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著述)을 통해 본 박원순 변호사 정신세계

"암살, 학살, 처형, 투옥, 약탈이 만연한 現代史...이 땅엔 부패와 불의, 非인간과 反인륜이 만연"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박원순(朴元淳) 변호사는 누구인가?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다. 朴변호사는 9월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자신을 비롯해 시민사회 전반에 국정원 사찰이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朴변호사는 「국가보안법1·2·3」 「야만시대의 기록1·2·3」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 국가보안법 폐지와 좌파(左派)적 역사관을 확산시켜온 인물이다. 그의 인식은 한국 좌익세력에 대한 긍정에서 출발한다. 朴변호사는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라며 『좌경·좌익을 배제하는 국가는 극우독재정권』이라며 이렇게 주장한다.

《「좌경」「좌익」이 악(惡)일 수만은 없다.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좌경」「좌익」을 완전히 배제하는 국가야말로 극우독재정권이었음을 동서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좌경」속에서 자유민주체제를 보완하는 데 긍정적 기능을 기대할 수 있는 요소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160p)...민주주의는 결코 사회주의(社會主義) 또는 공산주의(共産主義)와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 이념을 받아들여 그 사회 속에 하나의 가치체계로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서구의 여러 선진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금방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178p. 국가보안법 3).》

<송두율 등 소위 해외민주인사 귀국 추진>

朴변호사는 자신의 사상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 온 인물이다. 그는 2003년 8월7일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 추진위원회(추진위)」에 천정배 민주당 의원, 강정구 교수, 유원호 통일맞이 이사, 최병모 민변회장 등과 함께 공동대표로 취임했다. 추진위는 곽동의(한통련 의장), 이수자(윤이상 부인), 송두율 교수 등 해외 친북(親北)인사를 『해외 민주인사』로 부르며 이들의 귀국을 추진하는 한편 『반국가단체 한민통·한통련 합법화』 및 소위 『용공조작 도구인 국가보안법 즉각 폐지』 등을 주장했었다.

朴변호사의 「용공(容共)」 인식은 대한민국에 대한 폄훼(貶毁)로 이어진다. 그는 한국현대사는 『정의가 실종되고 모리배들이 득세』하고 『부패와 불의, 非인간과 反인륜이 만연』했다고 비난한다. 또 북한의 공산화 숙청에 대해선 「친일청산이 이뤄졌다」는 식의 인식을 보이며, 독립 운동가들로 출발한 한국 정부에 대해선 『친일파가 득세했다』고 비난한다. 지난 60년 한국이 이뤄낸 성취(成就)와 북한의 실패(失敗)에 대해 눈감은, 오직 대한민국 약점(弱點) 찾기에만 연연하는 「외눈박이 사관」의 전형이다. 그의 글을 인용해보자.

<『정의가 실종되고 모리배 득세?...부패와 불의, 非인간과 反인륜 만연』>

《해방과 동시에 당연히 처단되었어야 할 친일부역자들이 오히려 새로운 해방조국의 권력을 장악하고 그 아래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을 당해야 했던 것이 바로 웃지 못 할 우리 과거의 솔직한 모습이었다. 친일파가 득세한 세상에서 독립운동가와 그 유족들은 마치 「죄인」처럼 살아야 했다. 독립운동 경력은 불온한 전력이 되어야 했다(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57p)》

《이 땅은 정의는 실종되고 힘에 의한 통치가 지속됐다. 민족(民族)의 이익(利益)보다 개인(個人)의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모리배들이 득세했다. 독재(獨裁)와 탄압(彈壓), 부패(腐敗)와 불의(不義), 非인간과 反인륜이 그 당연한 귀결로 사회에 만연했다...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불의한 질서와 현실은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上同. 60p)》

<『암살, 학살, 고문, 처형, 투옥, 연금, 재산 약탈, 몰수?』>

朴변호사는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공산(共産)세력 처벌과정에서 빚어진 몇몇 오·남용 사례를 과장, 현대사가 『암살(暗殺)과 학살(虐殺), 고문(拷問)과 처형(處刑), 투옥(投獄)과 연금(軟禁), 재산 약탈(掠奪)과 몰수(沒收)가 이뤄진 암흑시대』였다고 비난한다. 「야만시대의 기록」이라는 책에서는 공산폭력혁명조직 남민전(南民戰)을 비롯해 대다수 공안사건을 『고문으로 용공 조작된 사례』라고 주장한다. 朴변호사의 주장에선 「공산 전체주의」로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가동돼 온 한국의 안보, 공안, 치안 시스템에 대한 일말의 감사를 찾을 수 없다. 극소수(極少數) 부작용 사례를 들어 전체(全體)를 부정하는 논리의 비약(飛躍)만 있다. 그의 주장을 인용해보자.

