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사의 주류는 신라통일을 이룩한 金씨들이다. 즉, 통일대왕인 문무왕, 그의 아버지 태종무열왕, 그의 삼촌인 金庾信을 주축으로 한 신라왕족과 귀족들이다.
朴씨, 昔씨에 이어 김씨 왕조를 연 것은 4세기초 미추 이사금이고 내물 麻立干代에 와서 고대국가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김씨 왕조에서 지증왕, 법흥왕, 진흥왕, 무열왕, 문무왕 등이 나와 삼국통일의 발판을 마련하고 통일을 주도했다.
이 金씨들이야말로 신라통일의 주체세력이고 따라서 민족통일국가를 건설하여 한민족이란 공동체를 만든 사람들이며 그 뒤 민족문화의 원형을 굳히게 한 主役이었다. 이들의 가치관과 예술관에 따라 민족문화와 정치와 역사적 전통의 틀과 뼈대가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신라 김씨 왕족들이야말로 우리 민족사 건설의 주인공들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들은 누구인가.
신라 김씨 왕들은 내물 마립간, 실성 마립간식으로 불렸다. 麻立干이란 말은 여러 부족들의 대표자란 뜻인데 유목민족의 칸(징기스칸의 칸)과 같은 語源이다. 이 김씨 왕족의 무덤이 경주 고분이다. 서기 4-6세기에 축조된 이 고분은 積石木槨墳이라 불린다. 시신을 목곽안에 넣고 그 위에 냇돌을 쌓은 다음 봉토를 입힌 무덤이다. 나중에 목곽이 썩어무너지면 냇돌이 무덤을 메워 도굴을 방지해준다.
이 적석목곽분은 유라시아 북방 초원 지대의 주인공이었던 흉노의 무덤과 같다. 1973-74년에 발굴된 천마총, 황남대총이 적석 목곽분의 전형이다. 이 적석목곽분은 경주지역에서 4세기초에 갑자기 나타난다. 이런 墓制를 가진 종족이 외부로부터 갑자기 나타났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무덤속에서 금관, 금허리띠 등 많은 금세공품이 발굴되었다. 그 디자인도 북방유목문화의 특징을 띠고 있고 중국식 물건은 없다. 이 무덤에는 로마지역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 제품도 많이 있었다.
신라 지배층이 몽골고원-중앙아시아-흑해로 이어지는 초원의 길을 통해서 서양문명세계와 무역을 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게 한다.
이 적석 목곽분에는 馬具와 무기가 특히 많다. 부장품을 들여다보면 중무장한 騎士가 떠오른다. 김씨왕족은 기마군단의 지휘자였다는 이야기이다. 4세기에 갑자기 경주에 나타난 이들은 누구인가에 대해서 요사이 역사, 고고학자들이 다양한 견해를 내놓고 있다.
숭실대학교 역사학과 崔秉鉉 교수는 [新羅高墳硏究](一志社)에서 이렇게 썼다.
<신라 적석목곽분을 둘러싼 고고학적, 역사적 상황들을 종합하여 볼 때, 신라 적석목곽분은 결코 내부의 先行墓制가 복합되어 이뤄진 것은 아니었으며, 기마문화를 배경으로 한 북방아시아 목곽분문화의 직접 渡來에 의해 돌발적으로 출현한 것이었고, 그것은 3세기말, 4세기 초부터 일어난 동아시아 기마민족 대이동의 와중에서 한 여파가 밀려온 결과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흉노께 기마민족의 한 부족이 3-4세기 중국 대륙의 5호16국 시대 북방기마민족 대이동기 때 한반도로 밀고들어와 경주에서 토착정권을 점령하고 김씨왕조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이들 유목민족의 상징이 金이다. 유목민족은 금제품을 좋아하고 금세공 기술이 뛰어났다. 이들의 본거지였던 알타이 산맥의 그 알타이가 金이란 뜻이다. 이들이 성씨를 金이라고 후에 정했다는 것도 퍽 상징적이다.
적석목곽분이란 墓制, 북방적 출토 유물들, 풍부한 馬具와 금제품, 金씨, 麻立刊이란 호칭 등등이 흉노의 표시물들이다.
경기도 박물관장 李鍾宣 박사는 [古新羅王陵硏究](學硏文化社)에서 이렇게 썼다.
<최근 흉노게 분묘를 종합한 연구에 따르면 거기에는 몇 가지의 유형이 있다. 흥미롭게도 반도 서북부의 소위 낙랑故土에 그러한 유형의 고분들이 모두 남아 있다는 엄연한 사실은 오르도스(지금의 내몽골 지역)와 연결해서 볼 때 매우 주목할 현상임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르도스 철기문화의 주인공들이 漢의 팽창으로 그 일파가 서쪽으로 밀려가서 헝가리 즉 훈족(흉노)의 나라를 세운 주체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 이동한 다른 일파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반도로 진출하였고, 일부는 일본열도에까지 상륙하였다고 봐야 당시 시베리아 민족들의 대이동의 일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고신라 積石木槨墳의 주인공들은 반도 서북부를 거쳐 東南進한 시베리야계 주민의 후예로서,그들은 중국계가 아닌 시베리아-오르도스계의 대형 적석목곽분과 철기, 繩蓆文토기, 금세공기술을 그대로 갖고 남하한 것이다>
두 학자들이 말하는 흉노계 기마집단의 신라 유입 경로는 차이가 있으나 신라 김씨 왕족들이 흉노계라고 보는 데서는 일치하고 있다.
