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친서 원본 발견, 비밀리에 전달되는 밀서, 영일동맹, 을사늑약, 국정 전반, 정운찬 총리 인준안, 무기명 비밀투표, 사민당 꺾었다, 좌우연정, 기민당, 기사당, 4월 추경, 추기경 묵주, 내년 MB 화두는, 저축은행 후순위채, 무풍지대, 금속노조에 일임 못해, 대도 조세형, 서수원권, 통합환승할인제, 폐휴대폰, 전관왕, 대서특필, 꿈은 아니겠지 몽유도원도, 수장고에서 꺼낸 정조어찰, 천마총 천마도…」
2009년 9월29일자 중앙일보의 큰 제목과 작은 제목, 기사 내용 일부에 나오는 단어들이다. 단어를 나열해 놓고 보니 暗號文(암호문)처럼 보인다. 漢字(한자)를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도 ‘대충의 뜻은 알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의 단어들을 한글로만 표기했을 때 뜻을 몇 퍼센트쯤 알 수 있는가. 20代 중후반의 직장인, 대학원생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한자자격시험에서 2급을 取得(취득)한 회사원은 “거의 다 알겠다. 그러나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힘들 것 같다. 한자를 안다면 쉽게 뜻을 類推(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단어들이) 전부 漢字語니까. 우리가 쓰는 단어의 대부분이 漢字語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漢字사용은 필요하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한자를 거의 모른다는 대학원생은 “내가 아는 건 몽유도원도랑 천마도 밖에 없다. 예전에 관심이 있어서 찾아봤기 때문에 정확히 안다. 안견이 그린 ‘꿈에서 본 복숭아 밭’ 아닌가? 한자로 표기하면 100%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라고 있는 한자 아닌가?”라고 反問(반문)했다. 이어 “나는 한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데 한 표 던지고 싶다. 뜻을 알아보기 쉬울 뿐 아니라 현재 국제사회에서 급성장 중인 중국의 表記(표기) 글자 아닌가? 알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은 “한자를 잘 모르더라도 成人이라면 적어도 60~70%는 알지 않겠나? 정확히 아는 것도 있고, 막연하게 대강 의미 전달만 되는 것도 있고…. 한자를 竝行(병행)해서 표기하면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어려운 단어는 (한자를 표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한글 사랑도 좋지만 漢字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다. 치켜세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용도에 알맞게 잘 사용하면 한글이 좀 더 다양하고 쓰임새에 알맞게 사용될 것 같다”고 전했다.
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직장인은 “요새 신문에는 한자 표기를 안 하나? 예전에는 다 했던 것 같은데…”라며 “한자를 배워서 알고 있는 건지 안 배워도 알 수 있는 건지 헷갈린다. 同音異議語(동음이의어)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앞뒤 문맥을 보고도 헷갈리는 한자어들을 위해 한자 표시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 단어의 한자 표기와 訓音(훈음), 뜻은 다음과 같다.
-破局(파국-깨질 파, 면 면: 일이나 사태가 잘못되어 결판이 남. 또는 그 판국)
-親書(친서-친할 친, 글 서: 몸소 쓴 편지) 原本(원본-근원 원, 근본 본: 개정, 번역 따위를 하기 전 본디의 서류나 책) 발견
-비밀리에 전달되는 密書(밀서-빽빽할 밀, 글 서-몰래 보내는 편지나 문서)
-英日同盟(영일동맹-꽃뿌리 영, 날 일, 같을 동, 맹세할 맹: 1902년에 영국과 일본이 맺은 동맹 협약)
-乙巳(을사-새 을, 여섯째지지 사: 육십간지 중 하나, 여기서는 1905년) 勒約(늑약-굴레 늑, 맺을 약: 억지로 맺은 조약)
-國政(국정-나라 국, 정사 정: 나라의 정치) 全般(전반-모두 전, 옮길 반: 어떤 일이나 부문에 대하여 그것에 관계되는 전체. 또는 통틀어서 모두)
