張俊河 추락사에 의문은 없고 목격자 있다!

작년에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허원근 일병 자살 사건을 상사가 사살할 뒤 은폐한 사건으로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가 군의 재조사로 엉터리 조사였음이 밝혀졌던 前過를 갖고 있다. 요사이 이 위원회가 또 다시 장준하씨 실족사 사건에 무슨 의혹이 있는 것처럼 조사를 하고 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만나 주변상황을 알아보았다고 한다.

목격자가 분명히 살아 있는 張俊河씨 실족사 사건을 맨첨 타살 은폐로 몬 것은 1993년 서울방송(SBS)이었다. 월간조선 1993년5월호는 이 방송 보도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특집기사를 실었다. 200지 원고지 약300장 분량의 심층취재였다.

기 기사를 계기로 하여 한 10년간 의혹 주장이 제기되지 않더니 또 이상한 병이 도지고 있다. 김정일도 인정한 대한항공 폭파사건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만큼이나 무리한 장준하 실족사 의혹제기는 결국 의혹을 만든 사람들에게 그 대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1993년5월호 월간조선 기사 제목만 소개해도 의혹제기가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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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의 위험천만한 誤報
-[결정적 증언]이란 것도 수사에 아무 상관이 없는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의 잡담을 몰래 녹음, 방영한 것이었다!
-SBS는 추기경까지 등장시켜 장준하씨가 타살되었다고 단정함으로써 장씨와 동행했던 [추락사의 목격자] 김용환씨를 사실상 살인범으로 몰았다. 거대한 TV채널 앞에서 한 개인의 인권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있다. 월간조선 취재반은 SBS 제작진, 목격자 김용환, 당시 담당 검사, 문제의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 등 관련자들을 두루 만나본 뒤 [추락사를 뒤엎을 만한 증거는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SBS가 신원을 알면서도 밝히지 않았던 [추락사의 목격자] 김용환씨는 지금 고교 윤리교사로 재직중이다.
-타살 단정에의 결정적 증언을 제공했다는 전 군 법무관은 장준하 변사사건 수사에 전혀 관계 없는 인물임이 판명되었다.

-당시 수사검사 서돈양 변호사는 '명백한 추락사였다. 외압은 없었다. 가족들의 이의 제기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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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씨를 타살로 모는 인간들은 결국 김용환씨를 범인으로 본다는 이야기인데 그는 그 사건후 고등학교에서 윤리담당 교사를 지낸 뒤 지금은 정년퇴직했다. 대대로 같은 마을에 살고 점잖은 사람으로 평판이 자자한 인물이다. 이 김용환씨는 10년 전에도 이런 고통을 호소했었다.

'서울방송의 첫 보도가 나간 뒤 동료 교사가 '텔레비전에서 봤다'고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수업을 들어갔는데, 자꾸 가슴이 떨리고 진정이 안되더군요. 자꾸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어떻게 수업을 마쳤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았습니다. 가슴은 답답한데 하소연할 곳도 없고...'

김용환씨는 오랫동안 따르던 사회 선배 장준하씨의 실족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장 선생과 산 정상에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그러다가 선생께서 '어이쿠 사람들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며 일어나 직선으로 계곡쪽으로 갔다. 장 선생이 앞장 서고 내가 뒤따라갔다. 처음엔 나무를 붙잡고 어렵지 않게 내려갔는데 갈수록 길이 험해졌다. 겁이 나서 '선생님 못가겠습니다. 돌아갑시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장선생이 먼저 계곡을 훌쩍 뛰어넘었다.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갈수록 계곡이 험해져 그때부터는 젊은 사람이 앞장서야 할 것 같아 앞장서긴 했는데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되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수 없고 위험해도 어쩔 수 없이 앞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 있다. 그때가 그랬다.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는데 뒤에서 뭔가 휙 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아 돌아보니 장선생이 떨어지셨다.'

의문사위원회와 언론은 지금 허원근 일병 자살을 타살로 발표하고 이를 무비판적으로 보도했던 작년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10년 전의 SBS가 했던, 한 순박한 시민을 살인범으로 몰아간 인격살인행위를 다시는 범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한항공 폭파 사건의 김현희처럼 장준하씨의 추락사 목격자는 살아 있다. 장준하 추락사 재조사는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 기자들은 작년처럼 나팔수나 대필자가 되어선 안된다. 사실확인의 의무를 포기한 기자는 선전원이고 펜을 든 깡패이다.


*참고자료



의문사위 'DJ·장준하, 75년 '반유신' 합의'
“DJ 면담결과와 타살 연계는 논리비약”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장준하 선생이 75년 7월29일밀담을 나눈 뒤 재야세력을 규합해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벌이는데 합의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18일 오후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과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을 면담하고 난 뒤 이 같이 밝혔다.

의문사위는 김 전 대통령의 증언을 인용, 75년 7월29일 김 전 대통령과 장준하선생이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며 재야 운동세력과 분열된 야당세력을 통합하고 힘을합쳐 유신체제를 분쇄하자는데 두 사람이 합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가택연금으로 활동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야당이 분열돼재야 세력이 결집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야세력 통합의 실무책임을 장준하 선생이 맡게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의문사위는 설명했다.

당시 장 선생은 ‘야망이나 대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겠다. 오로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모든 걸 버리고 매진하겠다’고 말했던 것으로김 전 대통령은 기억했다고 의문사위는 전했다.

의문사위는 또 김 전 대통령도 “동지를 규합하고 내가 움직일 경우 동지들이 다치니까 장 선생이 하게 됐다”는 증언을 했다고 덧붙였다.

의문사위 김희수 제1상임위원은 “장 선생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75년초 1,2월께만났다는 설과 7월에 만났다는 설이 있었는데 75년 7월29일 만나 반유신운동에 합의했다는 사실로 확인됐다”고 소개했다.

김 상임위원은 “당시 중정의 1일 동향보고에도 75년 7월29일 오전 11시부터 3시간30분 동안 DJ자택에서 밀담을 나눈 걸로 돼 있어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고말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아래서 만약 장준하 선생이 타살됐다면 왜 제거의 대상이 장준하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있었는데 오늘 면담결과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당시 중정의 타살 공작 가능성과 관련 “타살 여부는 계속 조사하는중이고 (면담결과를 토대로) 타살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논리비약”이라며 “향후김 전 대통령 면담계획은 없고 필요하다면 서면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3.12.18 21:39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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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100자평은 총 10건입니다. (추천순)
현 창환(chang4223)
9 6 의문사위가 의문을더 부풀리고있다.앞으로 동학농민운동까지 의문사 조사를하자 할까 의문쓰럽다. 어느때까지 의혹이 부풀어지는 사건사고를 의문사로보고 조사할 것입니까? 길게 끌다가 월급으로 생계비로 국가에대한 손실등은 안중에도없다.의문과 의혹으로 주검을 당한유가족 들이야 얼마나 애통하고 절통 하겠습니까 그러나 또다른 억울함을 만들어내는 실수는 하지말아야 할것입니다 (12/18/2003 22:11:02)

서수찬(dkcjdcns)
6 3 이제 여수,순천 반란사건도 배상판결 날꺼고, 한국전쟁으로 사망한 괴뢰군과 중공군에 대해서도 보상할 날이 멀지 않을것 같다. (12/18/2003 2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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