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과 분수광장을 역사교육의 廣場으로 만들자

광화문광장 르포/ 물보라 속의 이순신 장군 동상은 볼 만해…시민인 나도 모르는 서울상징물, 놀이공원같은 꽃밭은 有感.

 광화문 광장엔 오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8월1일 낮 12시에 정식開場(개장)을 한다고 했지만 오전 11시가 넘자 가족과 나들이 나온 시민들, 중장년층 시민들이 1000여 명 이상 찾았다. KBS 텔레비전에서는 광화문 네거리쪽 광장 진입부에 폭 10여m 정도의 뉴스부스를 만들고 아침 6시 뉴스부터 현장에서 진행했다. 

 

 광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광화문 네거리쪽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의 분수공원이 첫째 볼거리다. ‘분수12·23’이란 이름의 분수인데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를 가지고 23戰(전)23勝(승)을 이끌어냈다는 뜻이라 한다. 바닥에 설치된 조명을 통해 천연색의 분수 모양을 볼 수 있다. 일주일쯤 전쯤부터 야간에 이 분수를 시험했는데 그때 보니 정말 근사했다. 물기없이 건조한 동상만 보다 물보라 속에 보이는 충무공을 보니 아 저분이 해군이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분수 뒤쪽 경복궁 방면의 광장엔 해치마당이란 이름의 지하철 연결통로가 나온다. 광장폭이 34m라 했는데 이 출입구는 좌우가 트여서인지 폭이 50m는 돼보일 정도로 널찍했다. 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교보문고쪽 출구로 나와야 한다. 어두운 지하공간에서 탁트인 밖으로 나오면 視野(시야)에 북악산과 경복궁의 정문 광화문(공사중이라 그림만 보임)이 펼쳐진다. 출구 정면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한글날(10월 9일) 들어설 예정이다. 동상이 북악의 眺望(조망)을 가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전설의 동물인 해치는 서울의 상징물로 불을 막아준다고 알려져 있다. 예전의 해치는 귀엽게 보였는데 요즘 보이는 것은 이빨이 덧니처럼 삐져나와 심술스럽게 보였다. 해치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풀로 덮은 형상이 광화문광장 두 곳에 있었는데 얼굴이 뚱뚱한 뻔데기처럼 보였다. 서울시에선 해치가 서울의 상징물이라고 홍보하지만 시민인 나는 왜 저게 상징이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경복궁쪽 광화문광장엔 너비 17.5m, 길이 162m 규모의 ‘플라워 카펫’이 있다. 조선의 한양천도일(1394년 10월 28일)로부터 광장 개장일인 오늘까지의 날짜 수만큼인 22만4537본의 꽃이 심어져 있다고 한다. 광화문광장 양쪽으로는 수심 2cm의 역사물길이 흐른다. 동쪽 역사물길 617개(조선왕조 개국 후 지금까지의 햇수)의 바닥돌에는 조선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대통령 취임 등 주요 역사가 1년에 돌 하나씩 새겨져 있다. 22만4537본, 역사물길 617개 이런 숫자를 들으면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공무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한민국이 조선왕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숫자를 기억해야 하나 의문이 들었다.

 

 

 광화문 광장의 북쪽 끝에선 지난 100여년 간의 역사를 시대별로 기록한 ‘광화문 사진전’과 유럽광장 60곳의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광화문 사진전’은 볼 만했다. 분수와 꽃밭은 다른 놀이공원에 가도 볼 수 있지만 우리 역사의 현장을 담은 광화문 주변을 담은 사진이 주는 감동이 있었다. 1945년 미군의 광화문 진주 모습을 바라보는 서울시민들의 덤덤한 표정, 1968년 이순신 장군 동상 제막식장에 선 朴正熙 대통령과 10여m 뒤에서 밝게 웃고 있는 陸여사의 사진 등이 전시됐다. 전시물 중 해방 후 사진의 거의 대부분은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사진이 중심에 있었다. 이 건물을 부수어 민족정기를 살리겠다는 대통령과 그 부하들, 이런 행패를 막지 못한 언론과 국민들이 앞으로 또다른 불장난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광장 개장 첫날 오후엔 서울 일대에 폭우가 쏟아져 두어 시간 시민들이 모두 대피해야 했다. 광장엔 그늘이 없고 벤치도 거의 없다. 중장년의 시민들은 광장 주위에 늘어선 화분 모서리에 앉아 쉬곤 했다. 광장 곳곳엔 담배를 피우는 사람,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쓰레기통은 없었다.

 

 

 

 開場(개장) 첫날부터 잡상인도 등장했다. 사진촬영을 해주겠다며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에 진을 친 장사치를 누구도 단속하지 않았다. 광장 곳곳엔 자전거를 타거나 끌고 들어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 광장에서 자전거를 타게 할 것인지, 개나 고양이 등 가축도 끌고 다닐 수 있는지 안내문은 없었다. 편의시설이 거의 없고 폭이 좁아 사람이 몰릴 경우 이동에 제한을 받을 것처럼 보였다. 또 양옆에 차도가 있어 소음과 매연은 감수해야 한다. 개장 첫날이라 광장과 붙은 차도엔 거의 차들이 주차해 있어 시민들이 광장에 갇힌 모습이었다.

 

 광화문 광장은 폭 34m, 길이 557m 규모로 최대 7만 명이 들어올 수 있다고 한다. 8월1일의 개장은 부분개장이라고 해야 맞는 말이다. 북쪽 경복궁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광화문 공사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는 열리지 않을 듯하다.

 

 광화문광장을 보고난 뒤 기억나는 단어는 분수와 꽃밭, 가까워진 북악산. 공사기간 1년3개월, 공사비 455억을 들여 차도와 은행나무 가로수를 뽑아내고 광장으로 만들었지만 뭘 보여주려는 것인지 소프트웨어가 없는 모습이었다. 청계천을 흉내내 역사물길이란 걸 만들어 광화문 네거리를 물길로 가로지르는 공사를 했지만 억지 기획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광화문 광장 조성은 긍정적 요소가 많아 보였다. 이 광장을 대한민국 국민들의 역사교육의 場으로 만들어나가도록 주변에 연결 가지를 잘 만들어나갔으면 한다. 박물관과 미술관 등을 이 거리와 인접한 곳에 더 많이 지어야 한다. 문화부 자리에 들어설 한국 현대사 박물관과 이 광장을 연결하고, 경복궁 권역의 민속박물관, 궁중박물관과도 더 가까이 연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근에 터를 잡으려는 현대미술관은 물론, 외곽에 나가있는 중앙박물관의 주요 전시물도 이 부근에서 볼 수 있도록 기획한다면 역사와 문화가 만나는 광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金東鉉(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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