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위해서는 인간적 의리를 끊을지언정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분’ ‘남에게도 엄격했지만 자신에게 가장 불만이 많았고 가장 엄격했던 분’
수년 전 가을 서울 남산의 옛 안기부장 관사 자리에서는 가슴이 따뜻한 행사가 열렸다. 관사를 개조한 ‘ 문학의 집’에서 시조시인 金相沃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었다. 金선생님은 우리 경남여고 교사를 지내시기도 한 우리나라 時調 분야의 최고봉이셨다. 時調뿐 아니라 篆刻(전각), 서예, 그림, 수필, 陶藝(도예) 등 여러 분야에서 頂上에 오른 분이시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큰딸 김훈정씨는 경남여고 1년 선배이고 남편 金聲翊씨는 내 남편의 친구이시다. 이런 인연으로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SBS 앵커맨 출신인 시인 유자효씨가 金相沃 선생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사회를 멋지게 보는 바람에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他界하신 부인을 따르듯이 며칠 뒤에 돌아가신 金선생에 대한 회고담이 이어졌다. 내가 통쾌하게 생각한 것은, 이근배 시인의 말이었다.
“요사이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세 분이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金東里 선생, 시의 徐廷柱 선생, 시조의 金相沃 선생. 이 세 분은 한국의 토속적인 아름다움과 혼을 추구한 분입니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슨 시를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국민 愛誦詩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정치적 時流를 타고 노벨문학상을 받겠다고 뛰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에 이근배 선생의 말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이날 나눠준 팸플리트에 쓰여진 金相沃 선생의 다보탑을 읽어보았다.
다보탑
불꽃이 이리 튀고 돌조각이 저리 튀고
밤을 낮을 삼아 정 소리가 요란터니
불국사 백운교 위에 탑이 솟아오른다.
꽃쟁반 팔모난간 층층이 고운 모양!
그의 손 간 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쳐 이고 있단다.
그 화려한 다보탑을 ‘돌옷’이란 낱말 하나로 압축적으로 형상화하여 눈에 선하게 보이도록 하신 金相沃 선생이야말로 언어를 돌처럼 빚어내 ‘시조로 된 다보탑’을 만드신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보탑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시조 한 편이 그 어떤 사진이나 散文보다도 더 정확히 다보탑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내 남편은 新羅 숭배자인데 “신라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다”고 말할 정도이다. 남편은, 이근배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한 세 분이 모두 신라정신과 신라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좋아했다.
이날 좋은 분들이 生前의 金相沃 선생을 재미있게 증언해주었다. 그 공통적인 인물평은 ‘오기가 센 사람’ ‘예술을 위해서는 인간적 의리를 끊을지언정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분’ ‘남에게도 엄격했지만 자신에게 가장 불만이 많았고 가장 엄격했던 분’ ‘穿鑿(천착)이란 말이 어울리는 분’ 등등이었다. 金南祚 시인은 “그분은 돌아가시는 모습도 자신의 의지대로 연출한 분이다. 이제 이만 여기서 숨을 거두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한 분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金선생의 큰따님인 김훈정씨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님은 眞善美 가운데 美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眞善이 저절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사람을 나쁘다, 좋다 이렇게 평가하시지 않고 재주가 있느냐 없느냐로 하셨어요. 그분의 가장 큰 욕은 ‘이 재주 없는 녀석’이란 말이었습니다”
이날 여러분들의 증언을 들으니 金相沃 선생이야말로 ‘자신의 人生을 완수하고 가신 분’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불씨처럼 이어가려고 치열하게, 경건하게 살고 가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金선생에 대한 逸話들을 듣고 있자니 생전에 배울 기회도, 만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金선생은 생전에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 하리오'(옥저)라고 읊으셨는데 이날 모인 사람들은 다 그분과 뜻을 같이하였으리라.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문화인들까지 나서서 경쟁적으로 국민들 마음속에 분열과 증오를 심기 위하여 국민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아름다움을 지켜가기 위한 이런 모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차기 직전의 환한 달이 남산숲 사이로 보였다. 역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구나, 그것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 서울에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수년 전 가을 서울 남산의 옛 안기부장 관사 자리에서는 가슴이 따뜻한 행사가 열렸다. 관사를 개조한 ‘ 문학의 집’에서 시조시인 金相沃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었다. 金선생님은 우리 경남여고 교사를 지내시기도 한 우리나라 時調 분야의 최고봉이셨다. 時調뿐 아니라 篆刻(전각), 서예, 그림, 수필, 陶藝(도예) 등 여러 분야에서 頂上에 오른 분이시고 무엇보다도 그분의 큰딸 김훈정씨는 경남여고 1년 선배이고 남편 金聲翊씨는 내 남편의 친구이시다. 이런 인연으로 남편과 함께 참석했다. SBS 앵커맨 출신인 시인 유자효씨가 金相沃 선생의 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사회를 멋지게 보는 바람에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他界하신 부인을 따르듯이 며칠 뒤에 돌아가신 金선생에 대한 회고담이 이어졌다. 내가 통쾌하게 생각한 것은, 이근배 시인의 말이었다.
