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은 대한민국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여름이었다. 국군은 낙동강까지 밀렸다. 대구, 경주까지 공산군이 들어오면 부산 교두보를 지킬 수 없다. 준비중이던 인천상륙작전도 의미가 없어진다. 미군은 상륙작전 준비를 하면서 한편으론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 무렵 대구에 내려와 있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장소는 조재천(曺在千) 경북지사의 관사였다. 각료 중 조병옥(趙炳玉) 내무장관, 신성모 국방장관이 왔고 몇 몇 장관들은 다른 일로 불참했다. 이때 기록을 담당했던 김수학 전 국세청장에 따르면 이승만 대통령은 후방의 좌익분자들에 대한 엄중한 조치를 지시했다고 한다.
"그동안 같은 동포라고 관용으로 대해주었으나 이젠 단호하게 처리하라."
대통령은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렸다. 6.25 전 좌익활동가 출신으로 전향했던 인사들이 검찰과 경찰의 지도하에 보도연맹을 결성해놓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경찰은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고 보고 이들을 소집한 뒤 집단적으로 처형하는 일이 있었다. 정부는 좌익분자들뿐 아니라 억울한 이들도 예비검속하여 가두어 놓고 있을 때였다. 서울이 함락되자, 전향했다는 좌익들이 나타나 본색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군경(軍警) 가족들을 찾아내 죽이는 만행을 벌였다. 벼랑으로 몰려 생존투쟁을 하던 정부로서는 뭔가 강경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이 자리를 뜨자 조병옥 장관이 입을 열었다. 그는 배석한 경찰간부들을 향하여 말했다.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이고 법치국가입니다. 아무리 중죄인(重罪人)이라도 옥석(玉石)을 구분하여 법에 따라 신중하게 처리하여야 합니다."
앞의 대통령 지시를 상당히 완화시키는 말이었다. 조 장관의 이 조치로 많은 사람들이 억울한 죽음을 면했을 것이다. 그는 군대가 대구를 포기하면 경찰병력으로 막겠다는 이른바 대구사수(死守) 선언을 한 사람이다. 당시의 주한미국 대사 무초의 증언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평가하고 두려워 한 유일한 사람이 조병옥이었다고 한다.
전쟁중에도 法治 강조한 趙炳玉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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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08, 14: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