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들을 親日派로 몰아 저격하면 대한민국이 암살되나?

日帝의 강압적 체제 아래서 일시적으로 親日的 행동을 하였다가 조국이 建國된 이후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참여한 인사들을 親日派니 親日人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장이며 왜곡으로서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日帝의 강압적 체제 아래서 일시적으로 親日的 행동을 하였다가 조국이 建國된 이후 나라를 발전시키는 데 참여한 인사들을 親日派니 親日人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과장이며 왜곡으로서 명백한 명예훼손이다. 한때 좌익활동을 하였다가 전향하여 애국자가 된 사람을 '빨갱이'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 한때 기독교인을 잡아다니던 사도바울이 轉向하여 기독교의 가장 유명한 使徒가 되었는데도 그를 '敵그리스도'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

'친일인명사전'은 그 명칭 자체로써 이미 과장과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일행적사전'이라고 했어야 맞다.

강압적 체제 아래서 이뤄진 한때의 친일적 행동을 부각시켜 建國 이후 장기간에 이뤄진 애국적 행동을 덮어버리고 그의 인생과 인간됨을 총체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는 인간과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박정희가 滿軍장교로 있었던 시기는 5년이지만 그가 애국한 기간은 30년을 넘는다. 안익태, 서정주 같은 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애국혼을 가졌던 이들도, 조국이 없는 상태에서 강압통치를 받으면서 내키지 않은 행위를 하도록 한 1차적 책임은 나라를 넘겨준 고종 등 대한제국의 지배층이 져야 한다. 고종 등 皇族은 韓日병합 뒤 抗日운동을 지도하기는커녕 日帝가 주는 혜택을 누리면서 살았다. 장수가 항복하였는데, 졸병들이 敵軍에 저항하여 죽거나 감옥에 가지 않고 순응하여 살아났다고 벌을 주자는 것은 正義의 원칙인 公正性에 어긋난다.

朴正熙는 중국 공산군과 싸웠을 뿐 한국인 독립군과 싸운 적도, 그들을 잡은 적도 없다. 그는 滿軍장교로 익힌 군사기술을 建國 이후 국군과 국가를 위하여 사용하였다. 박정희는 말보다 실력을 믿는 이였다. 말로써는 독립운동을 수 없이 할 수 있으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효임을 잘 알았다.

그는 대통령이 된 다음 한국의 國力을 길러 일본과 맞먹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는 실력으로써 일본에 복수한 사람이다. 가장 위대한 克日운동가였다.

친북파들은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한 진짜 친일파, 즉 日帝와 만주국의 헌병과 고등계 경찰이 자기 편일 경우 친일파 분류에서 빼준다. 친일파 청산을 소리높이 외쳤던 열린당의 두 국회의원 아버지가 헌병간부 및 특무경찰로 밝혀졌는데도 봐 주었다. 북한정권을 위하여 일한 사람들, 예컨대 북한공군을 만든 日帝 항공 장교들의 명단도 빼준다. 이런 사실들은 친일파 소동을 일으키는 가장 큰 이유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데 있다는 의심을 정당화한다.

김일성 편에 선 악질 친일파들은 봐주고 대한민국 편에 선 애국자들은 매도한다. 그들의 눈엔 민족반역자 김일성 편에 선 친일파들이 애국자로 보이고 조국을 위하여 일한 친일파들은 원수로 보일 것이다.

그들은, 민족지 발행인(김성수, 방응모), 애국가 작곡가(안익태), 애국 논설가(장지연), 세계적 시인(서정주), 근대화 혁명가(박정희), 민주화 투사(張勉)를 친일파로 몰아 저격하면 대한민국은 암살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렇게 할수록 자신들의 허물만 더 커지고 결국은 그들이 판 무덤에 묻히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과 현대사는 그렇게 간단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 친일파가 주도한 대한민국 건설이라면 대한민국이 일본의 속국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세계 유일의 나라'가 되었단 말인가? 그들이 휘두르는 선동과 억지와 증오의 칼은 결국 그들의 심장을 겨누게 될 것이다. 성경말씀대로 '그들의 헤아림으로 그들도 헤아림을 당할 것이다.'

