貞觀年中撫慰新羅王詔(정관연중무위신라왕조)라는 문서가 중국에 현존한다. 이는 서기 645년2월 당태종이 고구려 원정군을 지휘하기 위하여 낙양을 출발하기 직전에 신라의 善德여왕 앞으로 보낸 편지이다. 그 내용은 唐軍이 고구려를 치는 데 신라도 파병해달라는 요청이다. 이때는 아직 羅唐 동맹이 결성되기 전이다.
그 3년 전 신라는 백제, 고구려 연합군으로부터 漢江유역의 당항성을 공격 받았고 大耶城(합천)을 백제군에게 빼앗겼다. 이듬 해 신라는 사신을 唐 태종에게 보내 援軍의 파병을 요청한 적이 있었다.
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킬 때 죽은 도독 金品釋 부부는 뒤에 태종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의 사위와 딸이었다. 삼국사기 선덕여왕條에 따르면 인간적인 대목이 나온다.
<춘추는 소식을 듣고 기둥에 기대어 종일토록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동물이 앞을 지나가도 살피지 않더니 이윽고 말하기를 '아아,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없애지 못하겠는가'하고,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臣이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하고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겠습니다'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김춘추는 고구려를 찾아가 동맹을 꾀하나 고구려는 죽령 서북 땅을 돌려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요구했다. 김춘추는 이를 거절했다가 잠시 구속되기도 했었다.
삼국사기에는 나오지 않으나 일본史書에 따르면 김춘추는 고구려에 갔다가 온 뒤에는 일본에 가서도 동맹을 맺으려 했으나 또 실패했다고 한다. 對고구려, 일본 외교에 실패한 김춘추는 서기 648년 唐으로 건너가서 태종과 담판하여 羅唐 동맹을 맺게 된다.
위에서 소개한 태종의 편지는 羅唐동맹 결성 이전의 것으로서 이 동맹의 배경을 아는 데 도움이 된다. 645년 고구려를 치기 위한 30만 원정군을 보내면서 唐 태종은 2년 전 자신에게 원병을 요청했었던(唐이 들어주지는 않았다) 신라에게 오히려 고구려를 치는 데 도와줄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善德여왕은 당 태종의 요청을 받아들여 3만명(新舊唐書에는 5만으로 나온다)을 뽑아 唐軍을 돕기 위해 파병했다. 이 틈을 타서 백제가 신라의 서쪽 일곱 성을 쳐서 빼앗았다. 唐의 고구려 원정도 실패로 끝났다. 신라로서는 손해만 본 파병이었다. 그러나 이런 희생이 그 뒤 羅唐동맹 결성을 가능하게 한 밑거름이 되었다. 즉, 唐이 고구려와 백제를 치기 위해 파병한 것은 그 전에 신라가 파병해준 데 대한 보답이란 측면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 태종은 선덕여왕에게 파병을 요청하면서 거의 동시에 백제에도 편지를 보내 고구려를 치는 데 파병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백제는 파병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라를 쳤던 것이다. 나중에 唐이 백제와 신라 중에서 동맹국을 결정해야 했을 때의 선택은 신라일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국제관계에서도 공짜는 없다.
648년 김춘추가 당태종을 만나 백제, 고구려를 치기 위한 동맹을 제의했을 때 당태종은 큰 손해를 보면서도 자신을 도왔던 신라에 대한 신뢰와 미안감도 있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동맹이 성립되었던 것이다. 이 동맹은 신라의 삼국통일을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그 뒤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를 200년간 지탱해준 축을 형성했었다.
요사이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고생한다. 유럽의 NATO 동맹국과 함께 6만 명을 보냈지만 탈레반은 점점 더 강성해진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정부측에 파병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모양이다. 한국은 적어도 1개 연대 규모의 전투병을 보내야 한다. 6.25 때 延인원 150만 명의 군대를 보내 한국을 살려냈던 미국에 대한 보은을 해야 통일기 때 떳떳하게 미국의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150만 병력중 15만 명이 죽거나 다쳤다.
당태종과 金春秋가 합의한 羅唐동맹의 약속은 두 나라가 힘을 합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다음에는 평양 이남의 땅을 신라가 차지한다는 것이었다. 서기 668년에 고구려가 멸망함으로써 이 약속이 실천되어야 함에도 唐은 야욕을 드러내어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을 唐의 영토로 편입해버리고 신라도 속국으로 취급하고, 당시 문무왕을 唐의 고종 부하인 계림대도독으로 임명하였다.
신라는 힘을 믿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唐에 대해 도전하는 對唐결전을 선택하여 6년간 싸워 이김으로써 唐을 한반도에서 몰아내었다. 이로써 한반도는 민족통일국가의 보금자리가 되고 한민족이란 공동체가 생겨나는 것이다. 羅唐연합은 신라의 이러한 피눈물나는 노력에 의하여 지켜진 것이지 당의 施惠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羅唐동맹은 韓美동맹과 함께 민족사의 운명을 바꾼 외교의 승리였다. 동맹이 지켜지려면 상대가 어려움에 처할 때 도와야 한다. 위기 때 미국을 돕지 않는 한국이 위기에 빠졌을 때 미국 여론이 돕자고 하겠는가? 자유에도 공짜가 없지만 同盟에도 공짜가 없다.
同盟에도 공짜가 없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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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28, 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