《대부분 간첩단사건은 실재했다기보다는 당시 정치적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조작되었음이 밝혀졌다...중앙정보부는 간첩단사건과 조작사건을 자유자재로, 무소불위로 만들어냈으며 그 모든 사건에서 고문의 호소와 주장이 이어졌다. 이미 검찰과 사법부는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조작·송치하는 사건에 대해 무혐의 또는 무죄로서 대응할 힘과 의지를 잃은 지 오래였다(야만시대의 기록 2. 314p)》

《우리 현대사는 참으로 정치적 혼란, 권력의 남용과 인권의 암흑시대의 연속이었다. 암살(暗殺)과 학살(虐殺), 의문사(疑問死), 고문(拷問)과 처형(處刑), 투옥(投獄)과 연금(軟禁), 해직(解職)과 해고(解雇), 부당한 재산의 약탈(掠奪)과 몰수(沒收) 등 그 피해의 유형과 피해자의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의 인권유린(人權蹂躪)이 이 땅을 억압과 수난의 도가니로 몰았다(역사를 바로 세워야 민족이 산다. 서문)》

<『박정희 정권은 지옥 같은 고문의 일상화?』>

朴변호사는 같은 맥락에서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민주주의가 압살(壓殺)』된 시대로, 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 정부는 『지옥(地獄) 같은 고문(拷問)이 일상화됐다』며 이렇게 주장한다.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12년 만의 장기독재 끝에 이른 몰골은 바로 민주주의의 압살, 그 자체였다...죽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모든 희망이 사라진 고통의 현장. 그것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 같은 고문이 이 땅에서도 일상화된 시대가 있었다...그것이 우리가 살아 온 박정희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시대, 전두환의 「정의로운 사회 시대」「노태우의 보통사람들」시대였다(야만시대의 기록. 서문).》

《해방이 되어 일제 관헌은 물러갔지만 그 하수인이던 일제하 조선인 헌병과 경부(警部)들은 그대로 남아 이승만 독재정권의 손발이 되었다. 이들과 이들이 훈련시킨 수사기관과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고문의 「숙달된 조교」가 되어 박정희 정권 18년, 전두환·노태우 정권 10년을 버티게 했다(上同. 31)...전국에 거미줄같이 펼쳐진 이들 정보·수사기관의 지부, 분실 등도 이 나라를 「비밀경찰」의 나라로 만드는 데 한몫했다. 그 희생은 고스란히 이 땅의 일반 민중이었고 민주주의였다(上同. 116)》

<북한 현실에 대한 침묵>

朴변호사는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해 잔인할 정도로 가혹한 비판을 가하지만,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沈黙)해왔다. 박정희 정권 시절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유린(蹂躪)이 자행되는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무관심은 아이러니하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1999년 8월1일 올라가 있는 『극우 해리티지 재단에서 배운 시민운동 노하우』라는 朴변호사의 칼럼은 이러하다.

《미국 NED재단의 거쉬먼 회장에게 : 북한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워낙 폐쇄적(閉鎖的)인 사회여서 북한의 민주화나 인권문제에 당장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그 대신 점진적인 남북교류와 경제교역의 추진에 따라 신뢰와 화해를 쌓아가는 것만이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길일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朴변호사는 같은 칼럼에서 『지난번 Ms.코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집요하게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한다면 재정지원을 할 용의가 있음을 이야기하여 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그 동안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 언론은 대체로 극우보수파들이었음을 설명했었다.』며 북한인권 문제가 소위 극우보수파들만의 이슈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너무 폐쇄적인 곳이라 알 수 없다는 북한인권>