생존자가 없는 친일파는 청산할 수 없으나 현재진행형인 親北반역자들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므로 依法처리해야 한다. 뉘우침이 없이 반역을 계속하는 親北派가 愛國으로 親日을 갚은 前 친일파보다 더 위험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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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北派가 親日派를 고발하는 것은 强盜가 竊盜(절도)를 고발하는 것과 같다!


조국이 없을 때의 친일파와 조국이 있는데도 반역한 자, 반성한 親日派와 반성하지 않는 親北派, 살기 위하여 한 굴종과 알고 한 반역의 차이.
趙甲濟

親日派와 親北派 비교.

1. 日帝 시대에 한국인의 선택은 抗日독립운동하여 죽거나 감옥에 갈 것인가, 아니면 순응하여 살면서 실력을 길러 독립준비를 할 것인가의 兩者擇一이었다. 적극적으로 日帝의 앞잡이가 된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朴正熙, 申鉉碻 같은 분들이 日帝에 순응하는 척하면서 실력을 길러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이다(북한군의 남침에 대항하여 조국을 지켜낸 한국군 지휘관들은 거의가 일본-만주군 장교로서 전술을 배웠던 이들이다). 親北좌익들은 이런 사람들까지 친일파로 몬다. 국가가 없었을 때의 親日은 기본적으로 생존의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親北派는 어떤 이들인가?

2. 親北派(親김일성-김정일파)는 대한민국 체제의 혜택을 누리고 살면서 국가반역을 선택한 이들이다. 親北을 하지 않는다고, 즉 반역을 하지 않는다고 이들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낼 세력은 없었다. 親北派가 되는 것은 헌법과 국가에 대한 반역임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 조국이 있음에도 자발적인 반역을 선택한 것이다. 親北派는, 사사건건 조국을 만든 사람들을 물어뜯고 북한정권을 비호하면서도 단 한 사람 북한에 가서 살겠다는 이가 없다.

3. 친일파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建國된 이후에는 거의 모두가 조국에 충성을 바쳤다. 극소수의 친일파들만 김일성 편으로 들어가서 국가반역을 계속했다. 친북파들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즉 조국이 있음에도 민족반역자, 학살자 편을 든다. 반성한 친일파와 반성하지 않은 친북반역자, 누가 더 나쁜가?

4. 현재 살아 있는 친일파는 없다. 친북파는 지금 힘이 세다. 친일파는 국가와 헌법에 위해를 끼칠 수가 없다. 친북파는 현존하는 명백한 위험요인이다. 친일파 청산은 할래야 할 수가 없다. 친일파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있을 뿐이다. 친북파에 대한 斷罪와 청산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친일파 유족들로부터 재산을 몰수한다는 法理가 성립된다면 친북파는 그 당사자로부터 재산을 몰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5. 친일파의 상당수는 2차세계대전 때 정보가 부족하여, 즉 日帝가 승리하고 있다고 믿은 나머지 親日행동을 했다. 친북파는 大明天地의 정보화 시절에 김정일과 김일성의 악마적 행동을 다 알고도 이들에게 魂을 팔고 있다. 모르고 한 굴종과 알고 한 반역, 어느 쪽이 더 나쁜가?

6. 我軍의 장수(고종)가 항복하고 그 후손들은 일본군의 장교가 되었는데, 졸병들(나라 잃은 백성들)이 끝까지 싸우지 않고 항복하여 일본군에 들어갔다고 벌을 준다? 너무 잔인하지 않는가?

7. 親北派가 親日派를 고발하는 것은 强盜가 竊盜(절도)를 고발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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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應烈 장군 증언: '日軍출신 조종사들이 북한공군 창설에 대거 참여'


'6·25 때 한국 공습한 야크기 조종사들은 거의가 일군 조종사 출신들'
趙甲濟


1951년 6·25 전쟁 때 미군이 한국 공군에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李承晩 대통령은 불복한 한국군 장교를 처형하라는 지시를 했다는 張志良(장지량) 전 공군참모총장의 회고록 내용을 바로잡는 데 앞장선 사람은 張 총장의 후배이기도 한 尹應烈(윤응렬) 전 공군작전사령관이다. 그의 이런 노력은 공군으로 하여금 미군과 李承晩 대통령이 해인사 폭격에 관여한 사실이 없고, 폭격 요청은 경찰이 한 것이며, 金英煥(김영환) 편대장이 스스로 폭격 회피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공식으로 확인하도록 하였다.

