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주한미군을 빼지 않는데

김대중칼럼] '실망 넘어 고개젓는 미국'
어려움불구 주한미군 손대지 않고 있는데…


▲ 김대중 이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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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이라크 파병 규모와 시기 등에 관한 미국 정부측 반응은 ‘실망’인 것처럼 국내에 보도됐지만, 실은 실망의 정도가 아닌 것 같다.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최근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 보낼 병력의 부족으로 인해 예비군은 물론, 주(州)방위군(National Guard)까지 동원령을 내리면서도 한국에 배치된 3만7000명의 미군을 뽑아가지 않는 이유가 어디 있다고 보느냐?”고 반문하면서,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미 방위조약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원칙’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이 결국 경우에 따라서는 주한미군을 뽑아 이라크에 배치할 수도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미국은 그럴 계획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언제나 어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파병을 더 많이 해달라는 압력이냐는 질문에 대해 미국 정부는 단지 한국 당국이나 한국 사람들이 3만7000명의 미군 주둔을 “당연한 것으로 보는(take for granted)” 경향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고위관리에 의하면 미국 당국이 실망을 넘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는 배경은 이렇다. 미국은 지금 예비군과 주방위군을 합쳐 현재 15만4000명을 동원했다. 이들을 휴가 등의 이유로 교체하는 데는 더 많은 병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추가 동원령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원래 주방위군은 미국 본토가 전쟁상황에 빠질 때 동원되는 ‘마지막 병력’이다. 이들은 주로 소방관, 경찰관, 교사, 자영업, 사무요원 등 각 마을과 사회에서 중추적 기능을 하는 사람들로, 이들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미국으로서는 드문 경우다. 2차 세계대전 때 동원한 것이 마지막이다. 미국이 이런 급박한 상황이면서, 이로 인해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험한 꼴’을 당하면서도 주한미군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음을 인식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인식은 고사하고 이라크에 파병하지 않아도 한·미 동맹관계에는 영향이 없다고 하는가 하면, 주한미군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병력을 파병하면서 병력의 성격과 시기, 주둔지역에까지 인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어도 동맹국으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한국과 일본 방문길에 오른 시점에서 제기된 미국 당국자의 ‘새삼스러운 언급’은 여러 가지 복합적 성격을 띤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우선 노 대통령이 발표한 ‘3000명선 파병 지침’에 맞서 한·미 연례 안보협의회(SCM)에 참석하는 럼즈펠드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다.

말하자면 한국측에 대해 당신들이 우리들의 ‘급한 불’을 꺼주는 데 일조하는 의미로 좀더 ‘의미 있는 파병’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주한미군을 뽑아갈 수도 있다는 배수진을 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것은 취임 초부터 전 세계 미군의 전면 재배치를 시사해온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그 일환으로 주한미군 병력을 감축하기 위한 그들 나름의 명분쌓기와 수순밟기의 시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의미 있는 파병’과 주한미군 감축의 두 가지 중 어느 것을 얻어도 상관없다는 것이 럼즈펠드의 계산일지도 모른다.

'생각있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번 파병에 대해 무엇이 국익이고 무엇이 아닌지를 이미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의 논리싸움은 의미가 없다.

파병 반대는 물론 주한미군 전면철수를 요구하는 세력에는 노무현-럼스펠드식 게임이 더욱 강력히 파병을 반대해 미군 철군으로까지 끌고가는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 될 것이다.

미군 주둔은 원하지만 파병엔 회의적인 사람들에게는 당혹감을 안겨줄 수도 있다. 또 미군 주둔은 물론 파병을 지지해 온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좌절감을 줄 수도 있다. 한미관계는 점차 이상과 합리보다 감정 쪽으로 이입해 가는 것 같다.

(김대중·이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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