朴변호사는 2008년 2월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이라든지, 고문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돼 있어서 워낙 폐쇄적(閉鎖的)인 국가니까 (알 수는 없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된 국가에서는 고문이 있을 가능성이 많죠. 어떤 고문이나 권위주의적인 폭압적 통치는 분명히 저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요, 그것은 국제사회가 일정하게 개입을 해야죠.》

시간이 흐르며 다소 달라졌지만,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여서 북한 인권문제 접근이 어렵다』는 식의 근본적 입장은 역시 바뀌지 않았다. 북한은 정치범수용소에서만 20만 명이 넘는 무고한 주민이 수감돼 있으며, 30만 명에 달하는 중국 내 탈북자들은 인간노예처럼 팔려 다니고, 공개처형·비밀처형·즉결처형이 저질러진다. 중국에서 강제로 송환된 탈북여성들 은 강제낙태·영아살해와 같은 끔찍한 고문을 겪어야 한다. 북한의 인권참상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UN·EU 등은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해왔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까지 만들었다. 국제사회에 공론화된, 인류역사상 최악의 인권유린에 대해 『폐쇄적 사회이므로 잘 알 수 없다』는 논법은 구차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비교해 북한정권에 너무나 우호적이다. 균형감각(均衡感覺)이 없는 비판은 치우친 편견(偏見)에 불과할 뿐이다.

<『국가보안법 시대는 완전히 물러가야 할 때가 왔다』>

朴변호사의 편향된 주장들은 국가보안법 폐지로 귀결된다. 그는 북한정권은 이미 『동등한 파트너로서 국가의 존재가 사실상 인정되고 있다』며 반국가단체로 볼 수 없다는 주장을 펴왔다. 관련 주장을 인용해보자.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건이 다른 어떤 시국사건보다도 더욱 처절한 피울음을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참혹한 고문(拷問)이 따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국가보안법 사건이 일반적으로 조작된다는 사실과 통하는 이야기이다...국가보안법의 존재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친 족쇄였으며 국가의 진취적 발전을 가로막는 쇠사슬이었다(국가보안법연구1. 23p)》

《이제 국가보안법 시대는 완전히 물러가야 할 때가 왔다. 이제 무대에서 악역의 노릇을 끝내고 막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난 시대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반공의 그림자와 국가보안법의 위세 앞에 주눅 들어 폐쇄와 퇴행 속에 갇혀 지내던 불행이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된다...진실로 국가보안법 시대는 거(去)하고 민족통일의 시대를 열어야 할 때가 왔다(上同. 28p)》

朴변호사는 2004년 10월12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많은 사건들을 정리하다보니 국가보안법에서는 피의 냄새가 난다. 국가보안법 사건에는 고문이 없는 사건이 없었다』며 국보법폐지를 역설하기도 했었다.

<『미군범죄 창궐하는데 미군철수 주장 나오지 말란 법 없다?』>

朴변호사는 국가보안법을 절대 악(惡)으로 놓고, 국가보안법에 대한 저항은 상대적인 악(惡) 내지 상대적인 선(善)이라는 인식을 보여준다. 이러한 논리는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통일과 같은 북한의 대남(對南)노선에 대한 긍정으로 이어진다.

그는 2002년 11월25일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적단체(利敵團體)로 판시된 한국청년단체협의회(한청)를 변호하며 『북한이 꼭 같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해서 모든 주장이 이적행위가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군범죄가 창궐(猖獗)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군철수 주장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했다. 이어 『한국청년단체협의회와 그 간부들이 실질적으로 국가안보를 위해(危害)한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없다』고 옹호했다.

한청은 2001년 2월11일 창립선언문에서 『우리는 민족의 자주와 민주를 실현하는 정권을 창출하고 마침내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하는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법은 한청을 이적단체로 판시하며 『한청의 강령이나 소식지는 남한 사회를 美제국주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있고, 북한의 선군(先軍)정치를 찬양하면서 주한미군 철수, 인민민주주의 혁명 등을 주장하고 있어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도 2009년 2월 『한청은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와 마찬가지로 북한 혁명(革命)노선과 궤를 같이해 국가의 존립·안전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있는 이적단체』라고 판시했다.