올해 82세인 尹 장군은 일본군, 북한군, 한국 공군에 근무한 경험이 있다. 日帝 시대인 1943년 평양3中 재학중 일본의 소년항공병학교에 들어가 조종훈련을 받고 이듬해 자바 戰線에 배치되었다. 소년항공병학교 제15기 졸업생인데, 수십 명의 한국인이 동기생으로 배출되었다. 이들은 해방 뒤에 북한과 한국 공군의 창설에 참여하게 된다.

尹應烈씨는 1945년 8·15 해방을 프놈펜에서 맞았다.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북한공군 창설에 참여하였다. 일제 시대 때 전투기 조종 경험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북한空軍 창설에 동참하였다고 한다. 북한空軍 창설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사람은 李活(이활).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自費를 들여 조종술을 배운 뒤 일본 해군에 촉탁신분으로 들어가 전투기를 몰았다. 소년항공병학교 출신으로는 이흥부, 박경옥씨 등이 참여하였다. 나중에 인민군 9사단장으로 가는 허민국은 일본 나고야 항공학교 출신이다. 공군사단장까지 오른 서주필은 윤흥렬씨의 항공병학교 동기생인데, 6.25 전쟁 때 美軍 B-29기도 격추시킨 사람이다.

尹應烈씨는 북한공군 장교로 근무하다가 사상검열을 받아 조종사 자격을 박탈당하자 월남하여 1948년에 육사 7기로 들어갔다. 그는 졸업 후 육군 항공대 소위로 임관하였다가 1949년 10월1일 공군이 창설되자 옮겼다. 6.25 전쟁중 107회의 출격을 기록하였다.





6·25 남침 당일 尹씨는 여의도 비행장의 당직사관이었다. 그날 소련제 야크기를 몰고 서울 등지를 폭격한 북한 공군조종사들은 거의가 일본군 조종사 출신이었다. 윤씨의 동기생인 박경옥은 야크기가 격추되면서 낙하산으로 뛰어내렸다가 사살되었다. 또 다른 동기생인 이흥부는 낙하산을 타고 着地(착지)하였으나 복부에 총상을 당하였다. 한국 공군이 그를 인수하자 李씨는 동기생인 윤응렬씨를 찾다가 숨졌다고 한다.

인천 상륙 이후 國軍이 北進하여 평양을 점령하였을 때 윤응렬씨는 평양에 가서 이흥부의 부모를 만났는데, 부모가 아들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차마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하지 못하고 왔다고 한다.

위의 사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북한에서도 日帝시대의 군대 경험자를 소중한 자원으로 생각하여 重用하였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親北세력이 대한민국을 만든 主流세력을 공격하기 위하여 박정희 같은 滿軍장교들까지 親日派로 몰고 있는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때 북한정권의 제2인자였던 김영주는 김일성의 동생인데, 일제 시대에 일본군의 보조원으로 근무했던 이다. 한국의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을 지낸 강양욱은 日帝下 도의원이었다. 그는 김일성의 외삼촌이다.

