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종렬씨의 최근 수년 간 활동 모습
吳씨는 65년 광주사범학교를 졸업 후 전남고교와 전남여고 교사를 거치며 87년 말부터 전교조 전신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 활동에 깊숙이 간여했다. 2000년 8월3일자 경향신문 기사를 인용해보면, 『전교조 중앙본부가 결성되자 동료교사들에 의해 광주지회장에 추대됐고 특유의 인화력으로 단번에 조합원을 3,000여명까지 늘렸다』고 한다.
2008년 9월 「말」지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吳씨는) 전교협 결성 이후 광주를 벗어나 전국을 다니며 토론을 조직하고 교사들을 만나며 「교원노조 결성」을 호소했다. 1989년 2월 전교협은 마지막 대의원대회를 열고 2표 차이로 「교원노조」로 조직을 전환하기로 결의했다』 「말」지 기사대로면, 吳씨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교조 결성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는 말이 된다.
吳씨는 89년 전교조 결성 주도 혐의로 해직됐고, 이후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 등 친북단체 대표로서 반미운동을 주도해왔다. 해직 중에도 그는 전교조 광주시지부장으로 활동했다. 吳씨는 91년 지방자치의회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 광주시 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94년 말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돼 2년8개월 형을 선고받고 만기까지 복역했다.
吳씨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기사를 인용해본다. 吳씨는 김일성 사망 하루 뒤인 94년 7월11일 전국연합 차원에서 이른바 애도성명을 발표한 뒤 언론에 이렇게 인터뷰했었다. 『金 주석이 자주(自主)와 평화통일(平和統一)을 위해 힘써왔던 것을 민족적 관점에서 평가한다...남북 정부가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했던 정신에 기초하여 자주적 통일을 위해 노력하고 국내외 반통일세력의 준동을 막아야 한다』 소련, 중공 등 외세를 끌어들인 남침전쟁을 일으켜 400만 민족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인간백정 김일성을 가리켜 『자주와 평화통일을 위해 힘써왔다』니?
오종렬 같은 골수 친북좌파 인물이 전교조의 산파(産婆) 역할을 담당했다는 사실은 전교조가 왜 그토록 편향된 이념을 가지고 활동했는지 추측케 해준다. 대한민국과 화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었으니 반미, 친북, 좌경 노선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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