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오후 2시 문화일보 홀에서 ‘趙甲濟 기자의 현대사 강좌’가 ‘한국인의 기억 再生法(재생법)’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趙대표는 본론에 앞서 일본 선거 결과를 통해 韓·日 관계를 예측했다.
“일본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는데, 새롭게 집권한 민주당이 美·日 동맹은 여전히 강화하겠지만 그 대신 일본의 자존심을 살리겠다고 하며, 아시아를 중시하겠다고 합니다. 이런 흐름은 미국에게 골치가 아픈 일이지만 야스쿠니 문제나 독도 문제에 관해서 티격태격하지 않는 민주당이 집권함으로써 韓·日 관계는 오히려 좋아질 요소가 많아졌습니다”
더불어 趙대표는 일본식 투표 방식을 설명하면서 한자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일본식 투표방식은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한자로 쓰는데, 스펠링이 틀리면 무효 처리를 합니다. 文盲率이 1%밖에 안 되는 나라만이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려면 漢字에 밝아야 하고, 무엇보다도 선거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같은 漢字 문화권인 한국에서 일본식으로 투표하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아마 70~80%는 무효가 될 것입니다. 한국과 일본의 國力 차이는 漢字실력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趙대표는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사망보도를 보면서 균형 잡히지 못한 한국 언론을 비판 했다.
“뉴욕 타임즈의 사망 기사와 한국 언론의 사망기사는 대조적입니다. 뉴욕 타임즈의 사망 기사는 에드워드 의원의 과오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썼습니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盧武鉉·金大中 前대통령의 사후에 부정적인 내용은 다 빼버리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영웅으로만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기사는 천박한 선정주의인 반면, 미국의 언론은 균형이 잡히면서도 온화한 인간 이야기를 썼습니다”
趙대표는 본론으로 들어가 “50개 항목의 현대사를 요약했는데 이 요약을 읽어보면 하나의 역사적 흐름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는 끊어진 것이 아니고 연속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역사가 절대로 단절될 수 없다는 것을 모르는 오만한 자들이 역사를 멋대로 부정하고 마음대로 잘라내고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말로 안 되는 말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반발로 이게 하나의 자료가 되지 않을까 해서 요점정리를 한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리된 요약본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 현재까지의 역사를 설명했다. 먼저 李承晩 대통령 시대에 대해 ‘대한민국은 嫡子(적자)로 태어났다’,‘농지개혁으로 인구의 반 이상을 자유민으로 만들다’,‘미군 150만 명을 한국으로 보낸 트루먼의 결단’,‘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동맹 쟁취’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특히 그는 “李承晩 대통령이 세운 대한민국은 구성원들의 동의를 통해 정통성과 합법성을 얻었고, 선거를 감시한 UN의 공인을 받은 嫡子(적자)이다. 그리고 李承晩 정부는 농지개혁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인이 생기게 하였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마련하였다”고 말했다.
趙대표는 朴正熙 대통령 시기의 역사에 대해서 ‘국군이 최강의 선군 조직으로 등장’, ‘朴正熙, 개방적 근대화 노선 선택’,‘싸우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싸운다’, ‘국력의 조직화, 능률의 극대화’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이 독재를 했다는 주장에 대해 “朴正熙는 완전한 폐쇄적 독재로 가지 않고 개방적으로 수출 입국 전략을 썼다. 유신을 선포하기 전인 72년까지는 독재라고 해서는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朴正熙 대통령은 김일성의 남침을 계기로 경제 개발과 자주·국방력을 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는 시대’를 만들었다”고 하면서 “김일성의 남침이 오히려 한국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朴正熙 대통령이 1970년 이후로 인권에서 가장 중요한 먹는 문제를 해결하였고, 의료보험을 시작해서 집에서 죽게 되는 비극을 끝장냈다”고 말했다. 趙대표는 1975년 대통령 선거를 설명하면서 “김영삼, 김종필, 金大中 중에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과연 한국에 도움이 되었을까요?”라고 물으며 “朴正熙 유신 독재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설명했다.
이어『경제안정이 민주화의 울타리 역할』이라는 제목에서는 “全斗煥의 신군부는 유혈 사태로 집권하였으나 경제 관리에 성공하여 안정 속에 성장을 이룩하였다”고 설명하였고, “1987년 全斗煥 盧泰愚 합작의 6·29선언으로 한국은 평화적이고 타협적인 민주화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趙대표는 “김영삼 정부 때 취임 직후부터 좌파 참모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 한국 현대사를 부정하고 불법화하였던 전교조의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키는 등 사실상 左派宿主(좌파숙주)가 되었다”라면서 “이후 계속된 2기에 걸친 좌파 정권은 학살자 김정일에 굴종하여 100억 달러의 금품을 건네고 핵무장을 도왔으며, 반역적 6·15, 10·4선언으로 從北(종북)세력의 득세를 뒷받침하였다. 이에 반발한 보수층이 2007년 대통령 선거와 2008년 총선을 통하여 좌파진영을 참패시키고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어냈으나,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이념 포기를 선언, 좌파와 동거상태에 들어갔다”고 설명하였다.
趙대표는 한 단락으로 건국 이후에서 현재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평가하면서 강연을 마쳤다. “한국은 경제·군사·과학·기술력에선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으나 정치와 언론 및 교육 부문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경제전에선 북한에 이겼으나 사상전에서 밀리고 있다. 建國(건국)-護國(호국)-산업화-민주화엔 성공하였으나, 法治(법치) 확립-자유통일-일류 국가 건설이란 과제를 주도할 국가엘리트 층이 붕괴되었고 국민교양 또한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 아직도 운명이 결정되지 않는 나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