이승만이 짠 대한민국 초대 내각엔 친일파가 한 사람도 없었으나 김일성의 初期 정권에는 많은 친일파들이 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금강산에서 남북간의 접촉이 있었을 때 북한의 한 고위간부가 私席에서 한국측 모 인사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요사이 남한에서 친일파를 새삼 거론하던데 이해를 할 수 없어요. 김일성 주석님은 친일파였던 사람도 뉘우치면 다 받아들여 조국 건설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이 말은 공산당에 협조한 친일파는 重用하고 반대한 친일파는 숙청하였다는 의미이다. 남한의 철부지 친북파들은 북한정권이 친일파를 숙청하였고 이승만 정부는 하지 못하였으므로 북한정권이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데 무식한 건지 알고도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6·25 남침 직후 서울에 들어온 북한군은 한국 공군의 창설 멤버인 李英茂 대령(육군항공대장 역임. 당시 민간인)을 납치하여 갔다. 그는 장개석의 중국군에서 조종사로 근무하면서 일본군과 싸운 사람이다. 李 대령을 납치해간 북한군은 협력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李씨가 거부하자 그를 투옥하여 옥중에서 죽게 하였다. 협조적인 친일파를 重用하고 반대하는 독립파를 탄압한 셈이다. 이게 북한정권의 친일파 숙청 기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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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은 非命橫死 내각, 南은 독립투사 내각
-이승만이 친일파를 중용했다는 미신에 대해서.

1. 소위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초대 내각 명단을 보자.

수상 金日成, 부수상(외무상 겸임) 朴憲永(처형), 부수상(산업상 겸임) 金策, 부수상 洪命熹, 내무상 朴一禹(숙청), 민족보위상 崔庸健, 재정상 崔昌益(처형), 사법상 李承燁(처형), 상업상 張時雨(처형), 교통상 朱寧夏(처형), 노동상 許成澤(처형), 국가검열상 金元鳳, 도시 경영상 李鏞, 교육상 白南雲, 문화선전상 許貞淑, 농림상 朴文圭, 보건상 李炳南, 보위성부상 김무정(처형), 최고회의 의장許憲, 최고회의 상임위원장 金枓奉(숙청). 이상 20명 중 10명이 사형되거나 정치범 수용소에서 사라졌다. 非命橫死 내각인 셈이다. 이외에 김영주(노동당 조직부장, 김일성의 동생), 홍명희(북한 부수상), 이승엽(남로당 제2인자), 장헌근(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도 日帝 때 부역하였던 親日派였다.

2. 대한민국 초대 내각을 본다.

대통령 李承晩(상해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부통령 李始榮(임시정부 재무총장), 국회의장 申翼熙(임시정부 내무총장), 대법원장 金炳魯(抗日변호사), 국무총리 李範奭(광복군 참모장), 외무장관 張澤相(청구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내무장관 尹致暎(흥업구락부 사건으로 투옥), 재무장관 金度演(2·8독립선언 투옥), 법부장관 李仁(抗日 변호사), 국방장관 李範奭 겸임, 문교장관 安浩相(철학교수), 농림장관 曺奉岩(공산당 간부·사형), 상공장관 任永信(독립운동, 교육가), 사회장관 錢鎭漢(抗日 노동운동가), 교통장관 閔熙植(철도교통 전문가), 체신장관 尹錫龜(교육 사회운동가), 무임소 장관 李靑天(광복군 총사령관), 무임소 장관 李允榮(抗日 기독교 목사), 국회부의장 金東元(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 국회부의장 金若水(사회주의 독립운동).

이상 19명은 거의 전부가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다. 친일파는 한 사람도 없다. 反共反日을 國是로 삼다시피한 李承晩 대통령이 親日한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할 리가 없었다.

다만, 親日 경찰 출신들을 중용하여 공산주의자들을 수사하도록 했는데, 이들이 정치사찰까지 하는 바람에 독립운동가 출신들을 조사하는 사태가 일어나곤 했다.

대체로 李承晩 내각은 독립투사 내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북한 어느 쪽이 정통성이 있느냐가 自明하게 판명된다. 정통성 안에는 法治의 요소가 크게 자리잡아야 한다.

정치적 숙청으로써 초대 각료의 반을 제거하는 체제에 정통성이 있을 수 없다. 민족사적 정통성은 민족 전체의 행복을 어느 체제가 발전시켰느냐로 판가름 낸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적 복지, 안전, 자유가 있어야 한다.

金日成 체제는 출발부터 피비린내를 내면서 민족의 재앙이 되었고 李承晩 대통령은 조국을 위하여 고투한 분들을 모았다. 그 차이가 오늘날의 남북한 차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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