남한 사회는 美제국주의 식민지라는 전제 아래 선군정치를 찬양하고 북한의 공산화 전략인 인민주주의 혁명을 주장하며 그 일환으로 북한식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 온 단체에 대해 『국가안보를 위해(危害)한 어떤 행동을 한 것은 없다』고 보는 것이 朴변호사의 시각이다. 「안보맹(盲)」이다. 심각하다 못해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북한이 1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인 2006년 10월17일, 朴변호사는 「북한 핵실험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입장」이라는 성명에 동참했다. 북한의 핵무장에 우려를 표하면서도, 『제재와 봉쇄와 같이 북한을 고립시켜서 출구 없는 궁지로 모는 강경한 방법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와 대화와 나설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민간교류는 남북 간에 신뢰와 이해를 깊게 해주는 소중한 통로이므로, 어떤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3기 공동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한국이 미국의 「전쟁침략 기지」라는데...>

『미군범죄가 창궐(猖獗)하고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상황(2002년 11월25일 한겨레신문)』이라고 보는 朴변호사에게 반미(反美)의식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는 2006년 9월18일 「평택 평화선언」에 참가했다. 평택 주한미군 기지 이전(移轉)을 반대하며 나온 당시 성명은 한국이 미국의 소위 「전쟁침략 기지」, 「해외침략 기지」, 「전쟁기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기지 이전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군이 한국의 안보가 아닌 오직 미국의 이익 때문에 주둔한다는 식의 성명이었다. 일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다.

《평택미군기지 확장은 전쟁을 불러옵니다...평택미군기지는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에 따른 전쟁침략(侵掠)기지입니다..군산 직도에는 미군의 국제적인 폭격장이 들어서게 되고, 파주 무건리에는 미군들을 위한 종합훈련장이 들어서게 되며, 제주도에는 새로운 미군의 해외침략(侵掠)기지가 들어섭니다...대추리, 도두리가 전쟁기지가 되면 한반도 전체가 전쟁(戰爭)기지가 됩니다. 정부의 본격적인 강제철거를 저지하고 평화를 지켜내야 합니다.》

朴변호사는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투쟁에도 선봉에 섰었다. 그는 2003년 3월22일 광화문에서 열린 소위 반전평화 촛불집회에서 『진정한 전범(戰犯)은 부시』라는 내용의 소위 평화메시지를 낭독했다. 같은 해 4월1일에는 소위 「반전평화비상국민회의」를 공동제안하며 『이라크 침공은 즉각 중단되어야 합니다...지난해 미선 효순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며 광화문을 가득 메웠던 평화의 촛불은 이제 부도덕한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무고한 이라크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일방적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밝혀져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불평>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박원순 변호사는 現정부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워왔다. 그는 광우병 난동(亂動)이 한창인 2008년 6월2일 『이명박 정부 100일,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우려한다』는 시민사회 성명에서 『지난 20년간 피와 땀으로 일군 민주주의의 후퇴를 목도하였다. 특히 정부가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의사를 완전히 묵살하면서 미국 쇠고기 수입 고시를 강행한 지금,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더 이상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며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내각 총사퇴, 졸속협상 졸속정책 백지화』를 요구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朴변호사의 불평은 2009년에도 거듭됐다. 그는 6월9일 現정부의 소위 국정 운영기조 전환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수십 년 동안 많은 국민들이 희생해서 일궈낸 민주주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고 남북 간 평화가 위기 상태에 놓여 있고 경제가 자체적으로 회복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훨씬 어려워질 정책들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朴변호사는 現정부가 시민단체를 박멸(撲滅)하려 하고 국정원이 민간사찰을 하고 있다는 비난도 했었다. 그는 6월18일 경향신문 대담에서 『심지어 국가권력은 모든 시민단체를 사찰하고 있다. 촛불시위 참여단체는 물론이고 아예 정부와 협력하는 단체까지 박멸하려고 한다』고 했고, 같은 시기 위클리 경향과 인터뷰에서도 『민간사찰이 복원되고 정치와 민간 개입이 노골화되면 이 정권의 국정원장은 다음 정권 때 구속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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