“요사이 누가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세 분이 받았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金東里 선생, 시의 徐廷柱 선생, 시조의 金相沃 선생. 이 세 분은 한국의 토속적인 아름다움과 혼을 추구한 분입니다. 가장 토속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슨 시를 썼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이, 국민 愛誦詩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 정치적 時流를 타고 노벨문학상을 받겠다고 뛰는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에 이근배 선생의 말이 내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이날 나눠준 팸플리트에 쓰여진 金相沃 선생의 다보탑을 읽어보았다.
다보탑
불꽃이 이리 튀고 돌조각이 저리 튀고
밤을 낮을 삼아 정 소리가 요란터니
불국사 백운교 위에 탑이 솟아오른다.
꽃쟁반 팔모난간 층층이 고운 모양!
그의 손 간 데마다 돌옷은 새로 피고
머리엔 푸른 하늘을 받쳐 이고 있단다.
그 화려한 다보탑을 ‘돌옷’이란 낱말 하나로 압축적으로 형상화하여 눈에 선하게 보이도록 하신 金相沃 선생이야말로 언어를 돌처럼 빚어내 ‘시조로 된 다보탑’을 만드신 분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보탑을 여러 번 보았지만 이 시조 한 편이 그 어떤 사진이나 散文보다도 더 정확히 다보탑을 그려낸 것이 아닌가. 내 남편은 新羅 숭배자인데 “신라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다 좋은 사람이다”고 말할 정도이다. 남편은, 이근배 선생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한 세 분이 모두 신라정신과 신라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좋아했다.
이날 좋은 분들이 生前의 金相沃 선생을 재미있게 증언해주었다. 그 공통적인 인물평은 ‘오기가 센 사람’ ‘예술을 위해서는 인간적 의리를 끊을지언정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분’ ‘남에게도 엄격했지만 자신에게 가장 불만이 많았고 가장 엄격했던 분’ ‘穿鑿(천착)이란 말이 어울리는 분’ 등등이었다. 金南祚 시인은 “그분은 돌아가시는 모습도 자신의 의지대로 연출한 분이다. 이제 이만 여기서 숨을 거두어야겠다고 결심하고 실행한 분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金선생의 큰따님인 김훈정씨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버님은 眞善美 가운데 美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에게는 眞善이 저절로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사람을 나쁘다, 좋다 이렇게 평가하시지 않고 재주가 있느냐 없느냐로 하셨어요. 그분의 가장 큰 욕은 ‘이 재주 없는 녀석’이란 말이었습니다”
이날 여러분들의 증언을 들으니 金相沃 선생이야말로 ‘자신의 人生을 완수하고 가신 분’ ‘한국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불씨처럼 이어가려고 치열하게, 경건하게 살고 가신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金선생에 대한 逸話들을 듣고 있자니 생전에 배울 기회도, 만날 기회도 없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金선생은 생전에 '차라리 외로울망정 뜻을 달리 하리오'(옥저)라고 읊으셨는데 이날 모인 사람들은 다 그분과 뜻을 같이하였으리라.
정치인들과 언론인들, 문화인들까지 나서서 경쟁적으로 국민들 마음속에 분열과 증오를 심기 위하여 국민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이 세상의 한 구석에서는 그래도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서 아름다움을 지켜가기 위한 이런 모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였다. 행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차기 직전의 환한 달이 남산숲 사이로 보였다. 역시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이 다행이구나, 그것도 북한이 아니라 남한 서울에서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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