-정운찬 총리 認准(인준-인정할 인, 승인할 준: 입법부가 법률에 지정된 공무원의 임명과 행정부의 행정 행위를 인정하는 일)案(안-안건 안)
-無記名(무기명-없을 무, 기록할 기, 이름 명: 이름을 적지 않음. ‘이름 안 밝힘’으로 순화) 비밀투표
-社民黨(사민당-모일 사, 백성 민, 무리 당: 독일의 정당․사회민주당) 꺾었다
-左右(좌우-왼 좌, 오른 우) 聯政(연정-이을 연, 정사 정: 서로 다른 두 당이 연합하여 정부를 이루고 국가를 경영하는 정치행위 또는 행태)
-基民黨(기민당-근본 기, 백성 민, 무리 당: 독일 기독교민주동맹)
-基社黨(근본 기, 모일 사, 무리 당: 독일의 정당, 바이에른 기독사회연합)
-4월 追更[추경-쫓을 추, 고칠 경: 追加更正豫算(추가경정예산-쫓을 추, 더할 가, 고칠 경, 바를 정, 미리 예, 계산 산: 예산이 성립한 후에 생긴 부득이한 사유로 인하여 이미 성립된 예산에 변경을 가하는 예산)의 준말]
-추기경 黙珠(묵주-묵묵할 묵, 구술 주: 가톨릭. 묵주 기도를 드릴 때에 쓰는 성물≒로사리오)
-내년 MB 話頭(화두-말할 화, 머리 두: 이야기의 첫머리)는
-저축은행 後順位債(후순위채-뒤 후,차례 순, 자리 위, 빚 채: 채무에 대한 상환 순위가 뒤쳐지는 채권)
-無風地帶(무풍지대-없을 무, 바람 풍, 땅 지, 띠 대: 바람이 불지 아니하는 지역. 다른 곳의 재난이나 번거로움이 미치지 아니하는 평화롭고 안전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금속 勞組(노조-수고로울 노, 짤 조: 노동조합)에 一任(일임-하나 일, 맡길 임: 모두 다 맡김) 못해
-大盜(대도-큰 대, 훔칠 도: 큰 도둑) 조세형
-西(서녁 서)수원圈(우리 권: 한정된 일정한 구역이나 범위)
-統合(통합-거느릴 통, 합할 합: 둘 이상의 조직이나 기구 따위를 하나로 합침) 換乘(환승-바꿀 환, 탈 승: 다른 노선이나 교통수단으로 갈아탐) 割引(할인-나눌 할, 끌 인: 일정한 값에서 얼마를 뺌)制(절제할 제)
-廢携帶폰(폐휴대폰-폐할 폐, 가질 휴, 띠 대, phone: 못쓰게 되어 버리는 휴대전화)
-全冠王(전관왕-온전할 전, 갓 관, 임금 왕: 스포츠에서 한 해의 경기나 시합을 모두 석권 하는 것)
-大書特筆(대서특필-큰 대, 쓸 서, 수컷 특, 붓 필: 특별히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글자를 크게 쓴다는 뜻으로 신문 따위의 출판물에서 어떤 기사에 큰 비중을 두어 다룸을 이르는 말)
-꿈은 아니겠지, 夢遊桃源圖(몽유도원도-꿈 몽, 놀 유, 복숭아나무 도, 근원 원, 그림 도: 조선 세종 때에 안견이 그린 산수화. 안평 대군이 꿈에 도원경을 거닌 이야기를 안견에게 그리게 함)
-收藏庫(수장고-거둘 수, 감출 장, 곳집 고: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 에서 꺼낸 正祖(정조: 조선 제22대 왕) 御札(어찰-어거할 어, 패 찰: 임금의 편지)
-天馬塚(천마총-하늘 천, 말 마, 무덤 총: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때의 고분) 天馬圖(천마도-하늘 천, 말 마, 그림 도: 천마총에서 나온 말다래의 뒷면에 그려진 그림. 순백의 천마 한 마리가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모양을 그린 것. ‘천마총’이라는 명칭이 여기에 연유함)
진한 글씨로 되어있는 것은 한자어를 모르기 때문에 사용된 重疊(중첩)표현의 전형이다. ‘비밀리에 전달되는 密書’의 경우 ‘密書’ 자체에 ‘몰래 보내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비밀리에’라고 쓸 필요가 없다. ‘無記名 비밀투표’도 마찬가지다. ‘無記名’ 즉 이름을 적지 않는 것 자체가 비밀로 하는 것과 다름없으니, 무기명 투표 정도로만 써도 無妨(무방)하다.●
李知映(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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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知映(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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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29, 20: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