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
朴변호사는 15년 전인 1994년 5월14일 한겨레신문 칼럼에 이렇게 적었다.
《북한의 벌목공, 탈출자들의 이야기로 지난 몇 주 동안은 온통 우리 사회가 시끄러웠다. 그것은 북한에서의 심각한 인권 실태를 폭로함으로써 충격을 주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 그 소란이 정치적 의도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았다...이러한 소동은 결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 북한사회의 개방문제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일 수도 없다...이 땅에 들어와 그 같은 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에게 아무런 인도적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소련과 중국, 북한에 있는 북한주민의 인권을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그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朴변호사는 북한 인권 유린 비판은 정치적 의도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탈북자들도 돕지 못하는 마당에 무슨 북한 인권이냐는 식으로 따진다.
일견 그럴싸하지만, 심각하게 치우쳐있다. 그런 식이면 朴변호사가 대한민국에 덧입혀 온 소위 『고문』『조작』『독재』의 비난도 근거가 없다. 북한보다 수백 배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남한의 티끌에 대해선 현미경을 들이대며 돌을 던진다. 그러나 5천 년 한민족 역사 상 최악의 살인마 김정일에 대해선 『정치적이기 때문에』또는 『해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에』입술을 닫아야 한다니? 이것은 억지와 궤변이다. 그는 어째서 대한민국에 대해서만 이렇게 저주와 악담을 일삼는 것일까?
朴변호사의 북한 인권에 대한 시각은 이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1999년 8월1일 올라가 있는 『극우 해리티지 재단에서 배운 시민운동 노하우』라는 朴변호사의 칼럼은 이러하다.
《미국 NED재단의 거쉬먼 회장에게 : 북한에 대한 관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 워낙 폐쇄적(閉鎖的)인 사회여서 북한의 민주화나 인권문제에 당장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며 그 대신 점진적인 남북교류와 경제교역의 추진에 따라 신뢰와 화해를 쌓아가는 것만이 북한을 민주화시키는 길일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朴변호사는 같은 칼럼에서 『지난번 Ms.코언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집요하게 북한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운동을 한다면 재정지원을 할 용의가 있음을 이야기하여 좀 이상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한국에서 그 동안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 언론은 대체로 극우보수파들이었음을 설명했었다.』며 북한인권 문제가 소위 극우보수파들만의 이슈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너무 폐쇄적인 곳이라 알 수 없다는 북한인권>
朴변호사는 2008년 2월4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권이라든지, 고문이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한돼 있어서 워낙 폐쇄적(閉鎖的)인 국가니까 (알 수는 없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제된 국가에서는 고문이 있을 가능성이 많죠. 어떤 고문이나 권위주의적인 폭압적 통치는 분명히 저는 있을 것이라고 보고요, 그것은 국제사회가 일정하게 개입을 해야죠.》
『북한은 폐쇄적인 사회여서 북한 인권문제 접근이 어렵다』는 朴변호사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참상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UN·EU 등은 북한인권 결의안을 채택해왔고, 미국과 일본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법안까지 만들었다.
최악의 인권유린에 대해 『폐쇄적 사회이므로 잘 알 수 없다』는 논법은 구차하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현대사에 대한 가혹한 비판과 비교해 북한정권에 너무나 우호적이다. 서로 다른 잣대로 남북을 논하는 비판은 치우친 편견(偏見)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