 끝없이 흠모하며 수령님 령전에 큰절을 올립니다.』등의 내용으로 돼 있다. 이수자氏는 2007년 9월 정부의 공식초청으로 방한(訪韓), 노무현 前대통령 내외를 만났다. 당시 盧 前대통령은 李씨의 인사를 받고 『윤 선생님 생전에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아쉬움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일성의 『영생불멸(永生不滅)』을 기원하며 김일성을 『끝없이 흠모하던』여인의 청와대 방문과 김일성을 『우리 역사상 최대의 영도자』로 부르던 인물을 그리워하는 대통령의 만남은 그로테스크(grotesque)하기까지 하다. 만난 곳이 청와대였는지, 주석궁이었는지 모호해진다. 대한민국이 어느 선까지 갔었는지, 얼마나 위험한 지경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좌파정권이 한 번 더 들어서면 어떻게 될까? 간첩 총책이 청와대를 틀어쥐게 되지는 않을까? 이것은 과연 지나친 걱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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