이 흉노계는 지금의 몽골고원에서 유목민 최초의 대제국(흉노)을 만들어 중국의 漢族과 대결하던 용맹무쌍한 유목민 출신 기마군단이었다. 이들이 漢무제의 공격을 받자 일부는 서쪽으로 나아가 4세기 게르만족을 치면서 서양사에 등장한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그에 따른 로마제국의 붕괴를 일으킨 훈족의 출현이다.
3세기말 몽골고원과 중국 북방에 남아 있던 흉노계는 晉의 분열을 이용하여 남진하여 중국을 150년간 대혼란에 빠뜨리고 다섯 胡族이 16개국을 만드는 5호16국 시대를 연출한다. 이런 시기를 전후하여 일단의 흉노계 부족이 경주에 나타나 토착정권을 정복하고 고분을 만들고 우두머리를 마립간으로 칭하면서 주변 부족국가를 흡수하여 신라를 강화해갔다는 것이다. 내물왕, 지증왕, 법흥왕, 진흥황, 진평왕, 무열왕, 문무왕 등 우리의 귀에 익은 삼국통일의 주체세력 계보가 바로 흉노계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흉노계 중 일부는 일본으로 들어가 일본 고대국가의 지배민족이 되었다는 것이 에가미 교수의 유명한 기마민족국가설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로마시대의 종언, 중국 晉(소설 삼국지에서 통일국가로 등장)의 붕괴와 북방기마민족의 국가건설, 金氏 신라의 등장, 일본의 고대 국가 건설-이런 동서양의 대사변은 오늘날 동양과 서양을 만든 흉노족의 대이동, 즉 기마군단의 빅뱅이었다는 시각이 정리된다. 물론 한반도 주변에는 부여-고구려-백제 지배층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유목기마민족집단의 유입이 있었다. 다만, 4-6세기의 신라가 중국의 漢族 문화와 분명하게 차별이 되는 북방 흉노족 성격
을 고구려나 백제보다도 더 선명하게 띠었다는 점이다. 이 흉노계 신라 지배층이 삼국통일을 주도하여 오늘날 한민족으로 불리는 정치, 문화, 역사 공동체를 건설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라가 唐과 결전하여 한반도를 민족의 보금자리로 확보할 수 있었던 정신적 힘-정체성, 자존심 같은 것도 출신성분이 漢族과 근본적으로 다른 데서 연유한 바가 클 것이다.
신라가 통일을 이룬 결정적인 요소는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당시 최강의 제국인 唐과 제휴하여 동북아의 질서 재편을 주도했다는
점이다. 이런 예민한 국제감각도 로마나 서역과 교류했던 신라김씨들의 유전인자에서 배양된 것이 아닐까.
한민족이 중국에 흡수되어 소멸되지 않은 비결도 흉노계라는 오기와 개성이 강한 종족 출신이었다는 점과 관련이 없지 않을 듯하다.
이는 바로 지금 우리 한민족 몸에 흉노족의 피가 主流로서 흐르고 있다는 말이다. 흉노족이 가진 특성은 모든 유목민족의 특성이기도 하지만 영민, 용맹하며 자유분방하고 親자연적이고 오기가 세다. 위대한 지도자가 나타나면 무섭게 뭉쳤다가도 그런 지도자가 사라지면 집단도 사라지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흉노계의 특성을 점검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우리 민족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런 민족에게 알맞는 경영방식은 무엇인가, 왜 신라김씨가 삼국통일을 주도할 수 있었는가 등등의 話頭를 세워볼 만하다. 한민족의 정통주류 세력이 한때 漢高祖를 부하로 취급했던 흉노족 계열이라고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닌가.
훈, 흉노, 신라는 유라시아의 서쪽 끝과 동쪽 끝을 이어주는 기마민족의 띠이자 말의 길이다. 말이 가진 기동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광대한 지역에 걸쳐서 이뤄진 민족이동과 정복국가의 건설과 그 속도, 그리고 민족적 친연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붙박이 농경민족의 눈으로는 눈부시게 기동하는 기마민족의 역사를 이해하기 힘들다. 흉노족에 대한 연구는 한민족에 대한 연구, 신라통일의 비밀에 대한 탐구, 韓中日 삼국에 대한 연구이자 민족사를 세계사안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시각의 일대전환이다. 이는 나와 우리를 보는 시각의 재정립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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