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 8일 연방통추 활동모습. 사진 아래는 2009년 1월21일 오후 3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방제 선동을 하고 있는 연방통추 회원들.
해마다 인천 맥아더동상 파괴를 기도해 온 우리민족련방제통일추진회의(이하 연방통추) 같은 단체는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와 함께 공공연히 연방제를 선동해왔다.
예컨대 이 단체는 2009년 1월21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연방제는 나쁜 것이 아니다. 연방제는 1년 중 6개월은 남쪽에서 대통령을 하고, 나머지 6개월은 북쪽에서 대통령을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일이 6개월간 대한민국을 통치한다는 것은 명백한 적화(赤化)이다. 이들 단체의 활동은 멈춤이 없었다. 8일에는 인천 자유공원에 등장, 또 다시 맥아더동상 파괴를 주장했다.
사법부는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연방제 통일론을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로 판단하여 처벌해왔다. 「연방제」는 『反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선전하여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2003고합997),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것』(2002도539), 『反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 대한민국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96노2834)는 등 관련 판례는 일관돼 있다. 그런데 왜 검찰은 나서지 않을까?
어렵게 통화가 된 대검찰청 공안담당자의 답변은 궁색(窮塞)했다. 『연방통추와 같은 단체들도 관리(管理)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연방제 통일을 주장한다고 다 처벌할 수는 없다. 그런 주장하는 단체가 200개는 넘는다. 열심히 기소해도 판사(判事)들이 「중대한 위험」인지 여부를 판단해 처벌여부를 결정한다.』는 요지였다.
국가보안법을 어긴다고 처벌하는 게 아니라 판사들이 「중대한 위험」인지 여부를 판단해 처벌한다? 이것은 법에 따른 처벌이 아니라 사람에 따른 처벌이다.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미 사문화(死文化)됐고, 판사 맘이라는 것 아닌가?
법률가의 조언(助言)을 구했다. 시민과함께하는변호사모임(시변) 이헌 변호사는 『지난 10년 간 국가보안법을 엄격히 적용하면서 대한민국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것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하고 그 주장에 동조해 선전·선동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판례의 흐름을 고려해도 노골적인 연방제 선동은 처벌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헌 변호사는 『검찰 측 답변은 결국 법원(法院)과 검찰(檢察)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지 않으려한다는 것』이라며 『연방제 선동 행위에 국가보안법이 적용돼는 것이 당위적(當爲的)이지만, 현실적(現實的)으로 적용(適用)하지 않고, 집행(執行)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李변호사는 『200개 넘는 단체가 국가보안법 폐지-주한미군 철수-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변명(辨明)에 불과하다』며 『그런 단체들이 200개 넘을 정도로 많아진 것은 법원과 검찰이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함에도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인데, 그런 결과가 생겨서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보수단체인 라이트코리아(대표 봉태홍)는 7월17일 연방통추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연방통추에 대한 특별한 제재는 아직 없는 상태이다. 봉태홍 대표는 『8월3일 고발인 조사를 받았지만, 판사들이 국가보안법 사건을 유화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관행인지라 검사들이 「영장기각 공포증」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며 『검찰 측은 지금도 「더 확실한」 범죄 정황을 찾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취재를 종합해보면, 연방통추와 같은 단체들에 대한 제재가 이뤄지지 않는 이유,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법원(法院)과 검찰(檢察) 모두에 있었다. 386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판검사 중 좌경화(左傾化)된 자들이 많고, 이것은 법원의 경우 더욱 심하다. 혹 검사가 공안사건을 적극적으로 밀어 붙여도,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되고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아 겁을 먹는다. 좌경화(左傾化)된 법조계, 기회주의(機會主義)형 법조인들이 이른바 87년 민주화 이후 대한민국의 현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